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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함을 추구하며 형통함을 누리는 삶 (창세기 39:1~10)(20221024)

2022.10.24. | 생명의 삶 | 도육환 목사

 

거룩함을 추구하며 형통함을 누리는 삶

 

할렐루야 

영동 온누리 교회를 섬기는 도육한 목사입니다.

오늘도 여러분의 가정과 일터에 하나님이 주시는 형통의 복이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모두는 형통한 삶을 살고 싶어 합니다. 

형통의 사전적인 정의는 모든 일이 뜻대로 잘 되어 감을 의미합니다. 

이런 삶 원치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누구나 형통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또한 수학 공식 가이 형통의 비결이 따로 존재하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형통한 삶을 살아간 믿음의 선배들이 있고, 그들의 삶 속에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오늘 매 순간 형통한 삶을 살아간 요셉을 통해 형통의 원리를 배워가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창세기 39장 1절에서 10절 말씀입니다. 

 

 

거룩함을 추구하며 형통함을 누리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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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요셉을 사니라
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3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4 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
5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6 주인이 그의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탁하고 자기가 먹는 음식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셉은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더라
7 그 후에 그의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8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아내에게 이르되 내 주인이 집안의 모든 소유를 간섭하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탁하였으니
9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10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오늘 묵상 본문은 38장에 삽입된 유다 가정에서 일어난 일들에서 다시 요셉의 이야기로 되돌아왔습니다.

37장 마지막 절과 오늘 본문 39장 1절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형들에 의해서 미디안 상인에게 팔렸던 요셉은 상인들에게 이끌려서 애굽으로 가게 되었고,

바로의 신하이며 친위대장인 보디발의 집의 노예로 팔려가게 되었습니다.

 

그에게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 참으로 불행한 삶이라 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혈육인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마른 구덩이에 던져져 죽을 뻔했습니다. 

다행히 형 유다의 기지 덕분에 생명은 건졌지만 위대한 대상들에게 팔려 타국으로 갔고 이방인의 집에 노예로 살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망가진 삶에 무슨 소망이나 꿈이 있을까 싶습니다.

 

다 잃어버린 것 같은데 그런데 요셉에게는 가장 중요한 것은 아직 남아 있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니 요셉의 삶에는 형통의 복이 따랐다고 오늘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2절 3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3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아멘'이지요.

정말 '아멘'하고 싶은 말입니다.

요셉의 삶의 가장 큰 은혜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신 것입니다. 

요셉을 총해했던 아버지 야곱조차 생사를 알 수 없었고, 그를 지켜줄 만한 모든 보호장치가 사라진 그때에도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 계셨습니다.

이보다 더 든든한 보장이 어디 있겠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 모든 것을 불꽃같은 눈으로 살피시는 하나님은 여전히 요셉을 주목하고 있었고, 임마누엘로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 사실만 분명하다면 다른 모든 것이 사라지고 박탈당해도 괜찮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보호막이 우리를 추격하고 모든 환란과 재앙으로부터 덮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것이 다 사라지게 되었을 때, 하나님의 밀도 있는 임재가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내게 힘도 남아 있고 내세울 그 무엇이 있을 때는 드러나지 않았던 하나님의 임재가,

고난과 어려움 중에 노출되었을 때 비로소 그것을 우리가 깨닫기 시작하고 그 하나님의 손길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과연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그는 형통한 자가 되었습니다. 

요셉의 하는 일이 다 잘 이루어졌으니 자연스럽게 요셉이 일하는 그 주인의 집이 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들어오기 전후가 얼마나 큰 차이가 났는지 이방인 주인조차 깨달을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범사에 그를 형통하게 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주인도 덩달아 신이 났을 겁니다. 

요셉의 형통은 이 애급 가정의 형통이 되었던 것입니다.

보디발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아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인정받은 요셉은 사람에게도 인정받았습니다. 

5절 말씀과 같죠. 

5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아멘

요셉이 가정 총무를 맡은 이후에 보디발의 집도 복을 받고 그의 소유물도 복을 받았습니다.

여기 정말 감동적인 표현이 있죠.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심으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셨답니다. 

보디발이 복 받을 자격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복 있는 사람 요셉이 그 가정에 있기 때문에 복을 받은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아브라함에게 약속했던 복과 같은 것입니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 하실 때 영어로는 you will be a blessing '네가 복 그 자체가 될 것이다'는 겁니다.

아브라함이 그 어떤 복을 구해서 복 받은 사람이 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그 자신이 복이기 때문에 그가 가는 곳곳마다 그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복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요셉의 삶이 그랬습니다. 

