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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죄와 허물을 내게 알게 하소서 (욥기 13:20~28)

2021.10.27. | 생명의 삶 | 안광복 목사                                                                                                         

 

나의 죄와 허물을 내게 알게 하소서

 

안녕하세요.

청주 상당교회를 섬기는 안광복 목사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다양한 모습으로 묘사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
'하나님은 나의 피난처', '나의 산성', '피할 바위'
'하나님은 내 인생의 주인', '나의 사랑하는 영적 아버지'

자 하나님을 이렇게 우리가 고백하고 표현하지만 

혹시 '하나님은 나의 원수', '나의 대적자' 여러분 상상이나 해 보셨습니까?
물론 말도 되지 않는 편이지요.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의 욥은 하나님을 그렇게 느끼고 있습니다.
정확하게는 하나님이 자신을 그렇게 여기신다는 겁니다.
원수, 대적자 그런 욥의 마음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얼마나 두렵고 속상하겠습니까?
계속되는 욥의 안타까운 상황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함께 나눌 말씀 욥기 13장 20절에서 28절까지의 말씀입니다.

 

나의 죄와 허물을 내게 알게 하소서

 

욥기 13장 20절에서 28절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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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오직 내게 이 두 가지 일을 행하지 마옵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얼굴을 피하여 숨지 아니하오리니

21 곧 주의 손을 내게 대지 마시오며 주의 위엄으로 나를 두렵게 하지 마실 것이니이다
22 그리하시고 주는 나를 부르소서 내가 대답하리이다 혹 내가 말씀하게 하옵시고 주는 내게 대답하옵소서
23 나의 죄악이 얼마나 많으니이까 나의 허물과 죄를 내게 알게 하옵소서
24 주께서 어찌하여 얼굴을 가리시고 나를 주의 원수로 여기시나이까
25 주께서 어찌하여 날리는 낙엽을 놀라게 하시며 마른 검불을 뒤쫓으시나이까

26 주께서 나를 대적하사 괴로운 일들을 기록하시며 내가 젊었을 때에 지은 죄를 내가 받게 하시오며
27 내 발을 차꼬에 채우시며 나의 모든 길을 살피사 내 발자취를 점검하시나이다
28 나는 썩은 물건의 낡아짐 같으며 좀 먹은 의복 같으니이다

 

12장에서 시작된 욥의 변론은 친구들을 향해서 아주 구체적이고 당당하게 그렇게 진행이 되다가 오늘 본문 이제 13장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이제 하나님을 향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항변하는 그의 이야기들을 함께 살펴보시죠.


20절, 21절 말씀입니다.

20 오직 내게 이 두 가지 일을 행하지 마옵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얼굴을 피하여 숨지 아니하오리니
21 곧 주의 손을 내게 대지 마시오며 주의 위엄으로 나를 두렵게 하지 마실 것이니이다

욥의 두 가지 부탁은 무엇입니까?
나에게 손을 대지 마시라. 또 나를 두렵게 하지 마시라.
'당신의 손을 거두어 주십시오. 그리고 나를 불러 주십시오. 제가 대답하겠습니다.
저도 하나님 앞에 여쭤볼 것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도 대답해 주십시오.'
마치 법정에 들어서서 내가 당당하게 정당하게 신문을 받겠다 라는 그런 의미처럼 여겨져요.

 

손을 대지 마십시오.
여러분 성경에서 등장하는 하나님의 손은 

대부분 구원의 손, 도움의 손, 하나님의 강한 손과 편 팔로 약한 자들 하나님의 백성들을 친히 도우시고 보호해 주시는 그런 하나님의 손길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욥을 혼내시고 심판하시는 즉, 고통을 주시는 손으로 묘사가 돼요.

공동번역에서는

20 당신의 주먹을 거두어주소서. 당신의 진노를 거두시어 두려워 떨지 않게 하여 주소서.
21 그리고 어서 말씀하소서. 서슴없이 답변하겠습니다. 아니면 내가 말씀드리겠사오니 대답하여 주소서.

'당신의 주먹을 거두어주소서' 주님의 손이, 하나님께서 나를 혼내시고 나를 때리시고, 나를 아프게 하십니다 라는 거죠.

