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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된 세상을 견디는 힘, 세 겹 줄 같은 친구 관계 (전도서 4:1~16)(20221215)

2022.12.15. | 생명의 삶 | 권준 목사

 

모순된 세상을 견디는 힘, 세 겹 줄 같은 친구 관계

 

 

 

안녕하세요. 

시애틀 형제교회를 섬기는 권준 목사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성공하기를 원합니다. 

성공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많은 경우 우리는 성공을 이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많은 재물을 소유하고 또, 높은 지위에 오르고

그럼으로써 뭔가 영향을 끼치는 권력을 휘두르는 것,

그러다 보니 이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경우가 너무나 많죠.

그러다 보니 자기보다 약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억압하고 착취하고,

그래서 목표를 이루어 성공했다고 하지만,

이로 인해 사회적 약자들이 눈물을 흘리며 고통 속에 살아가는 세상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전도자는 이 세속화된 성공주의를 경계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은 전도서 4장 1절에서 16절 말씀입니다. 

 

모순된 세상을 견디는 힘, 세 겹 줄 같은 친구 관계

 

모순된 세상을 견디는 힘, 세 겹 줄 같은 친구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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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학대를 살펴 보았도다 보라 학대 받는 자들의 눈물이로다 그들에게 위로자가 없도다 그들을 학대하는 자들의 손에는 권세가 있으나 그들에게는 위로자가 없도다
2 그러므로 나는 아직 살아 있는 산 자들보다 죽은 지 오랜 죽은 자들을 더 복되다 하였으며
3 이 둘보다도 아직 출생하지 아니하여 해 아래에서 행하는 악한 일을 보지 못한 자가 더 복되다 하였노라
4 내가 또 본즉 사람이 모든 수고와 모든 재주로 말미암아 이웃에게 시기를 받으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
5 우매자는 팔짱을 끼고 있으면서 자기의 몸만 축내는도다

6 두 손에 가득하고 수고하며 바람을 잡는 것보다 한 손에만 가득하고 평온함이 더 나으니라
7 내가 또 다시 해 아래에서 헛된 것을 보았도다
8 어떤 사람은 아들도 없고 형제도 없이 홀로 있으나 그의 모든 수고에는 끝이 없도다 또 비록 그의 눈은 부요를 족하게 여기지 아니하면서 이르기를 내가 누구를 위하여는 이같이 수고하고 나를 위하여는 행복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가 하여도 이것도 헛되어 불행한 노고로다
9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10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11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12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13 가난하여도 지혜로운 젊은이가 늙고 둔하여 경고를 더 받을 줄 모르는 왕보다 나으니
14 그는 자기의 나라에서 가난하게 태어났을지라도 감옥에서 나와 왕이 되었음이니라
15 내가 본즉 해 아래에서 다니는 인생들이 왕의 다음 자리에 있다가 왕을 대신하여 일어난 젊은이와 함께 있고

16 그의 치리를 받는 모든 백성들이 무수하였을지라도 후에 오는 자들은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

 

전도자는 학대당하는 자들의 눈물을 보면서 그들에게 위로자가 없다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1절 말씀입니다. 

1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학대를 살펴보았도다 보라 학대받는 자들의 눈물이로다 그들에게 위로자가 없도다 그들을 학대하는 자들의 손에는 권세가 있으나 그들에게는 위로자가 없도다

그들을 학대하는 자들의 손에는 권세가 있으나, 그들에게는 위로자가 없도다.

세상에는 강자와 약자가 공존하죠. 약자들은 강자들에 의해 어려움을 당합니다. 

전도자는 학대 받는 자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그리고 감싸줄 사람이 없어 탄식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학대하는 자들, 그들의 횡포를 막을 길이 없어 또한 탄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2절과 3절 말씀입니다.

2 그러므로 나는 아직 살아 있는 산 자들보다 죽은 지 오랜 죽은 자들을 더 복되다 하였으며
3 이 둘보다도 아직 출생하지 아니하여 해 아래에서 행하는 악한 일을 보지 못한 자가 더 복되다 하였노라

이러한 상황에서 차라리 죽은 지 오래된 자와 아직 출생하지 않은 자들이 더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현재 고통 가운데 있는 자들의 이 비참함을 탄식하고 있는 것이죠.

불의한 일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십니까?

구약의 이스라엘 왕 아홉 그는 나봇의 포도원이 탐났어요. 

이 사실을 아합의 아내 이사벨이 이를 알고 나봇에게 누명을 씌워 그를 죽입니다. 

그러므로 아합이 그의 포도원을 차지하게 합니다. 

힘 있는 사람에 의해 자행되는 횡포인 것이죠. 

 

여러분 인생의 참된 만족은 많은 소유, 높은 지위에 있지 않음을 우리에게 다시 한 번 일깨워주고 있는 거예요.

만족을 아는 지혜가 중요하다는 것이죠. 

자신의 힘으로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있다. 그것도 헛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억합시다.

하나님이 이 악함을 보셨고, 하나님은 이 악함을 철저히 응징하셨어요.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날 이 시대 우리 주변에 아... 정말 그 눈물을 닦아줘야 될 많은 분들이 있지 않습니까?

