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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용과 믿음의 삶, 감사를 고백하는 삶(누가복음17:1~19)(2022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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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27. | 생명의 삶 | 임채영 목사                                                                                                         

 

관용과 믿음의 삶, 감사를 고백하는 삶

 

오늘 복된 주일입니다.

다른 날보다 더 큰 말씀에 풍성함이 여러분들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서울 아연동에 있는 서부 교회에 섬기고 있는 인채영 목사입니다.

한 주간 동안 생명의 삶을 통해서 여러분과 말씀을 통해 만나게 돼서 너무 감사하고 기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요. 누가복음 17장 1절부터 19절의 말씀입니다.

관용과 믿음의 삶, 감사를 고백하는 삶


누가복음 17장 1절에서 19절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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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2 그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할진대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3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4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5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6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7 너희 중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그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말할 자가 있느냐
8 도리어 그더러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9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11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12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13 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14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15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16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18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한 스승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분 밑에도요.

유다 같은 인물이 있는가 하면 베드로 같은 제자도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스승이 중요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제자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위대한 스승을 찾기 전에 '나는 진정한 제자가 되기 위해서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 하는 물음이 있어야 되지요.
그리고 그것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한 또 노력도 있어야 됩니다.


오늘 본문도 이 제자도에 관하여 말씀하고 있지요. 먼저 1 절을 보겠습니다.

1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예수님께서 먼저 제자들에게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지만' 이렇게 말씀하시죠.

여기서 '실족하게 하다' 이 말은 

'걸려 넘어지게 하다' 혹은 '죄를 짓게 하다'라는 의미 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실족하게 해서는 안되지만 이 세상에 이미 죄가 만연해 있고, 그리고 인간은 근본적으로 죄인이며 연약하기에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거죠.
그럼에도 주님께서는 '실족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가 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2절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시지요.

2 그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할진대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이 말씀은요.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집니다.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매여, 여기에서 그 목이 누구의 목일까요?
'실족하게 된 작은 자'라고 나오죠 그 사람일까요? 아니면 '실족하게 만든 사람'일까요?

 

새번역을 보면 보다 명확하게 번역되어 있어요.

이 작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를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보다 차라리 자기 목에 큰 맷돌을 매달고 바다에 빠지는 것이 나을 것이다. 즉, 실족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실족하게 하느니 차라리 연자 맷돌을 매고 바다에 빠져 죽는 것이 낫다고 하는 그러한 의미이지요.

즉, 예수님의 제자라면 자신에 대해서는 이렇게 엄격한 기준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다음 두 번째로는 요

예수님의 제자는 용서할 줄 아는 넓은 가슴을 가진 사람이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절이에요.

3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무조건 용서하라 는 말은 아닙니다.
'회개하거든'이라는 단서가 있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그런데 그 용서가 끝이 없어야 한다는 겁니다.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우리에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다 우리에게 회개하는 것처럼 보이면 그때마다 다 용서해 주라고 하는 거죠.
그 예수님의 제자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도 늘 엄격한 기준을 가지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늘 용서의 여유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이 부담을 느낀 것 같아요. 그래서 5절을 보시면

5 사도들이 주께 여쭈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여기에서 '우리에게 믿음을 더 하소서' 이 말씀의 의미는 '주님 주님의 말씀은 알겠는데 실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런 의미죠. 이에 대해서 우리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세요. 6절을 보십시오.

6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제자들은 지금 부담을 느끼고 믿음을 더 해달라고 구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거기에 응대하지 아니하시고요.

너희에게 겨자씨 만한 믿음이 있다면 뽕나무를 바다로 옮길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미 제자들 속에는 믿음이 있었다는 거죠.
그리고 이제는 그 믿음을 실행에 옮기라는 말씀입니다.
그 믿음으로 행할 때 이런 기적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믿음은요. 다음에 사건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예수님이 '사람'과의 관게에서 교훈하신 내용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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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단락이 시작됩니다. 11절부터 보시면요. 이야기가 나오죠.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 예루살렘으로 가시던 예수님이 열 명의 한센병 환자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벌어진 사건이
나옵니다.

'한샘 병' 

이것은 악성 피부병이고요. 

전염될 수도 있기 때문에, 늘 다른 사람들과는 격리되어 살 수밖에 없었죠. 그래서 14절을 보세요.

14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자 여기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사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쉽게 납득되지 않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먼저 병을 고쳐 주신 다음에 병이 나은 것을 보고, 그다음에 제사장에게 가서 확인받는 거거든요.
그런데 예수님 께서는요. 환자들을 고쳐 주시지도 않고, 그저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그 사람들이요.

예수님 말씀대로 제사장에게 갔고요.
가다가 병이 치유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이 주님의 역사에 방법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따라 행하니까 그 행함이 나온 결과라는 거죠.
말씀 따라 가보니까 아는 것이지, 알고 가는 길이 아닙니다
여러분 기억하세요. 믿음은요. 결과가 아니라, 결과를 만들어 내는 과정입니다.
믿음이란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그 말씀을 실천함으로써 완성됩니다.

 

문제는요 그다음입니다.

15절부터 보면 깨끗함을 입었던 한샘 병자 중에 열 사람이었거든요.

그런데 오직 한 사람만 예수님께 다시 돌아옵니다.
그리고 예수님 발에 엎드려 감사를 드리죠.

 

17절을 보세요.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믿음은 언제나 뜨거운 감사로 이어집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 그래서 예배는 믿음의 응답이죠.

나머지 아홉 명에게도 아마 감사의 마음은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분을 뵈러 가야지 감사해야지 생각했을 겁니다.
근데 오늘의 감사를 내일로 미루었어요.
그런데 그중 이 한 사람, 이 한 사람만은 그것을 미래로 둘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곧장 예수님께 달려온 겁니다.
다른 아홉 사람들은 은혜를 받는데 그쳤어요.
그 은혜는 감사로 표현되지 않았습니다.
은혜는요. 감사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것이 더 큰 은혜가 되어서 우리에게 돌아오지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로 표현하는 것, 이것을 예수님은 믿음 그렇게 말씀하세요. 그래서 18절 19절 보세요.

18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예수님께서 너의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세요.
결국 나머지 아홉 명은 병든 몸에서 깨끗함을 얻었지만, 영혼은 여전히 죄와 허물로 죽은 그 상태 그대로였다는 겁니다.
깨끗해진 육체는 언젠가는 죽게 되지요.
그리고 죽게 되면 그 영혼은 영원한 심판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이방인의 영혼은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 구원을 얻게 됩니다.
단지 육체의 질병만 해결한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 거죠.
이 감사의 영성이 그로 하여금 더 큰 기적의 영혼의 구원을 가져다 준거죠.

 

그래서 옛날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죠.

청교도들은 늘 이렇게 고백했다고 합니다.
촛불을 보며 감사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별 빛을 주시고,
별 빛을 보고 감사하는 이들에게 달 빛을 주시고,
달빛을 보고 감사하는 이들에게 태양 빛을 주시고,
태양으로 인하여 감사하는 이들에게는 태양빛도 필요 없는 천국을 주신다


오늘 이렇게 행동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로 표현하며 사시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고침을 받은 나병 환자 열 명 중에서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은혜의 하나님
오늘 말씀 앞에 우리의 삶을 되돌아봅니다.
남에 대해서는 넓은 마음으로 용서하며 우리 자신에 대해선 엄격하게
주님의 제자로서 살아가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못한다고 물러서지 않게 하시고
믿음으로 실천함으로 우리의 삶에서 기적을 이루며 살아가는 주님의 제자들이 되기를 원하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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