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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같은 절망에서 필요한 참된 위로자 (욥기 17:6~16)

2021.11.03. | 생명의 삶 | 권오향 목사                                                                                                         

 

죽음 같은 절망에서 필요한 참된 위로자

 

안녕하세요 

온누리 교회를 섬기는 권오향 목사입니다.
덴마크의 철학자 쇠렌 오뷔에 키르케고르(1813~1855 Søren Aabye Kierkegaard)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말을 남겼죠.
그리고 이 병에 걸리는 존재는 오로지 인간뿐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희망을 잃는 것처럼 무서운 일은 없습니다.
희망을 잃는다는 것은 삶에 대한 소망을 잃어버린 것이고,

삶에 대한 소망을 잃어버린다면 죽음을 생각할 수 밖에 없겠죠.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또 다른 시작 이라고도 할 수 있죠.

절망 가운데 때로는 죽음을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죽음 너머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 모두 승리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함께 묵상할 말씀은 욥기 17장 6에서 16절 입니다.

 

죽음 같은 절망에서 필요한 참된 위로자


욥기 17장 6절에서 16절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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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하나님이 나를 백성의 속담거리가 되게 하시니 그들이 내 얼굴에 침을 뱉는구나
7 내 눈은 근심 때문에 어두워지고 나의 온 지체는 그림자 같구나
8 정직한 자는 이로 말미암아 놀라고 죄 없는 자는 경건하지 못한 자 때문에 분을 내나니
9 그러므로 의인은 그 길을 꾸준히 가고 손이 깨끗한 자는 점점 힘을 얻느니라
10 너희는 모두 다시 올지니라 내가 너희 중에서 지혜자를 찾을 수 없느니라

11 나의 날이 지나갔고 내 계획, 내 마음의 소원이 다 끊어졌구나
12 그들은 밤으로 낮을 삼고 빛 앞에서 어둠이 가깝다 하는구나
13 내가 스올이 내 집이 되기를 희망하여 내 침상을 흑암에 펴놓으매
14 무덤에게 너는 내 아버지라, 구더기에게 너는 내 어머니, 내 자매라 할지라도
15 나의 희망이 어디 있으며 나의 희망을 누가 보겠느냐

16 우리가 흙 속에서 쉴 때에는 희망이 스올의 문으로 내려갈 뿐이니라


욥의 탄식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회자되어 입방아에 오르내리게 되고,

심지어 사람들로부터 심한 모욕을 당하게 되니, 너무나 비참하고 죽을 것만 같다고 하소연을 하는 것이죠.
이 세상에 달랑 혼자 남은 것 같은 외로움이 정말이지 그를 아주 절망스럽게 합니다.

 

욥은 친구들 향해 다시 한번 자신에 무죄함을 간절히 호소하고 있는데요. 8절, 9절입니다.

8 정직한 자는 이로 말미암아 놀라고 죄 없는 자는 경건하지 못한 자 때문에 분을 내나니
9 그러므로 의인은 그 길을 꾸준히 가고 손이 깨끗한 자는 점점 힘을 얻느니라

어떤 일이 있어도 끝까지 자신의 의로움을 증명해 보이겠다는 굳은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마치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서 법정에 선 피고인과 같다고도 할 수 있죠.
그러고는 친구들을 향해 10절인데요.

10 너희는 모두 다시 올지니라 내가 너희 중에서 지혜자를 찾을 수 없느니라

라고 하면서, 고난의 원인을 무조건 죄로만 보고, 욥을 비난하는 친구들의 논리에 정면 대응을 합니다.
지금 욥은 자신이 처한 고난을 통해서 아주 처절하게 인간 실존의 문제를 안고 하나님과 씨름하고 있는 중이었지만,
친구들은 오로지 조상 때부터 내려오는 전통, 그리고 그들이 믿고 있는 신조만을 붙들면서 나열하고 있을 뿐인 거죠.
욥의 친구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생각과 경험, 전통에만 갇혀 있습니다.
물론 이들이 주장하는 인과응보의 원리는 우리 인간 사회에서 일어나는 아주 보편적인 원리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천편일률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적용하는 것은 순전히 그들의 편협한 생각이요. 고집일 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욥기를 통해서 우리가 신기한 것을 발견하는데,
고통 속에서 부르짖는 욥에게는 차츰차츰 조금씩 영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반면에,
욥의 친구들에게는 전혀 변화가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욥은 소모적으로 보이는 이 논쟁을 통해서 조금씩 하나님께 나아가고 있지만,
친구들은 여전히 자신의 교리에 갇혀서 조금의 갱신의 여지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욥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친구들은 남에게 들은 이야기 남의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죠.

욥과 새 친구들의 대화가 영원히 평행선을 그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이러한 안타까움이 비단 욥에 친구들에게만 있는 건 아니죠.

