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26. | 생명의 삶 | 도육환 목사
오늘 하나님 안에서 행복하신 하루가 되십시오.
영종 온누리 교회를 섬기는 도육환 목사입니다.
오늘 우리가 묵상한 말씀이 우리 삶의 덕이 되고 마음이 주는 이어 모두고 소망과 기쁨으로 살아가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는 말을 잘할 것입니다.
어느 누군가에게 닥친 재앙이 오히려 복으로 변화된다는 뜻을 가지고 있죠.
성경에는 전화위복의 스토리가 많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는 화를 당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 오히려 하나님께 복 받는 계기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하신 뜻 가운데 당신의 친 백성을 인도해 주시기 때문에 맺는 결과죠.
오늘 본문에서 만나는 요셉의 삶에도 전화위복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섬리를 보겠죠.
묵상할 말씀은 창세기 40장 1절에서 8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로 이뤄진 뜻밖의 만남
1 그 후에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가 그들의 주인 애굽 왕에게 범죄한지라 2 바로가 그 두 관원장 곧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에게 노하여 3 그들을 친위대장의 집 안에 있는 옥에 가두니 곧 요셉이 갇힌 곳이라 4 친위대장이 요셉에게 그들을 수종들게 하매 요셉이 그들을 섬겼더라 그들이 갇힌 지 여러 날이라 5 옥에 갇힌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 두 사람이 하룻밤에 꿈을 꾸니 각기 그 내용이 다르더라 6 아침에 요셉이 들어가 보니 그들에게 근심의 빛이 있는지라 7 요셉이 그 주인의 집에 자기와 함께 갇힌 바로의 신하들에게 묻되 어찌하여 오늘 당신들의 얼굴에 근심의 빛이 있나이까 8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도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하건대 내게 이르소서 |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된 요셉은 그곳에서도 간수장의 인정을 받아 옥중 죄수를 섬기고 제반 사무를 처리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요셉과 함께 하셨고, 그가 행하는 모든 일을 형통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결코 우연치 않은 두 사람과의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2절에서 4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2 바로가 그 두 관원장 곧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에게 노하여
3 그들을 친위대장의 집 안에 있는 옥에 가두니 곧 요셉이 갇힌 곳이라
4 친위대장이 요셉에게 그들을 수종들게 하매 요셉이 그들을 섬겼더라 그들이 갇힌 지 여러 날이라
애급 왕의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 두 사람이 바로의 노여움을 사게 되어 요셉이 갇힌 감옥에 갇히게 된 것입니다.
이들은 단순한 요리사나 시중들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당시에는 왕을 독살하려는 정적들이 많았던 시대이기에 왕에게 술과 음식을 섬기는 사람은 절대적으로 신뢰받는 신하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왕을 가까이 모시면서 정사를 함께 논하던 신분이었죠.
지금의 대통령 비서실 고위직 정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성경은 언급하고 있지 않으나, 이 두 사람이 한꺼번에 노여움을 산 것을 보면 아마도 왕의 음식과 관련된 사건이 있지 않았을까 짐작해 봅니다.
이 두 사람과의 만남은 장차 요셉을 바로 왕 앞으로 이끄는 계기를 만듭니다.
뿐만 아니라 요셉을 통해 야곱의 가문을 기근에서 구하는 계기가 되고 장차 출애굽의 배경이 되기도 합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우리의 만남과 관계들을 통해 그 백성들을 향하신 뜻과 승리를 드러내십니다.
여기서 우리가 묵상하고 넘어가야 할 포인트가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며칠 본문을 묵상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그가 형통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형통에 대한 생각이 우리의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죠.
우리가 원하는 형통은 내가 원하는 대로 일이 슬슬 잘 풀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형통은 우리의 원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정확하게 이루어져 가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요셉의 삶에서 제일 형통했던 때가 언제일까요?
아버지 야곱의 집에 있었을 때가 아닐까요?
부모의 특별한 관심과 총애를 받아왔고 채색옷을 입으며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삶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요셉이 형통했다는 말씀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팔려간 이후에야 그가 형통했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분명한 것은 요셉의 형통은 편안하고 안락하게 모든 것이 잘 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요셉은 여전히 종살이하고 있고 음녀의 유혹도 있었습니다.
유혹은 이겼지만 모함을 받아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결코 형통한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의 삶이 형통하다라고 말합니다.
물론 요셉의 맡은 모든 일이 잘 되는 것도 형통이지만 무엇보다 요셉의 삶 속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있을 때 형통하다고 하신 것입니다.
말씀을 묵상하는 여러분에게 물어보겠습니다.
여러분의 삶은 형통하십니까?
모든 것이 잘 되고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가를 묻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묻는 것입니다.
저는 최근에 영정도 한 빌딩을 빌려 개척 예배를 시작했습니다.
이전에 모든 시스템과 사역자들이 잘 준비되어 있던 사역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불편하고 힘든 상황이 많습니다.
