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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의 생명을 하나님께 맡기는 신앙(사무엘상 26:1-12)(20230323)

2023.03.23. | 생명의 삶 | 노치형 목사

 

원수의 생명을 하나님께 맡기는 신앙

 

셜롬

오늘도 하나님 안에서

또 우리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깨닫고

또 어떤 선한 일을 우리가 또 행해야 할지 깊이 생각하기를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저는 오늘의 교회를 섬기는 노치형 목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여러 가지 상황을 주시지만 아주 분노하게 되는 그런 상황을 주실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것은 원수를 갚는 것은 내게 있다고 말씀하신 그것을 우리는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 마음속에 분노가 찰 때 우리는 아주 심각한 생각을 품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일이 아닙니다.

그 모든 것은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원수가 있어서도 안 되겠지만, 만약에 그러한 상황이 우리에게 있더라도 우리는 하나님께 맡겨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오늘 본문 속에서 다윗에게 배우기를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오늘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사무엘상 26장 1절에서 12절입니다. 

이 말씀을 저와 여러분이 함께 듣겠습니다.

 

원수의 생명을 하나님께 맡기는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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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십 사람이 기브아에 와서 사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다윗이 광야 앞 하길라 산에 숨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매
2 사울이 일어나 십 광야에서 다윗을 찾으려고 이스라엘에서 택한 사람 삼천 명과 함께 십 광야로 내려가서
3 사울이 광야 앞 하길라 산 길 가에 진 치니라 다윗이 광야에 있더니 사울이 자기를 따라 광야로 들어옴을 알고
4 이에 다윗이 정탐꾼을 보내어 사울이 과연 이른 줄 알고
5 다윗이 일어나 사울이 진 친 곳에 이르러 사울과 넬의 아들 군사령관 아브넬이 머무는 곳을 본즉 사울이 진영 가운데에 누웠고 백성은 그를 둘러 진 쳤더라

6 이에 다윗이 헷 사람 아히멜렉과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아우 아비새에게 물어 이르되 누가 나와 더불어 진영에 내려가서 사울에게 이르겠느냐 하니 아비새가 이르되 내가 함께 가겠나이다
7 다윗과 아비새가 밤에 그 백성에게 나아가 본즉 사울이 진영 가운데 누워 자고 창은 머리 곁 땅에 꽂혀 있고 아브넬과 백성들은 그를 둘러 누웠는지라
8 아비새가 다윗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오늘 당신의 원수를 당신의 손에 넘기셨나이다 그러므로 청하오니 내가 창으로 그를 찔러서 단번에 땅에 꽂게 하소서 내가 그를 두 번 찌를 것이 없으리이다 하니
9 다윗이 아비새에게 이르되 죽이지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 하고
10 다윗이 또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그를 치시리니 혹은 죽을 날이 이르거나 또는 전장에 나가서 망하리라

11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는 것을 여호와께서 금하시나니 너는 그의 머리 곁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가자 하고
12 다윗이 사울의 머리 곁에서 창과 물병을 가지고 떠나가되 아무도 보거나 눈치 채지 못하고 깨어 있는 사람도 없었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깊이 잠들게 하셨으므로 그들이 다 잠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더라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등장 인물에 대해서 어떤 사람 편에 설 건지를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사울의 이야기 또 다윗의 이야기 

그것을 들으면서 여러분은 어떤 편에 서기를 원하십니까?

아마도 대부분이 다윗의 편에 서기 원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당시 상황 속에서 실권을 잡고 있는 사람은 사울입니다.

사울이 모든 권력을 가지고 있는 왕이며, 또 모든 군사력을 동원할 수 있는 공적인 능력을 가진 존재였음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왕은 백성들에게 많은 것을 요구할 수 있고, 또 그 요구를 백성들은 왕을 향해 들어줘야 하는 것이죠.

