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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받은 성도의 삶, 믿음의 전투와 항해 (디모데전서 1:12~20)

2021.09.22. | 생명의 삶 | 노치형 목사                                                                                                         

 

구원받은 성도의 삶, 믿음의 전투와 항해

 

샬롬

온누리 교회를 섬기는 노치형 목사입니다.


우리가 삶을 살아갈 때 선한 삶을 산다는 것의 기준은 어디에 있습니까?
성경 한 가지를 얘기합니다.
선한 것은 오직 하나님뿐이라고,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고, 하나님께서도 그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선한 삶을 산다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삶을 사는 것이죠.
그러한 삶을 우리가 맡은 자리에서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그러한 기쁜 날이 우리 모두에게 충만한 그런 하루가 되길 소망합니다.
오늘 묵상할 하나님의 말씀은 디모데전서 1장 12절에서 20절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말씀을 함께 듣겠습니다.

 

 

구원받은 성도의 삶,
믿음의 전투와 항해


디모데전서 1장 12절에서 20절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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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13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14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16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7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18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교훈으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19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20 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사탄에게 내준 것은 그들로 훈계를 받아 신성을 모독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께서는 선하십니다.
그 선하 심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디모데전서를 시작하는 사도 바울이 교훈의 목적이라고 말한 사랑입니다.
그 사랑만이 우리의 모든 것이 되는 것이죠.
하나님은 그 사랑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십니다.
그래서 '선한 것의 기준이 무엇인가?' 하면 사랑이 되는 것이죠.
그 사랑을 기준으로 해서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한 그 사랑 속에 충만히 임하게 되길, 또 그것을 누리게 되길 또 전하게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12절에 말씀을 읽겠습니다.

12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아멘
우리에게 직분을 맡겨 주신 다는 것이죠.
그 직분은 무엇입니까?
교회에서 말하는 어떤 직임도 있겠지만 그 외에도 하나님의 일꾼으로 해야 할 모든 것을 맡겨 주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그 직분은 어떤 직분입니까?
그것은 선한 직분입니다.
그 선한 직분은 선한 영향력을 끼치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능력이라고 믿을 수 있습니다.

 

오늘 말을 이렇게 바꿀 수 있습니다.

'나에게 직분을 맡겨 주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라는 고백이죠.
바로 저와 여러분에게 직분을 맡겨주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말은 또 이렇게 바꿀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믿어 주셨다'는 것이죠.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와 여러분을 믿어 주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직분이라는 것이 허락되었다 라는 것이고,

그 선한 직분으로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도록 우리는 부름 받았다 라는 것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우리가 더 감사하고 만족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그 선한 직분을 온전히 이루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몇 가지를 또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13절에서 15절의 말씀입니다.

13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14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아멘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3가지를 인정하는 것이 바로 선한 직분자에 자세라고 말합니다.

그 첫 번째는 13절에 나오는 알지 못하고 행했다 라는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와 악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알고 선택하는 것과 모르고 선택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이죠.
만약에 내가 알고 선택했다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 더욱더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모르고 선택했을 경우 우리는 나의 무지를 인정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무지가 바로 우리를, 하나님을 멀리 떠나게 하는 그러한 자리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무지를 인정하고 자존심을 내려놓으십시오. 그것이 우리가 오늘 해야 할 일입니다.

 

14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또한 한 가지는 바로 믿음과 사랑이 풍성한 삶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그 삶과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이 세상에서 사람이 만들어낸 어떤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그 믿음, 그리고 그 사랑으로만 우리가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결단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속에 없다면 우리는 자꾸 우리가 만들어낸 믿음과 우리가 보기에 좋은 사랑으로 그 직분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세 번째는 죄인 중에 괴수라는 고백을 한다는 것이죠.
이 죄인 중에 괴수라는 고백은 단순히 나를 겸손하게 표현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구원을 받는다면 가장 먼저 구원을 받아야 될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한 직분을 받았다는 것은 '나는 이미 구원받았으니 다됐다'라는 교만한 자세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구원받을 1호 대상, 그 죄인임을 인정하며 더욱 겸손히 나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죠.
그것이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 오늘 하루의 고백되길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나는 교회와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선한 직분자로 살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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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매우 중요한 고백을 합니다. 15절에 읽었지만 한 번 더 일겠습니다.

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말이라고 얘기합니다.

이 받을만한 말씀이라는 얘기는, 다른 말로 하면 믿을만한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믿을 만한 가치가 있는 말씀이다라는 뜻이고,

또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말씀이다 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바로 16절에 나옵니다.

16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긍휼을 주셨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 긍휼은 무엇입니까?
사실 그것은 우리는 하나님 보시기에 어떻게 보면 가치 없는 쓰레기 같은 존재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더럽고 추한, 거짓과 죄악 속에 빠져 있고 부활을 소망한다 하면서도 죽음의 공포 속에 두려워하는 우리의 인생이  정말 무지한 것을 우리는 보게 된다는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우리를 긍휼히 여기신다 라는 것이죠.
이 긍휼히 여기심이 우리에게는 구원에 다다르게 하는 아주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하나님의 긍휼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은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오는 그 믿음과 사랑은 바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은혜에 속해 있었다는 사실이죠.


그래서 어떻게 고백합니까? 사도 바울은 17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17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이런 찬양을 올릴 수 있겠습니까?
보이는 우상은 두려워하며 무릎을 꿇고 떨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내가 불이익을 당해도 그 우상을 바라보며 견뎌 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향해 이런 영광과 존귀와 찬양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은,

그것은 진정한 가치를 보았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하지만 그 가치를 깨닫지 못한 사람들은 이러한 선택을 하게 됩니다. 18절에서 20절에 말씀입니다.

18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교훈으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19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20 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사탄에게 내준 것은 그들로 훈계를 받아 신성을 모독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아멘
당시 후메내오와 알렉산더라는 사람의 이름이, 그 실명이 거론되면서 그들이 이런 상태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져 선한 싸움을 싸우기 원하는데, 그들은 양심을 버렸고 믿음에 관하여는 파산했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주신 그 선한 양심을 버렸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주신 그 선한 양심을 무가치하게 여겼다.
그것을 쓰레기처럼 여겼다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우리는 잘 간직하고 있습니까?
정말 존귀히 여기고 있습니까?
정말 날마다 믿음과 선한 마음을 가지고 선한 싸움을 싸우고 있습니까?

우리는 이것을 다시 한번 점검해야 합니다.
오늘 하나님이 주신 이 말씀을 따라서 승리하게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믿음과 선한 양심을 지키도록 내가 기억할 영적 훈계는 무엇인가요?

 

우리를 날마다 거룩하게 세워 주시는 하나님
죄인 중의 괴수인 우리들에게
오래 참아주시는 긍휼을 베풀어 주시고 믿어 주셔서 선한 직분을 맡겨주셨으니
날마다 순간마다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을 돌리게 하여 주십시오
세상 속의 살아가면서 거짓과 죄악과 죽음으로 인도하는 사탄의 미혹이 넘쳐나는 이 현실 속에서 
오직 예수님만을 나와 우리의 구원자로 선포하는 믿음의 사역을 날마다 감당함으로
거룩하고 더욱 거룩한 길로 인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믿는 사람들을 바른 믿음과 착한 양심으로 채워 주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선한 싸움을 싸우도록 회복시켜 주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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