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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을 버리고 자족을, 갈등을 버리고 화합을(사무엘하 19:31~43)(20230520)

2023.05.20.ㅣ 생명의 삶 | 권오향 목사

 

욕망을 버리고 자족을 갈등을 버리고 화합을

 

안녕하세요 

온누리교회를 섬기는 권오향 목사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공보다 승리라는 말들을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막상 승리를 위해서 살아가기보다는 성공을 위해서 사는 자들이 더 많지는 않은가요?

성공한 사람은 제법 많지만 승리한 자는 찾아보기 힘들지 않나 싶습니다. 

그렇지만 날마다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대로 살아간다면 어느새 승자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요한복음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너희는 세상에서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겼었노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오늘도 승리하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함께 볼 말씀은 사무엘하 19장 31에서 43절입니다.

 

 

욕망을 버리고 자족을, 갈등을 버리고 화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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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가 왕이 요단을 건너가게 하려고 로글림에서 내려와 함께 요단에 이르니
32 바르실래는 매우 늙어 나이가 팔십 세라 그는 큰 부자이므로 왕이 마하나임에 머물 때에 그가 왕을 공궤하였더라
33 왕이 바르실래에게 이르되 너는 나와 함께 건너가자 예루살렘에서 내가 너를 공궤하리라
34 바르실래가 왕께 아뢰되 내 생명의 날이 얼마나 있사옵겠기에 어찌 왕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리이까
35 내 나이가 이제 팔십 세라 어떻게 좋고 흉한 것을 분간할 수 있사오며 음식의 맛을 알 수 있사오리이까 이 종이 어떻게 다시 노래하는 남자나 여인의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사오리이까 어찌하여 종이 내 주 왕께 아직도 누를 끼치리이까

36 당신의 종은 왕을 모시고 요단을 건너려는 것뿐이거늘 왕께서 어찌하여 이같은 상으로 내게 갚으려 하시나이까
37 청하건대 당신의 종을 돌려보내옵소서 내가 내 고향 부모의 묘 곁에서 죽으려 하나이다 그러나 왕의 종 김함이 여기 있사오니 청하건대 그가 내 주 왕과 함께 건너가게 하시옵고 왕의 처분대로 그에게 베푸소서 하니라
38 왕이 대답하되 김함이 나와 함께 건너가리니 나는 네가 좋아하는 대로 그에게 베풀겠고 또 네가 내게 구하는 것은 다 너를 위하여 시행하리라 하니라
39 백성이 다 요단을 건너매 왕도 건너가서 왕이 바르실래에게 입을 맞추고 그에게 복을 비니 그가 자기 곳으로 돌아가니라
40 왕이 길갈로 건너오고 김함도 함께 건너오니 온 유다 백성과 이스라엘 백성의 절반이나 왕과 함께 건너니라

41 온 이스라엘 사람이 왕께 나아와 왕께 아뢰되 우리 형제 유다 사람들이 어찌 왕을 도둑하여 왕과 왕의 집안과 왕을 따르는 모든 사람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가게 하였나이까 하매
42 모든 유다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에게 대답하되 왕은 우리의 종친인 까닭이라 너희가 어찌 이 일에 대하여 분 내느냐 우리가 왕의 것을 조금이라도 얻어 먹었느냐 왕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이 있느냐
43 이스라엘 사람이 유다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는 왕에 대하여 열 몫을 가졌으니 다윗에게 대하여 너희보다 더욱 관계가 있거늘 너희가 어찌 우리를 멸시하여 우리 왕을 모셔 오는 일에 먼저 우리와 의논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나 유다 사람의 말이 이스라엘 사람의 말보다 더 강경하였더라


다윗을 맞이하러 나온 사람 중에는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다윗을 물심양면(物心兩面)으로 도운 사람이었죠.

그는 나이가 80세나 되는 노인이었고 재력가였는데, 다윗이 마하나임에 있을 때부터 그를 돕던 조력자였습니다.

다윗 옆에서 어떻게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면서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려는 사람들과는 달랐죠. 

그는 다윗이 어려울 때 진심으로 돕는 자였습니다. 

 

이처럼 한 사람의 인격과 사람됨은 형통할 때보다는 어려울 때 더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3년간이나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제자들도 예수님이 잡히시자 예수님을 버리고 다 줄행랑을 쳐버린 것은 여전히 바뀌지 않았던 그들 안에 있는 세상적인 가치관과 다루어지지 않은 미숙한 성품 탓이었죠. 

그러나 이들은 성령을 받은 후 그 어떤 고난 앞에서도 예수님만을 증거 하는 자들로 변화됩니다.

성령이 이들을 새롭게 변화시킨 것이었죠. 

 

다윗은 마중 나온 바르실래에게 예루살렘으로 함께 가자고 제안을 하는데요.

그동안 자신을 도와준 그의 공이 너무 고마워서 그에게 치아를 하고 싶었고, 그를 곁에 두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르실래는 이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기회일 수도 있는데, 이것을 겸손히 거절하죠. 34절, 35절입니다.

34 바르실래가 왕께 아뢰되 내 생명의 날이 얼마나 있사옵겠기에 어찌 왕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리이까
35 내 나이가 이제 팔십 세라 어떻게 좋고 흉한 것을 분간할 수 있사오며 음식의 맛을 알 수 있사오리이까 이 종이 어떻게 다시 노래하는 남자나 여인의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사오리이까 어찌하여 종이 내 주 왕께 아직도 누를 끼치리이까

바르실래는 자신의 한계를 아는 자였고,

자신의 처지에서 무엇을 해야 할 줄도 아는 자였고,

무엇보다 물러서야 할 때를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 자신이 그리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 대신 김함이라는 자를 천거하면서 자신이 요단을 온 것은 왕을 건너가게 하는 일을 돕고자 함이었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다윗에게 있어서 바르실래는 어쩌면 더운 여름날에 냉수와 같은 존재였죠.

