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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이 악인의 운명이라는 섣부른 단언 (욥기 18:1~21)

2021.11.04. | 생명의 삶 | 권오향 목사                                                                                                         

 

고난이 악인의 운명이라는 섣부른 단언

 

안녕하세요.

온누리 교회를 섬기고 있는 권오향 목사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고난 가운데 있는 자들을 보면 무슨 연유로 그러한 고난이 왔는지,

그 원인을 분석하고, 해석하고, 충고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태도는 고통당하는 자들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단정 지려고 하는 것은 선악과를 먹은 인간의 타락한 본성.
하나님의 자리에 대신 올라서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려는 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섣불리 판단하지 않으셨죠.
오히려 고난 가운데 슬퍼하는 자들을 위로하시고 품어주셨습니다.
우리 또한 예수님의 마음을 품은 위로자가 되길 바라면서, 오늘의 말씀 욥기 18장 1에서 21절 함께 묵상해보죠.

 

 

고난이 악인의 운명이라는 섣부른 단언


욥기 18장 1절에서 21절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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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아 사람 빌닷이 대답하여 이르되
2 너희가 어느 때에 가서 말의 끝을 맺겠느냐 깨달으라 그 후에야 우리가 말하리라
3 어찌하여 우리를 짐승으로 여기며 부정하게 보느냐
4 울분을 터뜨리며 자기 자신을 찢는 사람아 너 때문에 땅이 버림을 받겠느냐 바위가 그 자리에서 옮겨지겠느냐
5 악인의 빛은 꺼지고 그의 불꽃은 빛나지 않을 것이요

6 그의 장막 안의 빛은 어두워지고 그 위의 등불은 꺼질 것이요
7 그의 활기찬 걸음이 피곤하여지고 그가 마련한 꾀에 스스로 빠질 것이니
8 이는 그의 발이 그물에 빠지고 올가미에 걸려들며
9 그의 발 뒤꿈치는 덫에 치이고 그의 몸은 올무에 얽힐 것이며
10 그를 잡을 덫이 땅에 숨겨져 있고 그를 빠뜨릴 함정이 길목에 있으며

11 무서운 것이 사방에서 그를 놀라게 하고 그 뒤를 쫓아갈 것이며
12 그의 힘은 기근으로 말미암아 쇠하고 그 곁에는 재앙이 기다릴 것이며
13 질병이 그의 피부를 삼키리니 곧 사망의 장자가 그의 지체를 먹을 것이며
14 그가 의지하던 것들이 장막에서 뽑히며 그는 공포의 왕에게로 잡혀가고
15 그에게 속하지 않은 자가 그의 장막에 거하리니 유황이 그의 처소에 뿌려질 것이며

16 밑으로 그의 뿌리가 마르고 위로는 그의 가지가 시들 것이며
17 그를 기념함이 땅에서 사라지고 거리에서는 그의 이름이 전해지지 않을 것이며
18 그는 광명으로부터 흑암으로 쫓겨 들어가며 세상에서 쫓겨날 것이며
19 그는 그의 백성 가운데 후손도 없고 후예도 없을 것이며 그가 거하던 곳에는 남은 자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라
20 그의 운명에 서쪽에서 오는 자와 동쪽에서 오는 자가 깜짝 놀라리라

21 참으로 불의한 자의 집이 이러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의 처소도 이러하니라

 


오늘 본문은 에 친구 빌닷에 두 번째 발언입니다.
그도 처음에는 나름대로 정중한 태도로 을 위로하려 했지만, 
엘리바스에 대화를 옆에서 듣고 있다가 경색(梗塞) 국면(局面)에 다다르자 점점 격분하게 됩니다.

 

2 너희가 어느 때에 가서 말의 끝을 맺겠느냐 깨달으라 그 후에야 우리가 말하리라
3 어찌하여 우리를 짐승으로 여기며 부정하게 보느냐
4 울분을 터뜨리며 자기 자신을 찢는 사람아 너 때문에 땅이 버림을 받겠느냐 바위가 그 자리에서 옮겨지겠느냐

빌닷의 발언의 수위가 점점 넘어가고 있죠.
그는 욥을 향해

'이제 그만 입 다물고 재발 잠잠해라'

'어째서 우리를 짐승 취급하느냐'

'너는 네 분노 때문에 너 자신을 찢고 있다'
'그런다고 해서 뭐 달라질 게 있느냐?'
매우 직선적이고 신랄하게 을 꼬집습니다.
정작 고통을 당한 자는 인데 오히려 자신이 고통을 당한 것처럼 항변하는 거죠.

고통 속에 울부짖는 의 심정을 헤아리는 데는 별로 관심이 없고 오로지 자신에게만 집중한 탓입니다.


여러분 사람 사이에는 오고 가는 대화 가운데, 서로 간에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비로소 소통이 가능해집니다.
그런데 시종일관(始終一貫) 자신의 생각만을 옳다고 주장하다가는

그 대화는 당연히 이어질 수 없고요. 더 악화 대다가 관계만 단절될 수 있죠.

 

많은 경우 부부가 이혼을 하는 이유 중에 하나도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자신의 생각만을 주장하고 절대로 고집을 꺾지 않을 때 일 수 있는 거죠.
그런데 이는 비단 부부관계뿐만은 아닐 것입니다.
부모나 자녀 간에도, 직장에서, 또 교회 내에서도 마찬가지일 수 있죠.

