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18. | 생명의 삶 | 윤광서 목사
샬롬
영화 교회를 섬기는 윤광석 목사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에 힘입어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장장 2년 반이 넘는 세월을 전염병과의 전쟁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이 시간들을 요약해보면 어떻게 분리할 것인가의 싸움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확진자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격리함으로써 전염성 강한 이 바이러스를 물리칠 수 있을까? 에 대한 총력전이었다. 하겠습니다.
어쩌면 바이러스에 대한 유일한 대처법은 분리하는 방법뿐이었습니다.
우리의 영적 삶에 있어서도 거룩한 삶을 위해서 구별된 삶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거룩의 본 뜻은 '구분하다', '분리하다'라는 말입니다.
즉, 죄로부터 속된 것으로부터 어떻게 구별된 삶을 살 것인가의 문제라는 것이지요.
오늘 우리가 고린도후서 6장 14절에서 7장 1절까지의 말씀을 통해 거룩을 향한 싸움에서 승리하는 비결을 발견할 수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함께 듣겠습니다.
불신 세상 속에서 거룩함을 지키는 성도
6:14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6:15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6: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6:17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6:18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7:1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실까요?
레위기 19장 2절 말씀을 보면
레위기 19:2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거룩하기를 거룩한 삶을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거룩하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거룩이란 분리를 뜻하는데, 이 어원적 토대에서 생각해 보면
우리가 하나님이 계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역에서 살아갈 때에 거룩한 것이 되는 겁니다.
반대로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는 것에 거하는 것은 거룩하지 않은 속된 삶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 사도 바울은 바로 이 거룩한 삶을 실제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14절 말씀을 보면
6:14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이렇게 권면을 합니다.
이 말씀을 자칫 오해하면 믿지 않는 사람과는 그 어떤 교류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처럼 보일는지 모르지만
만일 그렇게 된다면 우리가 복음을 전할 통로도 모두 막히게 될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바울이 말한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멍에를 같이 맨다라는 뜻은 여러 동물들이 농사를 짓기 위해 함께 수레에 메이는 모습을 말합니다.
멍에를 같이 맸다면 당연히 같은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즉, 그리스도인들이 믿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멍예를 맨다는 것은 그리스도인답게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길로 가지 못하고 그러한 삶을 살지 못할 수도 있음을 의미하는 말씀입니다.
믿지 않는 자들의 도를 따라가거나 그들의 윤리와 같이 특별히 우상숭배에 물들어 버릴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어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들과 믿지 않는 자들의 관계를 다섯 가지의 모습으로 비교합니다.
의와 불법, 빛과 어둠, 그리스도와 벨리알 그리고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
이 비교들 즉, 동시에 공존할 수 없는 두 상태 두 집단을 말함으로써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분리되어야 함을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기 위해선 구분되는 선택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여기서 벨리알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이것은 무가치, 사학 혹은 파괴라는 뜻을 가진 단어로 사탄을 의미합니다.
16절에서
6: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오'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십니다.
우상 숭배가 가득한 고린도의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성도로 살아가기 위해 붙들어야 할 성결함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일깨워주십니다.
처음에는 뒤섞이지 않을 수 있다고 장담할지 모르지만,
가까이 지내다 보면 어느새 검게 물들고 붉게 얼룩지고 마는 법입니다.
바울은 17절에서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어 하나님의 거룩한 지성소가 된 고린도 성도들이 어떻게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할지를 이사야 52장 11절 말씀을 인용해서 설명을 합니다.
6:17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이 말씀은 하나님의 구원과 평화의 소식이 이스라엘에 임하고 하나님이 흩어진 백성을 다시 모을 것을 약속하시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여기서 세 개의 명령을 인용하는데 곧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는 명령입니다.
부정한 것들로 가득한 세상에서 자신을 구별하여 성도의 정결함을 유지하라는 명령이지요.
이제 바울은 18절 말씀에서 하나님과 그리스도인의 관계가 언약으로 인해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가 되었다고 설명을 합니다.
주목할 것은 18절의 내용이 미래 시제로 표현되었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장차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들을 자녀 삼으시겠다는 분명한 약속이요. 선포의 말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언제나 기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사도 바울은 다시 한번 권면합니다.
7:1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바울이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고 말하는 것은 지금 너희는 더럽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더러워지면 깨끗하게 해야 한다는 말도 아니고 지금은 깨끗한데 앞으로도 더욱 더러움을 피해 깨끗함을 유지해야 한다는 말도 아닙니다.
바울은 인간의 상태를 육과 영의 온갖 더러움에 빠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바울의 권면을 듣고 자신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 뭔가 방법을 찾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바울의 말대로 자신이 더럽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입니다.
만일 나는 깨끗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이 권면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구원은 자신의 더러움을 아는 자들에게 허락되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죄 아래에 놓인 것이 연약하고 완악한 인생의 실존인데 이것을 아는 사람만이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죠.
그때부터 그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만을 삶의 소망으로 의지하고 살아가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인생에게 주어지는 가장 큰 은혜가 아닙니까?
그리스도인은 자신을 깨끗하게 하기를 힘써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약속이 주어졌기 때문이죠.
바울은 7장 1절에서 우리를 약속을 가진 자들이라고 표현을 합니다. 이 약속은 6장 16절에서 보았던 것처럼
6: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오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신 말씀에 담겨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우리를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으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은혜의 말씀입니까?
우리는 이러한 약속을 받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성전 된 성도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거룩한 삶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거룩하시기 때문에 거룩하신 하나님이 거하실 성전도 거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더러운 것으로 보았던 것은 앞서 살펴본 것처럼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세상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세상의 사람들과 뒤섞여 살아가는 것이 더러움에 거하는 것이라는 가르침이지요.
결국 자신을 깨끗하게 하여 거룩을 이루는 것이란,
스스로 착한 일을 해서 자신을 씻어내는 차원의 깨끗함이 아니라,
세상의 방식으로부터 구별되어 주님의 방식으로 살기를 힘쓰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급에서 이끌어내신 것은 애굽에서 애굽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 아니라,
비록 험난한 광야길을 통과해야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방식을 살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백성들이 이 세상에서 거룩하고 순결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은 세상과 구별되어 하나님께 속한 삶을 말합니다.
이와 같은 소망을 품고 살기를 힘쓰는 모든 주의 백성들에게 합당한 은혜와 능력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이 은혜가 가득한 하루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저희를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불러주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도 저희가 이 세상 가운데에 살고 있지만 저희의 소망은 늘 하나님 나라를 향해 있기를 원합니다.
저희 몸과 마음을 죽게 들리기를 힘쓸 때
성령 하나님께서 저희를 온전히 주장하시고
거룩한 자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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