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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생명의 복음은 이론이 아닌 실제입니다(사도행전 20:1~12)(20230809)

2023.08.09.ㅣ생명의 삶 | 박종길 목사

 

부활 생명의 복음은 이론이 아닌 실제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삶을 살아가고 주님을 따라갈 때 우리가 기억해야 할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제자'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특별히 구별하여서 주의 제자 되기를 소망하십시오.

주님은 우리를 제자로 부르셨고 

또 주의 제자, 예수님의 제자로 우리의 믿음이 주님 앞에 드러나고 

또 주님을 그렇게 따라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은 사도행전 20장 1절에서 12절의 말씀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부활 생명의 복음은 이론이 아닌 실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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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요가 그치매 바울은 제자들을 불러 권한 후에 작별하고 떠나 마게도냐로 가니라
2 그 지방으로 다녀가며 여러 말로 제자들에게 권하고 헬라에 이르러
3 거기 석 달 동안 있다가 배 타고 수리아로 가고자 할 그 때에 유대인들이 자기를 해하려고 공모하므로 마게도냐를 거쳐 돌아가기로 작정하니
4 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는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5 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라
그들은 먼저 가서 드로아에서 우리를 기다리더라

6 우리는 무교절 후에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 닷새 만에 드로아에 있는 그들에게 가서 이레를 머무니라
7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8 우리가 모인 윗다락에 등불을 많이 켰는데
9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 앉아 있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 층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보니 죽었는지라
10 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말하되 떠들지 말라 생명이 그에게 있다 하고

11 올라가 떡을 떼어 먹고 오랫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떠나니라
12 사람들이 살아난 청년을 데리고 가서 적지 않게 위로를 받았더라

 

바울과 그의 일행은 에베소에서 큰 어려움을 겪게 되고 그러나 그 어려움 속에서도 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통해서
또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또 이기게 되죠. 

바울은 이제 그가 에베소를 떠나 마케도니아에 이르게 되고 또 그곳에서 또 여러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오늘 본문 1절인데요. 

1 소요가 그치매 바울은 제자들을 불러 권한 후에 작별하고 떠나 마게도냐로 가니라

여기에 보면 제가 이 오늘 본문에서 이제 이 바울이라는 분과 또 한 사람을 나누기를 원하는데요.

먼저 바울의 모습을 보면 바울이 이제 큰 어려움을 겪고 마게도냐로 떠나게 될 때 제자들을 불렀다고 그랬습니다. 

제자들을 불러서 그들을 권하고 작별하고 또 그에 계속 이어지는 전도의 여정을 하게 되죠.

제자 제자는 누구일까? 

제자는 어떤 사람을 제자라고 말할까요? 

모든 사람을 다 주님께서 제자로 부르시지만,

그러나 주님께서 12명의 제자를 따로 구별하여 부르신 것처럼 또 그들을 훈련시키고 그들과 함께하셨던 것처럼,

우리의 믿음과 우리의 신앙의 삶은 주님의 제자, 예수 제자의 자리까지 나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자는 궁극적으로는 기본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리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중생한 그리스도인을 가리키죠. 

그 기본적인 그 상황에서 양육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제자가 되기 위해 훈련을 받은 사람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주님을 위해서 헌신하는 사람 

또 주님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사람 

주님의 말씀처럼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부인하고 주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갈 수 있는 사람, 충성된 사람, 성숙하고 양육받고 또 주님을 위해서 기꺼이 자신의 권리를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이 제자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바울은 그렇게 에베소에서 두란노를 통해 제자들을 양육했고 또 그 제자들과 함께 주의 복음을 증거하고 또 땅 끝까지 선교하는 그 일에 헌신한 것을 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이 제자를 부르실 때, 찾을 때 저와 여러분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나를 보내소서' 라고 그렇게 주님께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나는 모든 사람하고 친합니다라고 말하면 어떤 점에서는 친구가 한 명도 없는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주님을 믿고 따라갈 때 단지 주님을 믿고 구원을 받고 중생한 거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양육받고 또 헌신하여 충성된 주님의 제자로 쓸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훈련도 받아야 되고 양육도 받아야 되고

그리고 구체적으로 나의 삶에 주님을 따르는 제자로서의 헌신이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또 주님을 위해서 나를 내려놓는 포기가 있어야 되고, 

또 주님의 그 복음을 증거 하는 자리에 서기 위해서 용기를 내야 되고

또 담대하게 증거해야 되는 그런 삶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마게도냐와 또 드로와 또 아시아 여러 지역으로 계속 갑니다. 

멈추지 않는 바울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제자를 세우고 복음을 전하고 그러나 현실에 안주하거나 또 머뭇지 않는, 뒤로 물러서지 않는, 머뭇거리지 않는 그런 바울을 보게 됩니다. 

