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2.10. | 생명의 삶 | 임병선 목사
우리는 그런 착각에 빠져 삽니다.
우리 크리스천만, 종교가 있는 사람만 믿음을 가지고 살고,
일반 사람들은 믿음 없이 그저 합리적 이성과 논리를 가지고 판단하며 살아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것처럼 큰 착각이 없습니다.
이 땅에 어떤 사람도 믿음 없이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제가 한 예를 들어볼까요?
우리들이 왜 대중교통 버스를 이용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버스 기사분이 우리를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데려다준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버스를 탈 수 있는 거예요.
그 안전을 우리가 믿지 못한다면 어느 누구도 그 버스를 타려고 하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세상에 모든 사람들도 우리와 같이 믿음이라는 근거 위에서 사는 겁니다.
중요한 건 무엇을 믿느냐?
사람이 정말 신뢰할만한 것을 믿고 있느냐?
이것이 중요한 거겠죠.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 읽어 보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마태복음 12장 22절에서 37절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임한
하나님 나라
마태복음 12장 22절에서 37절 말씀입니다.
22 그 때에 귀신 들려 눈 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데리고 왔거늘 예수께서 고쳐 주시매 그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며 보게 된지라 23 무리가 다 놀라 이르되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 하니 24 바리새인들은 듣고 이르되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 하거늘 25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 26 만일 사탄이 사탄을 쫓아내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그리하고야 어떻게 그의 나라가 서겠느냐 27 또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되리라 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29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강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 30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31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32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33 나무도 좋고 열매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열매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열매로 나무를 아느니라 34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35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3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37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
여러분들은 기적을 믿으십니까?
기적은 반드시 있죠.
왜요?
하나님은 살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인간의 이성, 과학,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 많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것에 대해 사람들은 해석을 하려고 하죠.
그런데요.
그 해석에는 항상, 자기가 가진 세계관이라는 것이 개입되어 있는 겁니다.
그 세계관으로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을 해석하고 설명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모든 해석은 일관성이 있고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은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것들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도, 주제도 못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느 순간에는 반드시 인간의 이성을 뛰어넘는 뭔가가 전제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느 세계관이나 그 모든 것에는 그 기저에는 반드시 믿음이라는 요소가 포함되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왜?
크리스찬분들 중에도 그런 생각을 가진 분들이 있어요.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관점, 말씀의 토대 위에서 해석하는 것을 과학적 이성적 세계관을 가지고 설명하는 사람들보다 덜 합리적이고 열등한 것으로 생각하고 여기는 분들이 계세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자신 아무것도 안 믿는다고 말하면서 그 내면에는 다 무엇인가에 대한 믿음이 그 안에 존재합니다.
사람이요.
짜장면 하나를 시켜 먹어도 믿음이 있어야 시킬 수 있습니다.
그 짜장면이 깨끗하게 만들어져서, 아무 불순물의 개입 없이 우리 집에 도착한다는 믿음이 있어야.
우리는 그것을 시킬 수 있고, 그것에 대해 조금의 의심이라도 있으면 우리는 그것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믿느냐?
정말 신뢰할만한 것을 믿느냐? 의 문제입니다.
오늘 말씀에도 보세요.
예수님께서 기적을 일으킵니다.
절대로, 과학으로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거죠.
그때에 그렇게 똑똑하다고 말하는 바리새인들은 뭐라고 합니까?
24 바리새인들은 듣고 이르되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 하거늘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
그들은 바알세불 귀신을 믿는 거예요.
그 기초에서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권세,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행하심을 이야기합니다.
저는 이것이 바로 세계관의 갈등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세계관, 자기의 논리, 자기가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틀에서 그 현상들을 설명하고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과학, 이성, 합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 기저에는 반드시 믿음이 있는데, 마치 자기들은 그것을 배제하고 합리적인 척을 할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중심에 두고,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이 세상에 현상을 말하고 설명하는 것을 주저하거나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중심에 두고, 그 모든 것을 통합하여 세상을 해석할 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 이야말로 가장 믿을 만한 분이시고, 우리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분이며, 하나님이 계셔야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제대로 합리적이게 설명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을 중심에 두고, 하나님 말씀에 근거로 이 세상을 해석하고 바라보고 설명하면
세상 사람들은 마치 우리를 저급한 사람인 것처럼 열등한 사람으로 취급하며 비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분명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지금 이 세상 가운데 역사(役事) 하시고, 이 땅에 모든 것을 운행(運行) 하시는 데,
그 하나님을 거부하고 그 하나님을 뭐 역할뿐만 아니라, 그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을 넘어서
그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하찮게 여기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많이 존재합니다.
저는 그런 분들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나중에 심판 때 어떻게 하라고 저럴까?
하나님께 도대체 얼마큼 혼이 나야 정신을 차릴까?
진짜 죽은 후에 하나님의 심판대에 서면 어떻게 하려고 저런 이야기를 할까?
그런 마음으로 심히 걱정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31절 32절 말씀입니다.
31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32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우리는 그런 착각을 합니다.
"내가 믿는다."
아니요.
내가 믿는 게 아니라 성령이 우리를 믿게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성령은 지금도 우리 가운데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 성령의 사역, 그 성령의 역사를 방해하고, 그 성령의 역사를 거부한다면
그 사람은 결코 진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고, 그 믿음 없는 인생은 결국 멸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도 신기하고 놀랍게 여기는 게 있습니다.
그게 뭐냐면 저는 성경의 모든 이야기가 믿어집니다.
동정녀 탄생, 예수님이 행하신 그 모든 기적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 도저히 우리 이성과 생각으로 믿을 수 없는 것이
저에게는 믿어집니다.
여러분, 믿어지는 게 은혜입니다.
믿어지는 게 복입니다.
왜 우리가 믿을 수 있었습니까?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 마음을 주장하셔서, 우리가 그 모든 것을 믿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겁니다.
그런데 그 믿음을 주시는 성령님의 사역을 방해한다는 것은, 내가 믿지 않고 사람들을 못 믿게 하는 정말 악한 행위이고 그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성령을 모독하고 거역하지 마세요.
그것은 바로 스스로를 파괴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역사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을 믿고, 그 하나님 말씀으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바라보고 해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비합리적인 것도, 열등한 것도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제대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가지고 있는 것이고, 그렇게 세상을 해석해야. 우리는 인생의 답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정말 신뢰할만한 분이신 그 하나님을 믿고,
이 세상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며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
우리가 그 하나님을 믿고 그 하나님을 믿는 눈으로 세상을 해석하며 바라보기를 원합니다.
세상의 헛된 속임수에 속지 않게 하시고,
우리 인생에서 절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으시고
우리 가운데 살아 역사하시는 그 하나님을 믿고 담대히 나아가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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