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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본질로 돌아가 같은 마음을 품는 성도 (고린도전서 1:10~17)(20220502)

2022.05.02. | 생명의 삶 | 김소리 목사                                                                                                         

 

복음의 본질로 돌아가 같은 마음을 품는 성도

 

 

할렐루야 

온누리교회 수원 캠퍼스 섬기는 김소리 목사입니다.

 

여러분은 탕수육을 시키셔서 드실 때 소스를 부어서 드십니까?  아니면 찍어서 드십니까?

이것으로 인해서 탕수육 부먹파찍먹파가 나뉘었습니다. 

우스갯소리로 부먹파와 찍먹파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말합니다.

부먹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소스를 부어 먹는 것이 본래 형태라며 본질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라고 주장을 하죠.

또 찍먹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이 바삭한 튀김에 소스를 가볍게 얻는 것이 맛있는데, 이 소스를 다 부어버리면 눅눅해진다며 부먹은 시대에 뒤떨어진 버려야 할 사상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비슷한 논쟁으로

된장찌개인가 김치찌개인가?

붕어빵은 머리부터 먹는가 꼬리부터 먹는가?

양념치킨인가 프라이드 치킨인가?

딱딱한 복숭아인가 물렁한 복숭아인가?

끝도 없는 논쟁이 있습니다.

 

여러분 논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맛있게 먹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혹시 이런 본질을 잃어버리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 생각해 봅니다.

오늘 말씀에는 본질을 잃어버리고 분쟁으로 어려움을 겪는 고린도 교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고린도전서 1장 10절에서 17절 말씀입니다.

말씀 앞으로 함께 가겠습니다. 

 

복음의 본질로 돌아가 같은 마음을 품는 성도

 

더보기
1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11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 너희에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12 내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
13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
14 나는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세례를 베풀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노니
15 이는 아무도 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말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16 내가 또한 스데바나 집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었고 그 외에는 다른 누구에게 세례를 베풀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17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0절 말씀 함께 보겠습니다.

1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고린도전서 1장 10절부터는 이제 고린도전서의 본론입니다.

처음부터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향해 강하게 분명하게 말합니다.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고린도 교회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우상, 재물, 음행에 대한 심각한 문제가 있었죠.

그런데 바울은 지금 고린도 교회 분쟁의 문제부터 언급을 합니다.

그러니까 이 문제가 더 급하고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교회, 우리의 가정, 우리의 관계가 분쟁이 있고 나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우리의 공동체가 하나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요한복음 17장 말씀에 보면 기도하시는 내용이 있는데 이런 내용이 있어요.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이 하나이신 것 같이 제자들이 하나가 되게 해 달라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가장 큰 관심 그리고 목적은 이 공동체의 하나 됨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중요한 공동체가 두 가지 있습니다.

가정과 교회입니다. 

이 가정과 교회가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 같은 뜻으로 하나가 되기를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가정과 교회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몸입니다.

만약 우리의 몸이 찢어지고, 나누어진다면, 우리가 고통을 느끼듯이 우리의 가정과 우리의 교회가 하나가 되지 못하면 예수님께서 가장 아파하십니다.

 

에베소서 4장 2절과 3절에 이런 말씀이 있죠.

에베소서 4
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여러분 하나 됨을 이루기 위해서겸손, 온유, 오래 참음, 사랑, 용납이 필요합니다.

이 모든 말들은 사랑의 다른 표현들이죠.

사랑은 하나 됨의 접착제입니다. 

우리 가정과 교회에 사랑을 쏟아부어야 합니다.

그 사랑이 겸손, 온유, 오래 참음, 용납으로 나타나서 하나가 되게 합니다.

 

여러분 오늘 가정과 교회를 위해서 사랑을 한 가지 실천하십시오.

예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고 또 하나가 되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12절 말씀을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12 내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

고린도 교회에 4가지 분파가 있었습니다.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 파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개척한 사람입니다.

이 바울에게 복음을 직접 들은 사람들이 모였던 거죠.

그래서 바울파라고 했습니다. 

아볼로는 이 바울의 후임 목회자입니다.

이 아볼로는 헬라 학문과 성경에 능통했습니다.

그래서 아볼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게바는 베드로입니다. 

이 베드로의 신앙적 지도를 받았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있었던 거죠.

또 그리스도는 예수님을 말합니다. 

이 예수님의 교훈을 직접 들은 사람들이나 또는 앞에 사람을 앞세웠던 그 사람들과 달리 자신들은 그런 영적 우월주의 마음으로 예수님을 앞세운다라고 말하던 사람들이죠.

