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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암 가운데 빛을 주시는 새 창조의 하나님 (출애굽기 10:21~29)

2021.04.29. | 생명의 삶 | 안광복 목사                                                                                                         

 

흑암 가운데 빛을 주시는 새 창조의 하나님

 

위대한 전도자 D.L. 무디(1837~1899)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등대는 경적을 울리지 않고 다만 빛을 비출 뿐입니다.

향방을 알 수 없는 밤바다에서 증대의 빛은 얼마나 중요하겠습니까?
그 빛이 사라진다는 것은 또한 얼마나 큰 절망이고 두려움이겠습니까?


지금까지 여덟 번의 재앙을 경험하고도 고집을 꺾지 않는 애급 왕 바로에게 하나님은 하늘의 태양을 가려 버리십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는 땅에는 빛이 있었다'라고 합니다.
어떤 왕을 섬기며 살 것인가?
그에 따라 우리의 삶속에 빛과 어두움은 이처럼 극명한 차이가 생기게 됨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출애굽기 10장 21절에서 29절 말씀입니다.

 

흑암 가운데 빛을 주시는
새 창조의 하나님

 

출애굽기 10장 21절에서 29절 말씀입니다.

더보기
2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하늘을 향하여 네 손을 내밀어 애굽 땅 위에 흑암이 있게 하라 곧 더듬을 만한 흑암이리라
22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손을 내밀매 캄캄한 흑암이 삼 일 동안 애굽 온 땅에 있어서
23 그 동안은 사람들이 서로 볼 수 없으며 자기 처소에서 일어나는 자가 없으되 온 이스라엘 자손들이 거주하는 곳에는 빛이 있었더라
24 바로가 모세를 불러서 이르되 너희는 가서 여호와를 섬기되 너희의 양과 소는 머물러 두고 너희 어린 것들은 너희와 함께 갈지니라
25 모세가 이르되 왕이라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드릴 제사와 번제물을 우리에게 주어야 하겠고

26 우리의 가축도 우리와 함께 가고 한 마리도 남길 수 없으니 이는 우리가 그 중에서 가져다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섬길 것임이며 또 우리가 거기에 이르기까지는 어떤 것으로 여호와를 섬길는지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나
27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그들 보내기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28 바로가 모세에게 이르되 너는 나를 떠나가고 스스로 삼가 다시 내 얼굴을 보지 말라 네가 내 얼굴을 보는 날에는 죽으리라
29 모세가 이르되 당신이 말씀하신 대로 내가 다시는 당신의 얼굴을 보지 아니하리이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9번째 재앙을 예고하시죠. 21절 입니다.

2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하늘을 향하여 네 손을 내밀어 애급 땅 위에 흑암이 있게 하라 곧 더듬을 만한 흑암 이리라

'더듬을 만한 흑암'

[우리말 성경]에는요. 이렇게 번역을 해요.
"그 어둠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앞을 더듬으며 다녀야 할 것이다"
'앞을 더듬으며'

그러니까 정말 칠흑과 같은 그런 어둠이죠.

 

그들에게 태양이 가리어진다 빛을 볼 수가 없다.
이것은 뭐 모든 사람에게 마찬가지의 절망과 두려움 이겠지만,

특별히 애급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 태양신, 이 '라(Ra)'라는 이 태양신은 그들에게 있어서 굉장히 소중하고 강력한 그런 신이 얻습니다.
풍요와 또 생명과 번성과 그 모든 것을 약속하고, 그리고 그들이 살아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에너지를 공급해 주는 그런
강력한(신적인) 그런 존재죠.
그런데 그 태양 신을 볼 수가 없는 거예요.

 

여러분 애굽에 내리는 이 재앙은 계속해서 강도가 쎄 집니다.
그리고 광범위하게 확장이 되죠.

처음에 '피'와 '개구리' 이것은 '나일 강'으로부터 시작이 되었어요.

