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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자들을 애도하는 긍휼의 리더십(사무엘하 1:1-16)(20230410)

2023.04.10. | 생명의 삶 | 임채영 목사

 

전사자들을 애도하는 긍휼의 리더십

 

안녕하세요. 

저는 서부 성결교회를 섬기고 있는 임채영 목사입니다. 

다람쥐가 겨울이 다가오면 도토리를 찾아서 입에 물고는, 그것을 먹지 않고요.

겨울에 먹으려고 땅에 묻어둔다고 합니다.

묻은 후에는 하늘을 한번 쳐다보는데, 그 이유는 어디에다 묻었는지 그 지점을 확인하기 위해서랍니다.

그런데 흘러가는 구름을 고정점으로 여기고 묻어놓기 때문에 결국 다람쥐는 그 도토리를 못 찾죠. 

그럼 그 도토리는 어떻게 될까요?

다른 동물들이 이 다람쥐가 묻어놓은 도토리를 찾아서 먹고는 겨울을 난다고 합니다.

다람쥐의 바보스러움이 많은 다른 생명들을 살리는 거죠.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이 이런 삶이어야 되지 않을까요?

이런 마음으로 오늘 사무엘하 1장 1절부터 16절까지를 함께 보겠습니다. 

 

전사자들을 애도하는 긍휼의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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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울이 죽은 후에 다윗이 아말렉 사람을 쳐죽이고 돌아와 다윗이 시글락에서 이틀을 머물더니
2 사흘째 되는 날에 한 사람이 사울의 진영에서 나왔는데 그의 옷은 찢어졌고 머리에는 흙이 있더라 그가 다윗에게 나아와 땅에 엎드려 절하매
3 다윗이 그에게 묻되 너는 어디서 왔느냐 하니 대답하되 이스라엘 진영에서 도망하여 왔나이다 하니라
4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일이 어떻게 되었느냐 너는 내게 말하라 그가 대답하되 군사가 전쟁 중에 도망하기도 하였고 무리 가운데에 엎드러져 죽은 자도 많았고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도 죽었나이다 하는지라
5 다윗이 자기에게 알리는 청년에게 묻되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이 죽은 줄을 네가 어떻게 아느냐

6 그에게 알리는 청년이 이르되 내가 우연히 길보아 산에 올라가 보니 사울이 자기 창에 기대고 병거와 기병은 그를 급히 따르는데
7 사울이 뒤로 돌아 나를 보고 부르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한즉
8 내게 이르되 너는 누구냐 하시기로 내가 그에게 대답하되 나는 아말렉 사람이니이다 한즉
9 또 내게 이르시되 내 목숨이 아직 내게 완전히 있으므로 내가 고통 중에 있나니 청하건대 너는 내 곁에 서서 나를 죽이라 하시기로
10 그가 엎드러진 후에는 살 수 없는 줄을 내가 알고 그의 곁에 서서 죽이고 그의 머리에 있는 왕관과 팔에 있는 고리를 벗겨서 내 주께로 가져왔나이다 하니라

11 이에 다윗이 자기 옷을 잡아 찢으매 함께 있는 모든 사람도 그리하고
12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과 여호와의 백성과 이스라엘 족속이 칼에 죽음으로 말미암아 저녁 때까지 슬퍼하여 울며 금식하니라
13 다윗이 그 소식을 전한 청년에게 묻되 너는 어디 사람이냐 대답하되 나는 아말렉 사람 곧 외국인의 아들이니이다 하니
14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 죽이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냐 하고
15 다윗이 청년 중 한 사람을 불러 이르되 가까이 가서 그를 죽이라 하매 그가 치매 곧 죽으니라

16 다윗이 그에게 이르기를 네 피가 네 머리로 돌아갈지어다 네 입이 네게 대하여 증언하기를 내가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죽였노라 함이니라 하였더라

 

원래 사무엘 상과 사무엘 하는요. 하나의 책이었죠. 그리고 사무엘 하는 사울이 죽은 후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사무엘상 31장에서부터 연결됩니다. 1절 보겠습니다. 

