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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 세계를 섬기는 사람, 사랑으로 돌보시는 하나님 (창세기 2:4~17)(20220804)

2022.08.04. | 생명의 삶 | 임채영 목사

 

창조 세계를 섬기는 사람, 사랑으로 돌보시는 하나님

 

날마다 하나님 말씀과 함께 살 수 있다는 것은 그건 복이죠. 

그런 면에서 여러분들은 복된 사람들입니다. 

저는 서북 교회를 섬기고 있는 임채영 목사입니다. 

 

이번 주간에 하나님의 창조 기사를 읽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어요. 

'눈앞에 꽃을 보지 못하면서 보이지 않는 창조주 하나님을 어찌 볼 수 있을까?'

이런 마음과 여유를 가지고 오늘 말씀을 통해서 살아계신 창조주 하나님을 보고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은요.

창세기 2장 4절부터 17절이고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먼저 듣겠습니다.

 

 

창조 세계를 섬기는 사람, 사랑으로 돌보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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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5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6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10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11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 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 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13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14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먼저 창세기 2장 4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4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상반 절과 하반절의 표현이 다르게 나옵니다.

상반 절에서는요.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이렇게 기록하고 있고요,

하반절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1장 1절에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렇게 기록되어 있죠.

여기에서 천지라는 것이 하늘과 땅이라는 두 단어이고요.

2장 4절 상반 절에 나오는 것과 같은 표현입니다.

 

그런데요. 

하반절에 오면 이 표현의 순서가 바뀝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즉 원래는 하늘과 땅이라는 순서였는데,

이제는 순서가 바뀌어서 땅이 먼저 나오죠.

그리고 이어지는 5절 보면

5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라고 이야기하면서 이제 땅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겁니다.

그래서요.

창세기 1장 1절부터 2장 4절 상반 절까지는 하늘이 중심이고, 2장 4절 이후는 땅이 중심이 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1장부터 2장은 두 개의 창조 이야기가 나옵니다. 

창세기 1장 1절부터 2장 4절 상반 절까지는 천지 창조에 관한 것이고, 그 후는 2장 4절 하반절부터는 인간 창조에 관한 겁니다.

전자는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망원경으로 거시적으로 들여다본 것이라면, 후자는 현미경으로 아주 세밀하게 관찰한 겁니다.

전자를 창조에 대한 우주론적 관점에 대한 기록이라면 후자는 창조에 대한 인간론적 관점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창조 사역은 이 두 가지 시각으로 조명되어 있어서 우리는 그 의미를 하나님의 뜻을 다각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두 가지 창조 이야기는 상호 모순되거나 상호 배타적이 아니라 오히려 상호 보완적인 역할을 하게 되죠. 

 

그래서 이어지는 7절도 보십시오.

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이 구절은 좀 히브리 원어로 좀 보아야 되는데요.

여기에서 땅의 흙 즉 '아파르 민 하마다'라는 이 말은요. 히브리 원어로 땅의 먼지 땅의 티끌을 말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먼지 티끌을 얘기하는 아파르라는 말과 숨 호흡을 의미하는 니시 마가 결합된 것인데 이것이 인간이라는 거예요.
그리고 생명 즉 '내 펫시 하야'라는 이 의미의 뜻은 살아있는 존재, 즉 존재를 뜻하는 '내 페이'와 살아있다는 뜻의 '하야'라는 동사의 합성어로 살아있는 존재를 뜻합니다.

그래서 결국 인간은 먼지나 티끌에서 나왔는데, 그런데 거기에 하나님의 숨인 니시 마가 합쳐져서 살아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겁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숨은 곧 생명의 숨인데, 이 '니시마'는요 나중에 히브리어 '루라'고 하는 즉 영, 성령이라는 단어와 동일시되는 겁니다.

 

따라서 인간이 누구인가?

인간이란 티끌과 하나님의 영 하나님의 숨이 결합된 존재입니다.

그래서 인간에는 물질적 요소와 영적인 요소가 공존합니다. 

어떻게 보면 인간은 한낮 먼지 같은 티끌이 될 수 있고요.
그런데 또 다른 면으로 보면 하나님의 영을 충만히 받은 영적 존재가 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양면이 다 내포되어 있는 것, 이것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의 모습입니다.