'물', '강'으로부터 시작이 된 그런 재앙

세 번째 '이'와 '파리'는 땅의 티끌, 티끌을 통해서 '이'가 생겼고, 온 사방을 덮어버릴 수 있는 '파리'의 재앙
이것은 땅을 심판하는 어떤 그런 의미죠.
그다음에 '악성 종기', '전염병' 이것은 가축들 또 사람에게 그런 해를 끼치는 그런 재앙들이죠.
'우박'과 '메뚜기' 이것은 '기상이변'을 통한 하나님이 어떤 다스림, 하나님의 어떤 권능을 볼 수가 있어요.

 

그런데 이제 그것이 또 확장이 되고 강화가 돼서,

이제는 천체의 태양을 가려워지는 이건 무시무시한 그런 재앙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어둠은 최고의 두려움이죠 모든 사람들에게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런데 그것이 '사흘 동안 많이 그렇게 비칠 것이다. 그런 재앙이 있을 것이다'라고 예고하지 않았어요.

사흘이 될지 30일이 될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자기네들이 알고 있는, 인식하고 있는 최고의 신, 그 태양신 '라'를 볼 수가 없다는 것

그들에게는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가장 치명적이고 가장 극심한 그런 고통이고 그런 재앙일  거예요.

 

그런데 놀랍게도 23절을 보면

23 그동안은 사람들이 서로 볼 수 없으며 자기 처소에서 일어나는 자가 없으되 온 이스라엘 자손들이 거주하는 곳에는 빛이 있었더라

와! 놀랍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주했던 그 고센 땅, 고센 땅에는 빛이 있었다는 거예요.
처음에 '피', '개구리', '이' 까지는 괜찮은데,

'파리' 재앙 때서부터는 하나님께서 구별을 시키시거든요. 

그런데 그들이 살고 있는 그 땅에는 '빛'이 존재했다는 거예요.
어떤 왕을 섬기느냐?

어떤 지역에 속하느냐?

어떤 나라에, 어떤 통치자에 백성이냐?
거기에 따라서 극명합니다.

빛과 어둠에 속해 있는 거죠.
이스라엘 백성들은 살아 계신 그 하나님의 그 친 백성이시기 때문에 그들은 빛 가운데 거할 수가 있었고요.
애급에 사는 그 모든 민족들은 애굽 왕 바로를 섬겼던 그들은

신의 부제

그것으로 말미암아 그런 극한 어둠과 두려움과 공포 가운데 살아갈 수밖에 없었어요.
이 흑암에 가장 충격적이고 치명적인 고통과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애급 왕 바로가 완전하게 하나님 앞에 항복하지 않았다는 사실. 참으로 놀랍습니다.
그만큼 우리 안에 있는 이 죄성과 이 완악함이 얼마나 지독한지, 얼마나 대단한 그런 위력이 있는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죠. 

자 계속해서 그다음 본문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께 항복하지 않았던 바로처럼 내 안에 있는 지독한 죄는 무엇인가요?

 


애급 왕 바로가 또다시 타협안을 제시합니다. 24절 

24 바로가 모세를 불러서 이르되 너희는 가서 여호와를 섬기되 너희의 양과 소는 머물러 두고 너희 어린것들은 너희와 함께 갈지니라

처음에는 장정만 가라고 했죠.

이제는 어린아이들도 가도 좋다 라는 거예요.
하지만 너의 양과 소는 머물러 둬라. 어린이 OK, YES 하지만 육 축은 안된다 라는 거예요.
처음 타협 안과 비교해 볼 때 상당한 진전이 있죠.
꽤나 양보한 것 같고, 이 정도면 그냥 받아들일까?라는 그런 생각도 들 수 있어요.

 

하지만 그 바로 에게 있어서 모세는 협상을 하지 않습니다.
철저하게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애급 왕 바로에게 그렇게 이야기하죠. 25절

25 모세가 이르되 왕이라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드릴 제사와 번제물을 우리에게 주어야 하겠고
26 우리의 가축도 우리와 함께 가고 한 마리도 남길 수 없으니 이는 우리가 그중에서 가져다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섬길 것임이며 또 우리가 거기에 이르기까지는 어떤 것으로 여호와를 섬길는지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나

모세는 일부라도 양보하지 않습니다.

그 타협 안에 절충하지 않아요.

여러분 사단은요 끊임없이 우리에게 속삭입니다.