위로자가 필요하고 도와줄 자가 필요한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 

 

사랑하는 여러분 

위로자가 되고 또 함께 울어주고 또 함께 기뻐해주는 서로를 돕는 그런 삶을 우리가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학대와 폭력을 싫어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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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이 사회를 좀 더 나은 사회로 만드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경쟁심이죠. 

경쟁심으로 인해서 좋은 제품들이 나오고 그리고 세상은 그것을 누리며 또 즐거워합니다. 

 

하지만 이 경쟁심이 반드시 상대방을 이겨야 한다고 그렇게 부추긴다면,

그러므로 그것으로 인해 편법과 불법의 유혹에 빠지기가 쉬운 것 아니겠습니까?

교회도 경쟁 사회의 문화에 젖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허무한 것 아니겠습니까? 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4 내가 또 본즉 사람이 모든 수고와 모든 재주로 말미암아 이웃에게 시기를 받으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

부요함을 통해 행복을 찾으려는 시도는 또한 어리석다는 겁니다. 
헛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시기와 질투가 난무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인생의 노력과 성취가 궁극적인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라고 전도자는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자 6절 말씀입니다.

6 두 손에 가득하고 수고하며 바람을 잡는 것보다 한 손에만 가득하고 평온함이 더 나으니라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든 내적 평화가 임해야 한다는 것이죠.

여러분 그래서 아등바등 사는 것보다 조금 적게 가지더라도 만족하고 평화를 누리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재물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고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집착하다 보면, 현재의 순간을 허비하는 우리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인 것이죠.

그래서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만족하고, 이것이 바로 허무함을 극복하는 비결이다라고 우리에게 권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새로운 또 내용으로 넘어갑니다. 바로 9절 말씀입니다. 

9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두 사람이 함께하는 유익을 우리에게 설명해 주고 있어요. 함께함의 유익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관계적 존재로 창조하셨어요.

그래서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있어야 되는 것은 바로 형제 의식이라는 것이죠.

가족 의식이에요. 

 

여러분 앞 단락에 정말 약한 자들이 눈물을 흘리지 않습니까? 그것은 어쩌면 혼자이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위로해주고 도와주고 함께하는 자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두 사람이 함께하면 덜 불행하다는 것입니다. 

동반자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죠. 

협력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혼자 가다가 넘어지면 일으켜줄 사람, 두 사람이 누우면 추운 날씨도 따뜻함이 있고, 하나면 패할 것도 두 사람이면 능히 이길 수 있다.

이 서로 협력할 때 막강한 시너지 효과가 나타난 것이죠. 

동역할 때 우리는 인생의 이 허무함과 인생의 이 불공평함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에덴동산에서 홀로 지내던 아담, 그 아담을 보고 느끼셨던 하나님의 마음, 그 하나님 마음이 어떤 마음일까요?

그 하나님의 마음은 예수님의 이름에서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시기를 원하세요.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가 언제나 이웃과 함께 서 있기를 원하세요. 

그래서 함께 서로 격려하며 어려움을 이겨내기를 원하고 계신 거예요. 

여러분 나 홀로 살아간다?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이 아닙니다.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서 이 거리 두는 거리 두는 것이 익숙해진 그러한 시대가 된 것 같습니다. 

 

여러분 거리 두기로 우리는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제가 말씀드리지만, 여러분 건강하려고 혼자 브로콜리를 아무리 열심히 먹는 그것보다,

사랑하는 사람과 초콜릿을 먹는 것이 더 건강합니다.

 

여러분 고난의 파도가 덮쳐올 때 , 어떻게 홀로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자 그러면서 한 가지 더 우리에게 또 건면 하고 있는데요. 13절 말씀입니다.

13 가난하여도 지혜로운 젊은이가 늙고 둔하여 경고를 더 받을 줄 모르는 왕보다 나으니

그랬습니다.

아 여러분 어떤 왕도 권세를 영원히 누릴 수 없죠. 

자리에서 물러나면 잊히는 거예요. 왕의 우매함은 뭡니까 조언을 받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죠. 

충고를 받아들이는 그러한 지혜가 있어야 된다는 거죠. 

사랑으로 충고해 줄 수 있는 자가 또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주 안에서 서로를 위해 정말 축복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서로 위로하고 협력하고 그리고 연합을 이루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생의 허무를 극복하는 복된 삶을 살아가는 바로 비결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연합을 이룹시다.

함께하는 자들을 축복합시다.

서로 격려하며 함께 어깨동무하며, 함께 찬양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향해 나아가는 그러한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인생 여정에서 힘들 때 서로 의지하고 보듬어 줄 나의 친구는 누구인가요?

 

 

하나님 
우리의 위로자가 되신 주님 
주님을 닮아 위로자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우는 자와 함께 울고, 기뻐하는 자와 함께 기뻐하게 하옵소서.
형제 의식을 가지고 서로 돌아보며 격려하며 살게 하옵소서.
연합을 이루는 복된 삶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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