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4.11. | 생명의 삶 | 임채영 목사
안녕하세요.
저는 서부교회를 섬기고 있는 임채영 목사입니다.
희망이 있는 곳에서는 누구나 희망의 노래를 부를 수 있죠.
그런데 희망이 있을 때 부르는 노래는 진정한 희망의 노래가 아닐 겁니다.
오히려 모든 희망이 사라지고 절망만 남아 있을 때,
만일에 거기에서 희망을 노래할 수 있다면,
그것이 진짜 희망의 노래가 아닐까요?
쓰레기 더미에서 부르는 노래가 희망의 노래 생명의 노래입니다.
오늘 우리는 사무엘하 1장 17절부터 27절 말씀에서 오늘 이 노래를 듣습니다.
죽은 자에 대한 칭송, 진심을 다한 애가
17 다윗이 이 슬픈 노래로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을 조상하고 18 명령하여 그것을 유다 족속에게 가르치라 하였으니 곧 활 노래라 야살의 책에 기록되었으되 19 이스라엘아 네 영광이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도다 20 이 일을 가드에도 알리지 말며 아스글론 거리에도 전파하지 말지어다 블레셋 사람들의 딸들이 즐거워할까, 할례 받지 못한 자의 딸들이 개가를 부를까 염려로다 21 길보아 산들아 너희 위에 이슬과 비가 내리지 아니하며 제물 낼 밭도 없을지어다 거기서 두 용사의 방패가 버린 바 됨이니라 곧 사울의 방패가 기름 부음을 받지 아니함 같이 됨이로다 22 죽은 자의 피에서, 용사의 기름에서 요나단의 활이 뒤로 물러가지 아니하였으며 사울의 칼이 헛되이 돌아오지 아니하였도다 23 사울과 요나단이 생전에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자이러니 죽을 때에도 서로 떠나지 아니하였도다 그들은 독수리보다 빠르고 사자보다 강하였도다 24 이스라엘 딸들아 사울을 슬퍼하여 울지어다 그가 붉은 옷으로 너희에게 화려하게 입혔고 금 노리개를 너희 옷에 채웠도다 25 오호라 두 용사가 전쟁 중에 엎드러졌도다 요나단이 네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26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더하였도다 27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으며 싸우는 무기가 망하였도다 하였더라 |
오늘 본문이 시작되는 17절 18절을 한번 보겠습니다.
17 다윗이 이 슬픈 노래로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을 조상하고
18 명령하여 그것을 유다 족속에게 가르치라 하였으니 곧 활 노래라 야살의 책에 기록되었으되
사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다윗 크게 슬퍼하죠.
그리고 조가를 지어서 불렀는데 성경은요. 이 조가를 활 노래라고 합니다.
사울이 바로 활로 인하여 중상을 입었던 것을 상기시키는데요.
사울과 요나단이 가지고 있던 화를 더 깊이 봄으로 시상을 떠올려서 지은 노래입니다.
지금 다윗은 사울이 가지고 있던 활의 심정으로 돌아가서 이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지은 노래를 모든 유다 족속에게 가르치라고 명합니다.
이 노래를 통해서 다윗은 무엇을 가르치려고 했을까요? 먼저 19절을 보겠습니다.
19 이스라엘아 네 영광이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도다
우리는 실패도 없고 아픔도 없고 슬픔이 없는 삶을 살기를 바라죠.
그러나 그런가요?
이 지구에는 사계절이 있듯이 성공만 있고, 즐거운 일만 있고, 승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슬픔도 그리고 패배도 공존합니다.
그러면 슬픔을 당했을 때 어떻게 해야 될까요?
무엇보다 먼저 슬퍼해야 합니다.
슬플 때는 슬퍼하는 것이 길입니다.
원망하지 말고 분노하지 말고 그냥 슬퍼하십시오.
나만 당하는 것이라고 버티지 마십시오.
슬플 때는 충분히 슬퍼하며 눈물을 흘려야 내 안에서 일어난 감정이며, 느낌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꾸만 거부하게 되면 안에 쌓이기 마련이고, 좋은 감정도 더 느끼고자 애쓰면 오히려 욕심이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슬플 땐 슬퍼하고 기쁠 때 기뻐하면 됩니다.
여러분 사탄
사탄도요.
천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다고 그래요.
지혜도 있고 권능도 있고 심지어는 치유의 능력도 있어요.
말씀의 능력도 있고 예언의 능력도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는데, 그런데 사탄에게는 천사가 가지고 있는 것 한 가지가 없다고 합니다.
사탄에겐 눈물이 없습니다.
슬퍼할 줄 모르는 거죠.
슬픔을 만나도 슬퍼할 줄 모르는 사람들 그래서 울어야 할 때 울지 못합니다.
그러다 보니 무덤덤하고 삭막하고 굳어진 마음으로 살아가죠.
그런데 다윗은 슬퍼할 줄 아는 사람이었어요.