따로 구별하여 양육하고 그리고 끝없이 주의 부르심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떠나는 바울 

이런 바울의 제자의 모습이 저와 여러분의 모습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주님의 일을 차질 없이 완수하기 위해 둘러 가는 편을 택할 일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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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예루살렘을 향해서 계속해서 나아갑니다. 

특별히 그가 드로아라는 곳에 이르러 한 일주일가량 머물게 되는데 그 속에서 첫날 이렇게 떡을 뗐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이튿날 떠나게 될 때 바울이 강론을 하게 되는데,

아마도 이 모임이 너무 좋고 또 바울이 이제 또 다시 볼 수 얻게 되니까 많은 사람들이 모였던 것 같고

또 그들이 이렇게 밤늦게까지 바울이 말씀을 나눴던 것 같습니다.

 

저는 그런 생각을 해봐요. 

우리가 이제 우리의 현대는 너무 시간을 이렇게 딱딱딱딱 지켜야 돼서

이렇게 이제 설교도 예배 때, 주일 예배 때 보면 한 25분에서 30분,

30분만 넘어도 사람들 시계 보면서 이렇게 지루하고 그러는데

밤새 하나님의 말씀을 나눌 수 있다면, 또 예배드리고 찬양하는 것으로 또 기도하는 것으로

시간 없이 그냥 시간 제한 없이 그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또 마음도 갖게 되는데요.

 

아마 좀 이렇게 바울이 길게 설교를 하는 가운데 말씀이 길어지는 가운데 

유두고라고 하는 한 청년이 창문에 걸터앉아서 말씀을 듣다가 그만 졸다가 떨어져 죽는 그런 어려운 일이 생기게 됩니다. 

우리 본문 9절, 10절인데요. 

9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 앉아 있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 층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보니 죽었는지라
10 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말하되 떠들지 말라 생명이 그에게 있다 하고

'떠들지 말라 생명이 그에게 있다.'

이 참 큰 사건이죠. 
말씀을 강론하고 모임을 하는 중에 그 말씀을 듣던 한 청년이 3층에서 떨어져서 그만 죽는 

참 큰 사건이고 또 어려운 상황이고 그리고 참 은혜가 안 되는 그런 일이죠.

 

그런데 바울이 말합니다.

'떠들지 말라 생명이 그에게 있다.'
그리고 바울이 기도로 유두고를 다시 살립니다.

그리고 살아난 유두고로 인해서 그곳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큰 위로를 받는 그런 장면입니다.

 

저는 이 좀 약간 이상한 얘기일 수도 있지만 

'와... 어떻게 바울 같은 분이 말씀을 전하는데 졸 수 있을까?'

뭐 조는 정도가 아니라 이렇게 여기 보니까 이제 깊이 잠든 거예요.

그냥 거의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하면서 굉장히 위로도 받습니다. 

제가 설교할 때 이렇게 조시는 분도 계시는데

바울도 조는데 뭐 뭐 내가 이렇게 말씀 전하는데 주무신다고 내가 상처받을 게 아니구나 이제 그런 생각도 하지만, 

 

그러나 이제 참 어려운 거죠. 

말씀을 들을 때 이제 유도가 이렇게 창문에 좀 자리는 안 좋았던 것 같아요. 

이렇게 좀 그리고 또 집중해야 되지만 그러나 이제 바울이 이 청년을 꾸짖지 않지 않습니까? 

잘못됐다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 걸 보면 우리가 유두고를 이렇게 뭐라고 할 거는 아닌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려움이 생겼을 때, 이 위기가 있을 때 바울이 말합니다. 

'떠들지 마라 생명이 그에게 있다'라는 이 말씀처럼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증거하고 전하고 또 주의 일을 할 때 종종 예상하지 못한 어려운 일들이 생기고

은혜가 안 되는 또 힘든 상황이 있을 때 우리가 믿음 가운데 경건이 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바울의 말처럼 우리가 너무 믿음 없는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관점으로 우리에게 일어난 일들을 해석하고 적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냥 세상 사람들이 하는 대로 휩쓸려 가는 것이 아니라 바울이 떠들지 마라 생명이 그에게 있다. 

이 믿음의 고백이 그리고 믿음의 기도로 일어난 기적이 저와 여러분에게 있기를 소망합니다.

 

유두고가 다시 살아난 일은 드로아 성도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요?

 

거룩하신 하나님 
사도 바울과 같은 그런 제자의 삶을 살게 하여 주시고 
또 능력의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삶 가운데 믿음으로 주님을 따르는 예수 제자의 삶을 살게 하시고 그 삶으로 하나님 영광 받아 주옵소서. 
하나님 오늘 하루도 우리의 자녀와 가정과 일터와 직장을 축복하여 주시고,
복음을 들고 땅 끝까지 증거 하시는 선교사님들을 지켜주시고, 
환우들을 위로와 치유로 함께 하시며, 해외에 있는 한인들과 한인 교회에도 은혜를 더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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