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9.24. | 생명의 삶 | 반태효 목사
여러분 오늘도 행복하시고, 또 주님과 동행하시고 성령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마스크를 벗고 마음껏 예배하는 날들이 속히 오기를 기대하면서 주일을 잘 준비하시고
오늘도 말씀으로 큐티로 주님과 동행하시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은 창세기 27장 15절에서 29절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 주님의 음성을 듣는 은혜의 시간 되기를 바랍니다.
인간의 술수보다 높으신 하나님의 주권
15 리브가가 집 안 자기에게 있는 그의 맏아들 에서의 좋은 의복을 가져다가 그의 작은 아들 야곱에게 입히고 16 또 염소 새끼의 가죽을 그의 손과 목의 매끈매끈한 곳에 입히고 17 자기가 만든 별미와 떡을 자기 아들 야곱의 손에 주니 18 야곱이 아버지에게 나아가서 내 아버지여 하고 부르니 이르되 내가 여기 있노라 내 아들아 네가 누구냐 19 야곱이 아버지에게 대답하되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명하신 대로 내가 하였사오니 원하건대 일어나 앉아서 내가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아버지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 20 이삭이 그의 아들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네가 어떻게 이같이 속히 잡았느냐 그가 이르되 아버지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로 순조롭게 만나게 하셨음이니이다 21 이삭이 야곱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가까이 오라 네가 과연 내 아들 에서인지 아닌지 내가 너를 만져보려 하노라 22 야곱이 그 아버지 이삭에게 가까이 가니 이삭이 만지며 이르되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나 손은 에서의 손이로다 하며 23 그의 손이 형 에서의 손과 같이 털이 있으므로 분별하지 못하고 축복하였더라 24 이삭이 이르되 네가 참 내 아들 에서냐 그가 대답하되 그러하니이다 25 이삭이 이르되 내게로 가져오라 내 아들이 사냥한 고기를 먹고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리라 야곱이 그에게로 가져가매 그가 먹고 또 포도주를 가져가매 그가 마시고 26 그의 아버지 이삭이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가까이 와서 내게 입맞추라 27 그가 가까이 가서 그에게 입맞추니 아버지가 그의 옷의 향취를 맡고 그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께서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28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29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머니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
성경에 여러분, 믿음의 가정을 보면서 행복하고 평안한 가정의 모델은 어느 가정이라고 생각합니까?
특별히 구약에서 그래도 비교적 가장 평화롭고 행복한 가정 중에 하나가 바로 이삭의 가정입니다.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과 그의 아들 야고보의 가정을 돌아보면 이삭의 가정은 아주 평안합니다.
성품 자체가 온유하기도 했고, 그리고 이삭과 리브가는 서로 깊이 사랑해서 하나님을 격려하는 축복의 가정이지만,
이 가정의 유일한 갈등 유일한 근심은 바로 쌍둥이 두 아들 때문이었습니다.
부부가 서로 사랑하고 신뢰했지만 자식을 향한 마음은 두 사람이 달랐어요.
야곱을 사랑했던 리브가, 에서를 정말 믿고 신뢰했던 이삭
이삭은 자신의 연약함 때문에 많은 아픔과 고통을 겪었기에 험악한 세상에서 가정을 지키고 가문을 일구어 나갈 사람은 씩씩한 남자다운 에서라고 생각했고, 반면에 리브가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믿음의 가문을 세울 사람은 바로 야곱이라는 것을 알고 야곱을 편애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유명한 바로 이 축복권, 이삭이 죽기 전에 그가 자녀를 축복해서 하나님의 언약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축복을 전수하는 중요한 장면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중요한 축복 사건이
서로의 생각의 차이,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방법으로 축복권을 얻으려는 치열한 모습을 통해서
안타까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5절에 보면 리브가가 치밀하게 아주 정말 거의 '완전 범죄'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지만,
완전 범죄에 가깝게 야곱을 어 그의 형 에서처럼 분장을 시킵니다.
