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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을 기꺼이 감내하는 아버지 같은 사역자 (고린도전서 4:9~21)(20220510)

2022.05.10. | 생명의 삶 | 조호영 목사                                                                                                         

 

고난을 기꺼이 감내하는 아버지 같은 사역자

 

안녕하세요. 

저는 온누리 교회를 섬기는 조호영 목사입니다.

성경에 보면은 선한 목자와 삯꾼 목자가 등장합니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끝까지 책임지고 돌보지만,

삯꾼 목자는 자기 유익을 위해서 양들도 이용하고 어려움이 닥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양들을 버리고 달아납니다.

제2차 선교 여행 때 바울이 개척한 고린도 교회는 삯꾼 목자, 거짓 교사들이 슬그머니 들어와서 자꾸 참 목자이며 영적인 아버지인 바울에 대해서 이상한 소문을 퍼트리고 음해합니다.

변질된 복음을 전파합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혼란스러워합니다.

당시 에베소에 머물고 있던 바울은 이 소식을 듣고 급히 고린도 성도들에게 편지를 보내게 되는데요.

그것이 바로 고린도전서입니다.

오늘 말씀은 고린도전서 4장 9절에서 21절까지의 말씀입니다.

 

 

고난을 기꺼이 감내하는 아버지 같은 사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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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내가 생각하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10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으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나 우리는 비천하여

11 바로 이 시각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12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즉 참고
13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
14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 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15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16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17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 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으니 그가 너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행사 곧 내가 각처 각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18 어떤 이들은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지 아니할 것 같이 스스로 교만하여졌으나
19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들의 말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으니
20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21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

 

바울의 3차 전도 여행은 소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중에서도 에베소에서 2년의 긴 시간을 머물면서 교회를 개척했고 또 두란노 서원을 열어서 성도들에게 집중적으로 성경 공부를 시키면서 사역자를 양성하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말씀을 배운 성도들의 삶은 변하기 시작했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도시 전체의 상업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습니다.

그 에베소 도시의 우상이었던 아데미 여신상이 잘 팔리지 않게 되었고, 이 사건으로 인하여 사도 바울과 그 일행들이 에베소 도시에 그 상인들에게 엄청 핍박을 당하기 시작합니다.

매 맞고 모욕당하며 죽기까지 내몰리는 큰 고초와 어려움을 겪게 되죠.

 

이런 힘든 상황 가운데에서 고린도 교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듣게 된 바울은 답장을 쓰며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 답장에 바울은 그동안 자신들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얼마나 목숨을 건 고초를 당하고 위험을 당하고 있는지 그리고 자신들이 이런 위험과 고통과 고난을 무릅쓰고 복음을 전하는 이유를 솔직한 마음으로 고백합니다.

9절에서 13절입니다. 

9 내가 생각하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10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으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나 우리는 비천하여
11 바로 이 시각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 맞으며 정처가 없고
12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즉 참고
13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

고린도 교회의 영적인 아버지 사도 바울이 당한 고난과 고통을 고린도 성도들이 이제는 좀 알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이제는 젖만 먹는 그 미성숙한 모습을 벗어버리고 자신들이 받은 복음이 그렇게 쉽게 얻어진 복음이 아니라 누군가 이렇게 헐벗고 매 맞고 먹지 못해 주리는 고난과 고초 모욕과 박해, 그리고 죽음을 각오한 희생과 포기가 있었다는 것을 그들은 알아야만 한다라고 지금 말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그렇게 힘들게 얻은 복음을 너무나 쉽게 여기고,

오히려 교파를 만들어 싸우고 세상의 철학과 문화 관습을 교회 안으로 들여와서 혼합시키고,

변질된 복음을 전하는 거짓 선생들을 허락하는 이런 고린도 교회의 상황을 듣는 바울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렇게 피를 토하듯 자신의 심정을 토해내고 있는 바울입니다.

 

저는 양화진에 있는 선교사 묘지를 몇 번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한국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오셨다가 순교한 선교사들의 수많은 비석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었습니다.

100여년 전 저들이 이 언어도, 생김새도, 문화도, 음식도 모든 것이 다 다른 이곳에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서

이 한국땅에 예수님 전하기 위해서 들어올 때 정말 목숨을 걸고 희생과 포기를 감내하고 다 오셨을 겁니다.

그중 상당수는 이곳에서 오래 견디지 못하고 순교하셨고 또 어떤 선교사는 배에서 땅도 밟아보지 못하고 순교하신 분도 계십니다.

 

또 엄마로서 제가 가슴 아팠던 것은 

가보니까 많은 그 어린아이들 그 비석이 너무나 많은 거예요.

풍토병으로 병으로 죽은 그 아이들, 선교사님들의 자녀를 보면서

정말 우리가 지금은 이렇게 편하게 예수님을 믿고 있지만

복음이 우리에게 전파되기까지 이런 많은 희생과 포기, 고통과 아픔의 헌신들이 있었다는 것을 얼마나 우리도 쉽게 잊고 사는지, 

그리고 그 우리가 받은 복음을 얼마나 쉽게 변질시키고 세상의 문화와 가치관들을 교회에 들어오도록 우리가 허락하고 있는지 믿음을 흔들고 있는지,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복음의 귀함을 다시 한번 깨닫고 다시 새롭게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코로나로 인해서 너무나 쉽게 예배를 포기하고 말씀을 가볍게 여기는 우리들의 모습을 다시 한번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오늘 바울의 말씀이 고린도 교회를 넘어서 현재 우리들에게도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임을 알기 원합니다.

