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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자도, 그의 업적도 죽음 앞에선 헛됩니다 (전도서 2:12~26)(20221212)

2022.12.12. | 생명의 삶 | 권준 목사

 

지혜자도, 그의 업적도 죽음 앞에선 헛됩니다

 

안녕하세요. 

시애틀 형제 교회를 섬기는 권준 목사입니다. 

행복과 즐거움은 어디에 있을까요?

행복과 즐거움은 육신의 쾌락이나 소유에 있지 않음을 우리는 압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사실을 거의 대부분이 인정할 것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더 강렬한 쾌락과 더 많은 소유를 위해 수고와 지혜를 아끼지 않는 어리석은 삶을 사는 것은 아닌지요.

오늘 전도자는 이를 위해 지나치게 일에 몰두하여 인생을 허비하는 그러한 사람들을 향해 경고하고 있습니다.

 

지혜자도, 그의 업적도 죽음 앞에선 헛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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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내가 돌이켜 지혜와 망령됨과 어리석음을 보았나니 왕 뒤에 오는 자는 무슨 일을 행할까 이미 행한 지 오래 전의 일일 뿐이리라
13 내가 보니 지혜가 우매보다 뛰어남이 빛이 어둠보다 뛰어남 같도다
14 지혜자는 그의 눈이 그의 머리 속에 있고 우매자는 어둠 속에 다니지만 그들 모두가 당하는 일이 모두 같으리라는 것을 나도 깨달아 알았도다
15 내가 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우매자가 당한 것을 나도 당하리니 내게 지혜가 있었다 한들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하였도다 이에 내가 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이것도 헛되도다 하였도다

16 지혜자도 우매자와 함께 영원하도록 기억함을 얻지 못하나니 후일에는 모두 다 잊어버린 지 오랠 것임이라 오호라 지혜자의 죽음이 우매자의 죽음과 일반이로다
17 이러므로 내가 사는 것을 미워하였노니 이는 해 아래에서 하는 일이 내게 괴로움이요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기 때문이로다
18 내가 해 아래에서 내가 한 모든 수고를 미워하였노니 이는 내 뒤를 이을 이에게 남겨 주게 됨이라
19 그 사람이 지혜자일지, 우매자일지야 누가 알랴마는 내가 해 아래에서 내 지혜를 다하여 수고한 모든 결과를 그가 다 관리하리니 이것도 헛되도다
20 이러므로 내가 해 아래에서 한 모든 수고에 대하여 내가 내 마음에 실망하였도다

21 어떤 사람은 그 지혜와 지식과 재주를 다하여 수고하였어도 그가 얻은 것을 수고하지 아니한 자에게 그의 몫으로 넘겨 주리니 이것도 헛된 것이며 큰 악이로다
22 사람이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수고와 마음에 애쓰는 것이 무슨 소득이 있으랴
23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그의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24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보다 그의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로다
25 아, 먹고 즐기는 일을 누가 나보다 더 해 보았으랴

26 하나님은 그가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그가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그가 주게 하시지만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

 

전도자는 지혜를 얻기 위해 수고하고 노력했습니다.

왜냐하면 지혜가 어리석음보다 뛰어나기 때문인 것이죠. 13절 말씀입니다. 

13 내가 보니 지혜가 우매보다 뛰어남이 빛이 어둠보다 뛰어남 같도다

빛이 어두움보다 뛰어남 같이, 지혜와 어리석음 사이에도 그만큼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죠.

 

여러분 구약에 호세아 선지자가 뭐라고 말합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지식이 없어 망한다.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지식과 지혜의 유무에 따라 흥망 성세가 결정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지혜를 얻기에 수고하고 노력을 합니다. 

하지만 전도자는 결국 뭐라고 고백을 합니까? 14절 말씀입니다.

14 지혜자는 그의 눈이 그의 머릿속에 있고 우매자는 어둠 속에 다니지만 그들 모두가 당하는 일이 모두 같으리라는 것을 나도 깨달아 알았도다

지혜가 우매보다 더 나은 것은 분명하지만, 멀리서 바라보면, 거시적으로 바라보면 지혜와 우매가 서로 크게 다르지 않는구나 하고 전도자는 말합니다. 왜요? 모두 당하는 일이 같다는 거예요.

지혜가 낮다면 지혜자와 우매자가 당하는 일이 달라야 하는데, 인생의 실체를 들여다보니 다르지 않다는 거예요.

그래서 지혜가 무의미하다는 것이죠. 16절 말씀입니다. 

16 지혜자도 우매자와 함께 영원하도록 기억함을 얻지 못하나니 후일에는 모두 다 잊어버린 지 오랠 것임이라 오호라 지혜자의 죽음이 우매자의 죽음과 일반이로다

모두가 죽고 잊혀진다는 거죠. 그러므로 동일하다는 거예요.

지혜자라고 해서 오랫동안 기억되는 것이 아니구나.

그래서 지혜를 추구하는 것이 바람 잡는 것과 같이 헛되다고 말을 합니다.

그래서 너무 우울해하고 있어요. 

그렇게 수고하고 노력했는데 지혜나 우매나 동일하다고 깨닫게 되니까 너무나 실망스러운 것이죠.

또 한편으로는 삶을 증오합니다.

 

하지만 여러분 여기서 그치면 안 된다는 거죠. 

전도자가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뭐겠습니까? 하나님을 향해 방향 전환을 하라는 거예요.

어디에 즐거움이 있고 행복이 있고, 어디에 지혜가 있는지 방향 전환을 하나님께로 하라.