 

두 번째는 나를 두렵게 하신다.
하나님이 두려움의 대상, 공포의 대상이 되어 버렸어요.

하나님께서, 참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하나님을 예배하며 살아왔던 욥이 

그 하나님이 너무 두렵다는 거예요. 무섭다는 거예요.
'하나님 답답합니다. 말씀 좀 해주십시오. 제가 대답할 테니, 뭐라고 말씀 좀 해주세요.' 뭐 이런 거죠.


22절부터 24 절입니다.

22 그리하시고 주는 나를 부르소서 내가 대답 하리이다 혹 내가 말씀하게 하옵시고 주는 내게 대답하옵소서
23 나의 죄악이 얼마나 많으니 이까 나의 허물과 죄를 내게 알게 하옵소서
24 주께서 어찌하여 얼굴을 가리시고 나를 주의 원수로 여기시나이까

자 욥의 질문

'이 고난에 대해서 대답해 주십시오'
'하나님 아니 제 죄와 허물이 그렇게 많습니까? 왜 얼굴 가시고 나를 이렇게 원수처럼 대하십니까?'
원수 또는 대적

 

여러분 인간은요

가장 가까운 사람, 가장 사랑하는 사람, 가장 친밀한 사람

그들과 좋은 관계를 누릴 때 행복감을 누리죠.

행복하게 생각하고 그런 삶을 살죠.

그런데 가장 가까운 사람, 가까워야 될 그런 사람이 관계가 틀어진다.

매일매일 같이 만나는 직장동료 아니 직장 상사가 나를 째려본다 나를 대적처럼 여긴다.

부부가 서로 간에 원수처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그런 모습처럼 만약에 지낸다면 얼마나 큰 비극이겠습니까?

 

지금 욥의 고통은

자녀를 잃었어요. 재산을 다 날렸어요. 그리고 온몸에는 피부병으로 말할 수 없는 극심한 고통 가운데 있습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것이 너무 답답한 거예요.

왜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원수와 같은 관계가 되었는가?
그것으로 인해서 아파하지요.


자 25절입니다.

25 주께서 어찌하여 날리는 낙엽을 놀라게 하시며 마른 검불을 뒤쫓으시나이까

'어찌하여 날리는 낙엽, 마른 검불 같은 저를 이렇게 힘들게 하십니까? 도대체 무슨 이유 때문입니까?
왜 저를 이렇게 원수처럼 대하시는 겁니까?

하나님 도대체 이유가 뭡니까? 말씀 좀 해주십시오. 답답해서 정말 미쳐버릴 지경입니다.'

 

욥의 이 속상한 마음

여러분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리 마음속에 도 같이 전달이 되는 것 같아요.

너무나도 안타깝고, 절박한 이 욥의 탄식 계속해서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온전한 교제를 위한 조건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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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자 26절 27 절입니다 

26 주께서 나를 대적 하사 괴로운 일들을 기록하시며 내가 젊었을 때에 지은 죄를 내가 받게 하시오며
27 내 발을 차꼬에 채우시며 나의 모든 길을 살피사 내 발자취를 점검하시나이다

'나를 대적 하사'

하나님이 나를 대적하신데요.

하나님이 전적으로 나를 주목하시고, 대적하시면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하나님을 흔히 '의의 태양이시다'라고 그렇게 우리는 표현할 수 있어요.
그 태양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생명을 얻죠. 소생케 되죠.

그런데 그 태양이 한 방향으로만 그 빛을 투사하고 주목한다면, 아마 견딜 수 있는 생명체는 없을 겁니다.

모든 것이 금방 소멸되고, 태워지고, 말라 비틀어 버리겠죠.

 

욥은 지금 비슷한 고통을 토로합니다.

괴로운 일들을 기록하셨다.

어릴 때 지은 죄를 기억하셔서 죗값을 받게 하신다.

기록이란 단어, 기억이란 단어를 연상해 볼 수가 있어요.
어릴 때 지었던 작은 실수나 과오들 그것까지 다 들추신다.

그 발을 착고에 채우시고, 모든 길을 살피시고 발자취를 점검하신다.

이 뜻은 발이 자유롭게 걷지 못하게 하다

즉, 족쇄를 채워서 움직이지 못하게 하다 라는 그런 뜻입니다.

