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13 | 생명의 삶 | 백상욱목사
할렐루야
오늘도 신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는 여러분들에게
좋으신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은총이 하루 종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서울 광진구 자양동에 있는 오늘의 교회를 섬기는 목사 백상욱입니다.
혹시 여러분은 여러분이 열심히 일한 것이 잘 뜻대로 되지 않아서 속상한 적은 없으셨습니까?
수고하고 애썼는데 뜻밖의 결과가 나와서 마음 상한 적이 있지는 않으셨습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농부의 마음으로 수고하고 애썼으나, 뜻대로 일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는 사람에 대한 위로의 메시지를, 또 한 가지는 그렇게 된 밭에 대한 준엄한 경고의 이야기를 동시에 담아 본문의 비유를 설명해 주고 계십니다.
앞에서 다루었던 씨부린 자의 비유에 관한 설명
주님, 어떻게 하고 계실까요?
오늘 하나님의 말씀은 마태복음 13장 18절부터 30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좋은 땅과 좋은 씨에 집중하십시오
마태복음 13장 18절에서 30절 말씀입니다.
| 18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19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 20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21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22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23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24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25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26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27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28 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29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30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
씨를 뿌리는 농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씨앗입니다.
어떤 씨앗을 뿌리느냐에 따라 그 밭이 어떤 종류의 밭이 결정되지 않겠습니까?
배추밭, 무밭, 딸기 씨가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똑같은 씨를 똑같은 농부가 뿌렸습니다.
그러나 전혀 다른 결과를 갖게 된 것이죠. 무엇 때문에 그런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씨가 떨어진 땅 즉 밭이 다른 밭이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땅의 성질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다는 사실을 본문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씨가 떨어진 땅인 이 밭은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오늘 본문 18절과 19절에서 말씀해 주고 계시는데요.
18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19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
본문에 보면 이 밭에 대해서 설명하기를 마음이라고 말하는 거예요.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
이 마음의 태도와 마음의 자세에 따라 똑같은 씨가 떨어져도 전혀 다른 결과를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가장 먼저 언급한 사람은 길가 밭을 말하고 있습니다.
길가 밭은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길가 밭에 떨어지자 악한 자가 와서 그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 마음밭에 하나님의 말씀에 씨앗이 깊게 떨어지지 못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악한 자가 채 갔으니, 마음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사람을 말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설교를 듣고, 성경을 읽어도,
성경이나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마음 밭에 깊게 심으려고 하는 의지가 없는 사람, 그저 수동적으로 앉아 있는 사람 예배 시간이나 설교를 들을 때 수동적으로 그저 앉아 있는 사람은 말씀을 들으나 곧 악한 자가 그 말씀을 책하기 때문에 마음에 남는 게 하나도 없다는 이야기를 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 이 길가 밭에 떨어진 그런 마음 같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겠습니까?
혹 여러분 중에 설교 때나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 ,아무것도 마음에 남지 않고 주의를 보내고 성경을 읽어도 남는 게 없다면,
여러분의 마음 밭이 표층이 딱딱한 길가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여러분의 마음에 딱딱한 길가가 좀 더 기경이 되고, 길가에 뿌려진 씨앗처럼 바람과 함께 날아가지 아니하도록 마음밭에 심도록 마음밭을 기경(起耕)하기를 바랍니다.
토양을 기경하듯이 마음을 기경하고, 말씀에 집중하고, 말씀을 붙들려고 애를 쓰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악한 자가 쉽게 낚아채지 아니하고, 그 말씀이 여러분의 마음 밭에서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내려 마침내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는요 돌밭을 말하고 있는데요 돌밭에 관하여 20절에 말씀하십니다.
20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21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돌밭의 특징은요 기쁨으로 말씀을 받는다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말씀에 대하여 감정적으로 수용하여서 잠시 잠깐 동안에는 뿌리를 내리는 듯 하지만
결국은 뿌리를 깊게 내리지 못할 만큼 밭에 돌이 많다는 거죠.
그래서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는 겁니다. 어떤 사람입니까?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 은혜를 받고 감격하고 감사하고 잠시 좋아하지만, 이 하나님의 말씀의 씨앗이 자신의 사고와 의식 깊게 내려가도록 꾹꾹 다져 눌러놓지 않고 그저 감정적으로 은혜로만 받아들이고 마는 사람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은혜로 받고 감사함으로 받는 것은 중요한 일이나,
그저 그것이 은혜의 감정으로만 남지 아니하도록 받은 말씀을 내가 어떻게 살아야 될지,
하나님 말씀의 뜻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숙고하고,
마음 깊게 나의 사고 방식을 전환시킬 만큼 마음 깊게 담아 놓는 연습을 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감정은 휘발성 있게 있어서 날아가 버리지만,
의식 깊은 곳에 새겨진 하나님의 말씀은 여러분의 사고방식과 인격과 삶을 바꿔 나가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세 번째 는요 가시 밭인데요 본문 22절의 말씀입니다.
