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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를 보복해 주시는 공의의 하나님(사무엘상 25:36-44)(20230322)

2023.03.22. | 생명의 삶 | 노치형 목사

 

불의를 보복해 주시는 공의의 하나님

 

샬롬

오늘도 하나님 주신 생명을 누리며 늘 평강이 가득하시길 소망합니다.

저는 온누리 교회를 섬기는 노치형 목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을 베푸실 때 우리는 어떤 것을 누리고 있습니까?

사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선이라는 것이 우리 중심의 생각일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 속에 형편 또 환경과 관계 속에 눌려 있을 때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원하는 선은 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일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주시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것이 선하신 하나님이 행하신 것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하나님의 선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그러한 깊이 있는 질문 속에 오늘 하루의 말씀을 묵상하며 시작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사무엘상 25장 36절에서 44절입니다. 

여러분과 저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겠습니다.

 

 

불의를 보복해 주시는 공의의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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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아비가일이 나발에게로 돌아오니 그가 왕의 잔치와 같은 잔치를 그의 집에 배설하고 크게 취하여 마음에 기뻐하므로 아비가일이 밝는 아침까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아니하다가
37 아침에 나발이 포도주에서 깬 후에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 일을 말하매 그가 낙담하여 몸이 돌과 같이 되었더니
38 한 열흘 후에 여호와께서 나발을 치시매 그가 죽으니라
39 나발이 죽었다 함을 다윗이 듣고 이르되 나발에게 당한 나의 모욕을 갚아 주사 종으로 악한 일을 하지 않게 하신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나발의 악행을 그의 머리에 돌리셨도다 하니라 다윗이 아비가일을 자기 아내로 삼으려고 사람을 보내어 그에게 말하게 하매
40 다윗의 전령들이 갈멜에 가서 아비가일에게 이르러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다윗이 당신을 아내로 삼고자 하여 우리를 당신께 보내더이다 하니

41 아비가일이 일어나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이르되 내 주의 여종은 내 주의 전령들의 발 씻길 종이니이다 하고
42 아비가일이 급히 일어나서 나귀를 타고 그를 뒤따르는 처녀 다섯과 함께 다윗의 전령들을 따라가서 다윗의 아내가 되니라
43 다윗이 또 이스르엘 아히노암을 아내로 맞았더니 그들 두 사람이 그의 아내가 되니라
44 사울이 그의 딸 다윗의 아내 미갈을 갈림에 사는 라이스의 아들 발디에게 주었더라

 

자기 남편인 나발과 그 가족의 죽음의 소식을 접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든 것을 걸고 달려갔던 그 아내 아비가일의 그 행동들은 전혀 알지 못하고 있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 사람은 그 남편 되는 나발이었죠.

그는 어떻게 하면서 그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까요? 36절의 말씀입니다. 

36 아비가일이 나발에게로 돌아오니 그가 왕의 잔치와 같은 잔치를 그의 집에 배설하고 크게 취하여 마음에 기뻐하므로 아비가일이 밝는 아침까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아니하다가

지금 나발은 왕의 잔치 같은 잔치, 다시 말하면 어마어마하게 큰 잔치를 버렸다는 것입니다.

가진 것도 많았던 것 같고 그때 양털을 깎아내는 그런 작업도 좋은 수확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더 풍성한 잔치가 되기 위해서 주변의 사람들이 함께 누릴 수 있는 잔치가 되기 위해서 많은 것을 준비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에게 도움을 주고 선을 행했던 다윗과 그 무리들에게는 그것을 아까워 했다는 사실 

물론 거기에도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지금 사울 왕에게 쫓겨 다니는 입장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때 그는 버림받은 존재라는 실세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에 자기가 그런 판단을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사실 그것은 자기의 생각일 뿐입니다. 

힘들고 어렵고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에게 선을 행하는 것은 그가 믿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는 사실을 잊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과 형편에 메여서 그것에 집중하다가 하나님의 뜻을 놓칠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선을 행하라는 말씀은 우리의 상황과 형편과 관계없습니다.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을 행해야 하며,

우리가 기쁘고 즐거울 때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을 행해야 함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죠. 

 

아비가일은 그 남편에게 찾아왔지만 그 남편이 취해 있는 것을 보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침이 밝아서 그가 취기가 아직 풀리지 않았을 때 아비가일은 아주 중대한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37 절부터입니다. 

37 아침에 나발이 포도주에서 깬 후에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 일을 말하매 그가 낙담하여 몸이 돌과 같이 되었더니
38 한 열흘 후에 여호와께서 나발을 치시매 그가 죽으니라

나발은 심약한 사람도 아니었을 텐데 하나님을 두려워하긴 했던 것 같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그는 온 몸에 힘이 빠집니다. 

그 영과 마음과 몸이 다 무너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지탱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도우실 때입니다. 