왜 이렇게까지 하실까? 하나님 너무 하지 않으십니까?라는 거예요.

 

의롭다고, 무죄하다고 주장하던 욥이,

어렸을 때의 기억을, 어렸을 때 지었을 것 같은 그런 죄를 떠올립니다.

그리고 정말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될 필요가 있을까? 싶은 부분에 대해서 인정을 하지요.

'아 하나님 그 죄 때문입니까? 어렸을 때 지었을 그 죄악, 그 실수, 과오 때문에 그럽니까?'
욥이 어린 시절 자신의 죄를 생각해서 드디어 찾아냅니다.

'예 맞습니다. 아 그렇군요. 저는 죄인입니다.'
지금 그런 의미가 아니에요.

 

마침내 욥이 자신의 죄를 찾아냈구나. 드디어 탈 탈 털리더니 드디어 자백을 하는구나.

그런 의미가 아니에요.
어거스틴의 참회록에 보면, 어린 시절 배를 훔쳐 먹었던 죄악들, 깐 난쟁이 때 엄마 젖을 깨물었던 그런 죄악들까지 다 회개하는데, 그런 의미가 아니고,

오히려 자신을 심판하시기 위해서

'지금 하나님 어릴 때 죄를 들춰내십니까? 정말 그러셔도 됩니까?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습니다'

라는 그런 의미입니다.

 

여러분 젊었을 때 특별히 어린 시절의 지었던 그런 죄악들,

사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미성년자의 죄는 형사처벌을 받지 못하거나, 아주 완화되어서, 경감되어서 적용이 되지요.
자전거를 하나 훔쳤다.
미성년자는 개도 차원에서 풀려나지만, 성인이라면 절도죄가 적용이 되는 것이죠.

여러분 성경의 배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욥은 자신의 어린 시절에 죄를 뉘우치기보다는

'하나님 어이가 없습니다. 하나님 그것 때문이 십니까?'

라는 반응이 에요.

 

28 나는 썩은 물건의 낡아짐 같으며 좀 먹은 의복 같으니이다

아까 25 절에서는 낙엽, 마른 검불, 여기서는 썩은 물건의 낡아짐, 좀 먹은 의복

욥은요. 자신이 얼마나 비천한 존재이고, 약한 존재인지를 고백하면서 긍휼을 구합니다.
'하나님이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제발 저를 살려주십시오.'

'전 하찮은 존재입니다.'

'하나님 제게 왜 그러십니까?'
'제발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욥의 안타까운 마음이 엿보이는 대목이에요.

 

여러분 욥기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
하나님은 때론 우리에게 시련을 주신다. 

그 시련에는 목적이 있다.

하지만 그 시련은 어느 정도를 넘어서지 않는다.
우리가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시련이다.

그리고 때가 되면 그 시련을 거두 신다라는 것이지요.

 

여러분 이 사실을 알고 우리도 어쩌면 욥처럼 간구해야 될 겁니다.

어쩌면 이것이 가장 지혜로운 방법이겠지요.

'하나님 저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저를 긍휼히 여겨 주십시오.'

 

자 이런 욥의 고통과 고난을 보면서 21세기

이 코로나 19 팬데믹 속에 살아가는 우리들도

어쩌면 하나님 앞에 같은 방법으로 고백하고 기도해야 되지 않을까 싶어요.

'하나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하나님 우리들을 긍휼히 여겨 주십시오.'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우리들을 지켜 주시고, 보살펴 주십시오.'
그럴 때 하나님 우리를 안아 주시고 하나님 사랑이 그 놀라운 품으로, 사랑이 놀라운 섭리로,

우리들을 다시 회복시켜 주시고 다시 일으켜 주실 줄 믿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내 죄보다 더 크게 책망받는다고 느낄 때 어떤 마음이 드나요?

 

사랑하는 주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욥과 같은 시련과 고통을 겪는 우리 주변에 이웃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저희들을 긍휼히 여겨주시고,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삶의 소망을 바라보게 하여 주옵소서.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주님만이 우리 인생의 정답 되어주시고,
참된 산 소망이 되심을 가슴 깊이 고백하며,
모든 난관들을 지혜롭고 정직한 방법으로 잘 이겨나갈 수 있게 역사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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