그래서 에스의 옷을 입히고 그리고 에서가 털이 많은 사람이기 때문에
염소 새끼의 가죽을 그의 야곱의 손과 목에 매끈한 곳 야곱은 털이 없는 사람이고 피부가 부드러운 사람이라
에서처럼 꾸미기 위해서 염소 새끼 가죽도 동원하고, 그리고 마치 사냥한 고기처럼 별미의 고기와 떡을 야곱의 손에 들려주어서 아버지의 축복을 받게 합니다.
인간적인 방법이죠.
리브가는 나름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지금 인간적인 생각으로 축복하려는 이삭의 계획이 잘못됐음을 알고
이것을 바로잡아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수행하고 있는 일이지만, 이것 또한 인간적이고 정말 우리가 보기에도 여러분이 보기에도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꼭 이렇게까지 해서 축복을 받아야 되는가?
그런 안타까운 모습이 있지만, 리브가는 하나님 앞에서 모든 것을 자기 인생을 걸고 반드시 이 축복권은 언약권은 야곱에게 이루어진다는 그 일념 하나로 이런 모든 일에 짐을 다 치고 책임을 지고 야곱을 축복받게 합니다.
18절에 보면 이제 어머니가 주신 용기, 어머니의 힘을 입어서 야곱은 아버지께 나아갑니다.
아버지를 부를 때 이삭이 이렇게 말합니다.
'내 아들아 네가 누구냐?'
이것도 이상하죠? 아들 둘 밖에 없는데요.
아버지 그랬더니 어! 에서 구나 어! 야곱이구나 알아들을 것 같은데,
'내 아들아 네가 누구냐?'
그러면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우리 이름으로 아시고 우리가 아버지 부를 때 우리의 이름으로 나를 정확하게 아십니다.
너 누구냐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근데 이삭은 야곱 특별히 이 시간에 중요한 시간이고 에서를 기다렸는데 아버지를 부르는 목소리가 나 내가 기다리는 에스의 목소리가 아닌 것 같아서 확인하기 위해서 이렇게
'아들아 네가 누구냐?'
그랬더니 야곱이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입니다.
아버지가 명령하신 대로 내가 그대로 해서 이제 사냥한 고기를 잡고 정말 별미를 만들었으니
이제 아버지 잡수시고 나를 마음껏 축복해 주세요.'
근데 여기 뭐라 그래요? 야곱이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입니다.'
그럼 자기를 에서로 속이고 아버지에게 축복을 받는 그러나 이렇게까지 아버지께 가서 축복을 받으려는 이런 마음은 바로 그의 어머니가 준 마음입니다.
그래서 어머니를 믿고 그는
'내가 에서입니다.'
아버지를 속이면서까지 축복을 받기 위한 치열한 이 상속의 문제, 축복의 문제를 오늘 말씀을 통해서 보면서
우리가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이 말씀이 교훈이 되고 이 사건이 교훈이 되어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오직 믿음으로, 오직 말씀으로, 인간적인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음으로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내가 에서입니다.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입니다라는 말을 듣고, 이삭도 계속해서 그 마음의 의심을 버리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빨리 사냥을 해서 요리를 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평소와는 전혀 다르게 너무 빨리 사냥하고 요리를 대령했던 것을 통해서 이삭은 이렇게 다시 묻습니다.
'내 아들아 네가 어떻게 이 같이 속히 잡았느냐?'
그랬더니 야곱은 기한 지금 에스로 가장해서 아버지의 축복을 받아내기로 마음을 먹었기 때문에 이제는 더 담대해집니다.
거짓이 거짓을 낳죠.
이제는 하나님의 이름까지 동원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순조롭게 하나님이 사냥감을 만나게 하고 잡게 해 주셔서 이렇게 빨리 사냥을 하고 요리를 했습니다.
이렇게 아버지를 또 한 번 속입니다.
그러나 이삭은 다시 한번 이 축복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 축복을 통해서 이 가문의 모든 축복이 흘러가고 이 축복은 영원한 축복이 될 것을 알기 때문에
축복하기 전에 또 한 번 확인합니다.
'가까이 와봐라, 가까이 와봐라, 과연 내 아들인지 내가 너를 만져보려 하느라.'
안타까운 일이죠.
눈이 멀었던 이삭은 그 아들을 확인하기 위해서 직접 만져봐야 확인하는
'내가 맏아들 에서입니다. 하나님이 순조롭게 만나게 해 주셨습니다.'
