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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없는 의원 같은 무익한 친구들 (욥기 13:1~19)

2021.10.26. | 생명의 삶 | 안광복 목사                                                                                                         

 

쓸모없는 의원 같은 무익한 친구들

 

할렐루야

청주 상당 교회를 섬기는 안광복 목사입니다.
베트남의 시인 휴틴'사람에게 묻는다'라는 시가 있습니다.


땅에게 묻는다.

땅은 땅과 어떻게 사는가?
우리는 서로 존경한다.
물에게 묻는다.
물은 물과 어떻게 사는가?
우리는 서로 채워준다.

풀에게 묻는다
풀은 풀과 어떻게 사는가?

우리는 서로 짜이고 얽혀 지평선을 만든다.

사람에게 묻는다.
사람은 사람과 어떻게 사는가?
사람은 사람과 어떻게 사는가?

스스로 한번 대답해 보라.

 

시인은 서로 돕고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자연과는 달리

죄와 욕심으로 가득 찬 인간 세상을 향한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욥이 격고 있는 수많은 고난들 중에서도 친구들로 인한 고통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욥에게 그저 정답을 강요하면서 욥을 코너로 몰아붙이는 친구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들의 부끄러운 민낯이 보이기도 합니다.
'친구들에게 묻는다', '너희들에게 묻는다'
이러한 욥의 아픈 속내가 담겨져 있는 오늘 본문 욥기서 13장 1절에서 19절의 말씀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쓸모없는 의원 같은 무익한 친구들

 

욥기 13장 1절에서 19절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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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의 눈이 이것을 다 보았고 나의 귀가 이것을 듣고 깨달았느니라
2 너희 아는 것을 나도 아노니 너희만 못하지 않으니라
3 참으로 나는 전능자에게 말씀하려 하며 하나님과 변론하려 하노라
4 너희는 거짓말을 지어내는 자요 다 쓸모 없는 의원이니라
5 너희가 참으로 잠잠하면 그것이 너희의 지혜일 것이니라

6 너희는 나의 변론을 들으며 내 입술의 변명을 들어 보라
7 너희가 하나님을 위하여 불의를 말하려느냐 그를 위하여 속임을 말하려느냐
8 너희가 하나님의 낯을 따르려느냐 그를 위하여 변론하려느냐
9 하나님이 너희를 감찰하시면 좋겠느냐 너희가 사람을 속임 같이 그를 속이려느냐
10 만일 너희가 몰래 낯을 따를진대 그가 반드시 책망하시리니

11 그의 존귀가 너희를 두렵게 하지 않겠으며 그의 두려움이 너희 위에 임하지 않겠느냐
12 너희의 격언은 재 같은 속담이요 너희가 방어하는 것은 토성이니라
13 너희는 잠잠하고 나를 버려두어 말하게 하라 무슨 일이 닥치든지 내가 당하리라
14 내가 어찌하여 내 살을 내 이로 물고 내 생명을 내 손에 두겠느냐
15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희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아뢰리라

16 경건하지 않은 자는 그 앞에 이르지 못하나니 이것이 나의 구원이 되리라
17 너희들은 내 말을 분명히 들으라 내가 너희 귀에 알려 줄 것이 있느니라
18 보라 내가 내 사정을 진술하였거니와 내가 정의롭다 함을 얻을 줄 아노라
19 나와 변론할 자가 누구이랴 그러면 내가 잠잠하고 기운이 끊어지리라

 


1절과 2절 말씀입니다.

1 나의 눈이 이것을 다 보았고 나의 귀가 이것을 듣고 깨달았느니라
2 너희 아는 것을 나도 아노니 너희만 못하지 않으니라

욥의 확신이 느껴지죠.
'나의 눈이 이것을 다 보았다. 내가 다 안다. 그리고 이것을 다 듣고 깨달았다.' 통달했다 라는 뜻입니다.
'너희들 아는것 정도는 나도 안다.' '너희만 못하지 않다.' '내가 오히려 너희들보다 더 많이 안다.'라는 거예요.

 

3 참으로 나는 전능자에게 말씀하려 하며 하나님과 변론하려 하노라

너희들하고 지금 이야기할 개제가 아니다. 너희들이 그런 대상이 아니다.

너희들의 그 변론은 무의미하다는 거예요.

 

4 너희는 거짓말을 지어내는 자요 다 쓸모 없는 의원이니라

'너희들이 거짓말을 지어냈다.'

