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08. | 생명의 삶 | 권오향 목사
요즘 제가 즐겨 부르는 찬양이 있는데요.
"나의 기도하는 것보다 더 응답하실 하나님, 나의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이루시는 하나님"이라는 찬양입니다.
때론 기도하다가 지칠 때도 있고 포기하고 싶어 질 때도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드리는 작은 기도 신음소리 부르짖는 소리 하나도 놓치지 아니하시고, 우리의 생각과 마음과 상황을 뛰어넘어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묵상할 때, 얼마나 큰 위로와 힘을 얻는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코로나로 인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아지셨죠?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실망하지도 낙심하지도 마시고,
끝까지 하나님의 얼굴의 도우심을 구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저희가 함께 볼 말씀은 출애굽기 2장 11에서 25절 말씀입니다.
탄식과 부르짖음에
귀 기울이시는 하나님
출애굽기 2장 11절에서 25절 말씀입니다.
11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들이 고되게 노동하는 것을 보더니 어떤 애굽 사람이 한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본지라 12 좌우를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죽여 모래 속에 감추니라 13 이튿날 다시 나가니 두 히브리 사람이 서로 싸우는지라 그 잘못한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동포를 치느냐 하매 14 그가 이르되 누가 너를 우리를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인 것처럼 나도 죽이려느냐 모세가 두려워하여 이르되 일이 탄로되었도다 15 바로가 이 일을 듣고 모세를 죽이고자 하여 찾는지라 모세가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에 머물며 하루는 우물 곁에 앉았더라 16 미디안 제사장에게 일곱 딸이 있었더니 그들이 와서 물을 길어 구유에 채우고 그들의 아버지의 양 떼에게 먹이려 하는데 17 목자들이 와서 그들을 쫓는지라 모세가 일어나 그들을 도와 그 양 떼에게 먹이니라 18 그들이 그들의 아버지 르우엘에게 이를 때에 아버지가 이르되 너희가 오늘은 어찌하여 이같이 속히 돌아오느냐 19 그들이 이르되 한 애굽 사람이 우리를 목자들의 손에서 건져내고 우리를 위하여 물을 길어 양 떼에게 먹였나이다 20 아버지가 딸들에게 이르되 그 사람이 어디에 있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그 사람을 버려두고 왔느냐 그를 청하여 음식을 대접하라 하였더라 21 모세가 그와 동거하기를 기뻐하매 그가 그의 딸 십보라를 모세에게 주었더니 22 그가 아들을 낳으매 모세가 그의 이름을 게르솜이라 하여 이르되 내가 타국에서 나그네가 되었음이라 하였더라 23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 24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25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 |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에 놓였던 모세는 너무나 놀랍게도 바로의 왕궁에서 바로의 딸의 양 아들이라는 신분으로 자라게 됩니다.
당시 바로의 딸은 바로 왕의 무남독녀였죠.
그녀가 누리고 있던 위치와 권세는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바로의 딸의 비호 아래 모세는 애굽의 모든 특혜와 특권을 누리면서 애굽의 왕자로 자라왔던 것이죠.
이 모든 것은 장차 이스라엘을 인도하기 위한 한 사람의 지도자로 세우시기 위한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돌이킬 수 없는 해프닝이 벌어지는 데요. 11절 12절 함께 보시겠습니다.
11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 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들이 고되게 노동하는 것을 보더니 어떤 애굽 사람이 한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본 지라
12 좌우를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 죽여 모래 속에 감추니라
아마도 모세의 나이는 40세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그는 고되게 혹사를 당하고 있던 어떤 히브리 인이 애굽 사람에게 호되게 당하는 것을 보게 되면서
그만 혈기가 끓어오르죠.
그래서 그 애굽 사람을 쳐 죽이는 죄를 범하게 됩니다.
그는 비록 애굽의 왕자로 자랐지만 자신의 정체성은 히브리인 임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이죠.
우리나라 사람들도 가난과 전쟁이라는 이유로 고국에 살다가 어려워져서 만주로, 미국으로, 여러 나라로 이주하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었습니다.
유대인 디아스포라만큼이나 한국인 디아스포라들이 세계 방방곡곡에 흩어져 살게 된 거죠.
그런데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며 사는 자들이 있는 반면,
정체성에 혼란을 겪으면서 방황하는 자들도 많은 것 같아요.
