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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죽음 앞에서 쏟은 회한의 통곡(사무엘하 18:24~33)(20230516)

2023.05.16.ㅣ생명의 삶 | 권오향 목사

 

아들의 죽음 앞에서 쏟은 회한의 통곡

 

안녕하세요.

온누리 교회를 섬기는 권오양 목사입니다. 

스트레스 지수 중에서 가장 높은 지수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라고 하죠.

평생을 같이 할 줄 알았는데, 어느 날 소리 없이 떠나버린 배우자

눈에 넣어도 조금도 아프지 않을 것만 같은 자녀의 죽음은 삽시간에 우리를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다윗은 아들 압살롬의 죽음 앞에서 목 놓아 통곡합니다.

쓰라린 가슴을 부여안은 채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은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이었죠. 

오늘 함께 묵상할 말씀은 사무엘하 18장 24에서 33절입니다.

 

 

아들의 죽음 앞에서 쏟은 회한의 통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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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때에 다윗이 두 문 사이에 앉아 있더라 파수꾼이 성 문 위층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보니 어떤 사람이 홀로 달려오는지라
25 파수꾼이 외쳐 왕께 아뢰매 왕이 이르되 그가 만일 혼자면 그의 입에 소식이 있으리라 할 때에 그가 점점 가까이 오니라

26 파수꾼이 본즉 한 사람이 또 달려오는지라 파수꾼이 문지기에게 외쳐 이르되 보라 한 사람이 또 혼자 달려온다 하니 왕이 이르되 그도 소식을 가져오느니라
27 파수꾼이 이르되 내가 보기에는 앞선 사람의 달음질이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의 달음질과 같으니이다 하니 왕이 이르되 그는 좋은 사람이니 좋은 소식을 가져오느니라 하니라
28 아히마아스가 외쳐 왕께 아뢰되 평강하옵소서 하고 왕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이르되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하리로소이다 그의 손을 들어 내 주 왕을 대적하는 자들을 넘겨 주셨나이다 하니
29 왕이 이르되 젊은 압살롬은 잘 있느냐 하니라 아히마아스가 대답하되 요압이 왕의 종 나를 보낼 때에 크게 소동하는 것을 보았사오나 무슨 일인지 알지 못하였나이다 하니
30 왕이 이르되 물러나 거기 서 있으라 하매 물러나서 서 있더라

31 구스 사람이 이르러 말하되 내 주 왕께 아뢸 소식이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오늘 왕을 대적하던 모든 원수를 갚으셨나이다 하니
32 왕이 구스 사람에게 묻되 젊은 압살롬은 잘 있느냐 구스 사람이 대답하되 내 주 왕의 원수와 일어나서 왕을 대적하는 자들은 다 그 청년과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니
33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 위층으로 올라가서 우니라 그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

 

오늘 본문은 다윗이 전장으로부터 오는 소식을 듣기 위해서 두문 사이에서 기다리고 있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두문 사이란 밭과 성문과 안쪽 성문 사이였는데요.

주로 공적인 모임을 하는 장소였죠.

 

초조한 마음을 안은 채 서성이며 전장의 소식을 기다리는 다윗,

그는 아마도 그 성문 사이를 오고 가며 오만 가지 생각과 감정들이 교차되었을 것입니다.

물론 이 전쟁은 압살롬의 반역으로 인해서 벌어진 전쟁이었지만, 더 근본적인 원인을 찾자면 다윗에게 있었죠. 

바세바와의 범죄로 인해서 나단 선지자가 찾아와서는, 칼이 내 집을 영원토록 떠나지 않을 것이고, 내 집에 재앙이 있을 것이라는 불길한 예언을 하였던 겁니다. 

 

아, 아마도 오랜 세월 동안 나단 선지자의 이 말로 인해서 다윗의 마음은 편할 날이 없었을 것이고요. 

과연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는지 늘 노심초사하는 마음으로 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에게 칼을 겨누는 자가 바로 자신의 아들 압살롬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앞이 캄캄 해졌겠죠. 

 

그러나 다윗은 

자신이 죽든지, 아니면 아들을 죽이든지 해야는 숙명적인 선택의 기로에서 결국은 후자를 택하게 됩니다.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었죠. 어떤 아버지가 자신이 살기 위해서 아들을 죽이는 일을 쉽게 결정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다윗은 한 나라의 아버지인 동시에 한 나라의 왕이었습니다. 

아들만을 생각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죠. 


아들과 백성 사이에 서 있는 다윗의 고뇌 그것이 두 문 사이에 서 있는 다윗의 고뇌가 아니었을까요?

이때 다윗의 전령 아히마아스는 전쟁의 승전물을 알리기 위해서 서둘러 달려옵니다. 28절인데요. 

28 아히마아스가 외쳐 왕께 아뢰되 평강하옵소서 하고 왕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이르되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하리로소이다 그의 손을 들어 내 주 왕을 대적하는 자들을 넘겨주셨나이다 하니

아히마아스는 전쟁에서 승리한 것이 너무나 기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 소식을 전합니다.