1 사울이 죽은 후에 다윗이 아말렉 사람을 쳐죽이고 돌아와 다윗이 시글락에서 이틀을 머물더니

다윗이 아말렉과 싸워서 이긴 후에 자신의 본거지인 시글락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니까 사울이 죽었을 때 다윗은 아말렛과 전쟁을 하고 있었죠. 

이것을 기록하는 이유 즉 시글락에서 이틀을 머물렀다라는 것을 기록하는 것은요.

다윗이 사울의 죽음과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어지는 2절을 한번 보세요.

2 사흘째 되는 날에 한 사람이 사울의 진영에서 나왔는데 그의 옷은 찢어졌고 머리에는 흙이 있더라 그가 다윗에게 나아와 땅에 엎드려 절하매

그렇게 시글라에 돌아와서 사흘이 지났는데 어느 날 거짓골을 한 한 아말렉 청년이 다윗을 찾아옵니다.

그리고 찾아와서 이스라엘의 패배 그리고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의 소식을 전하죠. 

이어지는 3절부터 쭉 보시면요. 

이제 길보아 전투에서 이스라엘이 블렛의 에게 참패했다. 그리고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이 한 자리에서 전해졌다는 소식을 이 사람이 전해줍니다. 

 

다윗은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이 죽었다라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죠. 그래서 더 확실한 증거를 요구합니다. 

그랬더니 6절부터 보시면요. 이 아말렉 청년이 사울이 죽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세 가지 증거를 제시합니다. 
첫 번째는 전쟁의 상황을 자세하게 구체적으로 묘사하죠.

두 번째는 자신이 당시 죽어가던 사울을 직접 죽였다고 고백하고요.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로 사울의 왕관과 팔에 있는 고리를 가져와서 확실한 물적 증거를 보여줍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이 아말렉 청년의 설명이 사무엘상 31장에 나온 사울이 어떻게 죽었는가에 대한 설명과는 상당히 다릅니다. 

길보아 전투에서 패한 사울은 자기가 블레셋 사람 즉 이방인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이 수치스럽게 여기죠.

그래서 스스로 자살을 선택했다.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데,

이 아말렉 청년은 자신이 우연히 길보아산에 갔다가 누군가가 불러서 가보니까 그 사람이 사울이었고, 이미 죽기 직전이었고 회생 불가능해 보였기에 사울이 죽여달라고 해서 자신이 죽였다.

그리고 그 사울에게 있었던 왕관과 팔에 있는 고리를 벗겨가지고 왔다 이렇게 얘기합니다. 

 

길보아산에서 블레의 땅 시글라까지는 삼일길이에요. 먼 거리죠.

그런데 이 아말렉 청년이 왜 그 왕관과 팔찌를 가지고 다윗을 찾아왔을까요?

아마도 이 청년은요 당시의 정세를 훤히 읽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사울이 죽었다. 그러면 사울의 죽음을 가장 기뻐할 사람이 다윗이라고 생각했죠. 

왜냐하면 이제 사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왕이 될 사람은 다윗이었기 때문에

그래서 그렇게 다윗의 나라가 세워지면 자신의 공이 인정되어서 큰 상을 얻을 수 있다는 이런 기대를 가지고 온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이 아말렉 청년은 우연히 길보아산에 간 것이 아니라 전쟁터에 몰래 숨어 들어가 있다가 전사자들의 몸에서 값나가는 물건들을 훔치기 위해 갔던 것이고, 이미 죽어 있었던 사울의 왕관과 팔찌를 훔친 후에 적당하게 꾸며낸 이야기였을 겁니다.

 

다윗을 찾아온 아말렉 청년은 사울의 죽음에 대해 어떻게 보고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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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아말렉 청년의 예상과는 다르게 상황이 전개됩니다. 
사울의 죽음의 소식을 들은 다윗이 옷을 찢으며 크게 슬퍼하며 우는 거예요. 그리고 금식합니다. 11절 12절을 보세요. 

