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18. | 생명의 삶 | 윤광서 목사
샬롬
영화 교회를 섬기는 윤광서 목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의 통로 가운데에 중요한 세 가지를 꼽자면, 예배와, 기도 그리고 성례를 꼽을 수 있겠습니다.
우선 예배를 통해 날마다 주님 앞에 우리 모두를 새롭게 하시고, 또 우리가 기도하는 가운데에 주님의 뜻을 알게 하십니다. 그리고 성례를 통하여 주님이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사랑을 우리로 온전히 깨닫게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제정하신 성찬을 통하여 떡과 포도주를 나눔으로 예수님의 사랑과 희생을 기억하고 예수님이 주신 떡과 잔으로 생명을 주시는 그 사랑과 만나게 하십니다.
오늘은 누가복음 22장 14절로 23절까지의 말씀을 통해 그 놀라운 은총의 자리로 함께 나아가겠습니다.
만찬을 베푸신 주님, 식탁에 함께한 배신자
누가복음 22장 14절에서 23절 말씀입니다.
14 때가 이르매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앉으사 15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1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유월절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기까지 다시 먹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17 이에 잔을 받으사 감사 기도 하시고 이르시되 이것을 갖다가 너희끼리 나누라 1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이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19 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0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21 그러나 보라 나를 파는 자의 손이 나와 함께 상 위에 있도다 22 인자는 이미 작정된 대로 가거니와 그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하시니 23 그들이 서로 묻되 우리 중에서 이 일을 행할 자가 누구일까 하더라 |
이제 드디어 때가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만찬을 드시기 위해 자리에 앉으셨습니다.
특별히 누가는 14절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을 사도라고 지칭합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이후에 세워지는
열두 사도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예수 공동체
즉, 교회와 함께 만찬을 나누시는 모습을 의미 있게 조명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15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예수님은 이 자리에서 고난 받으시기 전에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식사하시기를 원하고 원하였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이 유월절 식탁이 예수님께는 간절히 원하셨던 특별한 자리임을 나타내는 것이죠.
1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유월절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기까지 다시 먹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또한 16절에서는 '이 유월절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어지기까지 다시 먹지 아니하리라'하는 말씀도 남기십니다.
다시 말하자면 온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때에 이 유월절 식사가 하나님 나라에서 메시아의 잔치로 다시 열리게 될 것이라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유월절은 어린양의 희생으로 인해 죽음에서 건짐을 받은 은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유월절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어린 양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우리가 죽음에서 건짐을 받은 은혜를 입은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시 먹지 아니하리라' 하신 말씀은
유월절 식사가 다시 반복되지 않을 것임을 뜻합니다.
예수님이 예비하시고 예수님과 함께 먹는 이 식탁이 반복될 수 없다는 뜻이죠.
1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이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또한 18절 에서도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포도나무에서 난 것은 유월절에 마시는 포도주를 의미합니다.
이것을 다시 마시지 않는다는 것은 예수님이 피 흘리실 십자가 사건으로 유월절이 완성될 것임을 예표(豫表)하시는 것입니다.
유월절은 예수님께서 친히 그 몸을 제물로 우리에게 주신 사건입니다.
그 희생을 통하여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수 있었던 것이죠.
우리의 죄로 인하여 우리가 마땅히 죽었어야 했는데, 예수님께서 대신 우리의 죄값을 치를 쓰시고 죽으심으로 죄로 가득한 우리 몸으로는 주님 앞에 갈 수 없었던 그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 것입니다.
19 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0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예수님은 떡을 떼어 주시며 내 몸이라 하십니다.
잔을 주시며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라 하십니다.
우리는 오늘 아래도 이 가르치심으로부터 성찬식에 임하지 않습니까?
만약, 나를 기념하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과 살과 피를 주신 그 사랑의 의미를 알지 못한채 성찬에 임한다면
그것은 자기 죄를 먹고 마시는 자리가 될 뿐입니다.
이 성찬 예식은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를 기억하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 가운데에 참여하는 시간입니다.
나를 대신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피흘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가 사하여졌습니다.
또한 구원을 얻게 된 것을 예수님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빵과 포도주를 마심으로 다시금 기억하게 하십니다.
오늘도 우리가 그 은혜를 기억하며 감격 속에서 참여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 성찬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 임할 때에 하나님 나라에서 참여할 그 잔치에 자리까지 이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우리는 어린 양 되신 예수님과 우리를 자녀 삼아 주신 하나님 앞에 세세토록 경배하며, 예배하게 될 것입니다.
그날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교회의 허락하여 제정하신 성찬을 통해 예수님의 구속의 은혜를 날마다 기억하고 감사하며 참여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 놀라우리만큼 은혜로운 자리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배신할 자가 함께 식사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바로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가롯 유다가 예수님을 팔 사람이라는 것을 주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물론 그의 배신은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 아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갈은 유다에게 책임이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22 인자는 이미 작정된 대로 가거니와 그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하시니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화가 있으리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3 그들이 서로 묻되 우리 중에서 이 일을 행할 자가 누구일까 하더라
또 다른 복음서와는 다르게 23절에서는 제자들이 '우리 중에서 이 일을 행할 자가 누구일까?' 서로 묻는 장면도 나옵니다.
아마도 예수님께서는 유다가 배신할 것을 알고 계셨고, 유다에게 확인도 시켜주셨지만, 다른 제자들은 모르게 하셨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어쩌면 가롯 유다에게 주시는 기회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돌이킬 수도 있었지만, 그는 결국 돈을 선택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가 그런 선택을 할 것을 아셨고, 그것을 확인 하신 것입니다.
물론 다른 제자들도 예수님이 잡히실 때에 모두 도망갔고,
심지어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제자들 모두 용서를 구하며 예수님께 돌아왔지만,
가롯 유다는 후회는 했을 뿐 예수님께로 돌아오지는 않았습니다.
우리의 삶에 수많은 선택 가운데 때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선택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에 성령님께서는 우리로 잘못된 선택으로부터 돌아올 수 있는 기회와 경고에 음성을 끊임없이 주십니다.
그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듣지 않고 끝까지 잘못된 선택과 후회만 한다면
우리는 결국 예수님께서 용서해 주시는 은혜를 경험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히 경험할 수 있는 성찬의 자리를 보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은총이 가득한 성찬의 자리에서도 그 감격을 다 누리지 못하는 가롯 유다를 함께 떠올리게 됩니다.
죄를 보게 하실 때 돌이키고, 은혜를 깨닫게 하실 때 감사하는
그리하여 날마다 하나님의 크신 은총을 풍성히 누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우리의 구원자 되신 하나님
주님께서 제정하신 성찬을 통하여 떡과 포도주를 대할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기억하고 그 은혜를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오늘도 우리가 그 은혜 가운데 살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택을 하게 하시고
혹 잘못된 길을 걸을 때에 우리에게 주시는 성령의 음성에 귀 기울여 회개할 기회를 얻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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