그의 보고대로 이 전쟁은 하나님께서 친히 개입하신 전쟁이었고,

다윗과의 언약을 지키기 위해서 하나님이 직접 손을 들어주신 전쟁이었죠. 

 

그러나 다윗은 기뻐할 수 없었습니다. 

압살롬의 안부가 너무 걱정스러워서 다그쳐 묻는데요. 29절 보실까요? 

29 왕이 이르되 젊은 압살롬은 잘 있느냐 하니라 아히마아스가 대답하되 요압이 왕의 종 나를 보낼 때에 크게 소동하는 것을 보았사오나 무슨 일인지 알지 못하였나이다 하니

라고 답을 합니다.

아마도 아히마아스는 그제서야 왕의 마음을 눈치채고는 차마 사실대로 말할 수 없어서 짐짓 둘러댄 것 같습니다.

 

여러분 이 전쟁은 일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전쟁이었습니다.

남는 것은 오로지 혈육 간의 아픔이며 고통뿐인 전쟁이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돌아보면 이러한 아픔과 고통은 우리 안에도 있습니다. 

6.25 전쟁, 4.19 의거, 광주 5.18 사태

그 외에도 수많은 분쟁과 다툼과 불화가 지금까지도 있습니다. 

과연 누가 이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오직 모든 막힌 남을 허물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 예수님만이 이 모든 분쟁과 불화를 종식시킬 수 있는 분이십니다.

 

전쟁 소식을 기다리는 다윗에게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무엇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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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서 달려온 구스 사람이 동일한 승리의 소식을 전하자 다윗은 또다시 압살롬의 소식을 묻습니다. 

그때 구스 사람이 대답하죠. 32절인데요. 

32 왕이 구스 사람에게 묻되 젊은 압살롬은 잘 있느냐 구스 사람이 대답하되 내 주 왕의 원수와 일어나서 왕을 대적하는 자들은 다 그 청년과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니

구스 사람은 압살롬을 왕의 원수라고까지 칭하면서 압살롬의 죽음의 소식을 기쁘게 전합니다. 

그러나 이 구스 사람은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어디까지나 외인이었어요. 

당연히 혈육의 죽음 아픔 공감할 수 없었겠죠.

그러나 이 소식을 들은 다윗은 억장이 무너집니다. 

 마음이 너무 아파서 오열하며 통곡할 수밖에 없었죠. 33절 보실까요?

33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 위층으로 올라가서 우니라 그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

다윗은 압살롬의 이름을 다섯 번이나 반복하여 부르며 목놓아 웁니다.

부모가 죽으면 땅에 묻지만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듯이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아버지의 심정이 오죽했을까요?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다면,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
자신의 죄 때문에 압살롬이 희생양이 되어 버렸다는 생각에 다윗은 목놓아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러분 이 다윗의 눈물은 깊은 회한의 눈물이요. 가슴이 찢어지는 회개의 눈물이요. 아들을 향한 애증의 눈물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다윗의 눈물을 묵상하면서, 하나님 아버지의 눈물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 오시는 장면이 세 번이 나오는데요.

제일 먼저는 베다니의 나사로 무덤 앞에서였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보시면서 눈물을 흘리셨죠. 

원어적으로 보면 마치 창자가 끊어지는 것만 같은 고통의 눈물이라고 하는데요. 

이는 친구 나사로를 향한 연민과 가족들의 슬픔에 동참하는 눈물이었습니다.

 

또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내다보시면서 우셨죠. 

자신의 동족인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거역함으로 심판받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예견하시면서 흘리신 눈물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마지막 눈물은 겟세마네의 동산에서였죠.

이는 인류의 절망적인 운명 앞에서 흘리는 눈물이었지만 동시에 구원의 눈물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지금도 하나님을 떠나 죄 가운데 살고 있는 영혼들을 바라보시면서 울고 계십니다.

한 번도 복음을 들어보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는 잃어버린 영혼들을 보시면서 창자가 끊어지는 것만 같은 눈물을 흘리고 계십니다. 그리고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로 가게 하신 눈물이었죠.

 

여러분, 여러분은 무엇 때문에 울고 계십니까? 

배가 고파서 울고, 지난날이 후회되어서 울고, 그리워서 울 수도 있겠지만, 그 눈물을 통해서 세상을 보십시오. 

눈물 너머의 세상은 우리가 마땅히 사랑해야 될 수많은 영혼들이 살고 있는 세상이요, 

복음을 들어야 할 영혼들이 살고 있는 세상입니다.

시편 126: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하신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울더라도 씨를 뿌리는 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다윗의 가슴 아픈 통곡을 보며 오늘 내가 기억할 교훈은 무엇인가요?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우리의 죄와 연약함으로 인해서 울 수밖에 없는 자임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눈물이 후회로 그치지 않게 하시고, 진정한 회계로 이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지금도 잃어버린 영혼을 바라보시면서 우시는 하나님의 눈물이 
온 세상을 덮고 있음을 믿으며 우리도 울게 하시고 주의 은혜의 복음을 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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