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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로운 판단이 결여된 유화 정책(사무엘하 19:9~15)(20230518)

2023.05.18.ㅣ생명의 삶 | 권오향 목사

 

공의로운 판단이 결여된 유화 정책

 

할렐루야 

온누리 교회를 섬기는 권오양 목사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주장하고 이끌어주시기를 소망합니다. 

 

날마다의 말씀이 우리를 주장하지 아니하면, 

자칫 자신의 생각이나 세상의 이치, 타인의 논리에 설득당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말씀이 이끄는 삶을 삶기 시작할 때,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거룩한 영향력이 우리를 통해서 흘러가게 될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력 있는 말씀이 우리를 이끌어 주시기를 바라면서 함께 묵상하시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사무엘하 19장 9에서 15절입니다. 

 

 

공의로운 판단이 결여된 유화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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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이스라엘 모든 지파 백성들이 변론하여 이르되 왕이 우리를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여 내셨고 또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나 이제 압살롬을 피하여 그 땅에서 나가셨고
10 우리가 기름을 부어 우리를 다스리게 한 압살롬은 싸움에서 죽었거늘 이제 너희가 어찌하여 왕을 도로 모셔 올 일에 잠잠하고 있느냐 하니라

11 다윗 왕이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에게 소식을 전하여 이르되 너희는 유다 장로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왕의 말씀이 온 이스라엘이 왕을 왕궁으로 도로 모셔오자 하는 말이 왕께 들렸거늘 너희는 어찌하여 왕을 궁으로 모시는 일에 나중이 되느냐
12 너희는 내 형제요 내 골육이거늘 너희는 어찌하여 왕을 도로 모셔오는 일에 나중이 되리요 하셨다 하고
13 너희는 또 아마사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골육이 아니냐 네가 요압을 이어서 항상 내 앞에서 지휘관이 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시기를 바라노라 하셨다 하라 하여
14 모든 유다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 같이 기울게 하매 그들이 왕께 전갈을 보내어 이르되 당신께서는 모든 부하들과 더불어 돌아오소서 한지라
15 왕이 돌아와 요단에 이르매 유다 족속이 왕을 맞아 요단을 건너가게 하려고 길갈로 오니라


오늘 본문에는 압살롬이 죽은 후에 다급해진 이스라엘 지파와 유다 지파 양 진영의 반응이 나오고 있습니다. 

 

우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압살롬이 죽자 서로 머리를 맞대고 열띤 토론을 벌이죠.

명실공히 다윗이 다시 이스라엘에 왕으로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9절과 10절 보실까요?

9 이스라엘 모든 지파 백성들이 변론하여 이르되 왕이 우리를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여 내셨고 또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나 이제 압살롬을 피하여 그 땅에서 나가셨고
10 우리가 기름을 부어 우리를 다스리게 한 압살롬은 싸움에서 죽었거늘 이제 너희가 어찌하여 왕을 도로 모셔 올 일에 잠잠하고 있느냐 하니라

이들은 다윗의 예루살렘 황궁이 늦어지는 데 대해서 이런저런 의견을 내면서,

어떻게든 다시 예루살렘으로 오게 할 명분을 서둘러 찾습니다.

다윗 대신 압살롬에게 기름을 부어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추대하려고 했던 자신들의 행동을 무마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요? 

이들은 그동안 압살롬의 준수한 육모와 언변, 그리고 그의 카리스마에 압도되어서,

그 어떤 재고의 여지도 없이 서슴없이 압살롬을 왕으로 옹립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기름 부심은 하나님의 영역이지 사람의 영역이 아닙니다. 

사람이 인위적으로 함부로 행할 수 있는 게 아니죠.

자신들이 기름을 부어서 왕을 세운다는 건 너무나 인본주의적 생각이고,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세워졌는지를 망각하는 행동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이 택하시는 것이지 사람이 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엄밀히 말해서 이들에게는 이스라엘의 왕을 세우는 데 있어서 아무런 권한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많은 민족 가운데 선택하심은 그들이 다른 민족보다 잘나서도 아니요, 잘 보여서도 아니었죠. 

다만 그들을 사랑하셨고, 그들을 통해 온 민족 가운데 하나님 자신을 알리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을 잊어버리고 다른 민족들처럼 자신들이 왕을 세우고 패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위배되는 오만한 행동이었습니다. 

이들은 그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며 하나님께서 친히 기름 부어주시도록 기도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왕을 세울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10 우리가 기름을 부어 우리를 다스리게 한 압살롬은 싸움에서 죽었거늘 이제 너희가 어찌하여 왕을 도로 모셔 올 일에 잠잠하고 있느냐 하니라

이들은 '이제 너희가 어찌하여 왕을 도로 모셔올 일에 잠잠하고 있느냐?'라고 하면서 서두르고 있죠.

