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15. | 생명의 삶 | 김주환 목사
할렐루야
오늘도 주님의 말씀과 함께 하루를 여는 여러분에게 큰 은혜가 임하기를 축복합니다.
아마 현대 기독교 사상가들 또 신학자들에게 '누구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까?' 라고 묻는다면,
제 생각에 1위는 C.S. 루이스 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1
평신도나 사역자 가릴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 C.S. 루이스의 깊은 신학의 큰 감명을 받았죠.
그런데 많일 C.S. 루이스에게 '누가 당신에게 가장 많은 사상적인 신학적인 영향을 미쳤습니까?' 라고 한다면
그 가운데에 분명히 G.K. 체스터턴경이 들어갈 것입니다. 2
이 G.K. 체스터턴경은 많은 글들을 썼는데, 그 내용 가운데 정말 저의 마음을 찔리게 하는것 하나 있었습니다.
그게 무엇이냐면,
'세상에서 가장 본인이 하는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입니다.
정말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에 나와서 예배드릴 때 고백하는 대로,
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아멘 하는 대로 산다면, 여러분 이 세상은 얼마나 아름답게 변할까요?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는 믿음과 따로 삽니다. 고백과 따로 행동합니다.
그 하나님은 예레미아에 경우 고백한 대로, 믿는 대로 행하고 살도록 훈련시키십니다.
오늘 예레미야 이 귀한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다루시는지 함께 보기를 원합니다.
고난 가운데 주신
미래 회복의 증표
예레미야 32장 1절에서 15절 말씀입니다.
오늘 부문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1 유다의 시드기야 왕 열째 해 곧 느부갓네살 열여덟째 해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2 그 때에 바벨론 군대는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선지자 예레미야는 유다의 왕의 궁중에 있는 시위대 뜰에 갇혔으니
자 예레미야는 시위대 뜰에 갇혀 있습니다.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이지요.
예레미야가 왜 이 상황에서 갇혀 있을까요? 그 이유는 3절에 나와 있습니다.
3 이는 그가 예언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보라 내가 이 성을 바벨론 왕의 손에 넘기리니 그가 차지할 것이며
유다 왕 시드기야는 갈대아인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반드시 바벨론 왕의 손에 넘겨진 바 되리니
입이 입을 대하여 말하고 눈이 서로 볼 것이며
그가 시드기야를 바벨론으로 끌어 가리니 시드기야는 내가 돌볼 때까지 거기에 있으리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갈대아인과 싸울지라도 승리하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더니
유다 왕 시드기야가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같이 예언하였느냐 하고 그를 가두었음이었더라
시드기야가 예레미아를 옥에 가둔 이유는 무엇일까요?
계속해서 끔찍한 내용만 전했기 때문입니다
정말 기분 나쁜 소리만 계속하고 있는 거예요.
지금 시드기야는 어떻게 해서든지 왕국을 지켜내기 위해서, 예루살렘 성안에 있는 사람들과 한 마음이 되어서, 바벨론의 침공을 막아 내려고 하고 있는데, 예레미야가 지금 계속 시종일관 무슨 말을 하고 있습니까?
'당신은 어차피 이길 수 없습니다. 당신은 질 것입니다. 당신의 끌려 갈 것입니다. 당신은 포로가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시드기야가 말하는 거에요
'너는 왜 자꾸 이스라엘의 무너진다고 말하느냐?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선택한 민족아니냐?
우리를 지키겠다고 이미 여러 선지자들 (거짓 선지자들) 통해서 우리의 약속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왜 너 너 혼자서 계속 내가 질 거고, 내가 느브갓셀에게 끌려 갈 것이라고 말하느냐?
왜 우리가 힘써 싸워도 질수 밖에 없다라는 부정적인 말을 하고 있느냐?'
그래서 더 이상 이런 부정적인 말이 퍼지지 않기 위해서 시드기야는 예레미야를 옥에 가두어 버립니다.
여러분 우리는 시드기야를 통해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시드기야는 진리에 관심이 없는 성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뜻에 관심이 없고, 지금 자신의 왕권이 이어지는 것, 현 상태가 유지되는 것에 관심이 있었던 것이죠.
결국 시드기야는 두 눈이 뽑힌 상태에서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게 됩니다.
만일 시드기야가 아무리 기분이 나쁜 말이라도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였다면 이 불행을 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씀하시며, 경고 하십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에는 우리가 너무나 많은 손해를 봐야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놔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정말 그 말씀이 불편하고 듣기 싫은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 그럴 때일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들어야 됩니다.
지금 내가 어떤 상황 속에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면 잃게 되는게 너무 많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을 따라가는 여러분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내 허물과 죄를 드러내실 때 어떻게 반응하나요?
지금 남유다의 모든 영토는 이미 원수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예루살렘 성벽 일부도 이미 무너졌습니다.
이제 예루살렘과 성전이 불타는 것은 시간의 문제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 상황에서 다 자기가 갖고 있었던 땅을 팔고 싶어했습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누가 바보처럼 땅을 사겠습니까?
모두가 다 적에 손에 넘어 갔는데요.
그런데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6절이예요.
