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27. | 생명의 삶 | 윤광열 목사
안녕하세요.
큰 기쁨 교회를 섬기고 있는 윤광열 목사입니다.
오늘 하루도 생명의 말씀이 여러분들을 살리시기를 바랍니다.
아마도 여러분들은 신앙생활하면서 다음과 같은 궁금증을 한 번쯤은 가져본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즉, 복음을 믿고 구원을 받은 여러분들에게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구약에 나오는 율법은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어떤 역할을 하는가? 혹여 지키지 않는다면 구원에서 멀어지는가? 그렇다면 복음과 율법은 어떤 관계에 있는가? 에 대해서 궁금했던 적이 있을 겁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보실 말씀은 갈라디아서 4장 21절에서 31절입니다.
약속의 자녀로 사는 성도
갈라디아서 4장 21절에서 31절 말씀입니다.
21 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에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22 기록된 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 23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24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갈이라 25 이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니 그가 그 자녀들과 더불어 종 노릇 하고 26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27 기록된 바 잉태하지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산고를 모르는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28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29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30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여종의 아들이 자유 있는 여자의 아들과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31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 있는 여자의 자녀니라 |
갈라디아서가 쓰일 당시에도 설립된 지 얼마 안 되었던 초대 교회들에서도 이 문제로 인하여 성도들은 다소 혼란을 겪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때에 오늘 본문은 유대교 율법에 정통했던 사도 바울이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려면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거짓 교사들의 주장에 대하여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와 하갈의 비유를 통하여 율법과 복음, 즉 은혜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율법은 근본적으로 사람들을 죄와 사망에 종속되게 하는 반면, 복음은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주는 참된 자유의 삶이며 믿음과 은혜의 결과임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을 다시 한번 쉽게 풀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유대교의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얻는다고 생각하는 형제들이요.
내 말을 들어보십시오. 여러분은 왜 율법이 정말 의미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십니까?
구약의 율법서에 보면 아브라함은 두 아들을 두었는데, 하나는 여종의 몸에서 낳았고, 또 하나는 부인의 몸에서 낳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종의 몸에서 태어난 아들은 인간의 육신이 맺어져 낳았지만, 부인의 몸에서 태어난 아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약속을 따라 난 아들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 24절에서 26절 말씀은 이런 내용입니다.
24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갈이라
25 이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니 그가 그 자녀들과 더불어 종 노릇 하고
26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나 하나는 신의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갈이라.
이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신의산으로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니, 그가 그 자녀들과 더불어 종노릇하고,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도우시려고 열어놓으신 두 길을 가리킵니다.
하나는 율법을 주셔서 이 율법에 복종하라고 하신 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네산에서 십계명을 주시고 이 길을 보이셨습니다.
아라비아 사람들은 이 시네산을 하갈산이라고도 부릅니다.
사도 바울은 이 비유를 사용하여 말하려고 하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곧 아브라함의 여종인 하갈은 유대인의 어머니라고 말할 수 있는 예루살렘을 가리킵니다.
다시 말해서 계명을 지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제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 바로 예루살렘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제도를 따라가는 유대인들은 모두 다 하갈이 낳은 종의 자식들입니다.
그러나 하늘의 예루살렘은 우리의 어머니로 율법에 전혀 구애받지 않습니다.
또 오늘 본문은 구약의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하여 이렇게 말씀합니다.
'예루살렘, 아 너는 이제 기뻐하며 환호성을 질러라.
내가 버림받은 여인의 신세와 비슷하지만 오히려 남편 있는 여자보다 더 많은 자식을 둘 것이다.'
계속 이어서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여러분은 이삭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약속으로 낳은 자녀들입니다.
그런데 성령으로 난 여러분이 율법을 지키라고 강요하는 사람들의 박해를 받고 있습니다.
마치 약속의 아들 이삭이 여종의 아들 이스마엘에게 박해를 받았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어떻게 적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기를 종의 아들은 자유인의 아들과 똑같이 상속을 받을 수 없으니 여종과 그 아들은 쫓아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우리는 유대교 율법에 묶인 노예의 자녀가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을 보고 하나님께서 기꺼이 받으실 자유인의 자녀입니다.
이처럼 사도바울은 아브라함의 두 아들을 예로 들어서 여종 하갈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낳은 아들을 율법 아래 종노릇하는 자로, 자유 있는 여인에게서는 약속을 따라 난 아들 이삭을 약속의 자녀로 비유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우리 모두는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요, 성령을 따라 하나님의 유업을 상속받은 자유인임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고 약속의 자녀가 된 여러분들은 이제 성령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매이지 않고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며 지킬 수 있는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가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므로 오늘도 여러분의 삶 가운데에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의 자유의 복음이 충만하신 하루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주님
구원은 믿음으로 받고, 신앙생활을 율법적으로 하려는 모순에서 벗어나길 원합니다.
성도들의 삶은 시작부터 끝까지 믿음으로 하는 것임을 마음에 깊이 새기게 하옵소서.
믿음으로 사는 삶에 장애물과 조롱이 있을지라도
당당하게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는 은혜가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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