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09. | 생명의 삶 | 임병선 목사
안녕하세요.
용인 제일 교회를 섬기고 있는 임병선 목사입니다.
왜 우리가 말로 다투다가 논리가 안 되면 꼭 하는 이야기가 있잖아요.
'당신 몇 살이야?', '몇 살인데 그래?'
그런데 그것처럼 유치한 짓이 없어 보입니다.
지금 예수님 당시 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하는 듯이 바로 이런 짓입니다.
예수님이 전하는 말씀에 대해 대항할 말을 찾지 못하니까.
그들이 하는 거라고는 당신이 지금 무슨 권위로 이 일을 하고 있습니까?라고 묻는 것뿐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 누가복음 20장 1절에서 8절 말씀입니다.
권위에 대한 불신과 간사한 답변
누가복음 20장 1절에서 8절 말씀입니다.
1 하루는 예수께서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시며 복음을 전하실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장로들과 함께 가까이 와서 2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 권위를 준 이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3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내게 말하라 4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5 그들이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요 6 만일 사람으로부터라 하면 백성이 요한을 선지자로 인정하니 그들이 다 우리를 돌로 칠 것이라 하고 7 대답하되 어디로부터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니 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
예수님의 말씀은 강력하여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고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변화들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분명 하나님의 역사였고, 하나님의 행하심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그것을 인정하기 싫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입지가 좁아지고 자신들의 영향력이 줄어들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취한 방법이 뭡니까? 바로 예수님의 자격을 논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무슨 권위로 일을 하는가? 예수님이 무슨 자격으로 일을 행하는가?
그것으로 지금 따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생명의 삶 가족 여러분
이런 잘못된 신앙의 행태는 비단 예수님 당시 종교지도자들 만의 모습이 아닙니다.
자치 우리도 이런 잘못되고 왜곡된 신앙의 모습으로 우리의 신앙이 변질될 수도 있습니다.
저는 가끔 성도들에게 이런 질문을 합니다.
교회 기존 성도들이 교회 안에 새로운 사람, 새 가족들이 오는 것을 좋아할까요?
당연히 교회 새 신자, 새 가족이 오는 게 얼마나 기쁘고 좋은 일입니까?
우리들은 다 같이 다 좋아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기존 성도들이 교회의 세 가족 오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자기에게 피해 오지 않을 때까지 좋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새 가족이 와서 은혜받고, 뜨거워져서, 열정적으로 섬기고 헌신할 때, 자기의 자리를 빼앗기거나 자기를 향한 인정과 관심이 사라지는 그 순간 그 좋아하는 마음은 차갑게 변하면서 이런 이야기들을 하게 됩니다.
'교회 온지도 얼마 안 됐으면서 뭐 그렇게 설쳐?', '아직 교회도 잘 알지 못하면서 왜 그렇게 나대?'
이런 말을 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이런 모습들이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 보게 되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 장로들의 완악하고 왜곡된 신앙의 모습이 아닙니까?
사랑하는 생명의 삶 가족 여러분
우리는 절대 이런 모습으로 신앙생활 해선 안됩니다.
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것은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일이 나타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 일들이 일어날 때
비록 내가 주인공이 아니어도, 내가 주목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낮은 자리에서 함께 하고, 손뼉 쳐 주고, 함께 동참하는 모습이 귀한 신앙의 모습입니다.
그런 귀한 신앙의 모습으로 설 때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반드시 여러분들이 속한 공동체와 여러분 가운데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꼭 그런 하나님의 귀한 사람으로 아름답게 서 나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폄해하기 위해 묻습니다.
'당신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 권위를 준 사람이 누구인지 말하라'라고 말합니다.
그대 예수님께서 그들의 질문에 대해 기가 막힌 반문을 하십니다. 4절 말씀입니다.
4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예수님이 하신 이 반문은 그들을 고심하게 만듭니다.
요한이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확증해 주었기 때문에, 요한을 인정하면 예수님을 인정하는 셈이 되고,
만일 요한의 세례를 인정하지 않으면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세례 요한을 인정하지 않는 샘이 되어서 백성들의 원성을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사명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로지 그들의 관심은 어떻게 하면 내 자리를 지키고, 내 위치를 유지하고, 내게 이익이 되느냐 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그 질문에 대해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어떤 대답을 해도 그들의 자리와 위치는 위협받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생명의 삶 가족 여러분
예수님 당시 종교 지도자들의 신앙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늘 우리의 신앙이 이렇게 잘못된 길로 나아가지 않도록 경계해야 합니다.
그들도 처음부터 그런 마음으로 그 자리에 오르고 그 직분을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 해, 두 해 가면서 자기도 모르게 쌓여가는 잘못된 기득권과 전통의 틀이 그들의 영적 눈을 어둡게 만들었고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뜻은 외면한 채
오직 자신의 자리와 이익을 지키는 데 혈안이 되어서
하나님의 뜻에서 이루기 위해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조차 배척하는 인생이 되고 만 것입니다.
사랑하는 생명의 삶 가족 여러분
우리도 신앙생활을 여러 해 하게 되고 그에 따른 직분을 받게 되면
우리도 모르게 형성되는 교회 안의 기득권이 생깁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굳어져 버린 종교적 형신들이 있게 됩니다.
그것을 우리가 날마다 날마다 깨지 않으면,
우리도 예수님 당시 종교 지도자가 보였던 이런 어리석고 안타까운 신앙의 모습들이
우리 교회 생활 속에서 나타날 수 있습니다.
마치 오래된 내가 이 교회의 주인은 것처럼,
마치 내가 이 교회의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또한 나에게 주어진 이 직분이 섬김의 자리가 아니라 군림에 자리가 되어 버려 걷잡을 수 없는 나락의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날마다 나를 죽이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나를 날마다 십자가에 못 받고, 오직 내 아내 예수 그리스도 만이 살게 하시는 것, 그것이 신앙의 길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누가 누가 잘 죽나의 싸움입니다.
살아가는 생명의 삶 가족 여러분
날마다 우리 자신, 내 신앙의 연수, 내 자랑, 내 자리, 내 위치, 내 욕심 그 모든 것들을 십자가에 못 받고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도록 나를 죽여
겸손히 하나님의 뜻을 위해 섬겨 나갈 때,
우리는 타락한 신앙인들이 아니라 영광된 신앙인으로 우뚝 서게 될 것입니다.
이 마음 꼭 놓치지 마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의 길로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 안에 있던 신앙의 기득권을 내려놓고
날마다 나를 십자가에 못 박아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만이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늘 겸손히 섬기게 하시고
내가 드러나는 삶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END
CGNTV 공식 홈페이지 : http://www.cgntv.net
생명의 삶 구독 : http://www.duranno.com/qt/
'CGNTV > 2022 생명의 삶'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교활한 질문에 대한 지혜로운 가르침(20220311) (0) | 2022.03.11 |
---|---|
주인의 아들까지 죽인 악행에 임할 심판 예고(누가복음 20:9~19)(20220310) (0) | 2022.03.10 |
하나님 성전을 향한 하나님 아들의 애통(누가복음19:41~48)(20220308) (0) | 2022.03.08 |
주권자 예수님, 왕이신 예수님(누가복음19:28~40)(20220307) (1) | 2022.03.07 |
다시 오실 왕의 심판, 영원한 상과 벌(누가복음19:11~27)(20220306) (0) | 2022.03.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