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26. | 생명의 삶 | 도육환 목사
안녕하십니까?
온누리 교회를 섬기는 도육한 목사입니다.
여러분은 수찬정지[ 受餐停止 , suspension the com munion service, suspension from the com munion]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요즘은 거의 행사하고 있지 않지만, 일정 기간 성찬을 받지 못하도록 교회가 내리는 징계를 의미합니다.
이전에 어느 성도에게 수찬정지를 공표하면 그는 교회 앞에서 근신하며 진심으로 죄를 뉘우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만큼 성찬에 참여하는 것을 귀하게 여겼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성찬의 깊은 의미와 소중함을 점점 잃어버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성찬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우리를 위해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 대속의 은총을 깊이 새기는 공동체의 예식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 옛 사람이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늘 성찬을 대할 때마다 감격과 감사함으로 대해야 하며,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오늘 다시 성찬을 받는 우리의 마음과 자세를 바로 세워주는 귀한 말씀을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1장 27절에서 34절 말씀입니다.
은혜가 되는 성찬, 죄가 되는 성찬
27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28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29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30 그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31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32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33 그런즉 내 형제들아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 34 만일 누구든지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을지니 이는 너희의 모임이 판단 받는 모임이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그밖의 일들은 내가 언제든지 갈 때에 바로잡으리라 |
가장 거룩하고 경건하게 임하여야 할 성찬을
무질서하고 이기적인 탐욕의 식사로 전락시켜버린 고린도 성도들을 향한 사도바울의 경고는 무섭고 두려울 정도입니다. 27절 말씀 읽어보겠습니다.
27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찬물을 끼얹은 것 같이 정신이 번쩍 들 만한 책망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것은 주님의 몸과 피에 대해 죄를 짓는 것이라 하십니다.
그렇다면 합당치 않게 성찬에 참여한다는 말이 무슨 말일까요?
성찬을 제정해 주신 주님의 뜻과는 달리 갈등과 분열을 일으켜서 주님의 몸인 교회를 어지럽히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린도 성도들이 애찬과 성찬을 위해 모였을 때 일어났던 갈등을 기억해 보십시오.
유대인과 헬라인, 남자나 여자 종이나 자유인 그 누구도 어떤 차별도 없이 모여야 할 고귀한 성찬식이
갈등과 차별의 식탁이 되어 버렸습니다.
먼저 온 여유 있는 사람들은 이미 배부르고 취해 있습니다.
뒤늦게 참여한 가난한 성도들이 먹을 음식이 남아 있지 않아 수치와 서러운 마음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둘로 하나를 만드시고 중간에 막힌 담을 허무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헛되게 하는 죄가 됩니다.
성찬은 우리 죄를 위해서 십자가 지신 그리스도의 고난과 대속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함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와의 연합뿐만 아니라 한 피 받아한 몸 이룬 형제자매를 귀히 여기고 배려해야 합니다.
함께 주의 몸에 동참하는 지체들을 사랑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없다면 주의 몸과 피를 헛되게 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성찬을 뜻하는 영어는 Holy Communion입니다. 거룩한 교감이라고 직역할 수 있을까요?
성찬은 그리스도와의 영적 교감을 이루는 일이며 동시에 함께 참여하는 성도들과 영적 교감을 이루는 일입니다.
또한 주의 몸과 피에 합당하게 참여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옛사람의 습관과 욕심을 가진 채 안일한 마음으로 주의 몸과 피에 참여하는 것은 29절 말씀처럼 자기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 됩니다.
29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주의 거룩한 몸과 피로 정결함을 얻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죄를 더 먹고 더 마시는 것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참여하는 마음이 없이 성찬에 참여해서는 안됩니다.
성찬의 의미를 결코 경솔하게 여기면 안 됩니다.
먼저는 우리를 위해 대속 재물이 되어주신 주의 몸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하고 또한 자기 자신을 살피고 그 이후에야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시라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베푸신 사랑과 은혜를 합당하도록 자신을 정결케 하고 서로를 사랑해야 합니다.
성찬의 형식에 참여하는 것 못지않게 성찬의 의미를 기억하고 감사와 감격 두려운 마음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찬은 성도의 거룩한 의무이면서 또 영광스러운 특권입니다.
