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25. | 생명의 삶 | 도육환 목사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한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 교회를 섬기는 도육한 목사입니다.
여러분은 살아오는 동안 억울한 누명을 쓰거나 오해를 받아 힘들었던 경험은 없습니까?
없을 리가 없겠죠.
내가 가진 순수한 의도가 호도당하거나 곡해(曲解)되기도 하고 비난의 대상이 되어 본 적도 있을 겁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중심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다른 사람을 오해하기도 하고 또 오해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의 판단은 언제나 진실하시고, 그분은 완전한 분이시지요.
그러므로 혹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억울한 일 곡해(曲解)된 일을 만나거든 내 힘과 지혜로 풀려고 하지 말고,
모든 것을 아시고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서 기가 막힐 누명과 오해 구덩이에 던져진 요셉과 여전히 함께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그것을 모든 선으로 이끌어가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여러분의 억울한 사정도 이 좋으신 하나님 앞에로 가지고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묵상 복문은 창세기 39장 11절에서 23절 말씀입니다.
감옥에서 부어 주신 하나님 은혜
11 그러할 때에 요셉이 그의 일을 하러 그 집에 들어갔더니 그 집 사람들은 하나도 거기에 없었더라 12 그 여인이 그의 옷을 잡고 이르되 나와 동침하자 그러나 요셉이 자기의 옷을 그 여인의 손에 버려두고 밖으로 나가매 13 그 여인이 요셉이 그의 옷을 자기 손에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감을 보고 14 그 여인의 집 사람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보라 주인이 히브리 사람을 우리에게 데려다가 우리를 희롱하게 하는도다 그가 나와 동침하고자 내게로 들어오므로 내가 크게 소리 질렀더니 15 그가 나의 소리 질러 부름을 듣고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갔느니라 하고 16 그의 옷을 곁에 두고 자기 주인이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려 17 이 말로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데려온 히브리 종이 나를 희롱하려고 내게로 들어왔으므로 18 내가 소리 질러 불렀더니 그가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밖으로 도망하여 나갔나이다 19 그의 주인이 자기 아내가 자기에게 이르기를 당신의 종이 내게 이같이 행하였다 하는 말을 듣고 심히 노한지라 20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21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22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23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
보디발 아내의 계속된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았던 요셉에게 극적인 위기가 닥칩니다.
사건이 있었던 당일에는 요셉이 일하러 들어간 집에 아무도 없이 주인의 아내만 있었습니다.
아마 음야가 함정을 파기 위해 의도적으로 연출한 환경일 수도 있겠습니다.
요셉은 그동안 유혹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보디발의 아내를 멀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날도 여인의 유혹은 계속되었고 집 안에 다른 사람이 없는 틈을 타서 이번에는 완력으로 요셉의 옷을 강하게 붙들고 동침을 요구합니다.
이와 같이 죄는 집요하고 간교합니다.
우리가 넘어질 때까지 포기하려 들지 않을 겁니다.
때로는 물고 늘어져서 벗어나기 힘들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쯤 되면 아무리 아름다운 청년 요셉이라 할지라도 피하기가 쉽지 않은 함정이죠.
그러나 요셉은 최후의 전술을 행사합니다. 도망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삼십육계(三十六計)라고 부르는 주위상(走爲上)도 전술 중에 하나입니다.
강한 적과 싸울 때는 때로 퇴각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유혹하며 옷을 틀어쥔 여인을 어찌 말로 설득할 수 있겠습니까?
그때는 그 자리를 피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12 그 여인이 그의 옷을 잡고 이르되 나와 동침하자 그러나 요셉이 자기의 옷을 그 여인의 손에 버려두고 밖으로 나가매
12절에 보면 요셉이 자기의 옷을 그 여인의 손에 버려둔 채 밖으로 나갔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를 유혹하는 환경들이 너무 많고 그 악들의 집요함이 더욱 강해지는 때이기 때문에
아예 죄를 멀리 할 수 있는 환경을 의도적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자의 아가리에 머리를 집어넣고 구해달라고 원하는 것은 합당치 않습니다.
피해야죠. 도망가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지 않고 자신을 지킬 수 있고 가정을 지킬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이루어지지 않는 욕구는 분노의 형태로 드러납니다.
보디발의 아내는 분노와 치욕에 휩싸여 요셉을 해칠 계략을 꾸밉니다.
죄의 실상이죠.
요셉이 버려두고 떠난 옷을 증거물로 삼아서 주인의 아내를 겁탈하려 드는 치한으로 만든 것입니다.