 

바울 일행이 복음을 전하면서 받은 고난은 어느 정도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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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에게 고린도 성도들은 영적인 자식들입니다.

왜냐하면 2차 전도여행 때 사도 바울은 그 교회를 개척했고, 성도들을 양육했고

그리고 고린도에서 실제로 1년 반이나 함께 그들과 머물며 삶을 나누었던 가족과도 같은 그런 끈끈한 유대관계를 가지고 있는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또 그들에게 바울은 영적인 아버지와 같은 리더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 혼란과 어려움이 있고 아직도 젖을 먹는 아이처럼 미성숙한 고린도 성도들에게 

정말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을 자식같이 생각하고 품고 있는 아버지의 사랑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내가 얼마나 복음을 위해 고생했는지 아는가? 그런데 너희들은 왜 이렇게 변질되어 있니?

왜 아직도, 이 시간이 흘렀는데도 젖을 먹는 어린 아이와 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지 책망하고 나서는 좀 마음에 걸렸을까요?

다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14절에서 16절입니다.

14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 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15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16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돼라

그러면서 마지막에

'내가 너희에게 권하는데 나를 본받는 자가 돼라. 너희는 나를 본받아라'

자신이 왜 이런 편지를 썼고 왜 이런 어려움을 솔직히 나누고 그들의 잘못을 책망할 수 있는가?
바로 자신은 너희들의 영적인 아버지고 그리고 너희들을 평생 품고 사랑하고 포기할 수 없는 자식들로 여기기 때문이다 고백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이기에 그들의 잘못도 지적하고 또 가르치고, 품고 또 권면하고 또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는 영원한 자식 편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자식을 살리고자 하는 부모입니다.

 

저도 부모님이 돌아가시고서 참 안타까웠던 것은 이 세상에 영원한 내 편이 사라지셨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내가 잘못했을 때 잘못했다고 진심으로 사랑으로 말해주실 수 있는 분이 더 이상 계시지 않은 것이 참 안타까웠습니다.

여기에 일만 스승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그들은 아버지가 아니고 성도들을 잘 다루고 보호할 수 있는 그저 리더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 일하고 자신의 유익을 위해 성도들을 조종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힘들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고 외면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이죠.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생각나는 두 단어가 있었습니다.
아마 제가 엄마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엄마와 베이비시터가 다른 점이다. 

엄마는 아이가 병들면 힘들고 아프면 함께 울고 밤을 지새웁니다.

내가 대신 아팠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기도합니다.

그리고 정말로 그 아이를 포기할 수 없이 도망가지 못하고 힘들게 하고 들이받아도 끝까지 품고 가는 것이 엄마입니다.

그러나 베이비시터는 돈을 받고 고용된 사람입니다.

아이가 아프거나 문제가 있으면 언제든지 엄마에게 맡기고서 그곳을 떠날 수 있는 것이죠.

자기가 바쁜 일이 있으면 쉽게, 또 더 좋은 대우를 해주는 곳이 있으면 쉽게 그 아이를 버리고 다른 아이를 택할 수 있는 것이 베이비시터라는 것이죠.

 

여기 일만 스승은 숫자가 무수하게 많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도들의 보호자나 관리자는 될 수 있지만 베이비 시터의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은 정말로 그들을 복음으로 낳고 참 부모가 되는 그 영적인 아비가 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성도들이 자신들이 낳은 자녀들이라는 부모 의식이 없기 때문이죠.

고통과 희생 포기를 감내하더라도 내 자식을 아끼고 내가 죽더라도 자식들만을 살리기를 바라며 그렇게 애썼던 사도 바울의 아버지의 마음을 그들은 갖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아버지의 마음으로 그들을 위해 애썼던 그리고 고난을 고스란히 당했던 핍박을 당했던 사도 바울이기에 담대하게 이렇게 고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이것은 교만이 아니죠. 

성도들의 참 부모는 이렇게 하는 것이다라고 삶의 그 리더로서 희생의 모범을 보인 아비의 영성이요 리더십입니다.

 

오늘 교회에 정말 권사, 장로 이런 리더십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교회의 어미와 아비의 그 리더십을 가지고 정말 어렵고 힘든 성도들을 품고 끝까지 함께하며 그들을 가르치고 기저귀를 갈고 눈물을 닦아주는 그런 리더십들이 교회에 지금도 얼마나 필요한지 모릅니다.

오늘도 이 말씀 속에서 특별히 이 말씀을 묵상하는 교회의 리더십들에게 도전합니다.

우리는 그런 교회의 영적 어미들 그런 교회의 아비들이 되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내가 아버지 같은 사랑으로 양육할 지체는 누구인가요?

 

하나님 
오늘 말씀 속에서 온갖 고난을 당하며 영적 아비의 역할을 감당했던 바울을 보았습니다.
교회에서 저희들도 이렇게 영적 어미 영적 아비의 역할을 감당하는 리더십들이 되게 하시고 
오늘도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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