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23. | 생명의 삶 | 도육환 목사
안녕하십니까?
온누리 교회를 섬기는 도육한 목사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행복하기를 원하지만 어떻게 해야 행복해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그 비결을 알고 있습니다.
행복은 관계로부터 옵니다.
위로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가질 때 영혼의 평안과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옆으로는 다른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가질 때 안정감과 소속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세 분 하나님께서 완벽한 하나 됨으로 그분의 사랑을 드러내셨듯이 그 형상으로 지원받은 우리도 서로 사랑하고 존중함으로 온전한 관계를 가질 수 있고 그것이 우리의 행복의 비결입니다.
오늘 말씀 고린도전서 10장 23절에서 11장 1절까지의 말씀을 함께 읽으며 묵상하겠습니다.
남의 유익을 구함으로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
10:23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10:24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10:25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10:26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라 10:27 불신자 중 누가 너희를 청할 때에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 놓은 것은 무엇이든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10:28 누가 너희에게 이것이 제물이라 말하거든 알게 한 자와 그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 10:29 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남의 것이니 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으리요 10:30 만일 내가 감사함으로 참여하면 어찌하여 내가 감사하는 것에 대하여 비방을 받으리요 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10:32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10:33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11: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
우리는 어제 큐티 본문을 묵상하면서 우상에게 제물로 바쳐졌던 음식에 참여하는 것이 귀신과 교제하는 것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음식을 먹고 마시는 사소한 일에서부터, 우리 인생의 중요한 결정에 이르기까지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바른 것인가를 늘 분별해 보아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분별할 때 붙들어야 할 두 개의 원칙이 있습니다.
23절 24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10:23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10:24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마틴 루터의 말대로 그리스도인은 모든 것 위에 우위에 서는 자유로운 군주로서 그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가합니다.
그러나 자유를 행사할 때 두 개의 원칙은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이것이 유익한 것인가? 또한 이것이 덕을 세우는 것인가? 여기서 유익과 덕은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하고 공동체의 덕을 세울 수 있는가를 묻는 것입니다.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원칙입니다.
비록 우상에게 바쳐졌던 재물을 먹는 것이 자기 자신의 양심에는 아무 거리낌이 없을지라도 혹 이로 인해서 신앙이 약한 누군가의 마음을 다치지 않을까를 항상 생각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하십니다.
이미 9장 19절에서 우리가 묵상했던 바와 같이
고린도전서 9:19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바울은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말씀하십니다.
바울은 자신의 자유가 어느 누군가의 거침이 되지 않기를 원했습니다.
이를 통해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영혼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할 수만 있다면 기꺼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희생하겠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시장에 파는 것이나 어느 불신자의 초청을 받아 음식을 대접받게 되었다면 무엇이든지 양심을 위하여 고기의 출처를 묻지 말고 먹으라 하십니다.
누구의 양심을 말하는 것입니까?
신앙이 약한 이들의 양심을 위한 것입니다.
비록 그것이 우상 앞에 바쳐졌던 죄물이라 할지라도 본질적으로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일 뿐입니다.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라 이렇게 말씀하고 있죠.
땅과 온 세상에 충만한 모든 것이 하나님의 피조 세계입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면 그것이 어떤 음식이든 중요하지 않다는 겁니다.
앞에 차려진 음식은 묻지 말고 먹으면 됩니다.
한편 어느 누군가 아마도 믿음이 약한 사람이 이 음식이 우상에게 들려줬던 재물인데요라고 알려주거든 그 사람과 약한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 하십니다.
약한 양심이란 스스로 분별하여 소신껏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사람을 말하죠.
우상에게 바쳐졌던 것이니 아마도 그 음식에 어떤 영적인 작용이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를 위해서는 먹지 않는 것이 덕을 세우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원칙이 29절에 나옵니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남의 것이니 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으리오
우리가 배려해야 할 양심은 우리 자신의 신념이 아니라 믿음이 약한 다른 사람의 양심입니다.
음식을 먹고 안 먹고는 내가 임의로 결정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가합니다.
