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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만한 바벨의 징계, 다양한 언어의 기원 (창세기 11:1~9)(20220820)

2022.08.20. | 생명의 삶 | 안광국 목사

 

교만한 바벨의 징계, 다양한 언어의 기원

 

할렐루야

금호 중앙 교회를 섬기는 안광국 목사입니다.

한 주간을 마무리하는 토요일,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감사함으로 한 주간을 마무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1978년에 맥도널드 햄버거 패티에 지렁이 고기가 섞여 있다는 그런 뉴스가 나와서 많은 사람들이 맥도널드 햄버거를 사 먹지 않는 일이 있었죠.

그것은 사실 가짜 뉴스였습니다. 

그런데 맥도널드 사에서 그것을 아무리 반박하고 광고를 해도 그 광고가 거듭될수록 사람들은 오히려 그것을 더 사실로 믿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왜 사실로 믿었을까요?

뉴욕대 커뮤니케이션 교수였던 클레이 서커는 그의 책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라는 책에서 사람의 언어와 문화는 한 방향으로 나아가기는 하지만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아주 위험한 것이다.

올바른 방향을 향해 나아가야 된다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인 바벨탑 사건도 사람의 언어가 하나가 되었을 때에 그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는가를 우리에게 조언하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볼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우리가 묵상할 말씀은 창세기 11장 1절에서 9절까지에 있는 말씀입니다.

 

 

교만한 바벨의 징계, 다양한 언어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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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2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3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4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5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

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7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8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9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오늘 본문 1절부터 4절까지 있는 말씀을 먼저 같이 묵상해 보겠습니다. 

1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2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3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4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그 시대에는 온 땅의 언어가 하나였습니다.

말이 하나였습니다. 좋았을까요. 좋지 않았을까요?

오늘날처럼 많은 언어를 배워야만 하는 이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언어가 하나라면 어느 나라 사람 하고도 다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으니 얼마나 더 좋았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죠. 

아마 언어를 배우느라고 고생하는 학생들의 경우에는 더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언어가 하나하나였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 그러나 좋은 목적으로 쓰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오히려 인간에게 악이 되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동박으로 옮기다가 신할 평지에 함께 모였습니다. 

그리고 벽돌을 만들어 탑을 쌓자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탑을 쌓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4절 말씀처럼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의 이름을 내고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늘에 닿게 한다라는 것은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죠. 

그들의 목적이 잘못되었습니다. 

목적이 잘못된 하나 된 만큼 위험한 것은 없습니다. 

속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故 하용조 목사님께서 늘 하시던 말씀이죠. 

여러분 얼마나 빨리 가는가.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올바른 방향을 향해 가는가.

그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는 올바른 방향보다도 빠른 속도를 더 중하게 여기는 그런 시대를 우리가 살아가고 있죠.

 

'위키피디아'라고 하는 것을 여러분들이 한 번쯤은 써보셨을 것입니다.

여러분 위키피디아에는 상관하는 직원이 이십 명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 년에 7억 명이 위키피디아를 참고하는 아주 어마어마한 백과사전이 되었죠. 

위키피디아에 올라와 있는 60만 건의 문건 1,561명이 기여하여 썼습니다.

위키피디아의 철학은 '평범한 대중이 뛰어난 천재보다 낫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개방형 지식을 추구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 지식을 나름대로 더 정확한 관점을 가지고 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위키피디아에 보면 잘못된 가짜 정보들과 가짜 지식과 또한 자기 자신을 잘못된 사람으로 꾸며서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등장을 하고 발견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 위키피디아의 목적성은 사실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지만, 이것이 얼마든지 잘못된 목적을 향해서 쓰일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늘 염두에 둬야만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 가운데에도 얼마나 많은 지식들이 있습니까?

이 지식들이 하나의 언어로 잘못된 방향을 향해 나아간다면, 우리는 바벨탑과 똑같은 그런 큰 잘못을 저지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다니엘 12장 4절 말씀에 보면

다니엘 12:4
너 다니엘은 마지막 때까지 이 말씀을 간직하고 이 글을 은밀하게 덮어 두어라.
많은 사람이 이 참된 말씀을 찾아서 이리저리로 빨리 왔다 갔다 할 것이다.”

마지막 시대에는 사람들이 이리로 저리로 빨리 왔다. 갔다. 할 것인데

그들은 참된 말씀을 찾아 이리저리로 빨리 왔다. 갔다 한다는 것입니다. 

이 다니엘서가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은 참된 말씀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 진리를 향하여 찾아다니는 그런 시대가 올 것이다라고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를 미리 예언한 것이죠. 

 

여러분 여러분에게는 얼마나 많은 지식이 있습니까?

얼마나 많은 지식을 추구하고 있습니까?

그런데 더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은 얼마나 참된 지식을 추구하고 있습니까?