슬금슬금 다가와서 '이 정도면 괜찮지 않냐? 한 번만 아니 이번만 이게 마지막이야' 다양한 모습으로 여러 가지 유혹을 하고 속상하죠.
꽤 많은 사람들은 거기에 그냥 넘어갑니다.

'아이 그럴까? 남들도 다 그렇다는데' 하면서 그냥 그 유혹에 넘어가는 경우들이 대단히 많죠.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 앞에 온전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는 거예요.
제사를 드리는 거예요.
거기에는 타협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절반 정도 아니한 80%?  과거와 비교해 보면 굉장히 나아졌지 90%면 어디야?'

라고 생각이 될 수 있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 라는 거죠.
우리의 마음을 확고부동하게 그렇게 결정을 하고 하나님 앞에 온전한 제사 예배를 드려야 될 줄 믿습니다.


자 그런데 애급 왕 바로는 왜 이렇게 고집을 피울까요?
왜 그렇게 끝까지, 정말 신하들이 왕이시여. 우리나라가 이 애굽이 망하게 된 걸 모르십니까?라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끝까지 이렇게 고집을 부리는 이유가 뭘까요? 그것은 욕심 때문이에요.
이스라엘 민족, 히브리 민족, 그 노예들을 한꺼번에 다 떠나보내면 이건 엄청난 노동력의 상실이죠.
그런데 '하다못해 가축이라도 그냥 계속해서 데리고 있어야 되겠다.'
그것만큼은 양보하지 못하겠다.
욕심입니다.

여러분 야고보서 1장 15절

야고보서 1장 15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굉장히 중요한 말씀이에요.

욕심과 죄, 그리고 그 죄가 어떻게 사망에 이르는 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시죠.
결국에는 사망에 이르는 거예요.

그런데 거슬러서 생각을 해보면 그것은 죄 때문이고, 원초적으로 욕심 때문이에요.

애급 왕 바로, 욕심 때문에 사실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양보하지 않습니다.
마지막에 협상 결렬이 되죠 애급 왕 바로가 뭐라고 얘기하는가? 28절

 

28 바로가 모세에게 이르되 너는 나를 떠나가고 스스로 삼가 다시 내 얼굴을 보지 말라 네가 내 얼굴을 보는 날에는 죽으리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죠.
협상은 결렬되었습니다. 파국이죠.
모세도 맞받아쳐요.

29 모세가 이르되 당신이 말씀하신 대로 내가 다시는 당신의 얼굴을 보지 아니하리이다

서로 보지 않을 것뿐만 아니라. 애급 왕 바로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해요.
결국에는 죽음이죠.

여러분 죄의 결국은 죽음입니다.
이 죄의 충동과 이 유혹과 이 엄청난 이 부정적 에너지를 멈출 수 있는 방법은 없어요.
죽어야 끝이 납니다. 죽어야 끝이 나요.

애급 왕 바로 이 고집

결국에는 양보하지 않아 중간 어느 지점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결국에는 죽음에 이르러야 끝이 난다 라는 거예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욕심이 죄가 되고요. 그 죄가 장성해서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그 엄청난 막강한 연결 고리를 끊을 실 수 있는 분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신 줄 여러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오직 예수님께서만이 그 악성 고리를 끊어 버리셔요.
우리 안에 있는 죄성, 우리 안에 있는 그 욕심, 사망으로 치닫게 되는 그 모든 상황에서 우리를 건져 주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자유와 소망과 생명을 주시는 그 주님 안에서 

오늘도 자유하시고, 여러분 승리하며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세상 사람이 내게 신앙의 양보를 요구할 때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나요?

 

우리 인생의 빛이 되시는 하나님 
우리 안에 진리의 빛을 비추어 주셔서
모든 냄새나는 욕심과 사망으로 이끄는 죄 된 욕망들을 다 소멸시켜 주옵소서.
우리가 주를 떠나서는 단 한순간도 살아갈 수 없음을 아오니
언제나 주 앞에서 겸손하게 하시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며 살게 하옵소서
일평생 주님과 동행하게 하시고, 우리의 인생 여정을 영광과 감사로 마칠 때까지 
은혜에 날기 아래에서 항상 보호받게 하여 주옵소서
존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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