그래도 의심했던 이삭은 마지막으로 '내가 직접 확인하리라 직접 만져보리라'
왜냐하면 쌍둥이인데도 전혀 달랐어요.
에서는 털이 많고, 야곱은 피부가 부드러운 사람이라 만져보면 알 수 있었어요.
만져보리라 그리고 가까이 오라 그랬더니 만질 때 이렇게 말합니다.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나 손은 에서의 손이로다.
근데 분명히 아무래도 음성은 야곱 같은데 만져보니까 만져보니까 털이 있어서 틀림없는 에서 구나.
그래서 23절에 분별하지 못하고 축복합니다.
그래서 축복하면서 마지막 또 한 번 확인을 하죠.
'네가 참 내 아들 에서냐?'
그랬더니 야곱이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대답하되 '그러합니다. 그러합니다.'
여러분 이제는 야곱 스스로도 마치 자기가 에서가 된 것처럼 확신범이 되었어요.
거짓이 거짓을 낳지만, 저는 오늘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네가 참 내 아들 에서냐?'
그럴 때 마음이 너무 슬펐을 것 같아요.
이렇게까지 아버지가 에서를 사랑했는가? '내 아들 에서냐?' 물을 때 얼마나 그 마음 안에 슬픔과 거절감이 있겠어요.
그래서 오히려 더 큰 소리로 대답했을 겁니다. '예! 내가 그렇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거절감에 대한 슬픔 또 반발이기도 하죠.
어떻게 이렇게 아빠는 에서 형만 찾는가? 끝까지 에서 형만 이름을 부르는가?
그렇게 해서 드디어 축복을 받아냅니다.
그렇게 해서 에서가 잘 요리하는 음식을 먹고 그러면서 26절에
'가까이 와라 내게 입 맞추라'
그래서 정말 온 마음으로 온 마음으로 사랑을 담아 축복하기 위해서
아들의 사랑과 존경 속에서 정말 마음껏 축복하기 위해서 '내게 입 맞추라'
그래서 야곱은 아버지께 입맞춤입니다.
그런데 저는 자꾸 이 말씀 묵상하면서 가롯 유다의 입맞춤이 연상이 되었어요. 배반의 입맞춤이죠.
아버지는 에서인 줄 믿고 '내게 입 맞추라 그러면 내가 사랑으로 온 마음으로 축복하겠다'라고 그랬을 때 아버지에게 입 맞추었던 야곱의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이렇게 입 맞추고 그 옷의 향취를 맡아요.
여기서 리브가에 아주 치밀한 준비를 봅니다.
마지막 향취, 에서의 향취 에서의 옷을 입었기 때문에
당연히 눈을 멀어서 지금 음성으로는 분별하지 못하고 만져봤지만
마지막 순간에 가장 가까이 온 향취를 보고
그래서 이제는 정말 '에서가 맞는구나!' 그래서 온 마음을 다해서 그는 축복을 합니다.
27 그가 가까이 가서 그에게 입 맞추니 아버지가 그의 옷의 향취를 맡고 그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께서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28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께서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그러면서 모든 마음을 담아서
'하늘에 이슬과 땅이 기름지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네게 주기를 원하노라 '
땅의 축복뿐만 아니라 29절에
29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머니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영원한 하나님의 축복권까지 다 마음을 쏟아서
어쩌면 에서는 야곱에게 지금은 야곱이지만 에서인 줄 알고 축복하잖아요?
야곱에게는 줄 축복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몽땅 다 쏟아서 지금 자기가 사랑하고 편애했던 에서를 축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런 인간적인 계산과 치열한 축복의 싸움 속에서도,
놀랍게도 하나님의 말씀은 온전히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여러분 선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만,
우리의 실수와 연약함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짐을 믿으시고,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믿음으로 그리고 신실함으로, 진실로
그리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주의 뜻을 이루어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복이 영원한 복임을 믿습니다.
주님, 자기가 믿음으로 그리고 온전한 순종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축복의 사람 되게 하여 주옵시고,
아버지 하나님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의 향기와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온전한 예배자요 증인의 삶을 살아가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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