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11. | 생명의 삶 | 노치형 목사
샬롬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루를 기쁘게 살아가는 믿음의 승리를 누리시길 소망합니다.
저는 온누리 교회를 섬기는 노치형 목사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순종한다는 것은 늘 숙제처럼 다가올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숙제 같은 하나님의 뜻은 사실 우리에게 어떤 모험을 요청하기도 합니다.
또 매우 도전적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면 좋을까요?
우리 인생의 모든 순간 속에서 우리 자신도 이끌지 못하는 그 인생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매우 놀라운 일들을 이루고 계심을 우리가 신뢰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시고 성취하시는 그 기쁨을 우리도 맛보게 되길 소망합니다.
오늘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창세기 46장 1절에서 7절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함께 듣겠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따른 야곱의 애굽 이주
1 이스라엘이 모든 소유를 이끌고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그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께 희생제사를 드리니 2 그 밤에 하나님이 이상 중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야곱아 야곱아 하시는지라 야곱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3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4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의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 하셨더라 5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날새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바로가 그를 태우려고 보낸 수레에 자기들의 아버지 야곱과 자기들의 처자들을 태우고 6 그들의 가축과 가나안 땅에서 얻은 재물을 이끌었으며 야곱과 그의 자손들이 다함께 애굽으로 갔더라 7 이와 같이 야곱이 그 아들들과 손자들과 딸들과 손녀들 곧 그의 모든 자손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 |
고향 땅에서 기다리던 야곱 곧 이스라엘에게 모든 아들들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 아들들이 다시 돌아온 것은 큰 기쁨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기쁜 소식이 있었습니다.
그 죽은 줄 알았던 요셉이 살아있고, 그는 이집트에 총리가 되어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야곱은 사실 믿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집트의 바로가 보냈다는 그 큰 수레들을 바라보면서 야곱은 너무나 행복하고 기뻤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결단을 해야 했습니다.
이집트 땅으로 가야 할 것인가 거기에 대해서요.
이스라엘이 된 야곱은 하나님께 간구했을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응답해 주시죠. 1절부터의 말씀입니다.
1 이스라엘이 모든 소유를 이끌고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그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께 희생제사를 드리니
2 그 밤에 하나님이 이상 중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야곱아 야곱아 하시는지라 야곱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3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4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의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 하셨더라
길을 떠나는 이스라엘 야곱의 마음에는 두려움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단은 짐을 챙겨 떠나긴 하나, 그는 하나님께 간구해야겠다는 확신을 갖게 되죠.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희생지사를 드리기로 결심하고 그것을 실행합니다.
그랬더니 그 밤에 하나님께서 이상 중에 나타나셔서 말씀을 해주시는 겁니다.
'나는 너의 하나님이다. 너의 아버지의 하나님이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하나님이 바로 말씀하고 계신다는 것이죠.
야곱은 정말 이 말씀을 듣고 그 중심에 놀랐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도 함께 계시는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이라고 이름을 바꿔 놓으시고도 친밀하게 야곱이라고 불러주십니다.
오히려 야곱은 이스라엘이라고 불리는 것보다 야곱 자기의 이름 그 속이는 자라는 이름이 훨씬 더 친밀하게 와닿았을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사실 속이는 자들 아닙니까?
하나님 앞에 늘 거짓말하고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솔직하지 못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진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이름을 불러주시고 우리를 친밀하게 대해주시죠.
그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알고 계시고 그 인생의 모든 순간을 지켜보호하신다라는 것입니다.
지금 야곱은 하나님 앞에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근거 몇 가지를 듣게 됩니다.
그것이 아까 읽었던 4절의 말씀에 나오는데 일단 하나님이 함께 애굽 곧 이집트까지 내려가시겠다는 것입니다.
'가는 길도 내가 동행하겠어'
'이 고향 땅 고향 땅으로 여겨지는 가나안 땅에 머물 때도 내가 함께 했지만, 내가 이 집트 땅에 갈 때도 같이 갈 거야'
두 번째는요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야'
'니가 억지로 올라오지 않아도 내가 인도해서 올라오게 할 것이다.'라고 약속해 주시는 거예요.
세 번째는 무엇입니까?
'네가 요셉 네가 사랑하는 그 요셉의 손으로 네가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 눈이 감겨진다는 것은 바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가장 행복한 약속 세 가지를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 약속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바로 이사야가 선포했던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말하는 것이죠.
