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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당하는 이의 탄식을 무익하다 하지 마십시오 (욥기 15:1~16)

2021.10.30. | 생명의 삶 | 안광복 목사                                                                                                         

 

고난당하는 이의 탄식을 무익하다 하지 마십시오

 

안녕하세요
청주 상당 교회를 섬기는 안광복 목사입니다.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로 유명한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 ~ 1975)는

악의 본질을 무사유 즉 '타인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의 결여'라고 정의한 바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욥의 친구들의 문제는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고 같은 관점으로 바라 보지를 못 한다는 사실이죠.
이런 우리의 모습들이 누군가에게 상처나 아픔을 주기도 하지만, 좀 더 확장되면 더 큰 죄나 악으로도 발전할 수 있음을 우리는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욥기서 15장 1절에서 16절의 말씀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고난당하는 이의 탄식을 무익하다 하지 마십시오


욥기 15장 1절에서 16절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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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대답하여 이르되
2 지혜로운 자가 어찌 헛된 지식으로 대답하겠느냐 어찌 동풍을 그의 복부에 채우겠느냐
3 어찌 도움이 되지 아니하는 이야기, 무익한 말로 변론하겠느냐
4 참으로 네가 하나님 경외하는 일을 그만두어 하나님 앞에 묵도하기를 그치게 하는구나
5 네 죄악이 네 입을 가르치나니 네가 간사한 자의 혀를 좋아하는구나
 
6 너를 정죄한 것은 내가 아니요 네 입이라 네 입술이 네게 불리하게 증언하느니라
7 네가 제일 먼저 난 사람이냐 산들이 있기 전에 네가 출생하였느냐
8 하나님의 오묘하심을 네가 들었느냐 지혜를 홀로 가졌느냐
9 네가 아는 것을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이 무엇이냐 네가 깨달은 것을 우리가 소유하지 못한 것이 무엇이냐
10 우리 중에는 머리가 흰 사람도 있고 연로한 사람도 있고 네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도 있느니라
 
11 하나님의 위로와 은밀하게 하시는 말씀이 네게 작은 것이냐
12 어찌하여 네 마음에 불만스러워하며 네 눈을 번뜩거리며
13 네 영이 하나님께 분노를 터뜨리며 네 입을 놀리느냐
14 사람이 어찌 깨끗하겠느냐 여인에게서 난 자가 어찌 의롭겠느냐
15 하나님은 거룩한 자들을 믿지 아니하시나니 하늘이라도 그가 보시기에 부정하거든
 
16 하물며 악을 저지르기를 물 마심 같이 하는 가증하고 부패한 사람을 용납하시겠느냐

 

15장부터 21장까지가 이제 2차 논쟁의 시작입니다.
욥에 새 친구들과 욥과의 두 번째 라운드가 시작이 된 것과 마찬가지죠.
그의 첫 포문은 엘리바스가 엽니다.
1차 때 연장자로서 자신의 경험을 말하면서 다소 좀 완곡한 표현으로 이야기를 했던 엘리바스가 2차 때부터는 아주 매섭게 욥을 쏘아붙입니다. 공격을 하기 시작하죠.
특별히 눈에 띄는 표현이 나와요.

4 참으로 네가 하나님 경외하는 일을 그만두어 하나님 앞에 묵도하기를 그치게 하는구나

'네가 하나님 경외하는 것도 그치고 기도하는 것도 그 치려고' 하는구나 라는 거예요.
'너 하나님 경외하는 것을 그치면 안 되지'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여러분 욥이 누구입니까?
1장 1절을 보면 욥의 대해서 이렇게 묘사하죠.

욥기 1:1
우스 땅에 욥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이 네 가지 욥에 대한 이 평가는 하나님께서 사단과 내기를 하실 때에 욥을 하나님께서 정확하게 이 네 가지 표현으로 소개하세요.

두 번에 걸쳐서 

욥은 온전하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자였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그렇게 욥을 인식하고, 욥을 신뢰하고 계셨던 것이죠.
즉, 언제나 하나님을 의식하고 인정할 줄 알았던 사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신뢰할 줄 알던 사람,

더 나가서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섬길 줄 알았던 사람,

하나님을 경외할 줄 아는 사람에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욥이지요.

 

그런데 엘리바스가 욥을 평가합니다.

'아 당신이 그러면 안되지, 당신은 예수께서 하나님을 경외해야지'

 

여러분 엘리바스 가 이러한 말을 할 자격이 있을까요? 엘리바스는 참 교만한 사람입니다.
상대방에 대한 비난 그리고 조롱, 때론 욥의 수치심을 자극하기도 하고, 냉소적인 신문으로 공격을 해 들어오죠.


