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27. | 생명의 삶 | 도육환 목사
할렐루야
온누리 교회를 섬기는 도육환 목사입니다.
오늘도 함께 말씀의 전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로운 과실로 배 불리는 시간이 되길 기대합니다.
여러분은 어젯밤 동안 꾼 꿈을 기억하십니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하룻밤 몇 번 이상 꿈을 꾼다 하고.
만일 여덟 시간 정도에 수면을 했다면 그중에 두 시간 정도는 렘수면 단계에서 꿈을 꾼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우리 대부분은 꿈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정신분석가 프로이트는 저서 '꿈의 해석'에서 꿈을 무의식 욕망의 대리적 만족이라 그렇게 표현했지만,
실제로 꿈은 현실과 동떨어지고 맥락이 없는 허상의 기억일 때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꿈은 인간의 이성이 멈춘 시간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계시를 드러내는 가장 좋은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
요셉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대부분의 꿈은 이 같은 계시적 성격이 강하지요.
오늘 말씀에도 두 사람의 꿈과 그 해몽으로 통해 하나님의 뜻이 어떻게 이루어져 가는지를 보게 됩니다.
창세기 40장 9절에서 23절 말씀을 함께 묵상하겠습니다.
요셉의 말대로 된 두 관원장의 운명
9 술 맡은 관원장이 그의 꿈을 요셉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꿈에 보니 내 앞에 포도나무가 있는데 10 그 나무에 세 가지가 있고 싹이 나서 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익었고 11 내 손에 바로의 잔이 있기로 내가 포도를 따서 그 즙을 바로의 잔에 짜서 그 잔을 바로의 손에 드렸노라 12 요셉이 그에게 이르되 그 해석이 이러하니 세 가지는 사흘이라 13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들고 당신의 전직을 회복시키리니 당신이 그 전에 술 맡은 자가 되었을 때에 하던 것 같이 바로의 잔을 그의 손에 드리게 되리이다 14 당신이 잘 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아뢰어 이 집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15 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요 여기서도 옥에 갇힐 일은 행하지 아니하였나이다 16 떡 굽는 관원장이 그 해석이 좋은 것을 보고 요셉에게 이르되 나도 꿈에 보니 흰 떡 세 광주리가 내 머리에 있고 17 맨 윗광주리에 바로를 위하여 만든 각종 구운 음식이 있는데 새들이 내 머리의 광주리에서 그것을 먹더라 18 요셉이 대답하여 이르되 그 해석은 이러하니 세 광주리는 사흘이라 19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들고 당신을 나무에 달리니 새들이 당신의 고기를 뜯어 먹으리이다 하더니 20 제삼일은 바로의 생일이라 바로가 그의 모든 신하를 위하여 잔치를 베풀 때에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에게 그의 신하들 중에 머리를 들게 하니라 21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은 전직을 회복하매 그가 잔을 바로의 손에 받들어 드렸고 22 떡 굽는 관원장은 매달리니 요셉이 그들에게 해석함과 같이 되었으나 23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더라 |
요셉이 감옥에서 만난 두 관원장은 하룻밤에 서로 다른 꿈을 꿉니다.
그들의 꿈은 비교적 일관성이 있고 선명한 것이기 때문에 계시적 성격을 가졌다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꿈은 두 사람이 장차 맞이할 운명을 알려주기 위함이라기보다는 요셉을 세우시기 위한 도구로 사용됩니다.
먼저 술 맡은 관원장이 자신이 꾼 꿈의 내용을 요셉에게 설명합니다.
포도나무에 세 가지가 있었는데, 거기에 싹이 나고 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익어서 그 열매로 포도주를 만들어 바로에게 드렸다는 요지입니다.
요셉의 해몽은 길한 것이었습니다.
세 가지는 사흘을 의미하고 포도나무에 생명이 자라 열매를 맺게 되었으니,
감옥에서 풀려 복직되고 바로를 다시 섬기게 될 것이라는 좋은 해석이었습니다.
좋은 꿈이었고 요셉이 해몽한 그대로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가 꾼 꿈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알게 된 요셉은 만약 술 맡은 관원이 복직되게 되면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14절 15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14 당신이 잘 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아뢰어 이 집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15 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요 여기서도 옥에 갇힐 일은 행하지 아니하였나이다
요셉의 이 같은 부탁은 절박하고도 간절한 것이었습니다.
내가 꿈을 해석한 대로 복직이 이루어지거든 나를 기억하시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 내 사정을 바로에게 알려서 억울함을 풀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은 옥에 갇힐 일을 결코 하지 않은 사람이다.
결백을 주장하기도 합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버림을 받아 애굽에서 종살이한 지도 벌써 12년이 흘렀습니다.
하나님은 시시때때로 그의 삶을 형통함으로 이끌어 주셨지만,
요셉은 여전히 타향이었고, 여전히 감옥이었고,
어린 시절 자신이 꾸었던 그 특별한 꿈은 이제 물거품이 된 것처럼 느껴지던 때였습니다.
그 무엇이라도 붙들고 싶었던 때였습니다.
이 사건이 있었으니 요셉이 술 맡은 관원장에게 소망을 걸어보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그러나
23절 말씀과 같이 술 맡은 관원장은 복직된 이후에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잊어버렸습니다.