22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이것은 마음속에 세상의 염려와 근심, 불안이라는 가시가 가득히 덮여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마음에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부딪힐 일들에 관한 염려와 근심이 많기 때문에 말씀의 씨앗이 이 염려를 뚫고 자라기가 어려운 거예요. 그럼 이런 사람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먼저 마음의 근심과 염려를 제거하고 말씀을 심어야 그 말씀이 줄기를 내리고 자랄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말씀 말씀으로 말미암아 성장하고 결실을 맺기 위하여 이 가시를 제거하고자 하는데,
염려와 근심이 제거되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저는 여러분에게 목사가 되어 권면합니다.
가시보다 마음에 있는 가시보다 더 많은 양의 말씀을 마음에 뿌리십시오.
가시보다 더 많은 양의 말씀을 뿌리면,
여러분의 마음 밭은 가시밭이 아니라 말씀의 밭 위에 가시가 조금 몇 개 나 있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런 말씀이 자라면서 가시를 덮어서 오히려 염려와 근심의 가시가 못 자라게 만들고 말씀이 자라게 될 것입니다.
어떻게 그러면 더 많이 말씀을 뿌릴 수 있습니까?
성경을 많이 읽고, 성경 공부를 많이 하고, 염려와 근심이 일어날 때마다 성경을 읽고 성경 공부하고 말씀을 묵사하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염려가 일어나라 할 때마다 말씀을 더 많이 읽으십시오.
그러면 염려가 사라지고 여러분의 마음은 말씀 밭이 될 것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은 24절부터 30절까지 말씀인데요
여기에서는 좋은 밭에 좋은 곡식이 뿌려졌으나 원수가 가라지를 더하여서 그 밭에 곡식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계십니다.
본문 24절과 26절을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24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25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26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이 말씀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느냐 하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알곡과 가라지가,
다시 말하면 곡식과 가라지가 함께 자란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의 천사가 하나님의 자녀들의 씨앗을 뿌렸으나
그러나 원수가 와서 악한 자의 씨앗을 뿌려서 세상은 하나님의 백성과 악한 백성이 함께 자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만 세상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교회 공동체를 말하고 있습니다.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이렇게 24절이 되는 것을 볼 때 자기 밭이니까 교회 공동체인 거예요.
교회 공동체 안에 하나님의 백성도 있고 악한 자가 뿌려놓은 가라지도 함께 자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잘 보면 저 사람이 가라자인지 곡식인지 알아차릴 수 있다고 합니다. 본문 26절에서도
26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함께 신앙하는 사람들, 신앙생활 하는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은 아무리 봐도 믿음이 없는 사람이고, 교회 공동체를 해코지하는 사람 같고 이간질하는 사랑받고 나쁜 사람 같고 거듭나지만 않은 사람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 마음 같으면 다 뽑아내고 좋은 사람만 두고 싶으나
주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냐면 29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9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30절 앞부분에는요
30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그러면 추수할 때 주님께서 가라지는 다 거두어서 불사르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교회 공동체가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가라지처럼 보여도 뽑으면 안 됩니다.
내쫓으면 안 됩니다. 야단치고 타하여서 그 사람을 떠나게 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누가 진짜 가라지고 누가 진짜 곡식인지 모릅니다.
겉 보기에는 정말 가라지 같아도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 가운데 그가 어느새 바뀌어서 신실한 하나님이 된 사람일 줄 아무도 모릅니다.
겉보기에는 신앙이 좋은 알곡처럼 보여도 그가 언제 마음을 돌이켜 그리스도를 배신하고 교회 공동체에 어려움을 주고 하나님을 떠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사람이 알고기인지 가라진지 따질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이 신실한 사람인지 믿음이 없는 사람인지 너무 분별하려 하지 말고
그리스도 안에서 그저 사랑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격려하고
함께 신실한 믿음을 함께 쌓아나갈 믿음의 동역자요 형제자매로 대하고 사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우리가 사랑하고 용서하고 품으면
마지막 때에 주님께서 알곡과 가라지를 주님께서 골라 주실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교회 공동체를 사랑하십시오.
여러분 주변에 있는 형제자매가 부족하고 연약해도 사랑하십시오.
그는 그리스도께서 자기 피로 사신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 마음 밭이 길가 밭이나 돌짝 밭이나 가시떨기 밭이 되지 않게 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는 좋은 밭 되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아울러 내 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알고
잘 섬기고 잘 사랑하는 법을 배워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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