우리가 그 영과 마음과 몸의 건강을 유지할 때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의 영과 마음과 몸을 지켜주실 때, 우리는 그것을 유지하고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가 그 소식을 듣고 낙담하여 아무것도 하지 못한 상황 속에서 그는 열흘 만에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스스로 저주의 자리로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이죠. 

하나님은 선으로 악을 갚아 나가시는 분이십니다. 

말하기를 더디 하는 지혜를 보인 아비가일,

하지만 자기 자신의 잘못을 알고 나서 다시 하나님을 찾지 않고 그저 무너져버린 나발의 불의함과 또 무지를 우리는 생각해 보게 됩니다. 

 

우리에게 그런 말이 주어졌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하나님 앞에 당장가서 회개하고 간구해야 합니다. 

나발도 다윗에게 달려가서 간청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더 깊이 깨닫게 되는 이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하나님이 나발을 죽음으로 심판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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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발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다윗은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우리는 다윗의 모습 속에서 또 하나의 도전을 받게 됩니다. 39절부터의 말씀입니다. 

39 나발이 죽었다 함을 다윗이 듣고 이르되 나발에게 당한 나의 모욕을 갚아 주사 종으로 악한 일을 하지 않게 하신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나발의 악행을 그의 머리에 돌리셨도다 하니라 다윗이 아비가일을 자기 아내로 삼으려고 사람을 보내어 그에게 말하게 하매
40 다윗의 전령들이 갈멜에 가서 아비가일에게 이르러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다윗이 당신을 아내로 삼고자 하여 우리를 당신께 보내더이다 하니
41 아비가일이 일어나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이르되 내 주의 여종은 내 주의 전령들의 발 씻길 종이니이다 하고
42 아비가일이 급히 일어나서 나귀를 타고 그를 뒤따르는 처녀 다섯과 함께 다윗의 전령들을 따라가서 다윗의 아내가 되니라

다윗은 지금 가장 먼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단지 자기가 죽이고자 했던 그 나발을 죽이셨음에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손에 더럽힌 것을 묻지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서 감사하고 찬양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그 고백을 볼 때 우리는 하나님이 먼저 손을 대시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더 깊은 묵상을 하게 됩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고 죽음의 저주를 받게 된 후에 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을 때, 그전에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십니다.

그 가죽옷을 어떻게 만들 수 있었겠습니까?

물론 하나님은 전능하셔서 짐승을 잡지 않고서도 가죽옷을 만드실 수도 있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하나님이 직접 만드신 그 피조물을 죽이셨다. 피를 흘리셨다라는 내용이 숨겨져 있는 것이죠.

어떻게 보면 심판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모든 걸 다 하려고 한다라는 뜻이 아니라,

악한 일들은 내 손에서 해결하겠다라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이죠.

사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바로 그 아들 예수께서 또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신 사건도 바로 그것을 우리는 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죄 없는 예수님께서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려 죽임 당하신 사건 그것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사건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 이러한 지혜로운 하나님을 찬양하는 마음이 있어야 될 것입니다.

우리가 단순한 찬양이 아닌 깊이 있는 찬양의 삶으로 나아가길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그러고 나서 다윗은 그 아비가일 남편을 잃은 아비가일을 아내로 맞이하는 일을 멈추지 않습니다. 

그의 제한 속에 아비가일은 '나는 그럴 수 없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뭐라고 얘기합니까?

41 아비가일이 일어나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이르되 내 주의 여종은 내 주의 전령들의 발 씻길 종이니이다 하고

'주의 전령들의 발 씻길 종밖에는 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말속에 담긴 뜻이 무엇입니까?

계속해서 낮아지고 낮아지는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 마음 속에 남편을 잃은 슬픔도 있겠지만, 다시 살아가야 하는 삶 때문에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그 지혜를 따라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비가엘에게 복을 베풀고 위로를 베풀어 주십니다. 

다윗은 그 위로를 나누기 위해서 아비가이를 취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또 그 다음에 다윗은 어떤 일을 합니까? 43절입니다.

43 다윗이 또 이스르엘 아히노암을 아내로 맞았더니 그들 두 사람이 그의 아내가 되니라
44 사울이 그의 딸 다윗의 아내 미갈을 갈림에 사는 라이스의 아들 발디에게 주었더라

다윗은 이렇게 자기의 필요에 따라서가 아니라, 상대방을 또 세워주기 위해서 또 아내를 삼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물론 자기의 필요에 따라서 세웠다. 할지라도 그를 매우 인격적으로 대우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반면에 사울은 자기 딸을 이미 다윗과 결혼해 있는 그 딸을 다른 남자에게로 또 시집보내는 어떻게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선을 행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닮아 선을 행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 믿음의 선택을 하는 하루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하나님이 내 억울함을 친히 풀어 주신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선으로 악을 이기신 하나님 
우리 주변에 살아 움직이는 악한 모든 상황과 환경과 형편들로 눌려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연약한 우리들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셔서 악함을 행하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깨달아 알게 하시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만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때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께 가장 먼저 찬양과 영광을 돌리는 삶을 잊지 말고 실행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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