11 이에 다윗이 자기 옷을 잡아 찢으매 함께 있는 모든 사람도 그리하고
12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과 여호와의 백성과 이스라엘 족속이 칼에 죽음으로 말미암아 저녁 때까지 슬퍼하여 울며 금식하니라

 

여러분 사실 사울이 죽었다면 그러면 다윗에게는 어떤 상황일까요?

자기를 그토록 죽이려고 쫓아다니던 사울이 죽었으니 이제는 더 이상 도망자 생활을 안 해도 된다. 

게다가 다윗은 이미 사무엘이 기름을 부어 세운 차기 왕 내정자에요.

그 다윗에게는 좋은 소식일 겁니다. 그럼에도 왜 다윗은 슬퍼할까요?

먼저 다윗은 그 슬픔의 이유가 자기 개인에게 있지 않고 이스라엘의 영광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는 데서 나옵니다.

 

보통 사람들은요 자기의 계획이 이루어지면 성공 이렇게 얘기하고요. 

이루어지지 않으면 실패라고 생각해서 실패하면 슬퍼하죠.

그런데 다윗에게는요 이 성공의 기준이 달랐어요. 

성공의 기준이 자기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골리앗이라고 하는 사람 여러분 기억하시죠?

골리앗이 하나님을 모욕하는 말을 할 때 다윗은 분노하며 나가는 거예요.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공격을 당했기 때문이죠. 

 

이어지는 14절 15절을 보세요. 

14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 죽이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냐 하고
15 다윗이 청년 중 한 사람을 불러 이르되 가까이 가서 그를 죽이라 하매 그가 치매 곧 죽으니라

보상을 기대하고 죽음을 알렸던 청년은 죽음이라는 뜻밖의 보상을 받습니다.

여호와의 기름 부은 받은 자를 죽이는 것은 그에게 기름 부은 여호와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라는 다윗의 생각 때문이죠. 

하나님 나라는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지거나 없어지거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것은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 철저히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표현입니다. 

다윗의 슬픔의 첫 번째는요. 하나님의 영광이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다윗은 사람을 귀히 여길 줄 아는 사람이었어요.

사울의 죽음에 다윗은 공감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는 겁니다. 단순한 연민이 아니었어요. 

연민이라고 하는 것은 고난 받은 사람에 대한 치근 한 감정입니다. 

만일에 타인의 고통을 연민의 차원에서만 바라본다면 그것은 나는 슬프지만 그러나 당신의 고통의 원인에는 함께하지 않습니다라는 의미죠.

그런데 공감이라고 하는 건 다릅니다. 공감은 상대방이 되는 겁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매운 고추가 어떤 고추일까요?

빨간 고추도 청양고추도 아니라 눈에 들어간 고추라고 합니다.

공감은 이와 같은 거죠. 

눈에 들어간 고추처럼 대상과 내가 하나가 되어서 맵고 아픔을 함께 느끼는 것 이것이 공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이 아닐까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하나님은 사람의 육신을 잊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아픔을 같이 겪으시며 십자가에 달려서 우리 죄를 사해주셨죠.

하나님의 그와 같은 우리와 같이 되신 하나님의 사랑 그 공감의 사랑이 우리를 살리는 거죠.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두 사람을 보았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다른 사람의 아픔까지도 이용하려고 했던 사람 아말렉 청년이죠. 

반면에 비록 적이었지만 개인의 이익보다는 하나님의 영광을 그리고 그 슬픔에 공감하는 다윗

오늘 여러분은 어떤 사람으로 살기를 원하십니까?

 

다른 사람의 비극을 접할 때 나의 마음과 태도는 어떠한가요?

 

하나님 아버지 
다윗처럼 자신의 유익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며 살게 하시고 
나의 이익을 위하여 다른 사람의 불행을 즐거워하거나 이용하지 않고 섬기고 사랑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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