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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을 완성하러 오신 예수님 (마태복음 5:17-26)

2021.01.21. | 생명의 삶 | 조호영 목사                                                                                                         

 

 

우리들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 받음'을 믿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구원받은 성도들은 그들의 삶의 태도와 믿음의 열매를 통해 그들이 구원받은 성도 인지를 나타낸다'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향하여서, 옛 율법을 온전하게 이루며 사는 삶은 무엇인지, 구약의 그 율법을 재해석하며 가르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 17절에서 26절 말씀입니다.

율법을 완성하러
오신 예수님


마태복음 5장 17절에서 26절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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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21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25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고발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옥리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26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구약의 율법을 온전히 성취하시고 완전하게 하시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옮은 율법을 없애기 위해서, 패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율법을 완성하고 그리고 나만이 온전케 할 수 있는 메시아 이심을 증거로 오신 것이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17절 18절 하먼 읽어보겠습니다.

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그 율법에 순종하여 사람들은 살았습니다.
그것에 순종하다 자신이 죄를 지으면 또 속죄제를 드리고 또 속건제를 드리고,

그렇게 자신의 죄를 씻어 가면서 율법이 그들의 그 삶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마 깨달았을 것입니다.
'끝이 없구나. 나는 이 율법을 지킬 수가 없는 사람이구나. 속건제 속죄제를 드리고 나오면서 또 죄를 짓는 것이 우리의 인간이구나'라는 것을 날이 가면 갈수록 깨닫게 된다는 것을 그들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것을 하실 수 있는 온전한 이 세상에 단 한 분뿐인 그런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완전하신 하나님 이시며 온전한 인간이시기 때문에,

이 땅에 우리의 몸을 입고 오셨지만, 하나님으로서 죄가 없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메시지를 듣고, '아 이제는 율법이 필요 없는 가보다. 예수님만 따라가면 되겠구나.'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9절 20절에 보면은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그러면서 또 뭐라고 말씀하시냐면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율법의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지키지 못하는 우리의 그 육신의 죄가 문제인 것이지, 율법은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고서는 지금 누구를 예를 듭니까?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그 '의'보다 그들이 '의'로 삼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들의 행위입니다.

왜냐하면 율법은 행위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마음 깊숙한 그 동기와 그 숨은 의도까지도 바라보시는 분이시지만,

율법은 우리가 행하는 것으로만 볼 수 있기 때문에 지금 그것을 말씀하시며,

'너희 행위조차 그 사람들보다도 못하면 그것은 안된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죠.

 

그런데 그 율법 학자들과 그 바리새인들은 왜 예수님을 그렇게 배척할까요?
제가 자꾸 이야기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겉에 보이는 것을 붙잡고 살았던 그들에게

지금 숨은 의도, 속 마음을 자꾸 이야기하시기 때문입니다.

 

21절에서도 계속 보면

21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옛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살인하지 말아라 이거 정말 중요한 것이죠.

그런데 지금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그런데 나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형제에게 바보라고 그렇게 업신여기거나,

그리고 미련한 놈이라고 욕하는 자도 살인과 마찬가지로 지옥에 들어갈 것이다'라는

이런 엄청난 말씀을 하신다는 것이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살인, 육신을 죽이는 것만 살인이 아니라.

그들의 언어로, 그들의 업신여김으로, 그들의 눈빛으로, 그들의 바디랭귀지로

말은 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것,

그것을 지금 확실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것에 동감하지 않습니까?

칼로 찌른다고 살인이 아니라.

우리가 한마디 한마디 하는 것, 우리의 몸에 제스처, 바디랭귀지나 우리의 눈빛까지도

사람들의 영혼과 혼을 죽일 수 있는 그럼 엄청난 힘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나의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 경험이 있나요?

 


서기관과 율법 학자들은 바리새인들은 철저하게 율법을 지키는 것 같았지만은

정의, 긍휼, 사랑, 믿음 그 율법의 기본적인 그 삶을 버리고 겉모습만을 붙들고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에 그 예배를 드리는 위선적인 모습을 보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그 바리새인들이 늘 자랑하는 것은

늘 그들이 기도하고, 예배하고 그렇게 성전에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 그들의 늘 자랑이 얻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중심적으로 사람들과 화해하지 못하고, 그리고 온전하게 하나님께 마음으로 예배하지 못하는 것을 지금 지적하십니다.

 

이사야서에서도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성전을 왔다 갔다 하며 제물만 드리고 예배하는 그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사야 1:11-12
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너희들이 그냥 왔다 갔다, 겉모습만, 마당만 밝고 왔다 갔다 하지, 나는 너희들의 예배를 받지 않는다.
정말 엄청난 두려움 말씀입니다.

 

마치 바리새인과 세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누가복음 18:11
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바리새인이 나는 저 세리 같지 않아서 감사하고, 나는 이렇게 하나님을 예배해서 감사하고, 그 감사의 제목을 올릴 때에

한구석에서 세리는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면서 하나님 저는 죄인입니다.

그렇게 고백하는 그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어떤 기도를 더 의롭게 여기시고 기뻐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세리의 기도였습니다.

 

우리는 정말 착각하는 것 같습니다.

교회를 오고 가고 많은 기도를 우리가 새벽에 나와서 또 철야에 나와서 하면

우리는 뭔가 된 것처럼 의로운 것처럼 그렇게 착각합니다.

 

그런데 뭐라고 합니까?
형제와 화목하지도 못하고 그 관계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피스메이커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그런 너희들이 어찌 하나님 그 피스메이커인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겠느냐?라고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리곤 뭐라고 하세요?

25절에 보니까

25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고발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옥리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네가 그 사람이 너를 고발해서 지금 재판하러 갈 때에, 빨리 급히 그와 화해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때를 얻던지 못 얻던지 화해하라.

너의 삶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거를 보면서 이렇게 드는 생각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많이 부모님들과 이웃과 화평하지 못하는 그런 사람들을 주변에서 많이 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목사로 사역하다 보면, 청년부들이나 사람들을 상담하게 되는데,

그 부모님들과 화평하지 못하고, 그 남편과 자식과 이 미움 때문에 어려워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정말 교회에 열심히요. 사역도 열심히요. 기도도 열심히 합니다.
그런데 이 문제를 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보니까 '급히 먼저 가서 그것부터 하라'라고,

지금 율법을 재 해석해 주고 계시는 예수님의 음성이 있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 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내가 부모님 그때 부모님께 찾아가 용서를 구해야 했는데, 

내가 그때 용서를 해 드려야 했는데, 

내가 화목하게 다시 관계를 맺어 써야 하는데, 
이런 것을 할 때 돌아가신 후는 이미 늦습니다.

 

아이들은 마음을 닫고, 부모의 용서가 오지 않을 때는

시간이 지나면 부모의 용서를 받아들이지도 않습니다.
그러기에 미안하다. 잘못했다. 고맙다. 용서한다. 용서해라. 
그런 하나님의 언어들은 그런 화평의 메시지들은, 때를 얻던지 못 얻던지 하는 것이 저희들에게 꼭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참 예배임을 먼저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내 이웃과 화평하며, 또 내 가족과 사랑하는 자들과 화평의 언어로

그렇게 관계를 맺고 서로 축복하는 오늘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내 가족과 이웃에게 어떤 축복의 말을 해줄 수 있을까요?

 

주님 오늘도 참 믿음이 무엇인지, 삶의 예배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 매일매일 내 이웃과 화평하며

삶으로 예배하는 자로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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