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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산에 관하여

최근에 "떨기나무"라는 책을 읽으신분들이 전화를 하면서 시내산이 정말 가짜인지를 확인하시분들이 계십니다. 


떨기나무
국내도서
저자 : 김승학
출판 : 두란노서원 2007.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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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기나무 2
국내도서
저자 : 김승학
출판 : 생명의말씀사 2014.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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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왜 시내산이 아닌데도 시내산이라고 하면서 성지순례를 하느냐고 원망하는 소리도 듣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는 범위내에 시내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하면, 저는 성서 고고학자가 아닙니다. 

다만 신학을 전공하였고 그것도 구약학을 공부한 목사로서 의견을 개진할 뿐입니다. 

그리고 성지에 대하여 확인하는 것은 우리들의 몫이 아닙니다. 

그것은 성서 고고학자들이 연구하여 발표할 사항입니다. 


시내산의 위치에 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어 일정하지가 않습니다. 

시내산 위치의 확인은 이집트 탈출후의 이스라엘 민족의 진로의 확인과 관련이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옛부터 성서 지리학적 또는 성서 고고학적 난해한 문제중 하나였습니다. 



아무도 시내산의 정확한 위치를 알고 있는 사람은 아직까지 없습니다. 

성지의 대부분이 약 3500~2000년의 역사를 지닌 장소입니다. 

그러기에 대부분의 성지는 추정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확실성이 더 많고 적음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모세 지도자는 이스라엘에서 국부와 같은 존재입니다. 

그러기에 이스라엘에서도 모세의 흔적을 찾으려고 무던 애를 썼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1967년 6월 전쟁의 결과 이스라엘이 시나이 반도를 점령하자 마자 

이스라엘의 고고학자들은 출애굽의 고고학적 자료를 찾기 위해 시나이 반도를 다 뒤졌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결과는 정말 실망스러운 것 뿐이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출애굽한 연대인 주전 13세기또는 15세기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40년의 방랑생활의 근거지라고 생각하던 가데스 바네야 조차에서도 솔로몬 왕 시대의 흔적만을 발견하였을 뿐입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시내산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모세의 산인 "제벨 무사"에서도 비잔틴 시대 이전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이스라엘 민족이 유목민족이기 때문에 유목 민족의 특성상 

항상 이동하는 습관이 있기 때문에 정착의 흔적을 찾기는 쉽지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고고학적 증거를 찾는데 실패하였기 때문에 고고학자들은 또 다른 장소에서 시내산을 찾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중 하나가 떨기나무에서 주장하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자발 알 라우즈 산입니다. 



1920년대 하버드 대학의 고대 근동 언어 학자인 크로스 교수는 

이스라엘 민족의 지리적 고향을 미디안 지역 즉 오늘날 요르단 남쪽의 사우디 아라비아의 영토라고 주장한바 있습니다. 


물론 사사기서에 보면 미디안족은 이스라엘을 괴롭였던 민족입니다. 

그러나 모세가 미디안의 제사장 이드로의 사위가 되었고 그의 부인도 미디안 족이었음을 볼때 

이스라엘은 미디안에 의해서 많은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할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학설을 신봉하던 미국인 왓트페이솔드는 

출애굽의 황금 보물을 찾기 위해 1986년에 아라비아에 밀입국합니다.

그러면 갑짜기 왜 황금 보물이라는 이야기가 나온 것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여야 하겠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을 떠났때 그들이 구하는 것은 다 주었다고 하였으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나올때 많은 금은 보화를 갖고 나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금은 보화로 시내산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었고, 

그후 그 금은 보화를 그 근처에 어딘가에 묻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듯 시내산을 찾는 것이 보물찾기가 된 것입니다.



왓트라와 그 일행이 아라비아에 밀입국하여 들어갔다가 하루만에 발각되어 추방을 당하였습니다. 

그들은 1988년 재차 사우디 아라비아에 밀입국하여 알 라우즈산을 집중적으로 조사하였습니다. 


그 결과 산꼭대기에는 불에 탄 흔적이 생각하는 산이 검게 되어 있었고 

그것은 야훼 하나님이 나타날때 불가운데로 강림하셔서 그 연기가 웅기점 같이 올라갔다고 기록되어 있기에 그 흔적이라고 보았던 것입니다.

그외 12지파를 상징하는 열 두개의 돌기둥과 모세가 들어가 있었다는 바위틈, 금송아지의 암각화 



그리고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7촛대의 메노라를 발견하였다고 보고하였습니다. 

우리가 읽은 떨기나무에 나온 내용과 매우 흡사합니다. 

이러한 발견으로 인하여 그들은 알 라우즈산시내산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물론 서기 4세기까지는 시내산의 위치는 미디안 즉 아라비아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고 그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서기 2세기에 번역된 희랍어 구약성서에는 출애굽기의 미디안을 "마디안 도시"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벨서8:19절에도 시내산이 아라비아에 있는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아라비아에 선교차 들렀던 사도 바울도 시내산이 이곳에 있다고 갈라디아서 4:25절에 언급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역사를 기록하였던 요세푸스도 

고대 유대사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시내산에 도착하기 전에 머물렀던 르비딤 광야가 나비티안의 수도였던 폐트라라고 언급하면서 시내산은 마디아네 지방의 가장 높은 봉우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유대인들의 기록에 영향을 받았던 교부시대의 지도자들은 특히 

유세비우스,제롬등은 시내산을 아라비아 광야의 미디안 도시 근처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전승은 서기 7세기 이 지역이 무슬림들에 의해서 정복된후 사라져 버렸고 

비잔틴 시대의 유스티아누스 황제에 의해서 지금의 제벨 무사가 시내산으로 선포되어 순레하게 되었으며 

오늘날에도 가정 유력한 곳중 하나입니다.



저희들 아마추어들은 정확히 어디가 시내산인 것인지를 확인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인들의 주관심을 눈여겨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인들은 시내산의 정확한 위치 보다도 

하나님 야훼와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해서 계약을 맺었느냐 하는데 더 주안점을 두고 있습니다. 



따라서 시내산호렙산이라고 불려지는 것도 그 까닭이입니다. 


우리가 다시금 이스라엘인들을 통하여 배워야 하는 점들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출처 : 크리스찬 해피투어]

http://www.chtour.co.kr/holy/egypt?mode=view&page=4&rows=10&holy_id=1


[관련링크 : 진짜 시내산은 어디 있나요?]


[관련링크 : 시내산, 호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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