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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소외됨이 없이 구원을 기념하는 축제 (에스더 9:17~28)(20220623)

2022.06.23. | 생명의 삶 | 조지훈 목사 

 

누구도 소외됨이 없이 구원을 기념하는 축제

 

안녕하세요. 

일산 조이풀 교회를 섬기고 있는 조지훈 목사입니다. 

오늘도 생명의 삶을 묵상하고 있는 모든 성도님들에게 하나님의 귀한 은총과 은혜와 샬롬의 평강이 함께하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에스더 9장 17절부터 28절까지의 말씀입니다.

누구도 소외됨이 없이 구원을 기념하는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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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아달월 십삼일에 그 일을 행하였고 십사일에 쉬며 그 날에 잔치를 베풀어 즐겼고
18 수산에 사는 유다인들은 십삼일과 십사일에 모였고 십오일에 쉬며 이 날에 잔치를 베풀어 즐긴지라
19 그러므로 시골의 유다인 곧 성이 없는 고을고을에 사는 자들이 아달월 십사일을 명절로 삼아 잔치를 베풀고 즐기며 서로 예물을 주더라
20 모르드개가 이 일을 기록하고 아하수에로 왕의 각 지방에 있는 모든 유다인에게 원근을 막론하고 글을 보내어 이르기를

21 한 규례를 세워 해마다 아달월 십사일과 십오일을 지키라
22 이 달 이 날에 유다인들이 대적에게서 벗어나서 평안함을 얻어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되었으니 이 두 날을 지켜 잔치를 베풀고 즐기며 서로 예물을 주며 가난한 자를 구제하라 하매
23 유다인이 자기들이 이미 시작한 대로 또한 모르드개가 보낸 글대로 계속하여 행하였으니
24 곧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모든 유다인의 대적 하만이 유다인을 진멸하기를 꾀하고 부르 곧 제비를 뽑아 그들을 죽이고 멸하려 하였으나
25 에스더가 왕 앞에 나아감으로 말미암아 왕이 조서를 내려 하만이 유다인을 해하려던 악한 꾀를 그의 머리에 돌려보내어 하만과 그의 여러 아들을 나무에 달게 하였으므로

26 무리가 부르의 이름을 따라 이 두 날을 부림이라 하고 유다인이 이 글의 모든 말과 이 일에 보고 당한 것으로 말미암아
뜻을 정하고 자기들과 자손과 자기들과 화합한 자들이 해마다 그 기록하고 정해 놓은 때 이 두 날을 이어서 지켜 폐하지 아니하기로 작정하고
28 각 지방, 각 읍, 각 집에서 대대로 이 두 날을 기념하여 지키되 이 부림일을 유다인 중에서 폐하지 않게 하고 그들의 후손들이 계속해서 기념하게 하였더라

 

오늘 본문은 유대력에서 가장 즐거운 축제일로 지키는 부림절의 배경이 되는 장면입니다. 

부림절은 하만이 주사위의 일종인 부루를 뽑아 유대인을 진멸할 날짜를 정한 데서 유래했습니다. 

에스터 9장 22절은 유대인들이 하만과 대적을 물리치시고 큰 승리를 거둔 부림절의 의미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9장 22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22 이 달 이 날에 유다인들이 대적에게서 벗어나서 평안함을 얻어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되었으니 이 두 날을 지켜 잔치를 베풀고 즐기며 서로 예물을 주며 가난한 자를 구제하라 하매

여러분 첫째 부림절은 승리의 잔치를 버리는 날입니다.

절망과 죽음의 공기로 가득 찬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대반전의 드라마가 쓰였습니다. 

간신히 목숨을 건진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대적을 압도하는 완전한 승리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죽음이 선고된 날이 오히려 구원과 승리의 날로 변하였으니 잔치가 벌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절망이 소망으로 슬픔과 애통이 기쁨으로 회복되는 놀라운 감격의 날입니다. 

그래서 부림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승리와 그 승리 위에서 변화된 삶을 살아가는 성도의 모습을 나타냅니다.

어린양 되신 예수님께서 사단의 손에 넘겨져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들을 살려주셨습니다. 

간신히 살려주신 정도가 아니라 원수 사단의 머리를 완전히 상하게 하셨고 우리로 완전한 승리의 영광을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이 우리에게 주는 놀라운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은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은 모든 저주와 슬픔의 고리가 끊어지고 오늘 내게 임하는 하나님 나라의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둘째 부림절은 차별 없이 모든 사람이 참여할 수 있는 축제의 날입니다.

한 사람도 소외되거나 차별되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잔치의 기쁨을 맛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장 16절에서 '우리를 구원하는 그리스도의 복음은 믿는 모든 자에게 차별 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라고 선포했습니다.

로마서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이것이 복음의 위대함입니다. 

구원자 하나님은 사람을 결코 차별하지 않으시는 좋으신 아버지이십니다. 

누구든지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기만 하면 하나님이 베푸시는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할 수 있음을 우리 성도님들은 믿으시길 바랍니다.

 

유다인은 대적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어떻게 기념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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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부림절은 오늘 교회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어떤 모습으로 굳건하게 서 있어야 할지를 보여줍니다. 

부림절은 의미 그대로 하만의 계략과 그의 완전한 패배를 담고 있습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백성이 승리했으며 영원할 것이라는 내용을 드러냅니다.

에스터 9장 24절 25절을 잠시 보도록 하겠습니다. 

24 곧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모든 유다인의 대적 하만이 유다인을 진멸하기를 꾀하고 부르 곧 제비를 뽑아 그들을 죽이고 멸하려 하였으나
25 에스더가 왕 앞에 나아감으로 말미암아 왕이 조서를 내려 하만이 유다인을 해하려던 악한 꾀를 그의 머리에 돌려보내어 하만과 그의 여러 아들을 나무에 달게 하였으므로

그러므로 성도는 믿음으로 우리 안에서 영향력을 미치는 하만의 모든 저주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완전히 멸해졌음을 날마다 선포해야 합니다.

사단이 완전히 패배했으며 예수님께서 승리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승리로 완전히 새롭게 변화된 존재들이고 이 승리 위해서 담대하게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교회입니다. 

이것이 가난한 자들이 없게 하라는 부림절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여전히 이 세상에는 원수의 손 아래서 고통을 당하며 슬픔과 애통함으로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교회된 우리를 통해서 모르드개가 선포한 부림절의 기쁜 소식을 내 이웃과 열망에 전하기를 바라십니다.

치열한 영적 전쟁의 시대 속에서 우리를 살리시고 자유케 하시는 복음의 능력을 날마다 경험하며 그 복된 소식을 전하는 귀한 성도님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구원을 기념하는 명절에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유대인의 부림절 역사를 총지휘하신 하나님 
지금도 그와 같은 반전의 역사를 일으키실 하나님을 기대합니다. 
제 영혼과 삶을 망가뜨리고 악한 꾀로 죽음에 덫을 놓는 원수를 하나님께 고발합니다.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게 하실 주님만 바라보니 역전의 은혜를 베풀어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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