주의 몸인 교회를 세우는 일이 그리 쉬울 리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은혜와 도우시는 손길들을 많이 경험하고 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돕는 분을 보내주기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형통케 하신다는 고백밖에 다른 해석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를 세워나가는 일이기에 주님께서 친히 주관하시고 채우시고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다시 묻습니다.
여러분은 형통한 삶을 살고 계십니까?
지금 어떤 상황 어떤 환경을 맞이했든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그 은혜 안에 머물기만 하면 형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을 통해 주의 뜻이 드러날 수 있습니다.
오늘도 여러분이 만나는 모든 사람들 여러분이 머무는 모든 공간에 하나님의 임재가 함께함으로 형통의 은혜를 누리는 삶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어느 날 바로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가 하룻밤에 각각 다른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꿈을 신적 계시의 통로로 여기던 때였으니 두 사람은 범상치 않은 꿈을 꾸었으나 그 의미를 해석할 수 없어 고민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예전에 왕궁에서 일할 때라면 이런 꿈을 해석해 줄 수 있는 주변 점술가나 신탁을 받는 이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감옥 안에 있으니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었고 특히 아직 판결이 나지 않은 상태로 구금되어 있으니 저들의 미래는 얼마나 불안했을까요?
근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때 꾼 꿈입니다.
그런데 이들을 가까이에서 섬겨오던 요셉이 그들의 기색을 보며 무슨 일이 있음을 알아챘습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어찌하여 오늘 당신들의 얼굴에 근심의 빛이 있습니까?'
언제나 성실했고 무슨 일을 맡든 최선을 다해온 요셉입니다.
두 관원장을 섬기는 일을 맡았으니 역시 마음을 다해 그들의 심기를 살핀 것입니다.
요셉의 신분이 비록 죄수였고 수종들은 젊은 종이 었지만, 두 사람은 요셉의 비범함을 익히 알게 되었을 겁니다.
그래서 그들이 꿈 꿈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8절 말씀입니다.
8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도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하건대 내게 이르소서
요셉은 그의 지식이나 학식으로 꿈을 해석하겠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해석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꿈은 우리의 무의식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므로 개인의 생각이 배제된 영역입니다.
우리의 이성이 작동하지 않죠.
하나님께서 계시하시기에 가장 좋은 환경입니다.
그런데 이런 질문으로 묵상해보면 어떨까요?
하나님께서 굳이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는 애굽의 관원의 운명을 미리 꿈으로 보여주셔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요?
만일 그 꿈이 그들만을 위한 것이라면 꿈꾸는 것도 해석하는 것도 그리 큰 의미가 없었을 것입니다.
꿈은 비록 그들이 꾸었지만, 하나님께서 요셉을 바로 왕 앞으로 이끄시기 위한 도구로 두 사람의 꿈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두 관은 장의 꿈은 요셉을 위해 기획하신 하나님의 이벤트였습니다.
동시에 꿈쟁이 요셉을 보십시오.
이전에 요셉이 자신의 꿈을 꾸고 그 꿈 이야기를 했을 때는 형제들의 미움을 받았고 불화의 단초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자신의 꿈을 꾸지 않고 다른 사람의 꿈을 해석해주게 되었을 때, 오히려 개인과 국가의 운명에 선한 결과를 불러들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이 요셉이 어린 시절 꾼 꿈을 성취하는 과정으로 사용됩니다.
여러분도 꿈을 꾸고 사십니까?
잠자리에서 꾸는 꿈뿐만 아니라 소망과 비전을 가지고 있습니까?
내 꿈을 드러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의 꿈을 해석해주고 그 꿈을 지지하고 도와줄 때 오히려 내 꿈이 더 아름답게 이루어지는 일들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꿈꾸는 자로 살되 다른 사람의 꿈을 돕는 자가 될 것을 꿈꿔보십시오.
내 성공과 진보보다 다른 사람을 세워주고 격려하고 꿈을 이루도록 돕는다면,
오히려 하나님은 우리를 더 요긴한 도구로 사용하실 것입니다.
우리 교회 대학 청년부 젊은이들이 '배워서 남 주자' 프로젝트를 가지고
그들이 그동안 가지고 있는 지식을 가지고 어려운 환경 중에 있는 엠케이 미셔너리 키츠들, 선교사 자녀들을 돕는 일들을 합니다.
개인적으로 학습 지도를 하고 한국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그리워했던 이 한국의 문화들을 돕는 일들을 합니다.
배워서 남준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꿈을 도운 것입니다.
그것이 그들에게도 복이 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다른 사람과 다음 세대의 꿈을 해석하고 돕는 우리 시대에 요셉으로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존귀하신 하나님
때로 우리의 삶이 힘겹고 어려울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형통한 삶을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다른 사람들의 꿈을 돕는 디딤돌로 사용되도록
우리의 꿈을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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