아마도 요셉에게는 가장 길게 느껴졌을 2년의 감옥 생활이 이어졌고, 요셉은 인간적인 모든 기대마저 내려놓아야만 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고난의 시간이 길어질 때 지치기도 하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듭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면서 기다려왔던 인내의 시간이 무가치하게 여겨지는 그런 때도 있죠.
그래서 다른 도울 만한 그 무엇, 어떤 존재에게 기대를 걸어보기도 하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마음의 갈피를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위기의 순간마다 하나님의 역전 드라마를 경험했던 요셉조차 이렇게 힘겨워했다면 쉬 흔들리는 연약한 우리야 오죽하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손은 결코 우리를 놓지 않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에도 요셉에게는 2년의 감옥 생활이 더 필요했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인내와 소망의 시간이 더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로마서 8장 25절 말씀과 같습니다.
로마서 8: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우리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실 그 하나님을 소망하기에 참을 수 있습니다.
또 기다릴 수 있습니다.
성도는 믿음의 사람이면서 동시에 소망의 사람입니다.
우리의 삶의 결론은 이미 결정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승리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같이 영화롭게 될 것입니다.
주와 함께 영원토록 왕 노릇 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결론입니다.
그렇다면 현재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은 이 힘겨운 시간에도 우리가 결코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소망 중에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려야 합니다.
끝까지 믿음의 경주를 계속합시다.
최후의 승리가 여러분에게 주어질 것을 믿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의 꿈에 대한 해몽이 좋은 것을 보고 떡 맡은 관원장도 자신의 꿈을 해석해달라고 부탁합니다.
내용이죠. 그의 머리에 흰떡 새 광주리가 있었고, 각종 요리한 음식들이 있었는데, 새들이 와서 그 음식을 쪼아 먹었다는 내용입니다.
꿈의 해석이 흉한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주저 없이 계시로 보여주신 해몽을 말해줍니다.
새 광주리는 사흘을 의미하고, 새들이 먹은 음식은 당신이 처형당해 새들의 밥이 될 것이라는 해석입니다.
그야말로 생사가 나뉘는 순간이었죠.
말하기가 꺼려졌을 겁니다.
말하기도 미안했을 겁니다.
그러나 이 두려울 만한 상황에서도 요셉은 주저하지 않고 두 꿈의 해석을 제안합니다.
만약 이 해몽에 오류가 있어서 반대로 일이 이루어진다면 요셉의 생명도 위태로울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러나 요셉은 꿈의 해석이 하나님께 있음을 확신합니다.
꿈을 꾸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정확하게 해석하실 분도 하나님,
그리고 그 꿈을 성취하실 분도 하나님밖에 없음을 확실히 믿었기에 요셉은 계시받은 대로 전할 수가 있었던 겁니다.
사실을 왜곡하거나 희석시키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이 정확 모호한 진리인 것을 확신하고 삽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 일획도 어김없이 그대로 성취될 것을 우리는 믿습니다.
그럼에도 그것이 꿈의 해석이든 말씀의 해석이든 우리는 사람이 듣기 좋아하는 말만 하려고 할 때가 많습니다.
혹여라도 어느 누군가의 심기를 상하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죠.
그러다 보니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도 사람의 비위에 맞춘 설교가 증거 될 때가 많습니다.
윌리안 바클레의 지적같이 양심을 깨우는 것이 아니라 양심을 달래는 설교들이 많습니다.
만일 우리가 죄를 죄라고 말하지 않으면 어떻게 회개 열매를 맺을 수 있겠습니까?
요즘처럼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거슬러 동성연애와 성적 차별에 대한 왜곡된 법제화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해서 우리가 그곳에 침묵한다면, 도대체 누가 진리를 바로 증가할 수 있겠습니까?
듣기 거북해한다고 해서 종말과 심판에 대해서 두리뭉실하게 표현해버리면,
어떻게 두려움과 떨림으로 신앙을 지킬 수 있겠습니까?
21절에서 23절 말씀을 보십시오.
21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은 전직을 회복하매 그가 잔을 바로의 손에 받들어 드렸고
22 떡 굽는 관원장은 매달리니 요셉이 그들에게 해석함과 같이 되었으나
23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더라
요셉이 그들에게 해석해준 것과 같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은 전직을 회복하게 됐고, 떡 굽는 관 은장은 처형받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계시와 언약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우리는 참된 진리를 소유한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파수꾼의 사명을 깨우쳐 주셨지요.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삼으니 이와 같으니라
그런즉 너는 내 입에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할지어다'
어찌 에스겔에게만 주신 사명이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 우리 모두를 향한 부르심입니다.
파 숙군의 사명은 위기를 발견했을 때 잠잠히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을 위한 파수꾼으로 세우셨습니다.
이 복음의 나팔을 불어 세상을 일깨우기 원하십니다.
우리가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전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가정에서 교회와 일터에서 복음의 진리를 바로 증거 하는 생명의 나팔로 쓰임 받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존귀하신 하나님
저희도 때로는 현실의 무게 앞에 지치기도 하고 넘어질 때가 많습니다.
저희에게 힘과 용기를 주셔서 소망 중에 인내하며 끝까지 승리하게 하시고,
이 세대를 향한 진리의 나팔로 사용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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