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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럇여아림

기럇여아림의 본래 명칭은 바알라[수15:9] 또는 기럇바알로 보아 

이 성읍은 바알을 숭배하는 가나안 사람들에게 속할 당시에는 종교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것으로 추정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에 의하여 가나안 정복전쟁 후 이 성읍은 유다 지파에게 분배된 땅으로 베냐민 지파의 남쪽 경계와 매우 가까운 곳에 있었습니다.[수18:4]


기럇 여아림은 "숲의 성읍"이란 뜻으로 

해안 평원에서 시작하여 베냐민 평원과 예루살렘까지 계속되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통로에 위치하고 있는 성읍입니다.


실로에 있던 언약궤가 에벤에셀 전투에서 블레셋에게 빼앗긴 후 블레셋은 벧세메스로 돌려 보냈습니다. 

그곳에서 다시 기럇여아림 사람들에 의해 회수되어 아비나답의 집으로 옮겨졌습니다. 

언약궤는 이스라엘이 미스바에서 회개할 때까지 약20년간 기럇여아림에 있었습니다. [삼상7:2] 

다윗이 재위 중에 아비나답의 집에서 예루살렘으로 언약궤가 옮겨졌고 [삼하6:2-4, 대하1:4],

솔로몬은 언약궤가 있었던 지역에 성을 쌓았으나 [왕상9:18]

애굽의 바로 시삭이 파괴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곳은 선지자 우리야의 고향으로 언급되고 있으며 [렘6;20], 

포로기를 겪은 후 일부 귀환자들의 장착지로 언급되는 것이 성경에서 나타나는 마지막 기록입니다. [느7:29]


기럇여아림은 현재 데이르 엘-아자르(Deir el-Azar)라는 언덕으로 밝혀졌는데 

이곳의 정상에는 엘리아살이라는 이름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그는 아비나답의 아들이었고 언약궤를 지키는 일을 맏았던 사람입니다. 

그곳에서 발견된 한 비문에 의하면 이후에 로마 제10부대가 이곳에 주둔하였으며,20세기초에 발굴이 이루어졌는데, 그 발굴을 통하여 비잔틴 교회가 주후 5세기에 세워졌음을 알게 되므로 이곳이 기럇 여아림이라는 것에 확신을 갖게 하여 준 것입니다. 

이곳도 성지 순례 일정에는 일반적으로 가지 않는 곳이지만 일정을 조정하면 근처에 있는 엠마오와 함께 답사를 할 수 있는 곳입니다.


[출처 : 크리스찬 해피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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