바로 이것이 지혜고 행복이라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지혜자가 우매자보다 우월함에도 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는 까닭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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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자는 수고 자체를 이 노동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수고의 결과로 모든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인 것이죠. 

하지만 전도자가 말하는 내용은 무엇입니까?

그가 강조하는 것은 지나친 희생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직장에서 승진을 위해 열심히 일을 합니다. 

왜냐하면 승진하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인 것이죠. 

그래서 열심히 일합니다. 

다른 것을 희생하면서 열심히 일해요. 

 

그런데 여러분 일만 열심히 하다가 아무것도 누리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다면, 그것이 얼마나 허무한 일이겠습니까?

그래서 전도자는 18절에 이렇게 말씀을 합니다.

18 내가 해 아래에서 내가 한 모든 수고를 미워하였노니 이는 내 뒤를 이을 이에게 남겨 주게 됨이라

또 수고도 허무한 일이 될 수 있구나 하는 거예요.

수고해서 얻은 모든 결과를 왜요? 다른 이가 관리하게 되고 또 다른 이에게 넘겨주게 됩니다.

이 수고의 열매를 자신이 누리지 못하고 엉뚱한 사람에게 넘겨주고 만다는 것이죠. 

20절 말씀입니다. 

20 이러므로 내가 해 아래에서 한 모든 수고에 대하여 내가 내 마음에 실망하였도다

'아 왜 과도하게 일해왔는가? 수고가 실로 헛되구나' 그러면서 전도자는 낙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흑수저 또 금수저라는 말을 우리가 많이 사용하지 않습니까? 무슨 말입니까?

부모의 재력과 능력이 자녀의 삶을 결정해 준다는 것이죠.

그래서 부모는 자녀에게 금수저를 주기 위해 수고를 마다하지 않아요. 

자녀의 학업을 위해 또 기러기 아빠로 살아가기도 합니다.

정말 너무나 많은 수고와 희생을 하며 삽니다. 

그런 우리에게 전도자는 오늘 어떤 교훈을 주고 있습니까? 24절 말씀입니다.

24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보다 그의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로다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일을 열심히 해보았는데, 먹고 마시고 일하면서 누리는 그 즐거움이 어디서 비롯된다고요?

하나님에게서 비롯된다는 거예요.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이지, 유산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우리의 앞날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을 떠나서 누가 먹고 즐길 수 있겠는가? 이렇게 우리에게 질문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서 강조하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기쁨과 즐거움의 기원은 하나님이시다는 거예요.

그래서 불투명한 미래를 위해 현재 하나님이 주신 복을 희생하지 말라는 거예요.

 

저도 보면 제 아내가 저보고 뭐라 그러냐면 '워커홀릭'이라고 그래요. '일 중독자'라 그래요.

뭐 저는 이렇게 인정하지 않는데 제 아내가 그렇게 말을 합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저도 오늘 제 자신을 돌아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주시는 일상의 작은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인생에 중요하다는 거예요. 

우리가 성공 자체에, 어떻게 보면 그 일 자체 사역 자체에 소망을 두면 우리는 분주하게 살아가게 되고,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께 소망을 두면 허무를 극복할 수 있다는 거예요.

우리가 하나님께 소망을 둘 때 진정한 기쁨과 만족을 누릴 수 있다는 거예요. 

그것은 하나님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에게 질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지금 나는 누리고 있는가?

그리고 뭐라고 우리에게 권면하고 있습니까?

그것을 미루지 말라는 거예요.

자 그리고 죽음이라고 하는 것, 이것이 절대적 인간의 한계 아닙니까?

공포의 대상 아닙니까?

여러분 두려움에 갇혀 삽니까?

우리가 어떻게 진정한 자유함과 평안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죽음까지 극복하게 하신 그 하나님을 바라볼 때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계속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셨어요.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을 믿는 삶이 바로 진정한 승리의 삶이에요. 

진정한 승리는 죽음까지 극복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알고 믿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전도자는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을 합니다. 

이 모든 것에서 하나님을 바라보아라.

하나님이 주신 이 삶이 하루에 감사하라. 그리고 기뻐하라.

염려와 욕심을 버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을 즐겁게 사는 사람이 바로 내일을 준비하는 사람이고,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이고,

또한 천국을 준비하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에 보면 모세는 이렇게 기도를 하죠. 

'남은 연수를 계산하며 사는 지혜를 달라고' 그렇게 강구하지 않습니까?

 

우리 오늘도 내게 주어진 이 삶을 사랑합시다.

그리고 오늘 해야 할 일을 오늘 합시다.

 

여러분 악인의 형통함을 불허하지 마십시오.

아 아는 형통한데, 나는 왜 이런가. 원망하지 마십시오.

왜요? 결국 그 악인의 형통함도 내가 사용하게 될 것이라고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지 않습니까.

만물의 근원인 하나님께 소망을 둡시다.

그러므로 오늘도 진정한 행복을 누리며 사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전도자가 자신의 업적을 마냥 기뻐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하나님 
참된 행복을 얻고 누리기 위해 열심히 수고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랑하는 성도들 무엇보다 건강을 지켜주옵소서.
하나님 행여나 성공을 추구한 나머지 지나친 희생으로 더 큰 것을 잃는 것은 아닌지요.
삶의 지혜를 우리에게 주옵소서.
하나님 특별히 자녀들의 삶을 보호해 주시고 인도하여 주옵소서.
오늘 하루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되게 하옵소서.
행복한 삶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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