7절과 8절입니다.

7 네가 제일 먼저 난 사람이냐 산들이 있기 전에 네가 출생하였느냐
8 하나님의 오묘하심을 네가 들었느냐 지혜를 홀로 가졌느냐

제일 먼저 난 사람, 이건 최초의 사람 아담을 말하는 게 아니고요.

신화적 배경에 언급되는 창조에 앞서 지원받은 초인과 같은 그런 존재, 아주 특별한 존재

'네가 그런 사람이냐?' , ' 네가 그렇게 잘났냐?' , '네가 산이 생기기 전서부터 있었냐?' , '혼자 똑똑하냐?'

하면서 아주 거세게 쏘아붙이죠.

 

9절과 10절입니다.

9 네가 아는 것을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이 무엇이냐 네가 깨달은 것을 우리가 소유하지 못한 것이 무엇이냐
10 우리 중에는 머리가 흰 사람도 있고 연로한 사람도 있고 네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도 있느니라

엘리바스는 무척 교만한 사람입니다.
왜 그렇게 교만하게 행동할까요?
자기가 똑똑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가 나이가 많다. 자기가 이 세다. 자기가 이 많다.
그러면 사람들은 우쭐거립니다.
목에 힘이 들어 가지요.

아주 쉽게 비교하고 쉽게 사람들을 평가하고 하대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다.

하나님은 교만한 사람을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뿐이시겠어요?

사람들도 마찬가지예요.
우리 주변에 그 어떤 사람도 교만한 사람을 좋아하거나 친하게 지내려고 하는 사람은 없어요.

 

우리 안에 있는 이 교만한 모습들 어떻게 하면 벗어버릴 수가 있을까요?
자신의 주제를 잘 파악하고, 해야 될 말과 하지 말아야 될 말들을 잘 분별할 줄 아는 그런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욥에 친구들을 보면서

야 우리 주변에 이런 친구들이 있으면 참 힘들겠다 참 고생스럽겠다 라는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또는, 내가 혹시 이런 친구가 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아픔을 주거나 상처를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될 수도 있겠구나. 더더욱 내 말에 있어서 행동에 있어서 주의를 기울이고 조심해야 될 그런 필요를 느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절대로 교만하거나 무례한 사람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언제나 하나님 주님의 성품을 본받는 겸손하고 지혜로운 그런 온유한 성품의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올바른 논쟁을 위해 내가 앞뒤 맥락을 더 신중하게 고려해야 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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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바스의 교만함은 상대방에 대한 아주 무례한 말과 행동으로 비난을 하더니,

이제 급기야는 상대방을 정죄합니다. 12절, 13절입니다.

12 어찌하여 네 마음에 불만스러워하며 네 눈을 번뜩거리며
13 네 영이 하나님께 분노를 터뜨리며 네 입을 놀리느냐

'어찌하여 네가 불만스러워하느냐? 어찌하여 네가 함부로 하나님 앞에 입을 놀리느냐?'라는 겁니다.
친구라고 하지만 욥의 입장을 조금도 이해해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엘리바스와 친구들은 욥을 찾아와서 자꾸만 답을 주려고 하죠.

'네가 이렇게 된 것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을 해결해라.

숨겨놓은 죄가 있기 때문이 아니냐. 빨리 죄를 고백해라.

이실직고해라. 네가 뭘 안다고, 뭘 잘했다고 하나님 앞에 지금 불평하고 원망하냐?'

 

욥에게 상처를 주는 말들을 계속해서 집중포화를 하더니, 급기야는 욥을 악인으로 매도합니다. 16절 말씀

16 하물며 악을 저지르기를 물 마심 같이 하는 가증하고 부패한 사람을 용납하시겠느냐

'악을 물처럼 마시는 사람'

악을 행하는 것이 너무 쉽고, 편하고 자주 있는 바로 그런 사람 욥이 바로 그런 사람이라는 거예요.

엘리바스'너에게 죄가 있어서 그렇다'라고 시작을 하더니,

이제는 아예 대놓고 '악한 인간, 못된 놈, 악한 놈'이라고 그렇게 정죄를 합니다.

 

여러분 잘 생각해 보십시오.

죄가 있는 것과 악이 있는 것은 다릅니다.
죄인과 악인은 좀 달라요.
악한 사람은 다 죄가 있기 마련이지만, 죄인이라고 해서 다 악인이라고 볼 순 없어요.

