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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이 아닌 믿음으로 받는 약속(갈라디아서 3:10~18)(20241023)

 

2024.10.23. | 생명의 삶 | 박종길 목사

 

율법이 아닌 믿음으로 받는 약속

 

안녕하세요. 

온누리 교회 박종길 목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은 십자가를 통해서 나타나고 또 율법의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놀라운 은혜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십자가를 사랑하고 또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묵상하고 기억하고 또 십자가를 늘 따라가는 그러한 삶이 우리에게 필요하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십자가로 초청해 주시고 또 십자가의 복음을 땅끝까지 증거 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여러분과 함께 나눌 말씀은 갈라디아서 3장 10절에서 18절의 말씀입니다.

 

율법이 아닌 믿음으로 받는 약속

 

 

갈라디아서 3장 10절에서 18절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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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1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12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15 형제들아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도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
16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17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삼십 년 후에 생긴 율법이 폐기하지 못하고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18 만일 그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니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주신 것이라



우리가 율법 아래에 있을 때 그 율법은 우리를 자유케 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저주이고 그 율법은 우리가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가르쳐줄 뿐 아니라 그 죄에 따른 심판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가리켜 주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 구원 얻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는 것은 놀라운 복음입니다. 오늘 말씀 10절 11절인데요.

10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1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사도 바울은 신명기 27장 26절의 말씀을 통해서 '율법 아래에 있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는 것'을 말씀하고,

또 하박국 2장 4절의 말씀처럼 '오직 의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는 말씀을 통해

우리의 구원이 율법의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왜 율법이 우리에게 저주가 될까요? 

그거는 율법을 완벽하게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뭐 10번을 잘하더라도 한 번 죄를 지으면 그 한 번의 죄가 우리의 10번의 선행을 다 무너뜨립니다.

다 끊어버리게 하죠.

어떻게 보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지킬 수 없는 우리의 인간 실존의 한계가 우리 가운데 있습니다.

아무리 착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아무리 의인과 같다는 칭함을 받는 사람조차도 

그 속에는 그 생각에는 그 영혼에는 너무나 악취나는 더러운 죄악이 있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압니다.

우리 자신, 우리 자신이 그렇지 않습니까? 

겉으로는 미소를 지어도 그 속으로 살인할 수 있는 그런 분노와 미움이 우리 인간의 모습이죠.

율법은 결코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지 못합니다. 

율법은 우리가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가르켜줄 뿐 아니라, 그 율법 아래 우리는 신음하는 저주받은 인생인 것을 보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얻는 것은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는 하박국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하는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죠.

그것이 우리에게 축복이고 그것이 은혜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양보하거나 바꿀 수 없는 구원의 아주 복된 소식이고 우리가 붙잡아야 되는 진리입니다.

 

내가 받을 율법의 저주를 대신 받으신 예수님을 어떻게 섬겨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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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은 율법으로부터 시작되는 구원이 아니라 이미 그 율법 이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고 그리고 그 아브라함의 삶을 통해 어떻게 의롭게 되어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오늘 본문 16절 17절인데요. 

16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17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삼십 년 후에 생긴 율법이 폐기하지 못하고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사도 바울이 설명하는 거죠.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은 이미 아브라함과 하나님이 약속하신 부분이다. 언약을 하신 부분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약속하신 자손들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단수를 쓰신 거죠.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의 근원이 되게 하고 그를 의롭다고 인정하시는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게 되는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먼 후손인 모세 때 430년 후에 모세가 받은 그 율법이 아브라함과 하나님이 맺은 그 언약을 예수 그리스도로 완성되는 주의 십자가를 믿는 그 믿음으로 얻게 되는 이 약속을 패하지 못하게 한다라는 그런 말씀을 우리에게 전해 주십니다.

얼마나 놀랍고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구원이 우리의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율법을 지킬 수 있으면 뭐 할 수 있겠죠.

그러나 율법을 다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 가운데 하나도 없고,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을 뿐이고, 율법 아래에 있는 자마다 저주와 심판과 멸망 아래 있게 될 수밖에 없는데, 

우리가 하나님 하나님과 맺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그 언약,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얻게 되는 이 믿음의 길, 이 놀라운 이 진리가 우리 가운데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와 축복인지 모르겠습니다.

 

율법과 복음으로 함께 우리로 하여금 

율법은 우리가 저주 아래에 놓인 인생인 것을 가리켜주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그 율법 아래 신음하는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는 그 하나님의 은혜의 초청임을 우리가 아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가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의 피가 주홍빛같이 붉은 우리 죄를 신눈같이 양털같이 쉬게 하는 것이죠.

이 놀라운 진리 이 복음 안에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고 오늘 하루 또 우리의 믿음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기에 내가 실망하지 않을 일은 무엇인가요?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십자가의 언약으로 약속으로 얻게 되어지는 이 구원을 붙잡고
승리하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도 우리의 자녀와 가정과 일터를 축복하여 주시고
선교사님들과 해외 한인들과 한우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주님께 눈물로 부르짖는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여 주시고 하늘의 문을 열어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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