요셉 그 자신이 복이었으니, 그가 행하는 일도, 그가 머무는 가정도 복을 받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복의 근원 대신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이 복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때문에 남편과 아내가 복 받게 되고 경건한 부모님으로 인해서 우리 자녀들이 복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일하는 직장이나 여러분이 머무는 동네가 복을 받고 여러분을 만나는 사람이 복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축복의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복을 가진 우리 교회는 교회를 통해서 이 지역사회가 복을 받고 거기 속한 성도들로 인해서 그 땅에 복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교회에서만 사랑받는 사람으로 그치지 않고, 믿지 않는 사람에게도 사랑받고 인정받는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요셉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가 복이 되면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이 우리가 복 받은 자임을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아십니까?

우리는 우리 자신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가치 있고 복된 사람들입니다.

만복에 근원 되신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노예로 팔려온 한 사람이 보디발 가정 전체를 복 받게 했듯이 세상은 우리 때문에 복 받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세상을 위한 복의 통로로 여러분이 만나는 모든 사람, 여러분 손으로 행하는 모든 일이 복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외롭고 힘든 내게 하나님이 베푸시는은혜는 어떠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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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에게도 시험은 찾아옵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젊고 준수한 젊은 청년 요셉을 동침하자고 유혹한 것입니다. 

권력을 가진 주인의 아내이니 거절하기도 쉽지 않았을 겁니다. 

요셉 역시 타지의 노예로 팔려와 누군가의 친밀한 관계에 도움이 필요했을 것이고 또 생각해 보십시오.

혈기 왕성한 청년의 정욕, 결코 적지 않았을 것입니다.

요셉이 감정도 욕구도 없는 목석이 아니라면 왜 흔들리지 않았겠습니까?

더구나 10절 말씀처럼 이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했다고 하니, 한두 번의 유혹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한두 번의 유혹은 거절하고 이길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지속적인 시험에서 승리하기란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함께하신 사람 요셉은 단호한 말로 유혹을 거절했습니다. 9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9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요셉은 자신을 신뢰하고 가정의 일에 모든 것을 맡긴 주인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주인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으므로 도의를 지켜낸 것입니다.

무엇보다 요셉이 유혹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있다는 코람 데오(Coram Deo)의 믿음이었습니다. 

 

설사 주인의 눈은 피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찌 하나님의 눈을 속일 수 있겠습니까?

요셉은 이 유혹에 넘어지는 것은 하나님 앞에 큰 악을 행하는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 시대에도 수많은 음녀들의 유혹이 있습니다.

가정의 울타리를 지켜주던 간통법이 폐지된 이후에 도덕적 경계를 허물어버리는 너무 많은 불륜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이 시대정신은 우리를 바른 판단으로 바른 가치와 가치로 살아가지 못하게 만듭니다. 

사탄은 가정과 교회를 무너뜨릴 효과적인 전략으로 이 '음행'이라는 도구를 사용합니다.

우리 몸이 성전이기에 음행은 우리 몸에 짓는 죄이면서 곧 하나님께 짓는 죄입니다.

쉽게 해결할 수도 벗어날 수도 없는 죄입니다.

또한 요즘은 사람들에게 노출되지 않고도 접속해서 음란의 죄에 빠지게 하는 수많은 성인물도 유혹합니다. 

무엇보다 죄를 가볍게 여기는 마음이 그리스도인들의 판단을 흐리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쉽게 죄짓고, 쉽게 회개하게 만드는 싸구려 복음이 매력을 갖게 만든 겁니다.

세상의 진미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았던 다니엘과 새 친구들의 결단이 오늘 우리 시대에 필요합니다. 

요셉의 단호한 거절을 배워야 합니다.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향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까?'

우리는 모든 것을 살피고 아시는 하나님 앞에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악을 행하지 않도록 뜻을 정해야 합니다.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참하지 아니할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유혹될 만한 환경 자체를 멀리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평생에 음행의 죄가 틈타지 못하도록 정결하고 거룩한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름다운 가정, 신의와 믿음의 도리로 잘 지켜 하나님께 칭찬받고 행복한 가정 이루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 앞에 죄짓지 않도록 내가 단호히 거절해야 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존귀하신 하나님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임재가 함께 함으로 형통케 하는 삶을 살게 하시고
우리로 인해 관계하는 모든 것이 복을 받게 하여 주옵소서
죄의 유혹에서 끝까지 승리하며 살게 하시고
우리도 이 땅에 정결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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