저는 이 부분을 묵상하면서 이런 주님의 질문이 저에게 들렸어요.
너는 요즘 울어본 적이 있느냐?
무엇을 위하여 슬퍼해보았느냐?
여러분 어떠신가요?
최근에 울어보신 적이 있나요?
울 일이 없다고요.
글쎄요 과연 그럴까요?
이 활 노래를 통해서 다윗이 우리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두 번째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본문 20절 보면 이렇게 노래하죠.
20 이 일을 가드에도 알리지 말며 아스글론 거리에도 전파하지 말지어다 블레셋 사람들의 딸들이 즐거워할까, 할례 받지 못한 자의 딸들이 개가를 부를까 염려로다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을 블레셋 사람에게 알리지 말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뭐죠?
저들이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을 기뻐할까 염려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알리지 않는다고 그들이 모를까요?
사실은 다윗이 이 두 사람의 죽음을 알기 전에 블레셋 사람들이 먼저 알고 있었어요.
그러므로 사울이 죽은 것도 슬프지만 사울의 죽음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는 것이 다윗에게는 더 큰 슬픔이었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사울의 죽음이 덜 알려져서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면 이런 바람을 노래한 거죠.
그런데 사실 사울의 죽음이 알려지는 것이 정치적으로는 다윗에게는 나쁜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다윗은 이 상황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워질 것을 염려하면서,
사울의 죽음이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요.
세 차례나 반복해서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려졌도다. 이렇게 슬퍼하고 있습니다. 23절을 보세요.
23 사울과 요나단이 생전에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자이러니 죽을 때에도 서로 떠나지 아니하였도다 그들은 독수리보다 빠르고 사자보다 강하였도다
여러분 여기에 두 용사는요 사울과 요나단이죠.
그러니까 다윗은 사울의 죽음과 요나단의 죽음을 똑같이 슬퍼하고 있는 거예요.
요나단의 죽음을 슬퍼한다? 당연한 거예요. 왜냐면 자기가 가장 사랑했던 친구였기 때문에,
그런데 사울의 죽음을 슬퍼한다? 왜냐하면 사울은 자기를 죽이려고 했던 적이었거든요. 원수였거든요.
그런데 사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됐을 때 그때 다윗이 뭐라고 얘기합니까? 24절 보세요.
24 이스라엘 딸들아 사울을 슬퍼하여 울지어다 그가 붉은 옷으로 너희에게 화려하게 입혔고 금 노리개를 너희 옷에 채웠도다
이렇게 얘기합니다.
이 붉은 옷 금놀이개 이것은 사울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가져온 전리품들입니다.
이스라엘 여인들이 이러한 전리품을 하사 받아 자신들을 치장할 수 있었던 거죠.
사실 역사적으로 보면요.
사울의 통치 기간 중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정과 번영을 누렸습니다.
그것을 잊지 말라는 겁니다.
그것을 기억하면서 슬피 울어라. 이렇게 얘기합니다.
이런 다윗의 마음은 사울이 죽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가 살아있을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다윗이 사울을 피해서 앵게디 동굴에 숨어 있을 때 다윗을 쫓던 사울왕을 죽일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있었죠.
그때 다윗과 함께 있던 사람들이
'드디어 그날이 왔습니다. 오늘이 하나님께서 원수를 당신의 손에 놓으신 바로 그날입니다.'
그러면서 흥분했죠.
이제 죽이면 됩니다.
그런데 거기서 다윗은 사울의 왕의 겉옷을 조금 베어냈을 뿐 그를 다치게 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다윗이 사울을 죽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신 이유
사울이 하나님의 기름 부원 받은 자였기 때문입니다.
사울을 하나님이 세우신 왕이었기에 자신이 함부로 할 수 없다는 거죠.
그니까 다윗에게 자기 삶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그는 고백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이 노래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는 노래이기 때문에 그래요.
사랑하는 여러분
어느 날 꾀꼬리가 풀이 죽어서 있습니다.
그랬더니 현자가 꾀꼬리에게 이렇게 얘기해요.
'너 요새 왜 노래를 안 하니?'
하고 물으니까 꾀꼬리가 불평하면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개구리 소리가 하도 커서 제가 아무리 노래해 봤자 들리지도 않아요. 소용이 없습니다.'
이렇게 얘기하니까 그 현자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네가 조용히 있으니까 개구리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거야'
그렇죠
세상이 악하다고 침묵하거나 불평만 하는 것 바람직하지 않은 겁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탄식 소리가 나는 그곳에 가서 희망의 노래를 부르는 것 아닐까요?
오늘 이 희망의 노래를 부르는 저와 여러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의 하나님
오늘 다윗이 요나단과 사울의 죽음에 진정으로 슬퍼하는 모습을 보며
죽음조차도 하찮게 여기는 이 세대를 용서해 주시고
죽음을 넘어선 희망의 노래를 부르는 우리 그리스도인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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