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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자를 향한 아버지 사랑, 죄인을 향한 하나님 사랑(누가복음 15:11~32)(20220224)

2022.02.24. | 생명의 삶 | 이기훈 목사                                                                                                         

 

탕자를 향한 아버지 사랑, 죄인을 향한 하나님 사랑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온누리 교회를 섬기고 있는 이기훈 목사입니다.
탕자의 비유 잘 아시죠?

아마 교회 수련회 때마다 촌극으로 연기가 되기도 하고

또 예수를 안 믿는 사람들도 많이 알고 있는 그와 같은 스토리이죠.

그런데 이 이야기는 이름이 잘못 매겨졌습니다.
원래는 '아버지의 사랑' 이렇게 붙여져야 되는데, 그동안의 우리가 '탕자의 비유'라고 그렇게 불러왔죠.
탕자를 사랑하시는 아버지 그분의 사랑은 어떠한 지를 오늘 함께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오늘은 누가복음 15장 11 절로 32절 말씀을 묵상하겠습니다.

 

 

탕자를 향한 아버지 사랑, 죄인을 향한 하나님 사랑


누가복음 15장 11절에서 32절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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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또 이르시되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12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13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14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15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사니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16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18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19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21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25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이 왔을 때에 풍악과 춤추는 소리를 듣고

26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27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건강한 그를 다시 맞아들이게 됨으로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28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29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30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31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32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아버지가 살아 계신데
자기의 유산을 물려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아주 무례한 행동이죠.

이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다 무례함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 등장하는 둘째 아들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12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아버지는 둘째 요구대로 재산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이 아들은 그 이후에 어떻게 인생을 살았을까요?

 

13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허랑방탕하여 재산을 낭비했다. 

 

그리고 그다음에 어떻게 됐습니까?

14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그가 궁핍한지라

16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여러분이 둘째 아들의 몰락 과정을 잘 보세요.
재산을 주세요. 그걸 가지고 화랑 방탕했어요. 궁핍해졌어요.

그다음에는 돼지가 먹는 음식을 먹을 지경으로 그가 궁핍하게 되었다는 것이죠.

 

이 둘째 아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할까요?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을 버리면, 하나님을 떠나면, 둘째 아들과 같은 삶의 여정을 겪게 된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육체적으로 먹을 것이 있고, 없고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죠.

영적으로 궁핍한 자가 된다는 것, 자기가 자기 인생을 자신 있게 살 수 있을 것 같고, 자기 능력으로 성공할 수 있을 것 같고, 자기가 살고 싶은 대로 사는 것은 행복할 것이다 라는 인생을 생각을 가지고 시작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허랑방탕, 궁핍, 이 몰락의 과정을 벗어나지는 못한다는 것이죠.

우리는 이 둘째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자신의 인생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하나님을 등지고 사는 인생은 궁핍할 수밖에 없고, 그 삶이 가장 비참할 수밖에 없다.
내가 하나님과 함께 그분 안에 살 때 비로소 우리는 풍성함을 누리며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떠세요?
지금 사시는 것이 그분과 함께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분을 등지고 살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삶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반전이 여기서 나옵니다.
이 아들이 회개의 과정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자기의 어리석음, 자기의 죄를 깨닫습니다.

 

그러고 나서 18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18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마음의 결심을 합니다.

'아버지에게 가서 회개를 하겠다.'

 

그리고 20절에

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21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여러분 여기 과정을 잘 보세요.

자기 죄를 깨달았습니다.
아버지께 돌아가기로 결단합니다. 회개한 것입니다.

그리고 결단만 하지 않고, 아버지께로 정말로 돌아왔다는 것이죠.

 

여러분

죄라는 인식만 갖고 있을 뿐, 아직도 그 죄로부터 돌아서지 않고 있는 것은 없습니까?
말로는 회개했지만, 아직 마음으로 행동으로 돌이키지 않고 있는 죄는 없습니까?
둘째 아들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모범입니다.
죄를 깨닫기만 하지 말고, 아버지께로 회개를 통하여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버지와 둘째 아들은 각각 누구를 상징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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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이 둘째 아들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을 했을까요?

흔히 우리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아버지는 아들에 대한 섭섭함 때문에 관심을 많이 내려놓고 사셨셨을지 모르죠.
그리고 괘씸한 마음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갖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어떤 태도를 가졌을까요?

 

20절 말씀을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버지의 행동에서 몇 가지 우리가 사랑하고 있는, 그리고 우리를 사랑하고 계신 하나님의 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그 아들을 기다리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집 나간 아들이 혹이나 언제 다시 돌아올까?
아버지는 포기하지 않고 기다리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이 아들이 돌아온 것을 진심으로 환영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정죄하고, 비판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죄를 깨닫고 허물을 깨닫고 돌아온 둘째 아들을 무조건 적으로 환영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크고 넓은 사랑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이 아버지는 22절부터 24일까지를 보면 이런 기록을 통해서 그분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아버지의 이런 행동에서 우리는 여전히 그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은 변함이 없었다는 사실을 여기서 알게 됩니다.
돌아온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태도나, 그 아들을 환영하는 아버지의 모습이나, 그 아들 때문에 잔치를 베푸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참 사랑이 무엇인가를 우리가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죠.

 

여러분 예수님이 이렇게 비유로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고 계신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누구든지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들, 배신자라 할지라도 결코 거부하지 않고 환영하시는 분입니다.
그 영혼이 아버지께로 돌아오기를 5년, 10년, 20년, 50년 기다려 주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비록 아버지를 버린 죄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여전히 사랑하고 계시고 그분이 가지고 계신 우리들에 대한 사랑은 변함이 없다는 거죠.

이게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 크신 하나님 사랑 말로다 형용 못하네' 이런 찬송을 부를 때에 은혜가 더 커지는 것이고,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나는 알 수 없도다.'
그분의 은혜를 찬성할 때마다 눈물을 지으면서 아버지를 찬양하는 것이죠.

 

여러분은 언제 어떻게 이와 같은 조건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셨나요?
그 사랑이 어떻게 여러분의 삶을 여기까지 인도하셨나요?
만약 그 사랑을 깊이 경험한 경험이 있다면 하나님을 찬양해 봅시다.
그리고 누구 에게인가 아버지의 사랑이 이런 것이라고 간증을 통해서 나누어 주시는 하루가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내가 너그러운 이해와 포용하는 사랑으로 대할 지체는 누구인가요?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회개하고 돌아올 때
큰 잔치를 벌일 정도로 기뻐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라니 너무나 감사합니다.
하나님
아직도 주저하고 있는 죄가 있다면
정말로 돌아서서 하나님 품으로 나오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하나님의 그 조건 없는 사랑을 경험하며 찬송하며 간증하며 살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하루를 동행하실 주님을 기대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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