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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언약, 언약의 표징 (창세기 17:1~14)(20220830)

2022.08.30. | 생명의 삶 | 이해영 목사

 

영원한 언약, 언약의 표징

 

안녕하세요. 

온누리 교회를 섬기는 이해영 목사입니다.

 

아브라함의 할례 사건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됩니다.

하나님 보람과 맺었던 이 할례의 언약은 앞서 맺었던 다른 언약들과 차이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에게 특별한 행위를 요구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이 언약적 행위를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 모두에게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지만 실천을 요구한다라는 것을 우리들에게 암시합니다. 

나아가서 하나님의 언약은 믿음으로 시작하지만 그것은 필연적으로 삶으로 이어진다라는 것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오늘 믿음으로 주의 말씀을 경청하는 저와 여러분들의 삶도 아름답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행동으로 삶으로 이어져 나가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의 말씀은 창세기 17장 1절에서 14절의 말씀입니다.

 

영원한 언약, 언약의 표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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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2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
3 아브람이 엎드렸더니 하나님이 또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4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5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6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7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8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9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10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11 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12 너희의 대대로 모든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또는 너희 자손이 아니라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13 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희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14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포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1절을 다시 한번 읽습니다.

1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하나님은 아브라함 99세 때에 다시 나타나셨습니다.

86세 때 이스마엘을 낳았으니 이제 13년이 흐른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은 자신을 가리켜서 전능한 하나님 엘샤다이(히브리어: El Shaddai)라고 그렇게 계시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름을 개시하심에는 특별한 약속을 주신다라는 의미가 됩니다. 

그러니 우리도 부지런히 주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그의 능하신 이름을 선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고하시고 언약으로 주신 약속을 주장하는 삶이 되고 또 그것을 우리는 성취해나가는 능력이 될 것입니다. 

 

4절과 5절을 보시죠.

4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5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아브라함이라는 새 이름으로 그렇게 불러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이라는 말은 '여러 민족의 아버지'라는 그런 뜻을 갖습니다.

본래 이름인 아브람은 위대한 아버지 혹은 높은 아버지라는 그런 뜻을 갖는데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새 이름을 계시하신 것은 한 개인의 영화로움을 추구하는 그런 삶으로부터,

이제는 언약 백성의 조상으로서의 영화로움을 예고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시는 이 언약은 단순히 아브라함 한 사람을 향한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 한 사람을 통해서 이 세상에 나타날 여러 민족까지 대상으로 하시겠다는 그런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7절과 8절을 읽어보죠.

7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8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하나님은 이 언약이 아브라함의 개인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그의 대대 후손 사이에서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아가서 가난한 이 온 땅도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할 것이다라고 그렇게 선언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대로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인해서 그 은혜와 복이 모든 민족에게 나타난 것입니다.

성도는 아브라함의 영적 자손인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지요. 

그러니 우리는 부지런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선포해야 할 것입니다. 

강하고 담대하게 그 이름을 우리는 증언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수많은 열방과 또 민족이 주 앞으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왜 아브람의 이름을 바꿔 주셨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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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절을 다시 읽어봅니다. 

12 너희의 대대로 모든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또는 너희 자손이 아니라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집에서 난 자이든지 또는 이방인으로부터 돈으로 산 자든지 모두가 다 할례의 대상자들임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말이 왜 중요하냐면 13절에서도 또다시 반복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13 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희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은 아브라함의 혈통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는 사실을 12절과 13절 동일하게 되풀이된 표현을 통해서 발견하게 됩니다.

같은 집에 사는 사람이라면 그들이 이방인이 되었든 종들이 되었든 똑같이 적용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언약의 표징을 아브라함의 자손만이 아니라 그의 집에 속한 이방인들에게도 요구하신 것은 하나님의 구원이 혈통적인 것이 아니다는 것을 우리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언약에 의한 것이다'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이방인도 아브라함의 믿음을 따라서 언약에 동참하는 자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는 것이요.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들에게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명한 것은 그가 99세 때였다라고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아브라함이 후손을 기다리지 못해서 이스마엘을 낳은 것이 우리가 어제까지 보았던 그러한 아픔이었죠. 

그래서 하나님은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라고 이렇게 17장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일종의 아브라함에게 대한 책망인 것이지요.

그러니 이제 할례를 명령하신 것입니다.

할례는 남자의 포피를 베는 것인데 그것은 육신의 자손이 끊어진다라는 그런 상징적인 의미를 갖습니다.

말하자면 '이스라엘 백성은 육신의 자녀가 아니다'라는 것을 정말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영적인 자녀다'라는 것을 표징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역사에는 언제나 할례가 있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서 애굽으로 돌아갈 때였죠. 

하나님은 모세의 아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않은 그 모세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내인 십보라가 급히 할 일을 행하고 위기를 면했죠.

'하나님의 일은 육신으로는 행할 수 없다'라는 사실을 우리들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사건은 정말 육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죠.

 

뿐만 아닙니다. 

하나님은 여리고 성을 정복할 때에도 백성들의 할례를 명령했었습니다. 

그들이 광야에서 태어난 후손들이기에 아직 할례를 행하지 않았던 까닭입니다. 

여리고성을 무너뜨리는 일도 하나님이 행하시는 구원 역사임을 알게 하신 것이지요.

이렇게 할례는 육신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요.

또 할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라는 그러한 관문의 의미를 갖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들은 더 이상 할례를 행하지 않지요.

그리스도 안에서 손으로 하지 않은 완전한 할례가 우리들에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그와 함께 십자가 세례를 받음으로 인해서 그와 함께 죽고 또 그와 함께 살리심을 받은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정말 육신으로 죽고 영으로 사는 하나님의 진정한 할례 받은 자녀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갈라디아서 6장 15절에 이렇게 유명한 말씀을 남겼죠.

갈라디아서 6:15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은

성령의 새로운 능력으로

오늘도 거듭난 저와 여러분들인 줄로 믿습니다. 

 

오늘도 그러한 능력으로 살아가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는 어떤 방법으로 하나님 언약을 기억하고 떠올릴 수 있을까요?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언약을 믿음으로 부여받은 우리 모두가
마땅히 하나님 백성의 거룩한 삶을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오늘도 우리의 삶 속에서
눈부시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게 하여 주옵소서
오직 하나님의 성령으로 날마다 거듭나고 새로운 주의 백성 되어서 
오늘도 주님의 구원 역사에 참여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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