우리들 안에도 굳은 생각과 신념으로 인해서 세월이 가도 전혀 변하지 않는 고집스러움이 있습니다.
하나님조차도 들어오실 틈이 없는 거죠.
지역 간에 또 정당 간에 또 심지어 부부간에 일치가 되지 않는 이유도 바로 이런 연유가 아닐까 싶네요.

 

베드로전서 2장에서는 고난에 3가지 종류의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억울하게 당하는 고난, 죄로 인한 고난, 선을 행하다가 받는 고난이죠.

그렇기에 우리는 함부로 고난의 원인을 분석하거나 파 해치려 해서는 안 되겠죠.
다만, 고난당한 자와 함께 울 수 있는 마음만이 필요할 겁니다.

 

내가 비난을 그치고 참된 위로를 전할 친구는 누구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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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욥은 영적인 변화를 겪는 과정 가운데에 영혼에 어두운 밤을 경험하게 되는데요.
그의 영혼은 차츰차츰 꺼져가는 등불 마냥 점점 희망을 잃어가고 있고, 그 가운데 바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죽음뿐이었습니다.
그가 얼마나 죽음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되었는지, 13절에서 16절까지를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13 내가 스올이 내 집이 되기를 희망하여 내 침상을 흑암에 펴놓으매
14 무덤에게 너는 내 아버지라, 구더기에게 너는 내 어머니, 내 자매라 할지라도
15 나의 희망이 어디 있으며 나의 희망을 누가 보겠느냐
16 우리가 흙 속에서 쉴 때에는 희망이 스올의 문으로 내려갈 뿐이니라

욥의 현실이 얼마나 비참하던지, 죽음 이외에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지경이 된 것입니다.
찬란했던 그의 믿음은 간 곳 없고, 지금 욥이 묵상하고 있는 것은 죽음뿐이죠.
욥은 지금 아주 깊은 영적 침체 가운데 빠져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욥뿐만 아니라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이러한 영적 침체를 겪었음을 성명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우선 엘리야를 생각해보죠.
엘리야는 선지자 중에도 선지자, 선지자들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그가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들을 상대로 하여서 압승을 거 둔 후에 아합 왕의 아내 이세벨의 위협을 받고는 쫓김을 당하면서 하나님께 하소연하죠.

열왕기상 19:4
19:4 혼자서 하룻길을 가서 광야에 다다랐습니다. 그는 로뎀 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기도했습니다. “여호와여, 이제 이것으로 충분하니 제 목숨을 가져가 주십시오. 저는 저의 조상들보다 나은 것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도 여러 지역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다가 얼마나 심한 핍박을 받았는지,

고린도후서 1:9
1:9 우리는 마음에 사형선고를 내려야 했습니다. 그렇게 된 것은 우리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죽은 사람들을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내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것 같다'라는 표현을 합니다.

 

다윗왕도 사울에게 쫓기면서 죽음 직전까지 내몰리는 상황 가운데,

시편 39:4
39:4 “오 여호와여, 내 마지막을 보여 주소서. 내가 얼마나 더 살지 보여 주소서. 내 인생이 얼마나 덧없는지 알려 주소서.

'하나님이여 내 마지막을 보여주소서, 내가 얼마나 더 살지 보여주소서, 내 인생이 얼마나 덧없는 지를 알려주소서'

라고 탄식을 합니다.

 

이와 같이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도 죽음 밖에는 생각할 수밖에 없는 영원의 어두운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영혼의 어두운 밤이라고 부르는 영적 침체 시간은 우리에 내면을 재정비하고, 우리로 하여금 더 깊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 누리며 살도록 부르시는 하나님의 초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영혼의 어두운 밤을 통해서 우리 안에 있는 교만과 탐욕과 사치, 분노, 태만 등을 보게 하시고,
이로 인해서 생긴 망상, 집착, 중독으로부터 자유케 하시려는 거죠.
하나님을 향한 내 열심히 아닌, 하나님의 열정으로 되살아날 수 있도록 도우시는 하나님의 특별 코스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혹시 여러분들 가운데 도 이 영혼에 어두운 밤을 지나고 계시는 분이 있으십니까?
너무 어둡고 너무 차가워서 '이러다 죽는 거지'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혼의 어두운 밤 조차도 하나님 안에서는 값진 보물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흑암 중에 보화를 캐내는 시간이 될 수 있다는 거죠.
어둠의 한 복판에서 사랑하는 주님을 만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죽음 가까이에서 삶의 의미를 깊이 느낀 것은 언제였나요?

 

하나님 아버지
때로는 휘몰아치는 폭풍우 속에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어둠 속에서만 발견될 수 있는 보물을 보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하나님이 예비하신 다음 과정으로 들어갈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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