그것이 죄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내 자유가 혹시 다른 사람의 양심에 혼란과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주님의 몸 공동체의 유익을 구하고 덕을 세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내가 잘못한 것이 없으면 된다는 소극적인 윤리가 아니라 혹 나로 인해 다른 사람의 마음이 상하지 않을까를 배려하는 적극적인 윤리를 가져야 합니다.
강한 자가 약한 자의 마음을 살피는 것입니다.
칸트는 양심은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법정이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의 법정에서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일이라 할지라도 내 내면의 법정 그리스도께서 재판장 되시고 그 법정의 결정을 할 때 우리는 내면의 양심을 따라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법정은 판결의 기준이 다릅니다.
오리를 가자고 하는데 심리를 같이 가라 하시고 속옷을 달라 하는데 그 옷까지 내어주라 하십니다.
내가 가졌고 누릴 수 있고 그것이 내 자유이지만, 혹 그럴 수 없는 사람의 마음을 살피라 하십니다.
저마다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살면 된다고 주장하는 이 세상을 살면서 그 가운데 있는 저와 여러분이 주님의 뜻을 따르는 것 결코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질 자유의 대원칙은 분명합니다.
모든 것이 가하지만 덕을 세울 수 있는가? 이 일이 다른 사람에게 유익이 되는가를 묻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의 몸에 속한 제자들의 좁은 길입니다.
우리는 이미 이 좁은 길로 초대받았고 뒤돌아설 수 없는 외길을 걷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십자가 지고 끝까지 이 제자의 길을 함께 걸어갑시다.
사도 바울은 지금까지 길게 나누었던 논제 곧 우상에게 드려진 재물을 먹는 문제에 대해서 결론적으로 두 가지 지침을 주었습니다.
첫째는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유명한 말씀이죠. 31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아멘 아멘입니다.
우리가 어떤 음식을 먹을 수 있는가 먹지 말아야 하는가? 이 문제보다 더욱더 본질적인 삶의 목적이 있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 내가 도모하고 꿈꾸고 원하고 행하는 모든 일들이 이 원칙에 부합하는 것인지 그것을 점검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가를 물어보자는 것입니다.
두 번째 지침은 사람들에게나 교회에 거치는 자가 되지 말라고 하십니다. 32절 말씀인데요.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유대인 곧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에게나 헬라인 곧 불신자들에게나 거침돌이 되지 말라 하십니다.
내가 옳다고 스스럼없이 행한 일이 그 누구를 시험에 빠지게 하고 실족케 할 수 있다는 걸 기억하라는 겁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교회에 거치는 자가 되지 말라고 하십니다.
내 주장이 더 옳을 수 있고, 내 말에 일리가 있더라도
주의 몸인 교회에 상처나 분열을 주지 않도록 늘 주의해야 합니다.
바울은 이 같은 지침을 말로만 가르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33절은 우리의 관계 안에 지켜야 할 대원칙을 주고 있는데요.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불가능해 보이는 일 같습니다.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는 삶을 살도록 초대받았습니다.
어려워 보이는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이 아름다운 삶의 원칙이 저와 여러분의 인간관계의 기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우리의 인격과 양심으로는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기로 뜻을 정하면 이 같은 삶의 열매가 점점 더 많이 맺히게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우리에게는 먼저 이 아름다운 삶의 본을 보여주신 분이 계십니다.
바로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시죠.
우리 주님은 공생애 기간 동안 모든 일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의 기쁨을 주셨고, 많은 사람들을 위한 대 선물로 자신을 내어주셨습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분명히 알았기에 그가 먼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담대하게도 그리스도의 제자 된 우리에게도 이 영광스러운 삶으로 초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1: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그리스도를 본받아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이웃과 공동체의 덕을 세우는 복된 삶 행복한 인생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존귀하신 주님
우리의 삶이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 되게 하시고
모든 사람들과 화평하며 공동체의 덕을 세우는 가치 있고 복된 삶을 살아가는 인생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존귀하신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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