저는 몇 년 전 연해주 아웃리치를 갔다가 고려인 이야기를 들으면서 큰 감동을 받았었습니다.
그들은 아무리 먼 곳에 가더라도 고려인 학교를 세우고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자신들이 한국인임을 잊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러나 반대로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으며 사회에 부적응자로 사는 경우들도 많이 있죠.
모세는 자신이 뼛속 깊이 히브리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자랐지만,
그가 이스라엘 인도할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아 될 영역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의 성품이었고 모든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배워야 하는 그의 세계관이었습니다.
제 아무리 모세가 히브리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한들,
자신의 혈기로는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없었고, 자신의 방법으로도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성품의 다루심이 필요했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을 방법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이라는 믿음이 필요했던 것이죠.
사랑하는 여러분
누구나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이러한 다루심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우리의 성품이나 사고가 예수님을 닮아 있는 건 아니죠.
하나님은 구원받는 하나님의 자녀가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되기까지 각 사람을 훈련하십니다.
여러분 혹시 여러분의 모난 성품 때문에 실수한 적 있으신가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해서 서두른 적 있으신가요?
하나님은 우리의 모난 성품을 고쳐 주시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하나님의 다루심이 고되다 해도 도망가지 마시고, 끝까지, 하나님을 붙드시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모세를 다루시기 위한 하나님의 훈련이 이제부터 시작되는데요.
모세가 애굽 사람을 죽이고 모레에 감춘 사건은 결국 자신의 동족 이스라엘 사람들에 의해서 발각되고 맙니다.
13절 한번 보실까요?
13 이튿날 다시 나가니 두 히브리 사람이 서로 싸우는지라 그 잘못한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동포를 치느냐 하매
오래가지도 않았죠? 모세가 애굽 사람을 죽인 바로 다음날, 히브리 사람 둘이 서로 싸우는 것을 보고 말리자
그들은 오히려 모세를 향해 '네가 뭐라고 이래라저래라 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인 것처럼 우리도 죽이려 하느냐?'라고 항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은 결국 바로 왕에게 까지 알려지게 되죠.
늘 모세를 예의 주시하고 있었던 바로 왕은, 모세를 죽일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바로에게 모세는 눈에 가시였겠죠.
히브리인 주제에 애굽에 왕자로 커 가는 게 위협적일 수도 있고요. 심정 상하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하여 어쩔 수 없이 졸지에 도망자 신세가 되어서 광야로 쫓겨나는 모세
집도 절도 없이 광야로 내몰린 모세는 아마 멘붕이 왔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이 있었죠?
어느 날 우물 곁에 아무 소망 없이 앉아 있을 때, 미디안 제사장의 딸들이 자신의 양 떼들에게 물을 먹이기 위해서 우물에 왔다가 곤경에 처하는 일이 있었을 때, 모세가 그들을 도와줌으로 인연을 맺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모세는 도시 맨에서 광야 맨으로 40년을 살게 됩니다.
그런 때 광야란 어떤 곳인가요?
광야의 특징은 첫째 길이 안 보인다는 것이고, 둘째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자신의 인생의 길과 방향을 잃은 채 광야에서 40년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우리의 삶에도 이런저런 광야의 경험들이 있죠.
내가 가지고 있었던 것. 의지했던 것. 다 잃어버리고 졸지에 빈털터리가 되어서 철저히 혼자 남은 광야
그런데 그 광야야 말로 하나님을 대면할 수 있는 장소요
온전히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것을 배우는 시간입니다.
자 이제 모세가 자신에게 철저히 절망하고 있을 즈음에 비로소 이스라엘을 구원할 때가 되었음을 보여 주시는데요
23에서 25절입니다.
23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
24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25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네 번이나 반복해서 나오고 있죠. 이는 구원의 주체가 하나님이심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을 아시고, 우리의 부르짖는 소리를 듣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 가운데 어려움이 있을 때 가만있지 마시고
부르짖으셔야 합니다. 이때야 말로 우리 가운데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의 시간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고통과 탄식의 소리를 들으시고 그들과 한 약속을 기억하시는 하나님
아직도 세계 곳곳에는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고통받는 우리들의 이웃이 있습니다.
또한 코로나로 인하여 재정의 어려움, 취업의 어려움, 인종적 어려움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신음하고 탄식하는 그들의 소리를 들어주시옵소서.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내려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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