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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에 반응하는 마음, 순종과 불순종 (예레미야 26:16~24)

2020.09.02. | 생명의 삶 | 임채영 목사

 

 

우리는 민주주의라고 하는 체계 속에 살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가장 큰 가치다수죠, 다수 

그런데 다수가 항상 옳은 것 만은 아닙니다.

특별히 성경을 보면 다수 보다는, 하나님의 뜻에 민감한 소수에 의해서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을 우리가 보게 되지요.

오늘 우리가 읽으려고 하는 예레미야 26장 16절부터 24절까지 말씀에도 보면, 이러한 신실한 소수들의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오늘 이 말씀을 우리 함께 읽으면서 이 시대의 하나님 앞에 신실한 소수로써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었으면 합니다.

 

말씀에 반응하는 마음, 

순종과 불순종

 

예레미야 26장 16절에서 24절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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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고관들과 모든 백성이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에게 이르되 이 사람이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말하였으니 죽일 만한 이유가 없느니라

17 그러자 그 지방의 장로 중 몇 사람이 일어나 백성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18 유다의 왕 히스기야 시대에 모레셋 사람 미가가 유다의 모든 백성에게 예언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시온은 밭 같이 경작지가 될 것이며 예루살렘은 돌 무더기가 되며 이 성전의 산은 산당의 숲과 같이 되리라 하였으나

19유다의 왕 히스기야와 모든 유다가 그를 죽였느냐 히스기야가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선언한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지 아니하셨느냐 우리가 이같이 하면 우리의 생명을 스스로 심히 해롭게 하는 것이니라

20 또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언한 사람이 있었는데 곧 기럇여아림 스마야의 아들 우리야라 그가 예레미야의 모든 말과 같이 이 성과 이 땅에 경고하여 예언하매

 

21 여호야김 왕과 그의 모든 용사와 모든 고관이 그의 말을 듣고서 왕이 그를 죽이려 하매 우리야가 그 말을 듣고 두려워 애굽으로 도망하여 간지라

22 여호야김 왕이 사람을 애굽으로 보내되 곧 악볼의 아들 엘라단과 몇 사람을 함께 애굽으로 보냈더니

23 그들이 우리야를 애굽에서 연행하여 여호야김 왕에게로 그를 데려오매 왕이 칼로 그를 죽이고 그의 시체를 평민의 묘지에 던지게 하니라

24 사반의 아들 아히감의 손이 예레미야를 도와 주어 그를 백성의 손에 내어 주지 아니하여 죽이지 못하게 하니라

 

 

 

어제 우리가 살펴본 대로 26장 전반부를 보았는데요.

악한 길에서 돌이켜 참된 예배자가 되라 (예레미야 26:1~15)

26장은 모두 네 개의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정리해 봅니다. 

첫 번째가 예레미아가 행한 성전 설교에 대한 개요가 1절부터 7절

그리고 8절 부터 15절 까지 보면 예레미아의 체포와 신문 

그리고 16절부터 19절이 예레미아를 위한 유다 장로들의 변론

그리고 20절부터 24절까지가 우리야의 처형에 대한 이야기와 예레미아에 처형 모면하게 되는 내용들이 나옵니다.

 

오늘 26장의 후반 부인 16절 부터 마지막 24절 까지를 보는데요.

먼저 16절 부터 19절을 보시면, 예레미야를 구명하려는 유다 장로들의 변론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재판관인 고관들은 고발하는 사람들 그리고 고발 당한 사람 예레미야죠? 

양쪽 이야기를 다 들어 본 뒤에 고발당한 사람에게 죄가 없다고 일단 판결을 내립니다.

 

16절 보세요. 

16 고관들과 모든 백성이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에게 이르되 이 사람이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말하였으니 죽일 만한 이유가 없느니라

 

재판관들은 어떠한 예언자도 여호와의 말씀을 말하는 것 때문에 보복을 당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에 근거해서 예레미야의 편을 듭니다.

바로 그 때 예레미아의 예언이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한다는 또 하나의 증거를 제시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유다 땅의 장로였습니다.

그들은 약 100년전 히스기아가 통치하던 시절에 모레세 사람 미가라고 하는 예언자가 '예루살렘 성전이 심판을 받을 것이다' 라고 예언했던 말씀을 상기시킵니다.

장로들은 19절에 나오는대로, 예레미아의 성전 설교 내용과 대동소이한 미가 예언자의 예언에 히스기아 왕과 유다 백성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를 설명합니다.

즉 그 당시에 왕이었던 히스기야는 여호와를 두려워해서 여호와께 간구하였으며,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향한 재앙을 돌이키기셨다'라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그래서 만약에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없이 대변한 예언자 예레미야를 여기서 죽인다면, 

어쩌면 우리는 엄청난 재앙을 불러 들일 수 있다' 이렇게 경고합니다.

 

요즘 보면 '기준이 무너져 내렸다' 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이 시대의 기준은 대부분 사회적 합의라는 것에 매우 이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여론이 모이고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면 그것이 새로운 기준으로 둔갑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일찍이 미국의 윤리 학자였던 라인홀드 니버[각주:1]'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라는 책에서 

사회적인 합의를 이루는 과정에서 얼마든지 비 도덕적인 기준이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하기도 했는데요.

사실은 이 시대는 정확한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기준이 필요합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명령을 기준으로 삼지 않고, 자기들의 의견만 주장하다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성경이 우리의 기준으로 회복되어야 합니다.

변치않는 기준, 하나님의 말씀 밖에 없기에 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의 기준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경고를 사랑으로 듣고 겸손히 순종할 일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경고를 사랑으로 듣고 겸손히 순종할 일은 무엇인가요?

