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믿음의 시선으로 골리앗을 보는 다윗(사무엘상 17:12-27)(20230225 )

2023.02.25. | 생명의 삶 | 도육환 목사

 

믿음의 시선으로 골리앗을 보는 다윗

 

한 주간을 마무리하는 토요일입니다. 

지난 한 주간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말씀과 함께 하루를 열어가는 생명의 삶 모든 성도들은 믿음으로 지난 주간 승리하셨을 줄 믿습니다.

저는 영종 온누리교회를 섬기는 도육한 목사입니다.

여러분은 살아오시는 동안 의로운 분노, 곧 의분을 느껴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내가 속한 가정이나 교회에 대해 누군가 조롱하고 근거 없는 비난의 말을 쏟아내고 있다면,

당연히 분노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을 모욕하고, 우리의 신앙을 폄훼하는 누군가를 본다면 의분을 일으키는 것이 마땅하기도 합니다.

다윗은 여호와의 군대가 모욕을 당하는 것을 보고 의분을 느꼈고,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행동적인 신앙으로 일어섭니다. 

이 긴장되지만 흥미진진한 엘라 골짜기 전쟁터로 함께 가보겠습니다. 

오늘 묵상할 말씀은 사무엘상 17장 12절에서 27절까지의 말씀입니다. 

 

믿음의 시선으로 골리앗을 보는 다윗

 

더보기
12 다윗은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 이새라 하는 사람의 아들이었는데 이새는 사울 당시 사람 중에 나이가 많아 늙은 사람으로서 여덟 아들이 있는 중
13 그 장성한 세 아들은 사울을 따라 싸움에 나갔으니 싸움에 나간 세 아들의 이름은 장자 엘리압이요 그 다음은 아비나답이요 셋째는 삼마며
14 다윗은 막내라 장성한 세 사람은 사울을 따랐고
15 다윗은 사울에게로 왕래하며 베들레헴에서 그의 아버지의 양을 칠 때에

16 그 블레셋 사람이 사십 일을 조석으로 나와서 몸을 나타내었더라
17 이새가 그의 아들 다윗에게 이르되 지금 네 형들을 위하여 이 볶은 곡식 한 에바와 이 떡 열 덩이를 가지고 진영으로 속히 가서 네 형들에게 주고
18 이 치즈 열 덩이를 가져다가 그들의 천부장에게 주고 네 형들의 안부를 살피고 증표를 가져오라
19 그 때에 사울과 그들과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은 엘라 골짜기에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는 중이더라
20 다윗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양을 양 지키는 자에게 맡기고 이새가 명령한 대로 가지고 가서 진영에 이른즉 마침 군대가 전장에 나와서 싸우려고 고함치며,

21 이스라엘과 블레셋 사람들이 전열을 벌이고 양군이 서로 대치하였더라
22 다윗이 자기의 짐을 짐 지키는 자의 손에 맡기고 군대로 달려가서 형들에게 문안하고
23 그들과 함께 말할 때에 마침 블레셋 사람의 싸움 돋우는 가드 사람 골리앗이라 하는 자가 그 전열에서 나와서 전과 같은 말을 하매 다윗이 들으니라
24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그 앞에서 도망하며
25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르되 너희가 이 올라 온 사람을 보았느냐 참으로 이스라엘을 모욕하러 왔도다 그를 죽이는 사람은 왕이 많은 재물로 부하게 하고 그의 딸을 그에게 주고 그 아버지의 집을 이스라엘 중에서 세금을 면제하게 하시리라

26 다윗이 곁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이 블레셋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의 치욕을 제거하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대우를 하겠느냐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누구이기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
27 백성이 전과 같이 말하여 이르되 그를 죽이는 사람에게는 이러이러하게 하시리라 하니라

 

이스라엘의 군대가 골리앗과 블레셋의 위협으로 인해서 두려움에 휩싸여 제대로 싸움 한번 해보지 못하는 동안 하나님은 한 믿음의 사람을 준비시켜 역사의 무대 위로 이끌고 계십니다. 

원체 대단한 사건이었기에 성경은 다윗 가정의 배경을 다시 소상하게 설명해 줍니다. 