그 임마누엘은 누구입니까?
마태복음에서 1장에 선포하고 있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는 기억해야 하는 것이죠.
우리의 인생에 예수 그리스도는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십니다.
그 사실을 신뢰하는 오늘 하루가 되길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친밀한 복 중의 하나는 임마누엘의 복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죠.
우리의 과거에도 우리의 현재에도 우리의 미래에도 아니 우리가 죽음 이후에 부활을 맞이하고 영원한 생명을 맞이한 하나님의 나라에서도 함께 하신다라는 것이죠.
그것을 우리가 신뢰한다면,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새로운 부르심과 새로운 출발에 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요셉의 일생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인생에게 향하신 어떤 단계를 우리는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것은 세 가지의 단계가 먼저 있습니다.
그것은 첫 번째가 미숙기, 두 번째가 성장기 그리고 세 번째가 성숙기입니다.
미숙기라는 것은 어떤 원재료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장기라는 것은 어떤 사용되는 도구가 되기 위해서 만들어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죠.
미숙기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늘 의존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성장기에 해당하는 청소년기와 청년기에는 우리는 어떤 터널을 지나가는 것 같은 그런 답답함과 갑갑함을 느끼게 되죠.
하지만 그 성장기에 우리는 뭔가 만들어지는 과정이기 때문에 우리는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만들어진 그 모양대로 사용될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성숙기에 이르게 됩니다.
이 성숙기는 뭐냐면, 이제 도구가 다 되어서 사용되어지게 되었다는 것이죠.
요셉의 일생을 먼저 살펴보면 아버지께 사랑받고 그 꿈 꿈을 자기도 모르게 떠버리고 다닐 수밖에 없는 그런 미숙한 모습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미숙기를 지난 성장기에 요셉은 무엇을 경험합니까?
형들에게 미움을 받고 팔려 종이 되고 그리고 결국에 감옥도 가게 되는 그러한 놀라운 시간들을 겪게 된다는 것이죠.
거기에 또 총리가 되는 성공 모든 것이 끝나버린 것 같은 성공 그 기간을 보이게 됩니다.
바로 성숙기까지 도달하게 된 것이죠.
하지만 요셉의 남은 일생에서 우리는 두 가지의 단계를 더 보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숙성기라는 것과 재탄생 기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냐면 이미 도구화되어 사용되나 그 도구는 언제나 유효기간이 있죠.
고쳐지게 되고 또 망가지게 됩니다.
그러면 그것을 우리는 '수리 중'이라고 말하는 것이죠.
우리가 이미 성숙한 시기를 벗어나고 나아감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생에 또 터널에 들어간 경험을 또 하게 된다는 것이죠.
어떤 사람들은 실패를 통해서 어떤 사람은 퇴직을 통해서 어떤 사람은 여러 가지 질병과 고난을 통해서
그러한 또 터널을 지나는 것 같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숙성기' 다시 한 번 새로워지는 시간,
다시 말하면 도구가 수리되는 시간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고,
수리가 끝나면 어떻게 됩니까?
다시 사용되는 것이죠.
그게 바로 재탄생기입니다.
다시 사용될 수 있는 그 시간, 망가지면 고쳐서 또다시 사용되는 그것이 반복되는 인생을 살게 된다는 것이죠.
이미 총리로 정점을 찍었지만 그에게는 풀리지 않은 가족과의 관계가 있었습니다.
묶여 있던 그 관계를 하나님은 풀어가시죠.
너무나 어려운 순간 같지만 그 터널을 지나듯 그것을 누리게 되고, 결국에는 하나님의 뜻의 성취를 맛보고 감격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감격을 맛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실 그 감격을 신뢰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 감격 속에 우리가 기쁨을 누리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에게 약속하신 대로 성취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집이라 불려진 땅과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땅에서 살아왔던 이스라엘에게 다시 돌아오게 될 것임을 확인해 주시고 이집트로 떠나라고 명령해 주셨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리고 그 명령에 순종하여 믿음으로 새로운 땅에서의 새로운 삶을 향해 출발했던 이스라엘과 그 가문처럼
우리도 날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새로운 시간과 장소를 향해 순종할 수 있도록 사랑으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서로 사랑으로 하나 되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선하신 구원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십자가의 길을 기꺼이 선택하신
우리의 구원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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