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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으로 감당하는 직분, 열린 마음에 임하는 은혜 (고린도후서 6:1~13)(20220717)

2022.07.17. | 생명의 삶 | 윤광서 목사

 

고난으로 감당하는 직분, 열린 마음에 임하는 은혜

 

샬롬 

영화 교회를 섬기는 윤광서 목사입니다.

오늘은 복된 주일입니다. 

 

온전한 기쁨과 감사로 가득한 예배의 날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중국 고서 중 한 병서에 유능제강(柔能制剛)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부드러운 것이 능히 강한 것을 제압한다' 하는 뜻이죠. 

잠언 말씀에도

잠언 15:1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 가운데 살면서 강해야만 살아남을 것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지만,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법 세상을 이기는 방법은 다릅니다. 

때로는 우리의 연약함이 도리어 세상을 이기는 가장 강력한 힘이 될 것입니다. 

오늘은 고린도후서 6장 1절로 13절까지 말씀을 통해 진정으로 강인한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들인지 함께 묵상하도록 하겠습니다. 

 

고난으로 감당하는 직분, 열린 마음에 임하는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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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2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3 우리가 이 직분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
4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5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서도

6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7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
8 영광과 욕됨으로 그러했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러했느니라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9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11 고린도인들이여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넓어졌으니
12 너희가 우리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심정에서 좁아진 것이니라
13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것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이렇게 권면합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면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말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고 말하면서도 실상은 그 삶이 은혜받은 자 답지 못했다는 것을 강한 어조로 지적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모든 것을 초월할 뿐 아니라 모든 것을 이기게 하는 능력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면서 그에 걸맞지 않게 살아간다면, 이것이야말로 은혜를 헛되이 받는 것이 될 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하면서 우리 삶에서 다른 것들이 왕 노릇 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가정도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가 삶의 중심에 온전히 자리해야 할 것이겠습니다. 

 

2절에서 바울은 이사야 49장 8절 말씀을 인용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조상 적부터 은혜의 날들을 지내왔고 지금도 그 은혜 가운데에 살고 있음을 다시금 일깨워 줍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신 날에 백성들의 기도를 들으셨고 저들에게 은총을 베푸심으로 도우셨다는 것을 알게 하십니다. 

그리고 선포합니다. 

2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이 말씀은 지금이 단지 은혜받기 좋은 때다 하는 말씀이 아니라 지금이야말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살 수 없는 때임을 강조하시는 말씀입니다.

 

'오직 예수 뿐이네'이라는 제목의 복음 성가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네
호흡마저도 다 주의 것이니
세상 평안과 위로 내게 없어도
예수 오직 예수뿐이네


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네
나의 모든 것 다 주께 맡기니
참된 평안과 위로 내게 주신 주
예수 오직 예수뿐이네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사명자는 이러한 은혜를 간직한 채 이 은혜만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여러분도 이 은혜가 이미 주어진 분들이심을 잊지 마십시오.

 

3절에서 5절까지 바울은 고난 가운데에서도 자신이 복음 전파 사역을 온전히 감당하고자 힘썼던 진정한 사도였음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우선 자신이 당한 여러 고난을 나열합니다. 

그 첫 번째는 '많이 견뎠다'는 것이고 이어서 아홉 가지나 되는 항목이 언급이 됩니다. 

그것은 환란과 궁핍과 고난과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잠을 자지 못하고 먹지도 못하는 고통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은혜를 받은 사명자의 자세를 지키기 위해 힘썼다는 것을 또한 고백합니다. 

 

그가 붙들었던 네 가지 자세가 소개되는데 그것은 바로 깨끗함지식오래 참음자비입니다. 

깨끗함이란 행동과 동기가 순전함을 의미합니다. 

지식은 하나님과 복음을 아는 것을 가리키며,

오래 참음은 자신을 향한 악행에 분을 내지 않고 용납함으로 견뎠던 것을 말합니다. 

자비는 다른 사람에 대해 품는 선하고 친절하고 관용하는 마음가짐을 말합니다. 