어떻게 보면 욥의 친구들이 뭐 거짓말을 한 것 같지는 않은데,

욥의 입장에서 볼때는 거짓말과 마찬가지인 이유가 뭐냐 하면

전체를 모르면서 부분의 지식만을 강조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파편적인 하나하나에 지식은 모를 수 있어도, 정답일지 몰라도, 전체를 총괄해서 조합해서 볼 때는 그것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특별히 경험해 보지도 않고, 그냥 원칙으로만 전통에 근거해서만, 그냥 들은 지식으로만 나에게 뭔가를 권면하고 조언한다는 것 그것은 다 쓸모없는 일이다. 쓸데없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욥은 5절

5 너희가 참으로 잠잠하면 그것이 너희의 지혜일 것이니라

'너희는 그냥 입 다물고 있어라. 그것이 최선인 것 같다. 그것이 오히려 너희들 것이 참으로 지혜로운 것 같다.'
나에게 하는 어쭙잖은 그 충고도 틀렸고,

그리고 더 나아가서 그들이 마치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께서 지금 욥에게 마땅히 당연히 정당하게 하시는 것을 마치 자기네들이 지지하려는 듯한 그런 인상을 보이고 있어요.

 

8 너희가 하나님의 낯을 따르려느냐 그를 위하여 변론하려느냐
9 하나님이 너희를 감찰하시면 좋겠느냐 너희가 사람을 속임 같이 그를 속이려느냐
10 만일 너희가 몰래 낯을 따를진대 그가 반드시 책망하시리니

'너희가 몰래 낯을 따른다' 이건 좀 어려운 편이죠?

원문에는 '얼굴을 들어 올린다'라는 그런 뜻을 갖고 있어요.
'얼굴을 들어 올린다' 즉, 편파적으로 누군가를 두둔한다. 누군가를 향해서 얼굴을 들어 올린다.

아첨하듯이, 아부하듯이, 마치 하나님 편에 서서 그렇게 뭔가를 아첨하듯이 그렇게 행동을 했을 때,

오히려 너희들 책망받을 줄 알아라라는 거예요.
나에게 하는 그 어설픈 조언도 듣기 싫고, 그것도 잘못이고, 하나님 편에서 마치 하나님을 도와드리는 듯이 지지 발언을 한다고 하는 것도 참 웃기는 얘기다 라는 거죠.

'너희들 하나님이 너희를 감찰하시면 좋겠느냐?'

욥의 입장이 그거 거든요.

하나님이 마치 자신을 신문하듯이 감찰하시듯이 살피시고 조사하시는 그런 모습들,

하나님의 아주 혹독한 시련에 대한 그런 믿음의 테스트를 겪고 있는 그 욥의 입장에서 볼 때는 굉장히 억울하고 속상한 그런 상황이죠.

 

12절 말씀

12 너희의 격언은 재 같은 속담이요 너희가 방어하는 것은 토성이니라

아주 한마디로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너희들의 조언은 정말 불필요한 것이다.

아무 짝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바로 그런 것이다.
여러분 욥의 친구들은 끊임없이 욥에게 정답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정답이 어떤 상황을 바꿔 놓지 못합니다.
오히려 정답은 욥이 훨씬 더 정확하게 잘 압니다.
그들이 자꾸만 강요하고 주장했던 그 정답보다는 오히려 욥을 묵묵히 잠잠히 바라봐주고 그냥 위로해 주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너 참 힘들겠다'
'우리가 너와 함께 해줄게'
'언제까지인지 모르지만 너와 같이 옆에 있어 줄게'

'너를 위해서 기도해 줄게'
오히려 그것이 훨씬 더 지혜로운 조언자, 좋은 친구가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도 이런 좋은 친구들이 있었으면 좋겠고,

저와 여러분이 누군가에게 이런 참된 조언을 하는 그런 좋은 친구 역할을 감당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는 고난 당하는 친구에게 어떤 친구로 평가 받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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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절부터 15절까지 말씀입니다.

13 너희는 잠잠하고 나를 버려두어 말하게 하라 무슨 일이 닥치든지 내가 당하리라
14 내가 어찌하여 내 살을 내 이로 물고 내 생명을 내 손에 두겠느냐
15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희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아뢰리라

욥의 아주 결연한 의지, 그리고 분명한 각오가 엿보이지요? 굉장히 당당합니다.
이 부분이 공동번역에는 이렇게 번역이 돼 있어요.

욥기 13:14~15
14 나 이를 악물고 목숨을 내걸고 맞서리라.
15 어차피 그의 손에 죽을 몸, 아무 바랄 것도 없지만 나의 걸어온 발자취를 그의 앞에 낱낱이 밝히리라.

지금 욥은 하나님을 간절히 만나기를 원하죠.

하나님과 뭔가 대화를 나누고 뭔가 변론을 하기를 원합니다.