1차적으로 자신의 말에 동조할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집안사람들을 불러 모함을 하고,
또 주인 보디발이 돌아오기를 기다려서 두 번째 거짓을 꾸며냅니다. 17절 18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17 이 말로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데려온 히브리 종이 나를 희롱하려고 내게로 들어왔으므로
18 내가 소리 질러 불렀더니 그가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밖으로 도망하여 나갔나이다
'당신이 우리에게 데려온 히브리 종'이라고 표현한 것을 보면 이 음녀는 요셉만 모함한 것이 아니라 남편 보디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전가합니다. 죄는 이렇게 간교합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범한 이후에 당신이 내게 준 여자가 먹게 했다고 책임을 떠넘기듯이,
죄는 언제든지 눈에 불을 켜고 희생양을 찾아서 공격하려 듭니다.
부부 사이에도 부모와 자녀 사이에도 죄가 틈타면 서로 비난합니다. 정죄합니다.
자신이 져야 할 무거운 도덕적 무게를 피하기 위해서
수많은 거짓말을 꾸며내기도 하고 회피하며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기도 하지요.
이 모든 소용돌이 속에 요셉은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성경에는 요셉이 어떻게 대응했는지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이 같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도 제대로 변명조차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왜요?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하고 계심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혹 누명을 쓰거나 다른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받아 마음이 상한 채 힘겨운 밤을 보내고 있지는 않습니까?
감정이 많이 상하고 분하겠지만, 이 사실은 기억하십시오. 우리 하나님은 아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이십니다.
내 억울함도 아시고 의롭고 공평하신 분이십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드러내고야 마실 것입니다.
지금 당장 달려가 풀고 싶고, 억울함을 하소연하고 싶겠지만, 조금만 더 기다리십시오.
하나님께 시간을 드리십시오.
하나님께 시간을 드리십시오.
완전하고 선하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의를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고대 사회의 상식이라면 여주인을 겁탈하려는 종은 죽어 마땅했습니다.
그런데 보디발은 요셉을 죽이거나 거세시키지 않고, 감옥에 가두는 정도로 이 상황을 정리합니다.
그것도 일반 죄수들을 가두는 감옥이 아니라 왕의 죄수들을 격리시키는 왕궁 감옥이었습니다.
아마도 보디발은 아내의 말을 다 믿지 않았다는 뜻일 것이고, 요셉에 대한 신뢰가 그만큼 컸다는 뜻이기도 할 겁니다.
그리고 이 일은 요셉의 미래에 결정적인 중요한 디딤돌을 놓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순결한 청년 요셉으로 보면 너무나 억울하고 분한 사건이지만,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오히려 요셉을 높이시기 위한 과정으로 이 화(禍) 된 사건을 아름답게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의 섭리의 수레 바퀴는 언제나 정확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보십시오.
감옥에 갇힌 요셉에게도 하나님의 임재는 떠나가지 않습니다.
21절에서 23절 말씀입니다.
21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22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23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아멘
보디발의 집에 있을 때 요셉과 함께하신 하나님은 감옥에 갇힌 요셉과도 함께하십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은 어떤 특정 시기에만 머물다 떠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고, 그 주님은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십니다.
특별히, 고난 중에 있을 때, 외롭고 두려울 때, 하나님의 은혜는 더 밀도 있게 우리의 손을 붙들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때로 고난이라는 파이프라인을 타고 우리에게 들어옵니다.
억울하게 감옥까지 가게 된 이 고난은 위장된 축복으로 요셉을 이끌고 있었던 겁니다.
감옥에서도 요셉이 머무는 곳에 여전히 형통의 복이 함께했다고 말씀하십니다.
간수장이 요셉을 선대 합니다.
옥중 죄수들을 다 요셉의 관리에 맡깁니다.
그리고 감옥에서 일어나는 제반 사물을 요셉이 처리하게 합니다.
간수장은 요셉에게 맡긴 일은 확인하지 않아도 될 정도가 되었습니다.
요셉의 성실함과 지혜로움이 감옥에서도 빛을 발하게 되었고, 인정받게 된 것입니다.
이 모든 형통에도 역시 원인은 한 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
23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어떻게 형통한 삶이 그에게 이루어졌을까요?
답이 나왔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이 형통한 삶입니다.
다윗이 여호와께서 함께 하실 때 가는 곳곳마다 전쟁에서 승리를 얻을 수 있었던 것처럼,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에 붙들릴 때 우리의 삶도 형통할 수 있습니다.
승리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여러분은 어디 계십니까?
보디발의 집에 가정 총무를 맡으셨습니까?
혹 억울한 일을 당해 감옥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까?
그 어디에 있든지 우리 하나님은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그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음으로 살아갈 때, 형통한 삶과 복이 여러분과 함께 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오늘 머무는 모든 곳, 그리고 그 하는 모든 땅들과 만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하게 임하고 형통한 그런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존귀하신 하나님
오늘도 우리의 옷을 붙들고 죄 가운데로 유혹하는 세상 한가운데를 저희는 살아가야 합니다.
지혜와 능력을 주셔서 죄의 유혹으로부터 승리하게 하시고,
어디에 가든지, 어느 곳에 머물든지, 늘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살아감으로
형통한 삶을 살아가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존귀하신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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