바르실래는 다윗에게 선물이요, 축복이었습니다.

 

여러분, 성숙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요? 

고린도후서 10장 13절에서 사도바울은 '우리는 분수 이상의 자랑을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나누어 주신 그 범위의 한계에 따라 행하노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0:13
그러나 우리는 분수 이상의 자랑을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누어 주신 그 범위의 한계를 따라 하노니 곧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

성숙한 사람이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물러설 때를 알고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자리를 양보할 줄 아는 사람이 아닐까요? 

바르실래는 다윗 일행이 요단을 다 건너자 자신의 소임을 다하였다고 생각하고는 자신이 살던 곳으로 되돌아갑니다.

등장보다 퇴장이 아름다운 사람, 이러한 사람이 성숙한 사람이라 생각이 됩니다. 
우리도 바르실래를 교훈 삼아서 자신의 분수를 알고, 물러설 때를 알고, 양보할 줄도 아는 자

과한 욕심은 벗어버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분량만큼 살아내는 자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서로에게 선물이 되고 축복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윗의 제안에 대한 바르실래의 대답은 어떠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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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요단을 건너는 길에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집니다. 

유다 백성들과 이스라엘 백성들 간의 충동이 일어난 것이죠. 41절, 42절 보시겠습니다. 

41 온 이스라엘 사람이 왕께 나아와 왕께 아뢰되 우리 형제 유다 사람들이 어찌 왕을 도둑 하여 왕과 왕의 집안과 왕을 따르는 모든 사람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가게 하였나이까 하매
42 모든 유다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에게 대답하되 왕은 우리의 종친인 까닭이라 너희가 어찌 이 일에 대하여 분 내느냐 우리가 왕의 것을 조금이라도 얻어먹었느냐 왕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이 있느냐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다 사람들을 향해서, 그동안 너희는 다윗을 배반하더니, 이제 와서 무슨 낯짝으로 왕을 모셔가려고 하느냐라고 힐문하듯이 비난을 하고 있고요.

또 유다 사람들은 자신들은 왕의 종친이니까 왕을 모셔가는 일은 마땅하다고 주장을 하는 겁니다.

이들은 모두 다윗이 왕으로 복귀하는 것은 원했지만, 어쩌면 통일된 왕국을 원하는 것은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각자 서로의 나라를 꿈꾸고 있었던 거죠. 

 

이스라엘 사람들은 당당히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유다 사람에게 맞서서 또다시 대응을 하는데요 43절입니다.

43 이스라엘 사람이 유다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는 왕에 대하여 열 몫을 가졌으니 다윗에게 대하여 너희보다 더욱 관계가 있거늘 너희가 어찌 우리를 멸시하여 우리 왕을 모셔 오는 일에 먼저 우리와 의논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나 유다 사람의 말이 이스라엘 사람의 말보다 더 강경하였더라

그러나 이들이 이와 같이 각자의 몫을 주장하고 권리를 앞세우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논리가 아닙니다.

히브리서 12장 14절에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니라 말씀하고 있죠. 

히브리서 12:14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이들은 어떻게든 마음을 다하여서 압살롬의 반란으로 인해서 무너진 나라를 되살리는 데 힘을 다해야 했습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서로의 입장을 내세우고 각자의 몫을 챙기려 하는 것은 갈등만 심화될 뿐이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던 거죠.

결국 이들의 굽히지 않는 자기주장은 훗날 유다와 이스라엘 간의 분열을 조장하는 단초가 되고 맙니다. 

 

그런데 너무나 안타깝게도 이와 같은 길갈에서의 입싸움은 오늘날 가정이나 교회에서도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화평과 거룩을 추구해야 할 공동체에서도 각자의 입장을 주장하고 공론을 앞세우고 기득권을 내세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거예요.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을 믿는 가정과 교회가 세상과 다른 것은 무엇인가요? 

예수님 안에서 화평과 거룩을 이루는 것 그리하여서 우리 사랑하는 주님을 함께 보는 것이 아닐까요?

 

다윗은 예루살렘으로 복귀하게 되었지만 절대로 기쁘지 않았습니다. 
이제 막 인생의 한 고비를 지나서 하나님이 세우신 거룩한 나라의 회복을 위하여서 가려하는데, 

그 영광스러운 순간에도 그와 함께 하기 위해서, 동참하기 위해 나온 자들이 각자 자신들의 권리와 몫을 주장하느라 아우성인 것입니다. 첫 발을 내딛기도 전에 다시 어려운 처지에 빠져 버린 것이었죠. 

 

그렇지만 여러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처럼 연약하고 이기적인 우리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차질 없이 행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실수나 부족이나 판단 착오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반드시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시는 분이심을 믿으며, 

오늘도 믿음의 지옥, 온전케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공동체 안에 갈들이 있다면, 화합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요?

 

사랑하는 하나님 
우리의 욕심과 이기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심을 믿습니다. 
우리의 정과 욕심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주님을 따르게 하여 주시옵소서. 
바르실래와 같은 선한 마음을 주셔서 하나님 나라에 쓰임 받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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