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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심을 이기고 기도하면 응답의 기쁨을 누립니다(누가복음18:1~8)(2022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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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01. | 생명의 삶 | 임채영 목사                                                                                                         

 

낙심을 이기고 기도하면 응답의 기쁨을 누립니다

 

 

오늘이 3월에 첫째 날입니다.
우리 민족에게는 잊을 수 없는 삼일절이죠.
100여 년 전에 일본의 압제에 항거해서 힘 있게 일어났었던 그날그날을 기억하면서,

오늘 혹시 우리의 삶에 우리를 누르고 있는 것들이 있다면,

오늘 말씀과 함께 그것을 이겨내는 그런 귀한 승리의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서울 아연동에 있는 서부 교회를 섬기고 있는 임채영 목사입니다.

우리가 함께 말씀은요. 누가복음 18장 1절부터 8절까지의 말씀입니다.

 

낙심을 이기고 기도하면 응답의 기쁨을 누립니다


누가복음 18장 1절에서 8절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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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2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3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4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5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6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사람들이 질문을 할 때는요.
명쾌한 답을 요구하게 되어 있습니다.
질문을 했는데 만일에 그 대답이 애매모호하고, 두리뭉실하다면 그 답은 혼란을 가져오게 되지요.
이해가 되지 않는 겁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보았던 17장에서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임하느냐?라고 물어보았을 때

예수님의 답은 제자들이 듣기에도 명쾌하게 이해되지 않았을 겁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고,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라고 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 뭐 이런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개념이 없었던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아마도 혼란스러운 답이었을 겁니다.
무엇보다도 이스라엘 민족의 독립과 회복으로 이어질 하나님 나라를 꿈꾸던 그들에게,
시간과 장소와 방법 그 어떤 것도 본인들의 생각과는 다른

그래서 이해하기 힘든 방식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 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들은 혼란스러웠을 거고요.

또 맥이 탁 풀려 버렸을 겁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과부와 재판장의 비유를 통해서 격려해 주십니다. 1절 2절을 먼저 볼까요?

1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2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자 먼저 이 비유에는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나옵니다.

여기서 재판장이 등장하는 이유, 여기서 왜 하필이면 재판장이 등장할까?

그러면 이 재판장이라고 하는 직위는 과부의 요청에 답을 해야 될 법적 의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재판장이 과부의 요청에 답을 해야 되는 책임이 있듯이 

아마도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반드시 응답해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겁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반드시 응답을 해 주셔야 될까?
그것은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 삼아 주셨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낳으면 자녀를 양육할 의무가 있듯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로 삼으셨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셔야만 되는 거죠.


그런데 우리는 이 기도를 우습게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기도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택함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만 할 수 있는 특권이거든요.

물론 하나님께 택하심을 받지 않는 사람도 하나님께 도움을 청할 수 있어요.
그러나 그것은 기도가 아니라 구걸입니다.
기도는 특권입니다.

그래서 당당하게 사용해야 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런 특권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특권을 장롱에 넣어 두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특권은 사용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없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항상 기도하고 낙망하지 말라고 간단히 말씀하실 수 있지만 

이렇게 과부와 재판장의 비유를 들어서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것은 기도가 택함 받은 자들의 특권이라는 사실을 온전히 깨닫고,

그렇게 기도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지 않음을 아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기도는 우리만 특별히 그리스도인들만이 가지고 있는 특권입니다.
이 특권은 사용할 때에만 보호를 받습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 하나님께 모든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간청할 권리가 있음을 알고,

날마다 당당하게 하나님께 나아가 간구하는 저와 여러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이 등장하죠.

그 당시에 사회적 약자를 대표하는 한 과부가 나옵니다.
이 과부는요. 원수에게 억울한 일을 당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원한을 풀어달라고 재판장을 찾아갑니다.


그런데 얼마나 자주 찾아가서 간청했던지, 재판장이 그냥 질려 버리게 되죠. 4절 5절을 보세요.

4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5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여기에 번거롭게 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이 재미있습니다.
이 말의 원어는 '누디닉'이라는 말인데요.

이 말은 요즘 말로 고치면 '복싱 선수가 상대방의 눈알에 펀치를 날린다'라는 의미예요.
우리말로 쉽게 표현하면 '한방 먹였다'라는 뜻입니다.
아무 대비도 안 하고 있는데 갑자기 강펀치가 날아온 거예요.
재판장이 당한 강펀치는 과부의 말이나 논리나 법리 논쟁이 아니라, 그냥 과부가요. '왕~'하고 울어 버린 겁니다.
아마 이 재판장 내게는 너무나 뜻밖의 일이었을 겁니다.
처음에는 와서 그러다 말겠지 그랬는데, 하루 이틀이 아니라 매일 와서 우는 거예요.
말도 안 하고 울기만 합니다.
그러니까 재판장이 죽을 지경이죠. 