하지만 이스라엘의 왕은 누구입니까?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은 압살롬도 아니오, 다윗도 아니오 오로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셔서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나라가 어떠한 나라인지를 온 열방 가운데 보여주고 싶으셨던 거죠. 그러나 사울도, 압살롬도 다 실패합니다. 

이들은 모두 자신이 왕이 되고 싶은 자들이었죠.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왕은 누구십니까?

선악과를 먹은 인간의 죄는 자신이 하나님처럼 되려는 교만입니다. 

그 이후 인간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왕 되심을 거부하고 자신이 왕이 되려는 무모한 시도를 하다가 멸망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왕 되심을 인정하고 우리의 삶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입니다.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께 진정으로 찬양과 경배를 드리며 

모든 주도권을 하나님 앞에 내어드리는 자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지도자를 뽑을 때 하나님께 합당한 지도자를 세워 주시길 먼저 기도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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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다윗은 서둘러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기 위해서 제사장 사도가 아비아달을 불러냅니다. 

압살롬의 죽음으로 인해서 초래된 권력 공백 상태를 메꾸기 위함이었죠. 

압살롬의 반란을 잠재우기는 했어도, 아직 그의 왕권은 회복되지 않았던 겁니다. 

다윗은 아들의 죽음으로 인해서 너무나 비통하게 슬퍼하던 애도의 기간을 

본의와는 달리 빨리 끝을 내고, 

이제 자신의 왕권과 통치를 회복하기 위해서 당면한 과제에 몰두해야 했습니다. 

 

우선 다윗은 자신에게서 돌아섰던 유다 장로들을 회유하는 일이 급선무라 생각했습니다. 11절인데요.

 

11 다윗 왕이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에게 소식을 전하여 이르되 너희는 유다 장로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왕의 말씀이 온 이스라엘이 왕을 왕궁으로 도로 모셔오자 하는 말이 왕께 들렸거늘 너희는 어찌하여 왕을 궁으로 모시는 일에 나중이 되느냐

자신을 배반한 유다 장로들에게 그 어떠한 책임도 묻지 아니하고,

오히려 내 형제요, 내 골육이라는 것을 감조 하면서 감싸 안으려 합니다.

그리고 또 아마사를 기용하죠. 

그리고 그를 지휘감으로 삼기로 결정을 하는데요. 13절입니다. 

13 너희는 또 아마사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골육이 아니냐 네가 요압을 이어서 항상 내 앞에서 지휘관이 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시기를 바라노라 하셨다 하라 하여

그리고 그 결과는 대성공이었죠.

모든 유다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같이 다윗에게 기울기 시작하고,

이들은 다윗을 모셔오는 일에 앞장을 서면서 맞이하기 위해서 길갈로 나옵니다.

 

이렇게 하여서 다윗은 그동안 내란으로 인해서 혼란스러웠던 과거를 벗어버리고 새 출발을 하려고 하지만,

실상은 표면적으로는 성공인 것 같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갈등과 혼란이 잠재되어 있었습니다. 

유다 장로들의 잘못을 치리하지 않은 대가로 이들은 여전히 기세등등하였고요.

반란군의 우두머리인 아마사를 기용함으로 이 전쟁의 일등 공신인 유압을 배제하고자 하는 의도적인 인사가 있었기 때문에, 또다시 언제든지 다른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다윗의 처사는 훗날 지하 간에 더 큰 갈등과 분쟁을 가져오게 되죠. 

다윗의 이와 같은 행위는 하나님의 공의보다 인간의 이해관계에 비중을 둔 회유책이었습니다.

 

아들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을 뒤로 한 채 참으로 어렵고 고통스러운 회복의 길을 걸어가야만 했던 다윗, 

또 젊은 시절 그렇게 반짝이던 폐기와 분별력은 어느새 사라지고 

사람에게 연연하는 다윗을 보면서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연약함과 한계를 보게 됩니다. 

아무리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라 할지라도 인간은 어쩔 수 없는 죄인이요, 한계를 지닌 연약한 인간이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필요한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다윗의 언약을 통해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님 

그 예수님만이 우리를 치유하고 회복하시는 유일한 산 소망이오 길임을 믿으며 

날마다 예수님을 구하고 찾는 자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누가복음 5장
3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32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주님 앞으로 나아가는 오늘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윗은 압살롬의 반란에 핵심 세력이던 예루살렘의 유다 지파를 어떻게 대했나요?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교만과 이기심을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의 죄와 연약함을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게 하시고
언제나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만이 우리를 건지시는 분이심을 믿으며
날마다 주님의 구원의 손길을 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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