얼마나 바른 목적을 향하여 그것을 추구하고 있습니까?
이 바벨탑 사건이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아주 중요한 진리 중에 하나 

우리의 지식은 바른 목적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

그 질문을 우리 스스로에게 곰곰이 질문해 보고 묵상해 볼 수 있는 오늘 하루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람들이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려 한 목적은 무엇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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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절부터 9절까지에 있는 말씀을 묵상해 보겠습니다. 

인간들이 쌓고 있는 그 탑을 보시려고 하나님께서 내려오셨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려오셔서 보니까. 이들의 목적이 잘못되어졌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셨죠.

 

6절 말씀에 보면 

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하나님께서 이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서로를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완성으로 만들어진 탑이 바로 바벨입니다. 바벨은 혼란이라는 뜻입니다. 

이 혼란은 말의 혼란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의 혼란을 말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혼란해졌죠. 어떻게 혼란해졌을까요?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하여 창조한 하나님의 백성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과 같아지고자 하는 그런 혼란스러운 마음이 생겨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 그것이 우리의 인생의 본질인 것을 착각하고 내 스스로가 하나님이 되고자 노력하는 그 마음의 혼탁함이 생겨진다면 언제든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바벨 탑처럼 혼란스럽게 만드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세상의 언어가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혼란스럽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빼앗겨버린 축복입니다. 

언어가 하나라는 것은 인류의 아주 큰 축복이었죠.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혼란스러웠기 때문에 빼앗겨 버렸습니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가 당연히 누려야만 할 많은 축복 가운데,

우리의 마음이 혼란스럽기 때문에 빼앗겨버린 축복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여러분 코로나도 여러 가지 자연재해도 그 자연과 바이러스가 인간을 공격하기 위하여 창조하신 것이 아닐진대,
왜 바이러스와 자연이 인간을 공격하게 된 것일까요?

인간의 마음 가운데 혼란이 생겨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모든 것을 하나님과 같이 통제하려고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그 하나님의 축복의 도구가 우리를 공격하는 도구가 된 것이지요.

반면 사도행전 2장 1절부터 4절까지의 말씀에 보면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의 충만함의 사건이 일어났을 때 

사람들이 각기 다른 방언으로 말하며 그들의 출신과 다른 말을 할 때 서로 그 말을 알아듣는 그런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어떻게 저 사람들은 우리의 말을 할 수 있냐라고 사람들이 깜짝 놀라죠.
성령께서 언어를 하나 되게 하신 것이죠. 

그럼 언어가 하나 된 것은 축복입니까? 저주입니까?

올바른 목적을 가지고 사용된다면 언어가 하나 된 것은 인류의 커다란 축복이죠.

 

여러분 이 말씀으로 우리의 교회 공동체를 한번 바라보길 원합니다.

여러분의 교회 공동체는 하나 된 언어를 소유하고 있습니까?

헨리 나우에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기도는 교회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공통의 언어이다.'
그래서 기도하는 공동체는 커뮤니케이션이 잘 됩니다.

회의를 오랫동안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기도가 없는 교회는 기도 대신 회의를 많이 합니다. 

회의를 많이 해도 의견을 좁힐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교회는 기도하는 교회입니까? 회의하는 교회입니까?

여러분의 교회는 마음이 잘 통하는 교회입니까? 마음이 잘 통하지 않는 교회입니까?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는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가의 다락방처럼 성령께서 방언으로 기도하게 하실 때

서로 출신은 다르지만 서로가 각자의 이해할 수 있는 말을 하였던 것처럼 

성령께서 하나 되게 하신 그 공동체를 누리는 그런 거룩한 교회가 될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여러분의 교회가 바벨탑을 쌓았던 사람들과 같은 그런 교회가 되지 않게 되기를 원합니다. 

언어가 혼잡해지고 똑같은 한국말을 하지만 저 사람이 하는 이야기를 알아듣지 못하고 저 사람이 하는 의도를 깨닫지 못하는 바벨탑처럼 혼란스러운 그런 교회가 되지 않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나는 성도의 공통 언어인 기도하는 그런 기도하는 사람인가?

우리 교회는 과연 기도하는 교회인가?

우리의 모습을 잘 살펴보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인생 기도하는 교회에 이루겠노라고 고백하며 결단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진행하는 도시와 탑 건설을 어떻게 막으셨나요?

 

거룩하신 아버지의 하나님 
언어가 하나이라는 것은 너무나 큰 축복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혼란스러웠을 때에 그 축복을 빼앗겨버립니다. 
주님 우리 안에 혼란스러운 바벨탑과 같은 그런 마음이 있는지 돌아보게 하여 주시고
성도의 유일한 공통 언어인 기도를 통하여 
우리의 가정과 우리의 교회가
서로가 말이 잘 통하는 교회, 회의하는 교회 되지 말게 하여 주시고
기도하는 교회 되어 줄 수 있도록
우리의 삶을 축복하여 주시고,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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