 

'가족치료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사티어(Virginia Satir,1916~1988)라는 심리학자는
사람들의 의사소통 유형을 5가지로 나눠 있는데요.

그중에서 대체적으로 완고하고 독선적인 사람들은 비난형에 속한다고 합니다.
자기를 강하게 나타내려고 하고, 상대방에게 자신의 우월성을 과시하면서, 상대를 비난하려 하는 자
이러한 '자는 자신은 옳고 다른 사람은 다 틀렸다'는 흑백논리(黑白論理), 이분법적 사고를 가진 자들이죠.
더구나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이성적인 사고보다는 주로 자신의 감정에 의존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대화를 하다가 분노를 터트릴 확률이 높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대화가 원만할 수 있겠습니까?

 

어느 독일의 유한 병원에서는 환자들이 오랫동안 같은 병실에서 지나다 보니,

부딪치는 일도 생기고 분위기도 우울해져서
'사랑합니다',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이 세 마디만 하자는 캠페인을 벌였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훨씬 병실 분위기도 밝아지고, 훈훈해졌다는 거죠.

 

야고보서 1장 19절에서는

야고보서 1:19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 모두 빌닷의 말을 묵상해 보면서,
사람들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어떤지, 또 내가 하는 말에 비난이 섞여 있지는 않은지, 자칫 내 감정대로 내 생각대로 말을 내뱉다가 상처를 주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서 마음에 눈높이를 낮추는 것, 이것이 바로 슬기로운 언어생활이 아닐까요?

 

나와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을 존중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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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절부터 21절까지는 하나님을 떠난 악인들이 필연적으로 당하게 될 고통과 파멸의 모습들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빌닷을 '악인에 속한 자'라고 단정 지면서 간접적으로 회개를 촉구하고 있죠.
우선 빌닷이 하는 '악인의 운명'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죠.

 

5 악인의 빛은 꺼지고 그의 불꽃은 빛나지 않을 것이요
7 그의 활기찬 걸음이 피곤하여지고 그가 마련한 꾀에 스스로 빠질 것이니

악인은 결국 자기 꾀에 스스로 빠져 넘어지고 말 것이라는 겁니다.

 

11절에서 13절 보지요.

11 무서운 것이 사방에서 그를 놀라게 하고 그 뒤를 쫓아갈 것이며
12 그의 힘은 기근으로 말미암아 쇠하고 그 곁에는 재앙이 기다릴 것이며
13 질병이 그의 피부를 삼키리니 곧 사망의 장자가 그의 지체를 먹을 것이며

악인이 맞이 할 3가지 곤고함은 '공포''재앙''질병'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17절, 18절 보십시오.

17 그를 기념함이 땅에서 사라지고 거리에서는 그의 이름이 전해지지 않을 것이며
18 그는 광명으로부터 흑암으로 쫓겨 들어가며 세상에서 쫓겨날 것이며

악인의 결말을 말하고 있죠.


19절입니다.

19 그는 그의 백성 가운데 후손도 없고 후예도 없을 것이며 그가 거하던 곳에는 남은 자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라

자손 대대로 미칠 부정한 영향력입니다.
참으로 빌닷이 말하고 있는 악인의 운명이란 비참하기 그지없죠?

 

그러나 여러분 모든 고난이 악인의 운명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습니다.
세상에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수도 없이 일어나죠?


아무 잘못이 없는데 교통사고 당하기도 하고, 생각지도 않은 질병에 걸리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하기도 하고,

모든 것이 다 내 잘못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억울하고 받아들이기 힘든 일도 부지기수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이 악인의 운명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너무 섣부른 단언이겠죠.
지금 빌닷은 인간고라는 프레임으로만 욥을 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운명론적인 생각에만 몰두해 있는 거죠.

 

그런데 사실 우리들 안에도 이러한 인과응보적인 생각이 자동적으로 작동할 때가 많습니다.
느닷없이 어려움을 당하면 아이고 내가 뭘 잘못했나?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기지?라고 자동적으로 생각하고요.
또 어떤 사람에게 문제가 생기면

'저건 분명히 뭔가 잘못된 것이 있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저런 일이 이어 날 수 없어'

라고 자동적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동적 사고는요. 대부분 왜곡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요.
무엇이든 이분법적으로 판단하는 것이고, 미래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지나친 감정적 추론에 빠질 수 있습니다.
빌닷과 같이 자신이 믿고 있는 교리에만 직착 하니까 자신의 생각을 굽힐 수 없었고 의 아픔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거죠.
참으로 사람의 생각이 무서운 결과를 낳을 수 있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각은 하나님이 진리의 말씀 앞에 새로워져야 되고,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교정되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에서는

히브리서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한다'라고 합니다.
아무리 굳은 생각이라 할지라도 날 선 검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뜨릴 수 있습니다.

 

혹시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 때문에 관계에 문제가 생겼다면 하나님께 나아가 여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에 임할 때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신념이나 신조나 교리들도 수정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을 당할 때 내가 욥처럼 비난받게 된다면 어떻게 반응할까요?

 

사랑의 하나님
오늘도 내가 한 말로 인해 상처 받은 자가 없는지 돌아봅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좀 더 이해하고 헤아릴 수 있는 선한 말들을 사용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 앞에 우리의 모든 생각을 내려놓게 하시고 
주님을 온전히 따르는 자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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