옆에 있는 친구들이 지금 눈에 들어올 리가 없죠.

 

16절부터 18절

16 경건하지 않은 자는 그 앞에 이르지 못하나니 이것이 나의 구원이 되리라
17 너희들은 내 말을 분명히 들으라 내가 너희 귀에 알려 줄 것이 있느니라
18 보라 내가 내 사정을 진술하였거니와 내가 정의롭다 함을 얻을 줄 아노라

'내가 정의롭다.'

이것은 내가 무죄가 될 것을 알고 있다는 거구요.
16절에  '나의 구원이 된다' 이것은, 자신의 의로움을 주장하는 내용이에요.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가 잘못된 것 아니냐?

하나님의 지금 행동, 하나님의 지금 어떤 원칙들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
지나치게 나에게 지금 가혹하게 뭔가 저촉되는 것이 아니냐?라는 거죠.

 

19절입니다.

19 나와 변론할 자가 누구이랴 그러면 내가 잠잠하고 기운이 끊어지리라

욥의 이 마지막 부분, 아주 공개적인 변론을 위한 도전이기도 합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변론을 맞서서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거다.
이런 자신감, 확신이죠.

인간 중에는 아무도 없다. 오직 하나님만이 유일한 변론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누구도 나 자신의 죄를 입증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내가 잠잠하고 기운이 끊어지리라.

어느 누구도 내 자신의 문제를 지적하거나 입증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이 모든 부분들을 다 변론하면, 입증한다면 나는 말없이 사라지겠다. 고요히 사라지겠다.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욥에 굉장히 절박하고, 하지만 어떤 당당하고 단호한 그런 마음도 비치지만,

한편으로 볼 때는 자칫 교만하게 여겨지고. 그렇죠?

욥이... 야... 욥이 점점 선을 넘는구나 싶은 그런 생각도 들어요.

 

하나님께 불평하고 하나님께 원망하는 것.
그것은 불경한 것이다.

믿음의 사람이 그러면 안된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이렇게 생각해 보고 어떨까요?

오히려 하나님 앞에 그 모든 것들을 탄식하고 토로하고 때로는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이

차라리 어떤 인간들에게 귀를 기울이고 세상적인 그런 방법들을 찾아 헤매는 것보다는 훨씬 더 나을지 모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려움을 당하고 어떤 고난을 겪을 때 가장 위험한 것이 뭔지 아십니까?
혼자서만 머무는 거예요.

나 혼자서만 골똘히 생각하고, 나 혼자서만 모든 것들을 계산하고 분석하고,

그 모든 것들에 깊이 생각에 사로잡히는 겁니다.

그다음 위험한 것은 뭐냐 하면 욥의 지금 친구들처럼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거나 세상적인 방법, 세속적인 방법으로 뭔가 해결함을 보려고 하는 것이죠.


하지만, 그것보다는 지금 욥이 좀 과하게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은 있지만,
하나님께 나가는 것,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

그것이 기도이던, 탄식이던, 때론 원망과 불평이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내 모든 마음을 솔직하게 정직하게 털어 내는 것, 쏟아낸 것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여러분 찬송과 539장 가사가 이렇죠?

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

내 마음을 쏟아노라

늘 은밀히 보시는 주님

큰 은혜를 베푸시리

아멘이죠

주 예수께 조용히 나가 너의 마음을 쏟아 내라. 드러내라. 보여드려라.

그 모든 마음을 주님 앞에 다 쏟아 내시고, 기도의 자유로 깊이 나가시면

야고보서 1장 5절에 나오는 말씀처럼

우리를 꾸짖지 않으시는 그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우리의 마음을 위로하시고,

또 새로운 삶에 소망의 자리로 인도해 주시지 않을까요?

이 하나님을 바라보시며 여러분 힘겨운 그런 시간들을 잘 견뎌내시길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십시오.

하나님 앞에

내 혼자, 아니면 사람들의, 세상적인 방법으로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감으로 말미암아 온전한 회복이 있는, 우리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 앞에 내 모든 마음을 정직하게 쏟아낸 적이 있나요?

 

신실하신 하나님 아버지
뜻밖의 어려움이나 지속되는 고난 속에서도
주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의 시선을 잃지 않기를 원합니다.
자기만의 생각이나 혼자만의 동굴로 숨어들지 않게 하시고 
세속적인 방식으로 문제 해결을 하려거나
세상 친구들의 가벼운 조언에 귀를 기울이지 않게 하옵소서.
힘들고 답답할수록 
주님 앞에 나아가 내 마음을 쏟아내고, 기도하고, 기다리는 믿음의 사람 되기를 원합니다.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
내 삶에 크고 은밀한 일을 보여주실 그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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