 

성경은 노동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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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보시면요.

이제 에덴동산에서의 인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에덴동산에서의 아담의 모습은 어땠을까요?

아담이 창조된 후에 눈을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을 겁니다. 

하늘에는 태양이 환한 빛을 비추고 있었겠죠. 

그리고 공중에는 새들이 날아다니고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니까.

각종 나무들과 꽃들과 열매들이 제각각 자기의 자태를 뽐내고 있었을 겁니다.

강물이 흘러가는 아름다운 소리도 들렸고 그리고 동산 여기저기를 들쑤시고 다니는 짐승들도 있었을 겁니다. 

 

그것을 보면서 아담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참 아름답다. 내가 만든 것도 아닌데, 나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는데, 이미 이러한 모든 것들이 내 앞에 있구나.'
그러면서 마음 깊이 감사한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요?

 

우리가 감사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모든 것이 은혜요, 선물이라는 이 근원적 진실을 보지 않으면

이 험악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절대로 감사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러나 이 근원적 진실을 보게 되면 우리가 고통 가운데 신음한다 하더라도 마음 깊이 감사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담의 삶은 '받음'이라는 기초 위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럼에도 동시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또 하나의 진실이 있습니다.

아담의 삶이 받음이라는 기초 위에 서 있지만 받는 걸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아담의 삶에는 '책임'이 있었습니다. 

15절을 보세요. 

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하나님은 아담의 삶에 은혜를 부어주셨죠.

그렇지만 동시에 책임도 요구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담의 삶을 보면 은혜만으로도 설 수 없고 책임만으로도 설 수 없습니다. 

은혜와 책임이 공존해야만 은혜의 기초 위에서 책임을 다해야만 진정한 삶이 설 수 있습니다. 

19절에 보면, 아담이 각 생물들의 이름을 짓는 장면이 나오죠.

창세기 2: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여기서 아담이 생물들의 이름을 짓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입니다.

이름을 짓는 것은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이고,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고 질서를 세우는 것입니다.

이름을 부른다고 하는 것은 특별한 관계를 이루는 거거든요. 

하나님이 땅을 만들었지만, 아담이 갈고 경작케 했습니다.

하나님이 각종 나무를 만들었지만, 아담이 걸음을 주고 전정을 해줘야만 풍성한 열매를 맺는 거죠.

하나님이 각종 생물을 만들었지만 아담이 제각각 이름을 지어주어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이 만든 세상은 이처럼 아담을 필요로 하는 세상이었습니다. 

아담이 경작해야만 되는 세상 아담의 손길이 없이는 돌아가지 않는 세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담이 책임지고 돌봐야 하는 세상 아담은 이것을 위해 부름 받았죠. 

 

받음과 책임 이것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 

받지 않으면 책임이 따르지 않지만 받으면 책임이 따릅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 받았습니다. 

하나님께 받았고, 부모님께 받았고, 선생님께 받았고, 친구로부터 받았고, 책으로부터 받았고, 사회로부터 받았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오늘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은 다 받은 것들이 아닐까요?

그리고 여러분이 받은 그것 그것은 곧 여러분의 책임이 됩니다. 

받은 것과 책임이 분리되면서 사람이 망가지고 사회가 무너집니다. 

많은 돈을 받았는데 받은 돈을 세상을 위해 잘 사용하지 않으면 그 인생은 무너지게 되는 겁니다. 

많은 재능을 받았는데 그 재능을 세상을 위해 사용하지 않으면 결국 주님께 책망들을 겁니다.

그렇다면 받음과 책임 중에 무엇이 우선일까요?

받음이 먼저입니다. 

우선은 내가 받았다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받은 것에 감사할 줄 알아야 됩니다. 

받은 것을 알고 받은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책임을 향해 나가게 돼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멋진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요.

반드시 은혜의 깊이 뿌리를 내려야 하고, 그리고 주어진 책임을 외면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 멋진 삶을 살아내는 여러분들을 응원합니다.

 

태초부터 사람을 돌보셨던 하나님은 지금 내 삶을 어떻게 돌보시나요?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 인생이 내가 이룬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살게 하시고 
받은 것에 그치지 않고 받은 것이 사명인 줄 알아 
은혜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책임을 다하는 
멋진 인생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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