이제 그런 상황 속에서 우리가 다윗의 편에 서서 이 본문을 읽으려고 하는 그런 마음을 가진 우리들에게 별로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1절의 말씀입니다.

1 십 사람이 기브아에 와서 사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다윗이 광야 앞 하길라 산에 숨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매

어떤 사람은 다윗의 편에 서기 원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울 왕의 편에 서서 다윗을 없애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 내가 원하고 내가 바르다고 생각하는 쪽에서만 일이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내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들이, 내가 원하지 않는 일들을 이루기 위해서 또 계획을 하고 일을 진행하는 경우들이 있음을 우리는 늘 생각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불안해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마음속에 하나님을 향한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 나를 위해 해고지 하기 위해 또 나를 힘들게 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있더라도 내 중심이 흔들리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런 상황의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 마음이 분주해지고 또한 분노가 차지 않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 이야기를 성경에 다 기록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사울 왕의 편도 있었다는 것, 또 사울 왕에게 현상금이 걸린 범죄자를 고발하는 것처럼 그렇게 다윗을 고발하고 어디에 있다고 또 정보를 흘리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사울은 어떤 태도를 취합니까? 2절입니다.

2 사울이 일어나 십 광야에서 다윗을 찾으려고 이스라엘에서 택한 사람 삼천 명과 함께 십 광야로 내려가서
3 사울이 광야 앞 하길라 산 길 가에 진 치니라 다윗이 광야에 있더니 사울이 자기를 따라 광야로 들어옴을 알고
4 이에 다윗이 정탐꾼을 보내어 사울이 과연 이른 줄 알고
5 다윗이 일어나 사울이 진 친 곳에 이르러 사울과 넬의 아들 군사령관 아브넬이 머무는 곳을 본즉 사울이 진영 가운데에 누웠고 백성은 그를 둘러 진 쳤더라

사울은 다윗 한명을 잡기 위해서 삼천 명을 동원합니다.

물론 소문으로 다윗과 함께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들었기 때문에 더 많은 병력을 동원했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다윗이 너무나 지형에 능해서 여기저기 잘 숨어 다니는 것을 보면서 3천 명이라는 많은 숫자를 동원해서 구석구석 찾아보겠다는 목표도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마음이 무엇입니까?

계속해서 다윗을 없애고자 하는 마음이 사울 안에 계속 있었다는 것입니다.

슬픈 일입니다. 

 

사람들은 사울왕의 비위를 맞혀야 하지만 사울왕은 생명을 살릴 생각이 없습니다. 

자기를 대적하는 자를 죽이고자 하는 마음만 가득하게 되었다는 것이죠. 

그 모습을 멀리서 바라본 다윗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너무 처참했을 것 같습니다. 

자기가 광야로 도망가면 거기까지 쫓아와서 자기를 잡으려고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그 모습을 보며 절망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마음에 흔들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늘 하루 살아가는 동안 우리의 마음이 흔들리는 순간이 오더라도, 하나님을 붙잡으며 다시 든든히 서는 우리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내가 담대히 믿음으로 직면해 해결할 일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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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어려운 상황 속에서 다윗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오늘 본문의 다윗의 선택은 잘 이해가 가지 않는 그런 선택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주 중요한 기회를 잡았는데, 그 기회를 그냥 지나가게 한다는 것이죠.

그런 생각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본문을 읽으며 우리가 한번 묵상하기 원합니다. 6절부터의 말씀입니다. 

 

6 이에 다윗이 헷 사람 아히멜렉과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아우 아비새에게 물어 이르되 누가 나와 더불어 진영에 내려가서 사울에게 이르겠느냐 하니 아비새가 이르되 내가 함께 가겠나이다
7 다윗과 아비새가 밤에 그 백성에게 나아가 본즉 사울이 진영 가운데 누워 자고 창은 머리 곁 땅에 꽂혀 있고 아브넬과 백성들은 그를 둘러 누웠는지라

 

적진에 깊숙이까지 사울왕이 자는 잠자리 옆까지 갔다는 얘기입니다.