 

 

 

이제 예레미야 26장의 마지막 단락인데요. 20절부터 24절 입니다.

20 또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언한 사람이 있었는데 곧 기럇여아림 스마야의 아들 우리야라 그가 예레미야의 모든 말과 같이 이 성과 이 땅에 경고하여 예언하매

21 여호야김 왕과 그의 모든 용사와 모든 고관이 그의 말을 듣고서 왕이 그를 죽이려 하매 우리야가 그 말을 듣고 두려워 애굽으로 도망하여 간지라

22 여호야김 왕이 사람을 애굽으로 보내되 곧 악볼의 아들 엘라단과 몇 사람을 함께 애굽으로 보냈더니

23 그들이 우리야를 애굽에서 연행하여 여호야김 왕에게로 그를 데려오매 왕이 칼로 그를 죽이고 그의 시체를 평민의 묘지에 던지게 하니라

24 사반의 아들 아히감의 손이 예레미야를 도와 주어 그를 백성의 손에 내어 주지 아니하여 죽이지 못하게 하니라

 

예레미아와 똑같은 예언을 선포했던 또 하나의 예언자를 언급하고 있죠?

20절에 보면 그는 '기랏여아림의 우리야'라고 소개됩니다.

20 또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언한 사람이 있었는데 곧 기럇여아림 스마야의 아들 우리야라 그가 예레미야의 모든 말과 같이 이 성과 이 땅에 경고하여 예언하매

이 기랏여아림은 예루살렘으로 부터 북서쪽으로 1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는데, 이 예언으로 우리야는 생명의 위협을 감지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전에 이집트로 피신하지요.

 

21절에 그 내용이 나옵니다. 

21 여호야김 왕과 그의 모든 용사와 모든 고관이 그의 말을 듣고서 왕이 그를 죽이려 하매 우리야가 그 말을 듣고 두려워 애굽으로 도망하여 간지라

그러자 유다의 왕이 어떤 여호야김은 악보의 아들 엘라 단을 특사로 임명해서 이집트로 급파시켜 그를 체포해 옵니다.

여호야김은 압송되어 '우리야'를 칼로 쳐 죽이고, 그의 시체를 평민의 묘지에 던져 버리죠.

자 이제 이러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예레미아와 동일한 예언을 했다가 우리야가 무참하게 처형을 당했어요. 

자 그럼 이 이제는 이집트도 아니고 예루살렘의 한 복판에 있는 예레미아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관심이 모아집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24절을 보시면 

24 사반의 아들 아히감의 손이 예레미야를 도와 주어 그를 백성의 손에 내어 주지 아니하여 죽이지 못하게 하니라

예레미아는 '사반의 아들 아히감'이 보호함으로 '우리야'와 같은 운명에서 구원받게 됩니다.

예언자의 대한 박해와 국가적인 유린에도 불구하고, 신실한 소수들이 즉 남은 자들이 구해 내는 거죠.

그들이 예레미야를 보호합니다. 그의 메시지를 보존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새로운 공동체의 핵심이 됩니다.

흑암을 헤치고 나올 희망찬 새로운 시대는 언제나 신실한 소수, 즉 남은 자들의 용감한 행동에 의해서 열려지게 됩니다.

이 신실한 소수를 성경은 남은자 라고 하지요. 하나님께서 남겨 두신 사람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이 남은 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죄악이 세상에 가득해서 더 이상 소망이 없어서, 심판하시지만, 심판하실 그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남은 자를 남겨두십니다.

 

노아의 시대를 보세요. 

죄가 세상에 관영함으로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을 홍수로 멸하시기로 결정하십니다.

그러면서 노아를 포함한 노아의 가족 8명을 남겨 두십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새로운 구원 사역을 이루어 가시는 거죠.

이 남은자, 남은 자가 새로운 역사를 이루어 갑니다.

악이 승리하도록 하는 유일한 일은 선한 사람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오늘 이 시대에 남겨진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기에 이 땅의 악이 더 성행하는 것은 아닌가?

 

남은자와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낙오자 입니다. 

남은자와 낙오자는 것 모습으로 잘 분간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남은자는 믿음의 사람 이지만, 낙오자는 불신의 사람입니다.

남은자는 자신에 대해 죽고 하나님께 대해 살았지만, 낙오자는 자신은 살고 하나님께 대해서는 죽은 자입니다.

남은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지만, 낙오자는 하나님의 은혜에 밖에 있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누가 되고 싶습니까?

남은자 입니까? 아니면 낙오자입니까? 

죄악된 세상에서도 환란과 고통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는 남은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남은자는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은혜로 택하여 주십니다.

우리는 당연히 남은자가 되어야 되지 않을까요?

이 시대에 남은자로서 살아갈 수 있다면, 만일에 이 시대가 어둡다면, 남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빛을 들지 않아서는 아닐까요?

이 땅의 악이 관용한다면, 이 땅에 남은자들이 거룩하게 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오늘 남은자로서 살아가는 여러분들을 기대하며 응원합니다.

 

남은 자로서 살아가기 위해 하나님의 메시지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남은 자로서 살아가기 위해 하나님의 메시지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삶의 기준이 되시는 하나님 

모든 기준이 무너져 내려서 자신이 기준이 되어버린 이 혼란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혹시 우리의 기준도 변질된 것은 아닌지 돌아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게 하시고, 그 기준을 따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믿음의 길을 걸어가도록 성령이어 도와 주옵소서.

혹시라도 이 믿음의 길에서 낙오자가 되지 않게 하시고, 

이 시대를 변화시킬 수 있는 하나님께서 남기신 남은 자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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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라인홀드 니버(1892~1971) | 개신교 신학자이며 기독교 윤리학자 미국의 변증법 신학의 대표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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