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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방과 포악의 날에 더욱 의지할 하나님 (시편 22:1~21)(20220625)

2022.06.25. | 생명의 삶 | 조지훈 목사

 

비방과 포악의 날에 더욱 의지할 하나님

 

안녕하세요. 

일산 조이풀 교회를 섬기고 있는 조지훈 목사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이 오늘 사랑하는 성도님들에게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시편 22편 1절부터 21절까지의 말씀입니다. 

비방과 포악의 날에 더욱 의지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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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2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하지 아니하오나 응답하지 아니하시나이다
3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4 우리 조상들이 주께 의뢰하고 의뢰하였으므로 그들을 건지셨나이다
5 그들이 주께 부르짖어 구원을 얻고 주께 의뢰하여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였나이다

6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 거리요 백성의 조롱 거리니이다
7 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8 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그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
9 오직 주께서 나를 모태에서 나오게 하시고 내 어머니의 젖을 먹을 때에 의지하게 하셨나이다
10 내가 날 때부터 주께 맡긴 바 되었고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주는 나의 하나님이 되셨나이다

11 나를 멀리 하지 마옵소서 환난이 가까우나 도울 자 없나이다
12 많은 황소가 나를 에워싸며 바산의 힘센 소들이 나를 둘러쌌으며
13 내게 그 입을 벌림이 찢으며 부르짖는 사자 같으니이다
14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밀랍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15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죽음의 진토 속에 두셨나이다

16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17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그들이 나를 주목하여 보고
18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19 여호와여 멀리 하지 마옵소서 나의 힘이시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20 내 생명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에서 구하소서

21 나를 사자의 입에서 구하소서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들소의 뿔에서 구원하셨나이다

 

시편 22편 1절의 말씀을 제가 먼저 읽도록 하겠습니다.

1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신앙생활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이 있다면 하나님의 부재를 느끼는 시간일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어떤 상황과 환경으로 인해 겪는 어려움의 차원을 넘어섭니다.

하나님의 침묵은 존재적인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시편 기자는 자신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침묵으로 인하여 괴로워합니다. 

밤에도 잠을 잘 수 없을 만큼의 육체적, 심적 고통에 시달립니다. 

시편 기자가 더 크게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자신이 하나님께 버려졌다는 것에 대한 절망감입니다.

 

시편 22편 4절과 5절은 시편 기자의 그러한 절망감과 상실감을 한층 더해줍니다. 

4 우리 조상들이 주께 의뢰하고 의뢰하였으므로 그들을 건지셨나이다
5 그들이 주께 부르짖어 구원을 얻고 주께 의뢰하여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였나이다

믿음의 조상들에게 응답하시는 하나님이 내게는 응답하지 않을 때,

그리고 내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기적적인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은 간증을 들을 때

우리는 실락 같은 기대를 품기도 하지만 상대적인 상실감에 더 크게 휩싸일 때가 많습니다.

 

오히려 세상은 하나님을 붙잡고 있던 나를 조롱하며 부끄러워합니다. 

내가 믿던 하나님의 이름도 땅에 떨어지고 웃음거리가 되고 맙니다. 

이러한 현실은 결국 나라는 존재를 가장 비참한 밑바닥까지 떨어뜨려 놓습니다. 

나 자신의 정체성이 완전히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자신을 하찮은 벌레로 표현하기까지도 합니다.

 

사실 오늘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하는 말씀으로도 해석됩니다. 

실제로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일들이 오늘 말씀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부재로 인하여 괴로워하셨습니다. 

사람들의 비방과 조롱 핍박과 고문이 이어졌습니다. 

손과 발이 못 박힌 십자가에서 창에 찔린 예수님은 물과 피를 모두 쏟아내셨고 심한 갈증에 허덕이셨습니다. 

그리고 로마 군인들은 예수님의 옷을 벗기고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어 가졌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가장 극심한 고통을 당하시고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반전은 이러한 예수님의 십자가가 우리에게 소망을 준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겪으신 고통의 끝이 그저 죽음이 아니라 부활이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시편 기자가 하나님의 외면과 원수의 조롱에도 기도를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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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내용으로는 시편 22편 12절부터 21절의 내용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부재하신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여전히 아들과 함께 하셨고 아들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하나님의 침묵과 절망의 상징이 아니라 하나님이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며 모든 상황을 부활 생명으로 역전하신다고 하는 능력과 소망의 상징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편 기자는 자신을 창조하시고 선택하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다시금 붙잡으며 기도의 자리로 나아갑니다. 

 

시편 22편 21절에 보시니까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21 나를 사자의 입에서 구하소서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들소의 뿔에서 구원하셨나이다

 

우리의 인생이 해석되지 않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들이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처지가 밑바닥 같을지라도 그러나 우리가 여전히 할 수 있는 한 가지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도에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 십자가는 고통의 십자가가 아니라 나를 살리신 구원의 십자가 승리의 십자가 영광의 십자가입니다.

 

시편 22편의 표제는 아얠렛샤할(Aijeleth Shahar) 곧 새벽 암사슴입니다.

지금 비록 개에게 짓밟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니는 것 같을지라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중심에 놓고 결코 포기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힘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셔서 우리를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실 것입니다.

 

오늘 이 십자가의 능력과 영광이 기도의 끈을 놓지 않고 믿음으로 나아가는 모든 성도들에게 실제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이 겪으신 고난과 수치와 비교할 때 지금 나의 고난은 어느 정도인가요?

 

주님,
십자가 위에서 주님이 읍조이신 말씀이 제 영혼을 울립니다. 
주님이 제게 줄로 세워주신 구역 안에서 제가 지고 가야 할 십자가를 달게 감당하길 소망합니다. 
하나님마저 저를 버리신 것 같을 때도 기도의 끈을 놓지 않으며 
구원의 주님을 향해 눈을 들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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