물론 하나님의 관점으로 볼 때는 죄인은 곧 악인이지만,

인간적인 여러 가지 관점으로 볼 때는 분명히 죄를 지었어요. 사람을 해쳤어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그런 상황에서 정당방위 일수도 있고요.
더 큰 악을 막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죄를 짓는 그런 경우들도 있죠.
그런데 죄인은 곧 악인이고, 욥은 죄가 있어서 그렇다니,

아예 못 된 인간, 악한 놈이라고 까지 그렇게 정죄를 하고 있어요.
친구들이 참 무례하죠.
무지한 것을 넘어서서 이것은 오히려 정말 그들이 악하기까지 한 그런 모습을 봅니다.

 

여러분 욥기서를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
누군가를 위로한다는 것이 참 쉬운 일이 아니구나, 쉬운 일이 아니구나. 함부로 위로하지 말라라는 거예요.
정답을 이야기한다고 위로가 되는 게 아니죠.
여러분 인간의 말도 그렇습니다.

위로가 되지를 않아요. 오히려 그럴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로를 할 필요가 있어요.

 

며칠 전에 장례의식을 치렀는데, 50대 초반의 가장입니다.

직장에서 갑자기 호흡곤란이 와서 그냥 갑작스럽게 숨을 거두시고 세상을 떠나셨어요.
얼마나 정말 고통스러운, 그리고 비극적인 그런 일입니까?
혼자 남으신 아내 되시는 분, 또 따님, 가서 장례를 치르고 위로하려고 하는데 정말 선 듯 위로의 말이 떠오르지를 않더라고요.

당연히 목회자로서 하나님 말씀을 전했지요.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그런 하나님의 말씀조차도 튕겨나가고 거부가 되는 어떤 그런 경우도 있을 겁니다.
그럴 때에는 교우들이 가서 다른 어떤 말 말고 그냥 조용히 손을 잡아주시고 따뜻하게 품에 한번 안아 주시는 것은 어떨까요?
여러분 누군가를 위로한다는 것은 이처럼 참 어려운 그런 일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각자가 살아오면서 각자가 또 갖고 있는 여러 가지 고통이나 아픔들이 있죠.

그런데 오히려 그런 아픔들이, 내가 겪었던 아주 특별한 그런 고난들이

누군가를 또 위로할 수 있는 또 다른 어떤 기회가 되고, 도구가 된다는 거예요.

크게 파산을 한번 했거나, 재산을 한번 날렸거나,

조금 전에 얘기했던 것처럼 정말 남편을 잃었거나, 아니면 가족을 잃었던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그 속상한 그 아픔, 그 쓰라린 그 기억을 통해서도 오히려 누군가를 위로해 줄 수 있는 상처 받은 위로자가 될 수도 있다 라는 것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국교회가 이 코라나 팬데믹으로 위기 가운데 있는 이 한국사회에 새로운 소망을

그렇게 선포하고 외쳐 지기를 바랍니다.
과거에도 국난, 여러 가지 어려움 재난이 있으면, 

성도들이 교회에 모여서 뜨겁게 찬양하고 하나님 앞에 뜨겁게 기도했던 그런 경험과 기억들 우리는 갖고 있어요.
그런데 이 코로나 19, 이 어려운 팬데믹 상황 속에서는 우리가 같이 모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뜨겁게 부르짖고 기도하지도 찬양할 수도 없는 그런 딱한 그런 상황에 놓여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국교회가 회복이 되고, 교회가 다시 일어서는 놀라운 은혜가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 섬기는 모든 교회마다, 다시 예배가 회복이 되고, 은혜가 회복이 되고, 말씀이 정말 충만한 그런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교회의 영광과 또 복음에 능력이 힘 있게 선포되는 그런 날들이 펼쳐지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한분 한분 말씀으로 다시 회복되시고, 일어서시고, 주변에 있는 성도들 손을 붙잡고 일으켜 세워 주시고, 

또 믿지 않는 이 시대에 많은 정말 하나님의 놀라운 복음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생명의 말씀을 증거하고

대한민국을 다시 바꾸는 놀라운 회복의 역사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힘내시고 

다시 주님 앞에서 일어서시고 힘차게 주님을 향해 달려 나가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는 고난당하는 친구의 허물을 들춰내거나 질책하지는 않나요?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고난의 시간들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힘들고 어려운 주변의 이웃들을
어떤 말과 태도로 위로해야 할지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고 겸손한 사람들로 살게 하여 주옵소서
상처 입은 치료자가 되어서 나를 통해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전하게 하시고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힘을 잃고 있는 한국교회를 다시 일으켜 주시사
복음의 능력과 교회의 영광을 다시 회복하고 
다시 견고하게 세워지는
성령의 역사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존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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