단 한 번의 성찬의 기회라도 놓치지 않도록 힘써 성찬에 참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설교가 듣는 말씀이라면 성찬은 보고 맛보는 경험하는 말씀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그 주님을 가장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이 성찬입니다.
우리는 성찬을 통해 2천 년 전 갈보리에 있었던 대속의 은혜를 오늘 나의 삶 한가운데로 모셔드리고 다시 확정하는 예식을 갖는 것입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오랫동안 성찬에 참여할 수 없었던 우리의 애통하는 마음을 하나님께서 극렬히 여겨주시기로 기도해야 합니다.
성찬의 그 신비와 거룩함에 속히 참여할 수 있도록 성찬이 회복되도록 기도하며 준비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성찬의 거룩함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것으로 인해 하나님의 징계를 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밝힙니다.
성도들 중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 죽은 자도 적지 않게 되었다는 겁니다.
성찬은 성전 시대의 제사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구약시대 합당치 않은 제사를 드리다가 징계받은 사건을 기억나게 합니다.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않을 수 있었다는 말씀을 하시죠.
성찬의 본질을 헤치고 경솔하게 여겨 판단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두려운 말씀입니다.
32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32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같이 성찬에 대해서 두려운 경고의 말씀을 주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찬의 거룩함을 잘지켜 세상과 함께 정죄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는 겁니다.
오늘 말씀으로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 경건한 마음을 갖게 하시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요.
고린도 교회가 받은 책망을 묵상하면서 우리 교회들의 성찬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성찬의 의미를 바로잡기 위해 단순한 해결책을 제시했습니다. 33, 34절 말씀입니다.
33 그런즉 내 형제들아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
34 만일 누구든지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을지니 이는 너희의 모임이 판단받는 모임이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그 밖의 일들은 내가 언제든지 갈 때에 바로잡으리라
일차 해결책은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종일 일과에 시달리다가 예배로 달려오는 가난한 성도들을 위해 기다려주는 배려의 마음이 필요하다 하십니다.
그러나 혹 기다리기 힘들 정도로 시장할 것 같으면 집에서 먼저 먹고 오라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어느 누군가가 상처받고 갈등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성찬의 고귀함을 지키는 방법입니다.
너무 단순하고 쉬운 해결책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실제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는 순교나 헌신 같은 큰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작은 배려와 사랑이 공동체를 세우고 성찬의 본질을 지킬 수 있게 합니다.
그동안 여러분은 어떻게 성찬에 참여해 오셨습니까?
아무런 감동도 감사도 없는 습관적이고 형식적인 성찰의 시간을 보내지는 않았는지요.
저 역시 목회해 오는 동안 수많은 성찬을 집내해왔지만
때로 그 고귀하고 보배로운 성례전의 의미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 채로 의무적으로 대할 때가 없지 않았습니다.
제가 청년 시절 예수님을 처음 만나 세례받은 이후에 눈물로 첫 성찬을 받던 그날의 감동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신학교 채플 시간에 성찬을 대하며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던 시간도 기억합니다.
그러나 성찬이 반복되면서 그 감동과 감사가 점차 희미해지는 것 같습니다.
늘 첫 번째 성찬의 마음으로 주님의 몸과 피에 참여해야겠다는 결단을 하게 됩니다.
전 세계 교회가 지난 2년 이상 집단적인 수찬정지 징계를 당한 것 같습니다.
그동안 우리의 성찬이 하나님의 마음을 거스려 주의 뜻을 회 방한 것은 아닌지 돌아보는 2년이 되었습니다.
다시 성찬이 재개될 때
좀 더 깊은 감동과 은혜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성찬뿐만 아니라 우리 교회 공동체의 소중함.
우리 형제 자매들을 허락하신 그 은혜에 더욱 감사함으로 대해야 하겠습니다.
전 세계 교회가 함께 겪은 고통스러운 팬데믹으로 인해
교회와 우리 성도들이 더 정결해지고 거룩한 능력을 회복하는 값진 기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존귀하신 하나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한 대속 제물로 내어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값없이 베푼 은혜와 사랑을 늘 기억하며
성찬의 거룩함을 지키고
교회 공동체를 더욱 귀히 여길 줄 아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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