6 예레미야가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였느니라 이르시기를
7 보라 네 숙부 살룸의 아들 하나멜이 네게 와서 말하기를 너는 아나돗에 있는 내 밭을 사라 이 기업을 무를 권리가 네게 있느니라 하리라 하시더니
8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나의 숙부의 아들 하나멜이 시위대 뜰 안 나에게 와서 이르되 청하노니 너는 베냐민 땅 아나돗에 있는 나의 밭을 사라 기업의 상속권이 네게 있고 무를 권리가 네게 있으니 너를 위하여 사라 하는지라 내가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인 줄 알았으므로
이 레위기 25장에 나와 있는 토지 무르기 규정이 있습니다. 경제적 약자의 짐을 함께 담당하는 공동체 (레위기 25:23~38)
친족 가운데 궁핍해져가지고 땅을 팔아야 하는 상황이 되면, 가까운 친족이 그 땅을 사야하는 의무가 있었습니다.
오래된 전쟁 때문에, 이 기근 때문에, 이 전염병 때문에, 예레미야의 사촌이 어떤 하남에 역시 지금 굉장히 궁핍한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멜도 대단하지요.
뭘믿고 ... 지금 이 상황에서 자신의 사촌한테 와가지고 형한테 이 땅을 살 의무가 있으니까. 이 땅을 사 달라고 요청 했는지 ...
그런데 하나님은 이미 모든 상황을 알고 계셨고 예레미야에게 귀뜸 해 주셨습니다.
내 사촌 동생이 와서 땅을 사 달라고 하면 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이것이 비록 구약에 규정이지만, 오늘 신약시대 살아가는 우리에게 굉장히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가족을 돌볼 책임이 있습니다.
궁핍에 처해있는 우리의 친족을 돌보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소명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사랑하는 가족과 친척이 어려움을 당할 때, 정말 그들을 돌보는 이 아름다운 책임을 이룰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자 예레미야는 이 밭을 사게 됩니다.
근데 그냥 그래 내가 돈 줄게 사자, 한 것이 아니라.
이 모든 매매 절차를 철저하게 공식적으로 하게 됩니다.
9 내 숙부의 아들 하나멜의 아나돗에 있는 밭을 사는데 은 십칠 세겔을 달아 주되
10 증서를 써서 봉인하고 증인을 세우고 은을 저울에 달아 주고
11 법과 규례대로 봉인하고 봉인하지 아니한 매매 증서를 내가 가지고
12 나의 숙부의 아들 하나멜과 매매 증서에 인 친 증인 앞과 시위대 뜰에 앉아 있는 유다 모든 사람 앞에서 그 매매 증서를 마세야의 손자 네리야의 아들 바룩에게 부치며
13 그들의 앞에서 바룩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14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이 증서 곧 봉인하고 봉인하지 않은 매매 증서를 가지고 토기에 담아 오랫동안 보존하게 하라
15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사람이 이 땅에서 집과 밭과 포도원을 다시 사게 되리라 하셨다 하니라
은 17세겔을 건네 줄 뿐만 아니라, 11절 법과 규례대로 봉인하고,
또 12절을 보면 '나의 숙부의 아들 하나멜과 매매 증서에 인 친 증인 앞과 시위대 뜰에 앉아 있는 유다 모든 사람 앞에서'
법적 중인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법정에 많은 사람들이 지금 이 거래 장면을 목격하고 있는 거예요.
너무나 우수꽝스러운 장면입니다.
아니 저 사람이 왜 지금 이 상황에서 땅을 사냐? 이미 다 넘어간 땅을 ...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신앙은 눈에 보이는 현실 증거와 상관 없이 행하는 것이라고 우리는 늘 배워왔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또 하나의 중요한 신앙을 보게 됩니다.
신앙은 결과와 상관없이 순종하는 거에요.
내가 순종하면 결과가 어떻게 될지 다 알면서도,
내가 순종하면 결과가 바뀔 것이다 예상하고 순종하는 게 아닙니다.
내가 순종 했을 때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다 알면서 하는 순종이 진짜 순종입니다.
예레미아가 한 번도 들어 가서 살지 못할 이 땅에 왜 자신의 모든 재산을 털어서 투자 하게 됩니까?
왜냐하면, 예레미야는 눈에 보이는 현실과 상황을 따라 선택한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음성이 선택의 기준이였기때문입니다.
여러분 오늘 하루로 살아갈 때, 저와 여러분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진리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는 매사에 선택권이 하나밖에 없습니다.
상황이 아니에요.
얼마나 급박하냐? 얼마나 우리의 현실이 어둠냐? 얼마나 내가 이 결정을 내려야 될 상황이 되었느냐? 그것이 아니라
하나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레미야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참된 신앙은, 저 먼 미래, 천국을 바라보는 신앙입니다.
이게 바로 마태복음 13장에 나와있는
마태복음 13: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다.
그 보화를 발견한 사람은요. 주저함 없이 자신의 모든 재산을 다 털어서 그 밭을 삽니다. 그 보화를 얻기 위해서죠.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하루도 저와 여러분이, 눈에 보이는 이 당장의 현실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
반드시 이루어질 하나님의 약속
그리고, 영원히 우리가 있게 될 하나님의 유업을 얻기 위해, 확보하기 위해, 그 먼 미래를 바라 보며,
믿음으로 투자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삶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하나님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어떤 상황, 어떤 형편에 처하든지
올바른 선택은 하나뿐임을 가르쳐주시니 감사합니다.
오직 주의 말씀을 따라 선택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도 예레미아처럼 눈에 보이는 현실을 따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분명하고도 생생한 말씀을 따라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하게 하여 주옵소서.
고백한 대로 사는 하루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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