 

바울은 교회 내에서 이렇게 사람을 중심으로 나뉘는 모든 것들이 잘못된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심지어 이 바울파를 언급하면서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잘못했다. 가장 먼저 말합니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할 수 있습니다. 존경할 수도 있죠. 그래서 지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지지하는 사람만 옳고, 다른 사람은 옳지 못하다며 비난하고 비방하는 것

그래서 미움과 다툼으로 살아가는 것은 예수님이 좋아하시는 일이 아니라 이 사탄이 좋아하는 일입니다.

 

오늘 이 하루를 살아가실 때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무조건 비난하거나 미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이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실지 하나님의 뜻을 먼저 찾으십시오.

무조건 이기려 하지 마시고 한번 들어주시고 받아주십시오.

예수님께서 그렇게 나에게 대해주셨듯이 예수님의 마음으로 상대를 대해주십시오.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는 가운데, 서로를 용납하고 이해하면 새로운 길을 하나님께서 열어주실 것입니다.

 

내가 속한 공동체가 하나 되지 못하고 서로 분쟁하며 나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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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절 말씀 함께 보겠습니다. 

13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

이 13절부터 16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바울이 세례를 언급하면서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강한 책망과 교훈을 줍니다.
아마 이 고린도 교회에서 세례가 문제가 되어 교회의 분열에까지 간 것 같습니다.


여러분 세례의 원래 의미는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에게서 멀어졌던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 사함을 얻고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음을 고백하는 것이죠.


그런데 이 세례의 목적이 사라지고 오히려 이 세례 때문에 교회가 어려워졌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바울은 우리 신앙과 믿음의 본질이 중요하다고 말해요.

그 본질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의 본질에서 벗어나는 모든 것이 죄이다라고 바울은 강력하게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 세상에 보내시고 또 나를 사용하시는 것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본질적 목적이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내가 그 목적을 잃어버리고 그 목적과 상관없이 나의 욕심을 위하여 살아간다면 나의 삶은 이 죄를 향하여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모든 진리의 가치를 땅으로 내리고 이 세상의 욕심의 가치를 하늘로 올리려고 합니다.

세상은 이 사람의 생명의 가치보다 효율적인 가치가 더 중요하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 사람의 유익을 위해 서면 전쟁도 할 수 있고 또 생명을 죽이는 일도 가능하다고 말하는 거죠.

아무 말도 못 하는 그 태아가 생명의 가치가 없다고 말하며 합법적으로 죽일 수 있다고 세상은 말합니다.

또 사람의 인권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가장 중요한 진리를 훼손하려고 합니다.

사람의 성별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다라고 세상은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사람의 인권을 위한 것이 아니죠.

결국 인권을 땅에 떨어뜨리는 일입니다.

 

여러분 진리는 제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내 마음대로 원하는 대로 진리를 자르고 바꿔서 사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진리를 원하는 대로 가져다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진리의 자리로 가까이 나가야 합니다.

 

여러분 악기를 연주할 때 연주 전에 조율을 하죠.

이 조율은 그 음을 표준 음에 맞추는 겁니다.

그러니까 악기가 그 음을 맞출 때 전에 없었던 새로운 음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원래 있었던 그 표준 음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만드신 하나님께로 돌아갈 때, 우리는 비로소 가장 아름다운 음을 낼 수 있습니다.

나의 욕심대로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하루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17절 말씀 한번 같이 보겠습니다. 

17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7절에서 바울은 자신의 사명이 이 세례를 베푸는 것보다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라고 고백을 합니다.

이 세례가 의미가 없고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주신 사명 삶의 목적이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고 그것이 우선순위라는 고백을 하는 것이죠.

 

사랑의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 믿음의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주신 삶의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죠.

첫 번째는 선포 전도이고, 두 번째는 존재 전도입니다.

우리는 이 두 가지를 우리 모두의 삶에서 해야 합니다.

삶의 자리에서 예수님이 구원자이심을 말로 선포하십시오.

여러분 복음 전도는 설명이 아니라 선포입니다.

선포하시면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일하시고 도와주십니다.

또 삶의 존재로 복음을 선포하십시오.

예수님을 닮은 사랑의 삶을 행하셔서, 예수님이 구원자이심을 다른 사람들이 느끼고 보게 해 주십시오.

오늘 이 하루 하나님 주신 사명을 충성되게 순종하는 귀한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공동체 안에서 복음의 본질로 돌아가 새로워져야 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사랑하는 주님
나에게 생명을 주셔서 이 땅 가운데 살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 땅에 보내신 목적에 따라 살기를 원합니다.
나를 통해 예수님의 복음이 선포되게 하옵소서 
말과 삶으로 예수님이 구원자이심을 전하는 그런 삶이 되게 하옵소서.
이 모든 것에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주님의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감사드리며 살아계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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