말이고, 논리고, 법리고 다 소용이 없습니다.
그냥 매일 와서 우는 거예요.
그 바람에 재판장도 두 손 두 발 다 드는 겁니다.
그래서 그녀의 '원한을 풀어 줘야겠다' 이렇게 결심하게 됩니다.

 

재판장이 과부의 간청을 들어준 이유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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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예수님께서는 7절과 8절에서 이 비유에 대한 해석과 가르침을 주시죠. 먼저 7절을 보겠습니다.

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여기 오래 참으시고 했느냐 이 말은 오래 참지 않겠다는 거죠 속히 응답해 주시겠다는 겁니다.
8절 상반 절을 볼까요?

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십니다. 그래서 기도는 응답입니다.
이 말처럼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바로 응답해 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라라고 말씀하시면서

과부와 재판장의 비유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들어주지 아니하겠느냐?라고 격려하시는 겁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속히 응답해 주신다는 약속이죠.

그래서 기도는 곧 응답을 전제로 합니다. 응답되지 않는 기도는 없지요.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곧바로 응답해 주시기 때문에 나온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항상 기도하고 낙망하지 말라 이렇게 말씀만 하시지 않고,
과부와 재판장의 비유 이 이야기를 우리에게 해주시면서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시지 아니하시겠느냐?라고 말씀하신 것은요.

과부가 계속해서 재판장을 찾아가서 번거롭게 하니까 그 원한이 해결되었듯이,

우리도 낙심하지 않고 계속해서 기도하면 재판장과 비교할 수 없는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응답해 주신다는 것에 대한 확증이죠.

 

사랑한 여러분 하나님 께서는요. 우리의 기도에 분명하게 응답해 주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우리가 신앙생활하다 보면 기도하다가 종종 중도에 포기할 때가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응답의 때를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즉 자기가 응답의 때와 응답의 방법을 정해 놓지요.

그리고 그때까지 응답이 없고 자기의 방법대로 일이 전개되지 않으면 그러면 실망하고 기도의 응답되지 않는다고 포기합니다.

 

그런데 기도는 우리가 해요. 그렇지만 응답은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그러기에 포기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때까지 

아니 하나님의 응답이 우리에게 이해될 때까지 기도해야 되는 겁니다.

 

제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깨달은 게 하나 있어요.
계속해서 믿고 구한 것은 하나님께서 다 주신다는 겁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그분의 방법대로 응답해 주시기 때문에 

낙심하지 말고 응답을 받을 때까지 기도하자 이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억울한 순간이 찾아올 때도 있어요.
그래서 우리의 힘으로 갚아 주고 싶고 복수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때 이 땅의 재림에 주로 오실 예수님께 최후의 판단을 맡기며 

오늘 우리는 주어진 인생의 경계를 최선을 향해 달려가는 겁니다.

그러면 이 경기가 끝나는 날, 심판의 주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각각 뿌린 것을 거두게 하시지 않을까요?

 

마지막 8절 하반절입니다.

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이 문장을 꼼꼼히 보면요 '그러나'라는 이 접속사를 기점으로 전과 후에 내용이 전혀 달라집니다.

 

그러나 그 전에는 우리가 기도하면 속히 원한을 풀어 주시겠다는 약속이에요.
그런데 그러나 그 후에는 마지막 때에는 세상에서 이런 믿음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겁니다.

여러분 이것은 주님의 한탄입니다.
그렇게 되기를 원하시지 않는 주님의 간절한 마음이 아닐까요?

 

사랑하는 여러분

힘없는 과부와 불의한 재판관의 싸움은 힘없는 과부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어떻게 힘없는 과부가 이겼을까요?
그의 힘으로 이겼습니까? 아니죠. 반드시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끝까지 재판장에게 매어 달렸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비록 가진 것 없고 힘도 없지만 믿음으로 하나님을 붙들고 끝까지 기도하면,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분명하게 응답해 주시고,

그리고 우리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항상 낙망하지 말고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님이 재림 하실 때 세상에서 보기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가요?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
아무리 환경이 어렵고 버거워도
우리의 기도가 우리의 시간과 방법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의 기도에 분명히 응답해 주실 것을 믿으며
낙심하지 않고 날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저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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