베들레헴에 이새라는 사람이 여덟 아들을 두고 있었고 아들들 중 위로 세 아들은 사울이 소집한 블레셋과의 전투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이야기는 전투에 참여하고 있는 새 아들이 아니라, 집에 남아서 양들을 돌보다가 형들에게 양식을 전달하러 갔던 막내아들을 다윗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당시 다윗은 이따금 사울에게 가서 수금을 타며 악인을 쫓는 일도 도왔지만, 나머지 시간들은 아버지의 양들을 돌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윗이 전쟁터에 나가지 않은 것은 나이도 어렸겠지만, 일부 형제들이 전쟁터에서 싸우는 동안 생업과 군인들의 보급을 감당해야 할 사람들이 필요했기 때문일 겁니다.

17절에서 19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17 이새가 그의 아들 다윗에게 이르되 지금 네 형들을 위하여 이 볶은 곡식 한 에바와 이 떡 열 덩이를 가지고 진영으로 속히 가서 네 형들에게 주고
18 이 치즈 열 덩이를 가져다가 그들의 천부장에게 주고 네 형들의 안부를 살피고 증표를 가져오라
19 그 때에 사울과 그들과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은 엘라 골짜기에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는 중이더라

세 아들을 전쟁터에 보낸 어떤 아버지가 편하게 다리를 뻗고 잠들 수 있겠습니까?

이새는 전투에 참가하고 있는 아들을 위해 얼마 간의 식량을 보내고, 또한 이 아들들의 안부를 알아보라고 다윗에게 심부름을 시킵니다.

다윗이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엘라 골짜기를 찾은 것은 창칼을 들고 전투하기 위해 나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의 심부름이었고, 형님들의 안부를 확인하기 위해 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 자신도 미처 상상하지 못한 하나님의 새로운 계획이 있었습니다. 

항상 위기와 고난은 개인의 운명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어줍니다. 

국가적으로는 위기의 때에 영웅이 배출되고, 개인적으로는 위기의 때에 숨은 잠재력과 가능성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마치 몸의 지체 하나가 장애를 갖게 되면 다른 지체들이 연약한 지체를 보완할 수 있는 능력이 개발되는 것과 같다고 하겠죠. 

사울이 악신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을 때, 하나님은 다윗의 영감과 찬양의 재능을 도구로 쓰셨습니다.

이번에 엘라 골짜기의 전투에서 만난 위기는 다윗의 용맹과 참된 믿음을 세우는 계기가 됩니다.

 

그렇습니다. 

개인이든 공동체든 위기는 언제나 우리를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새 일 앞으로 이끌어줍니다. 

우리의 고난도 하나님의 새 역사의 전조가 됩니다. 

철갑으로 무장한 거인 골리아 앞에 목동 다윗은 결코 맞수가 될 수는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결과를 알고 있지 않습니까?

누가 이겼습니까?

골리앗입니까?  아니면 다윗입니까?

둘 다 아닙니다.

하나님 편에 선 자가 이긴 것입니다. 

다윗이 용맹스러웠기 때문에 물매를 잘 던지기 때문에 이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하셨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연약하고 무능해 보이는 경건한 소수를 통해서 이 땅에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십니다.

 

모세가 가장 무능해 보이는 미디안 40년, 무명의 목동이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들어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들어 사용하십니다.

 

고대 근동을 제패했던 로마의 황제나 군대에 비하면 나사렛 목수를 따르는 이들은 너무나 무력하고 배우지 못한 존재들이었습니다.

화려한 수사와 능변으로 전파되는 헬라의 철학에 비하면,

유대에서 시작된 천국 복음은 오히려 초라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지금 로마의 제국은 과거의 영화를 자랑하는 관광지로 남아 있지만,

복음은 온 세상에 전파되어 천하 만민을 구원할 생명의 소식이 되었습니다.

목수였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모든 무릎이 그 앞에 꿇고 모든 입이 주라 시인하게 한 것입니다. 

 

경건한 소수가 세상을 이끌고 변화시킵니다. 


진리 편에 계십니까?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까?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 세상을 회복시킬 의의 용사로 세워지기를 축복합니다.

 

이새가 막내아들 다윗을 전쟁터로 보낸 이유는 무엇인가요?

 

반응형

 

보십시오.