 

여기에 더하여 바울은 자신이 품었던 네 가지 사역의 방식을 또한 언급합니다.

그것은 성령의 감화, 거짓 없는 사랑, 진리의 말씀 그리고 좌우에 있는 의로움의 무기로 설명을 합니다.

성령의 감화는 바울이 성령의 감동케 하심으로 사역했다는 것을 말해주며,

거짓 없는 사랑이란 하나님이 주신 사랑으로 임했다는 뜻이고, 

진리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맡기신 복음을 이룹니다. 

또한 좌우에 있는 의로움은 하나님의 능력만을 의지하여 바울이 모든 상황에서 정직하고 신실하게 임했음을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이어서 바울은 자신에 대한 대조적인 평가를 언급합니다. 

8 영광과 욕됨으로 그러했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러했느니라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8절을 보면 영광과 욕됨 또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 이것은 바울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와 부정적인 평가를 함께 일컫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듯 인정을 받기도 했고 모욕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속이는 자라고 오해를 받기도 했고, 무명한 자로 취급을 받기도 했으며, 사도직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도 맞닥뜨렸습니다.

바울은 때로는 죽은 자처럼 때로는 징계를 받은 자처럼 자기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살았지만 

오직 그리스도를 힘입어 항상 기뻐하고 많은 사람을 부유하게 하며 모든 것을 가진 자처럼 풍성한 가운데에 살아갔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의지했기 때문이고, 그분을 따르며 오직 주님이 주시는 은혜만을 구했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가능했습니다.

 

바울이 고백한 복음 전도자의 역설적 삶은 어떠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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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절 말씀에서 고린도 교인들을 향해 간절한 마음으로 권했던 사도 바울은 오늘 말씀을 마치면서 다시 한번 그들에게 부디 너희 마음을 넓게 열라 호소를 합니다. 

닫히고 좁아진 그들의 마음을 이제 다시 넓게 열라고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하는 삶에서 돌아오라고 촉구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참으로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사랑의 마음으로 권면합니다. 

그가 11절에서 표현한 '입이 열리고 마음이 넓어졌다.' 하는 말은 '내가 얼마든지 너희를 용납할 것이다' 하는 의미입니다.

무엇보다 바울 자신이 먼저 넓은 마음으로 그들에게 다가가겠노라고 고백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다툼과 갈등이 생기면 그 골을 치유하기 위해 누군가가 먼저 다가가야 합니다. 

누군가는 먼저 자기의 잘못과 부주의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설령 그 다툼 가운데에 내게 아무 잘못이 없다. 할지라도 그 관계의 아름다운 회복을 위해서 먼저 다가갈 수 있어야 합니다. 

먼저 마음을 열어야 하는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먼저 보내주셨듯이,

막힌 담을 허물기 위해 누군가가 그 담을 쓰러뜨릴 수 있도록 자기 육체를 내어 던져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우리를 먼저 사랑해 주셨지 않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그렇게 자신의 삶을 고린도 교인들에게 던지고 있습니다. 

그들 사이에 생겼던 막힌 담을 허물기 위해 자신의 모든 사명을 붙들고 고린도 교인들에게 먼저 다가가고 있는 것이죠. 

그리스도인들이 있는 곳이라 할지라도 때로 다툼은 일어나고 분열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피할 수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요?

어떤 마음을 품어야 하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길을 걸었던 사도 바울처럼 우리가 먼저 사랑과 화해의 길을 열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약함으로 온유와 겸손으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내가 먼저 상대방을 용납하는 모습에서 내가 먼저 너를 이해하지 못했었다는 겸손한 고백으로부터 화해의 길이 열릴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 성도들의 삶의 자리에서 화해의 역사가 시작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전파되는 은총이 가득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내가 마음을 넓혀서 받아들일 대상 혹은 일은 무엇인가요?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보내주시고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서 우리에게 먼저 다가오셨음을 우리를 위해 먼저 연약해지셨음을 늘 기억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그 연약함을 닮은 자들로
이 세상 가운데 가득한 다툼과 분열을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으로 화해시킬 수 있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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