얼마나 긴장이 되는 순간입니까?

또 하지만 얼마나 용맹스러우며, 한편으로는 얼마나 침착한 태도입니까?

우리가 어떤 장면들을 연상해보게 된다면 이것은 매우 신중한 장면입니다. 

그리고 아주 최고의 기회를 얻은 것이죠. 

아마 그냥 일반 어떤 영화나 연극이나 드라마였다면 원수를 아마 갚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결코 그런 일을 행하지 않는 것을 보게 됩니다. 8절부터의 말씀입니다.

8 아비새가 다윗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오늘 당신의 원수를 당신의 손에 넘기셨나이다 그러므로 청하오니 내가 창으로 그를 찔러서 단번에 땅에 꽂게 하소서 내가 그를 두 번 찌를 것이 없으리이다 하니
9 다윗이 아비새에게 이르되 죽이지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 하고
10 다윗이 또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그를 치시리니 혹은 죽을 날이 이르거나 또는 전장에 나가서 망하리라
11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는 것을 여호와께서 금하시나니 너는 그의 머리 곁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가자 하고

죽이자는 아비새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곳을 왜 갔다는 것입니까?

다윗은 다른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 상황을 보고 죽이고 싶은 마음도 있었으나, 그 원수 갚는 것이 하나님께 있다라는 그 말씀을 기억하는 것이죠.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한다는 것은 가장 중요한 순간에 필요한 것입니다. 

물론 우리의 인생의 모든 순간 속에서 하나님 말씀을 기억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어떠한 실수를 범할 수 있는 그 순간, 내가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겠다고 여겨지는 그 순간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다윗은 결코 자기가 심판자의 자리에 서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7장에서 비판하지 말라, 또한 판단하지 말라라고 얘기합니다.

그것은 왜 그렇습니까?

이 비판과 판단이 계속해서 커지고 또 커져서 결국에는 심판자의 자리까지 가게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창조주도 유일한 하나님이시오.

구원자도 유일한 하나님이시오.

심판자도 바로 유일하신 삼위일체 하나님 뿐이신 것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다윗은 그것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비새에게 '결코 그래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하시도록 내어 두어야 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도록 

우리는 어떤 일이 진행됐을 때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라고 말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결과론적인 고백이죠. 

 

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고백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지금 아직 나의 분이 풀리지 않고, 나의 원수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내가 힘들어하는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았더래도 우린 이렇게 고백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행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다는 그 고백은 우리의 믿음의 선포가 됩니다. 

다윗은 지금 그 당시에 그 고백을 하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아비새는 이상한 다윗의 그 말에 순종해서 창과 물병만 가지고 나오게 됩니다. 12절입니다. 

12 다윗이 사울의 머리 곁에서 창과 물병을 가지고 떠나가되 아무도 보거나 눈치 채지 못하고 깨어 있는 사람도 없었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깊이 잠들게 하셨으므로 그들이 다 잠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더라

성경은 하나님이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를 명확하게 얘기해 줍니다.

그들을 깊이 잠들게 하셨다는 겁니다. 

다윗과 아비새가 매복이 능해서 너무나 용맹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물론 그들은 그렇게 행동했겠지만 하나님은 잠을 잘 자게 하셨다는 것이죠.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를 신뢰하기 원합니다.

그래서 오늘 하나님께서 지금도 일하고 계신다는 고백을 기쁨으로 나누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원수에게 복수하고 싶을 때 내가 기억해야 할 하나님 말씀은 무엇인가요?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신 하나님 
우리를 둘러싼 고난과 고통의 상황들이 멈추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점점 더 악해져 가려는 모습이 보임을 인정하며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완성하셨으니,
율법의 매인 인생에서 벗어나 사랑으로 승리하게 하소서
하나님의 사람들끼리 판단하는 심판자의 모습들을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께만 맡겨 드리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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