다윗이 아침 일찍 이스라엘 진영으로 갔을 때 때마침 이스라엘과 블레셋이 전열을 벌이고 사기 진작을 위해서 고함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걸음을 이 역사적 현장까지 이끌어주신 것입니다. 

22절 23절을 읽어보겠습니다.

22 다윗이 자기의 짐을 짐 지키는 자의 손에 맡기고 군대로 달려가서 형들에게 문안하고
23 그들과 함께 말할 때에 마침 블레셋 사람의 싸움 돋우는 가드 사람 골리앗이라 하는 자가 그 전열에서 나와서 전과 같은 말을 하매 다윗이 들으니라

다윗은 아버지 이세가 심부름으로 요구한 것을 다 행했습니다. 

음식도 전달했고, 진영에 있는 형들에게 문안도 했습니다.

목적을 끝냈으니 이 살벌한 전쟁터를 벗어나 자신의 삶의 자리로 떠나도 되었습니다. 

그런데, 블레셋의 진영으로부터 다윗의 의분을 일으킬 만한 조롱의 말들이 들려옵니다.

골리앗이 양 군대가 대치하고 있는 동안 이미 40일째 여호와와 이스라엘의 군대를 모욕하는 말을 쏟아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골리앗의 위협과 조롱이 계속되는 동안, 세 부류의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있었습니다.

첫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두려워하며 벌벌 떨었습니다. 그중 어떤 병사들은 아예 도망쳐 버렸습니다. 

둘째 부류는 안전을 추구하는 침묵하는 다수들입니다. 

누구든지 저 사람을 죽이는 사람은 왕이 많은 재물을 주고 자기의 딸을 주어 사위를 삼고 그 집안에 세금까지 면제해 주겠다고 하는 군,
누군가 그런 상을 받는다면 정말 부럽기는 하겠지만, 나는 아니야. 그럴 능력도 용기도 없어.

상은 부럽지만 어떤 위험도 감소하지 않고 무리들 속에 숨어 안전을 도모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세 번째 부류도 있죠. 

다윗과 같은 사람입니다. 

이방인 장수가 자신의 힘만 믿고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는 것을 그냥 듣고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그 안에 거룩한 분노가 일어난 것입니다. 

26 다윗이 곁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이 블레셋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의 치욕을 제거하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대우를 하겠느냐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누구이기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

'이 할례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누구이기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

이스라엘 군대의 조롱은 곧 그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모욕이었습니다.

다윗의 관심은 더 이상 왕이 내릴 상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마음은 온통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골리앗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찼습니다.

할례 받지 못한 이방인이 하나님의 군대를 조롱하고 있는데도 정작 선택된 백성들은 주눅 들어 있고 두려워하고 도망치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전쟁에 참여한 군인은 아니었습니다. 

조용히 자신의 일을 다 마치고 돌아가더라도 어느 누구도 비난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이 사모하는 하나님과 그 백성들을 향한 책임감이 그를 안전지대에 속한 다수로 남겨두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습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승리를 선언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안에 죄로 인해 저주와 사망 아레 신음하고 있는 이 세상의 현실에 대한 거룩한 분노가 있기를 바랍니다.

주의 몸인 교회가 이토록 멸시받고 있는 현실에 대해 가슴 치는 아픔과 의문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또한 내 삶과 가정의 행복을 갉아먹고 있는 작은 여우, 죄들과 그릇된 습관들에 대해 분한 마음을 가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와 내 가족 가까운 사람들에게 아픔을 주고 반복적으로 상처를 남기는 나의 옛정과 욕심에 대해 단호하게 돌아서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러한 다윗의 믿음과 용기, 그리고 거룩한 분노가 여러분 안에도 일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만군의 주 여호와께서 그 이름의 영광을 위해 우리에게 승리를 허락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골리앗의 모습과 도전에 분노할까요, 두려워할까요?

 

거룩하신 하나님 
주의 이름이 모독받는 이 슬픈 현실에 대해 아픔을 가지고 기도합니다. 
이 땅에 주의 영예와 거룩함이 온전히 드러날 수 있도록,
저희와 교회를 정결하게 하시고,
바른 믿음과 복음을 증거할 수 있도록 용기와 담대함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